77화 분기점
“저 프레이야님을 믿겠어요. 개종할래요.”
레이나의 폭탄 선언에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그중 가장 황당한 표정은 로이드였다.
프레이야가 되살린 로이드의 존재 자체를 진짜 로이드로서 믿고 인정해 줄 것인지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로이드가 맞다고 하더라도 프레이야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로 간주하지 않을까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다.
“레, 레이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당황한 로이드의 반응에 레이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녀가 본 프레이야는 가짜 로이드를 날조하거나, 로이드의 정신을 제압하는 그런 짓을 할 존재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로이드가 로이드답다는 점에서 그녀는 조금 더 만족할 수 있었다.
“프레이야님이 로이드를 살려주셨는걸. 그것만으로 충분해. 난 로이드처럼 종교에 얽매일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나는 프레이야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봤다.
“전 프레이야님을 믿을래요. 교리가 어떻게 되나요? 책이라도 주시면 열심히 공부할께요.”
“그, 그런거 안키우는데.”
프레이야는 당황해서 답변했다. 이건 완전히 예상 밖의 사태였다. 로이드를 설득할 때에도, 지구에서 신자를 받지는 않을 것이고 교세를 확장할 의사는 없다고 확언했기 때문이었다.
“난 잡신이란다. 잡귀랑 비슷한 거야. 그러니 굳이 개종할 필요는 없단다. 게다가, 조금 전에 널 아프게 만든 것도 나야. 널 이리로 끌고 오기 위해서 강제로 아프게 만들었지.”
프레이야가 쩔쩔매면서 달래듯 말하자, 로이드는 미소를 지었다. 레이나가 갑자기 개종하겠다고 말해서 당황했지만, 프레이야의 모습을 보니 그럴만도 하다고 납득할 수 있었다.
프레이야는 그 순간, 로이드와 레이나가 자신과 연결되었음을 막연히 알 수 있었다. 감사와 신뢰. 그것이 바로 반족의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개종할 필요는 없어. 지금 날 생각해 주는 마음만으로 충분해.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프레이야는 미소를 지으며, 레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레이나가 원기보다는 위였지만 왠지 어리고 귀엽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실 거 없어요. 음, 뭐랄까. 아프긴 아팠지만 아픔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그 뭐랄까? 상쾌감? 쾌감? 전 좋아하거든요.”
레이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헉, 여기 변태가 있다. 아저씨. 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운거에요?’
프레이야는 당황해서 로이드를 바라봤다. 프레이야 말고도 여러 사람의 눈빛이 로이드를 향하자, 크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자랑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원래 우리나라가 그쪽 계통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
“음,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 같네.”
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프레이야는 자신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레이나를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한 가지 만큼은 분명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반 신족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슬람교나 유대교, 그리스도교 같은 유일신 종교보다는 불교나 힌두교 같은 다신교가 좀 더 유리하긴 하겠군.’
조제성의 힘으로 비행기를 잠시 늦춘 덕분에, 레이나는 무사히 영국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수 있었다.
개종 선언을 했지만, 실제로 중심이 되는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기에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어차피 레이나는 부모를 따라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요즘 세대 답게 그리 깊은 신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메타트론, 오드는 쉽게 현신할 수 없었다. 오드가 현신이 가능한 곳은 기본적으로 랭크 5 이상의 성역이 필요하고, 현재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이태리, 스페인 세 곳에 불과했다.
그리고 프레이야는 오드와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로이드와 레이나에게 인식시킨 상태였다. 그들은 메타트론과 프레이야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템플 기사단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오드를 배신했다고 할 수 없었다.
‘일단 네이슨 일파의 움직임은 잘 알 수 있겠군.’
레이나를 보낸 후, 크리스와 로이드를 합류시킨 상태에서 템플 나이트에 대한 대처 문제를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일단, 전장을 옮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제성의 의견에 모두는 동의했다. 한국, 서울이라는 전장은 사실 템플 나이트들보다는 원기측에 유리한 전장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현재 은밀히 무기를 구하고는 있지만, 오랜 세월 암약해온 템플 기사단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구축함이나 항모 같은 것은 없지만, 핵잠수함을 현재 두 척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공중 전력에 전차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조제성이 구한 무기들은 AK-47 밀조공장, 그리고 생산된 AK-47, 추가로 저격총 한 정 정도가 다였다.
템플 기사단으로서 은폐공작이 어려운 한국의 서울이라면, 그들이 투입할 수 있는 것은 보병 부대가 거의 전부라고 봐야했다.
네이슨이 전투 헬기를 동원한 것은 로이드로서도 의외였지만, 확실한 정보가 얻어질 때까지는 그 이상의 모험은 불가능할 거라는 것이 로이드의 의견이었다.
보병대 보병의 전투라면, 엘프들을 동원 가능한 원기측의 압승이라고 봐도 좋았다. 특히 게임 캐릭터의 육체를 가진 엘프들은 에인페리아들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진에서 싸우는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조제성이 설립한 학원과 병원은 현 시점에서는 근거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이 공격을 받고,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태만큼은 피해야 했다.
자칫해서 폭탄을 맞고 방에서 누워서 게임하던 사람들이 떼거지로 로그아웃 당하는 사태는 그야말로 최악이 될 것이었다.
“저는 남미를 추천하고 싶군요.”
크리스 맥케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용병 활동을 해봐서 알지만, 남미에는 정글도 넓고 큽니다. 그래서 반정부 게릴라들이 많지요. 물론 반정부 게릴라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변질된 나쁜 놈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소말리아의 해적들처럼 영리 목적의 살인, 유괴 등을 일삼고, 주민들을 마약 재배에 동원하며 노예처럼 부리기도 합니다. 이런 놈들 가운데 하나 둘, 둥지를 털어버리면, 무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전 반대로군요. 만약 엘프들이 남미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그들은 부담없이 특공대와 전투기, 전투 헬기등을 동원해서 밀어버릴 겁니다. 꼼짝없이 다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로이드가 반대했다.
“로이드씨. 만약 그렇게 된다면, 템플 기사단의 젊은 층들의 에너지도 발산되지 않을까요?”
프레이야의 질문에 로이드는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능합니다만, 그런 것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낼 수는...”
“저는 남미 진출에 찬성입니다. 다른 분들은?”
그러자, 모두가 찬성 의견을 보였다. 게임 캐릭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로이드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로이드씨가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것은 알지만, 저로서는 로이드씨가 끝까지 템플 기사단의 일원으로 남아 주시기를 바라니 모든 것을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한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미드가르드의 기술도 나름대로 발전했습니다. 랭크 3의 성역에서 발동되는 이 거울이 그 증거지요.”
그녀의 말에 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기로는 미드가르드에서 현세에 통로를 여는 것은 물론이고 유지하기 위해선 6랭크 이상의 세계수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제성씨를 보세요. 그는 성검 그림리퍼에 맞았지만 무사하지 않습니까. 부활에 들어가는 신성력을 줄였을 뿐 아니라, 성검에도 견딜 수 있는 부활의 기술을 얻었다는 점만 말씀드리지요.”
“아, 그렇다면 납득이 갑니다.”
남미에 기지를 건설하고 갱그룹이나 다름없는 악덕 게릴라들을 습격해서 그들의 무기와 요새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것을 템플 기사단에게 노출시킨다면, 그들의 시선을 끌어드릴 수 있을 것이었다.
“남미 쪽이라면 비벼볼 만한 구석이 많습니다.”
크리스가 자신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 다리를 절게 되어 용병 생활이 끝나기는 했지만, 용병들 가운데서 믿을 만한 의뢰주들이 제법 있었다.
멕시코 같은 경우엔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유괴 사건이 빈발했다. 경찰력을 믿지 못하는 부자들이 용병들을 고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크리스는 로이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왠지 쓸만한 도구를 보는 듯한 눈초리를 동반한 탓에 로이드는 기분이 찝찝해졌다.
“이 친구와 함께라면 유괴범을 찾아내서 사건 해결하는 건 문제도 아닐겁니다. 유괴범들은 대게 내부 협조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인간 거짓말 탐지기가 있으면 사건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정찰용 발키리에, 밀림을 누비는 엘프들까지 이용한다면 유괴범들에게 승산은 눈꼽만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조제성 사장님, 리디아를 데리고 가세요.”
원기가 말하는 뜻을 조제성이 알아챘다. 리디아의 능력은 현재 극소수만이 알고 있고,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효하게 살리기 위해선 그녀의 능력을 아는 4인 위원회 중 누군가가 함께 할 필요가 있었다.
“연하와 리디아의 총사대라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미드가르드의 지르 요새 공략전에 참가하게 될 겁니다.”
펜릴 왕국의 지르 요새 공략전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중요한 전투라고 할 수 있었다.
연하의 저격 능력은 가치가 있지만, 희연이나 원기의 능력은 정글을 누비는데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리디아를 비롯한 다른 엘프들은 원숭이들 저리가라할만큼 정글에 익숙해 있었다.
권력자나 대부호의 용병으로 들어가서, 임무를 해결함과 동시에 게릴라들을 해치우고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대거 불법 입국 엘프들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엘프 게임 캐릭터들의 활약과 유용성을 감안한다면 좀 더 다수의 엘프들을 게이머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게임 앵벌이 공장이라도 차려야지.’
유사시에 털릴 가능성을 둔 요새와, 장기적으로 키워나갈 거점, 두가지를 동시에 키울 필요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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