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80화 (80/497)

80화 남미루트 -2-

엘프 성노예, 판타지 소설에 곧잘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미드가르드에선 두가지 이유로 말도 안된다는 취급을 받는다.

첫번째는 성적 취향.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범주는 대단히 넓어졌다. 하지만 일이백년 전만해도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다. 생김새도 피부색도 생활양식도 다른 서로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종이 다른 인간들간의 결합, 혹은 애정은 동물에 대한 변태적 애정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기본적으로 백인종 밖에 없는 미드가르드에서, 다른 종족과의 번식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가깝게 여겨졌다.

여성이면서도 두드러지지 않은 가슴이나 날카로운 귀, 눈매의 차이 등 때문에 엘프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두번째는 엘프 사냥꾼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숲에서 서식하며, 자신들이 서식하는 숲에 인간이 들어오면 철저하게 제거해 버렸다.

마법사와 궁수, 검사 등등 파티를 이뤄서 숲에 들어온다고 해도, 엘프들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내기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철저히 숨어서 화살을 날리고, 인간과 비교도 안되는 이동속도로 숲을 이동해서 숨어버렸다. 쉴틈없이 쏟아지는 화살들, 특히 인간과 달리 가시광선 뿐만 아니라 적외선도 볼 수 있는 그들의 야시 능력으로 야음을 틈타서 밤새도록 화살을 쏘거나 죽이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엘프들을 사냥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왔다.

그리고 만약, 엘프가 산채로 생포 당하게 되면, 그 다음엔 난리가 났다. 엘프들이 적극적으로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야음을 틈타서 인간을 습격해서 죽이고 불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때 엘프들의 목적은 동료의 생환보다는, 동료의 시신이었다.

죽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인간을 끊임없이 사냥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오크보다 더 질기고 고약한 야행성 몬스터, 그것이 미드가르드에서 엘프에 대한 평가였다.

끌려간 동포는 시신이 되지만, 구출을 기다리는 이를 무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신을 확인하는 편이 낫다는 사고 방식이었다.

추한 인간형 몬스터이면서, 건드리면 지랄맞은 놈들이라는게 미드가르드에 있어서 엘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였다.

남성적 공격성이라기보다는 여성적 공격성이지만 그만큼 더 집요하고 잔인한 면모도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엘프를 몬스터 취급하는 이상으로, 엘프에겐 인간 역시 몬스터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을 죽이는데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마트에서 포장된 고기만 사다먹다보니, 자신들이 먹는 고기가 살아있는 동물을 죽여서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체감하지 못하는 현대인들과 달리, 그들은 필요하다면 동물이든 적이든 생명을 빼앗는데 별다른 망설임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엘프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적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죽임으로써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인간과 공존함으로써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일종의 큼직한 바퀴벌레와 공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지 몰랐다. 때려 죽이는 편이, 가만 냅두고 옆에 두고 보면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인간과의 공존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장수한이나 엘레니아와 상담하는 이들도 많았다. 프레이야 여신의 뜻이라고 억지로 참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같은 미디어의 영향은 그런 면에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백인과 흑인이 공존하고 때로는 연애하고 가족을 만드는 그런 상황들을 접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등을 즐기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호의도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 인간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없던 죄책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가 엘프들을 훈련시키면서 느끼는 당혹감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엘프들은 무기 취향에 따라서 네개의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 1번대는 화력에 치중한 무기를 선호하는 이들이었다. 중기관총, 휴대용 로켓런쳐등 공격적인 무기를 선호했다. 그리고 게임 캐릭터들도 원기처럼 힘에 치중한 힘캐를 선호했다.

2번대는 균형잡힌 무기를 선호하는 돌격형 부대였다. 이들은 돌격 소총이나 산탄총 같은 무기를 주로 사용했다. 힘이 인간을 능가하는 만큼 더 무거운 무기를 지녀도 지장은 없지만, 무거운 무기는 그만큼 거추장스러웠다.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그 안에서 화력을 추구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3번대는 엘프들의 주특기인 저격형 부대였다. 조용히 은신하고 기다려서 가능한 원거리에서 정확하게 한발로 적을 제압하는 것을 선호한다.

4번대는 경무장 선호파였다. 레이니 부장처럼 쌍권총을 선호하는 이는 사실 얼마 없었다. 권총과 서브머신건처럼 양팔의 움직임에 지장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경무장을 선호할 뿐이었다.

실제로는 저격 선호의 3번대가 가장 선호도가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1번대와 4번대에 강제로 배치된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4번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은 권총과 검, 혹은 방패와 서브머신건 파였다.

그리고 크리스가 묘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은 쌍권총파인 레이니 부장과 검과 총을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쌍권총은 사실 미친 짓이다. 화력은 두배가 되지만, 재장전이 어렵고 정확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아무리 특수부대라고 해도, 쌍권총 가지고 싸우겠다는 놈이 나오면 이상한 놈 취급받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손대포라고 불리우는 대구경 권총 역시 실전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선호하지 않는다. 반동 처리가 어려워서 연사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재빠른 연사로 세발 정도를 박아넣는 편이 실제 적을 제압하는데 있어서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 능력을 월등히 뛰어넘는데다가 운동신경을 비롯해 감각적 능력까지 다른 엘프들에게 표준적인 전투 교범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크리스로서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왠만한 숲길이나 산길에서는 직선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빠른 이동속도를 가진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전술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한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레이니. 네가 첫번째다.”

목표는 레드 드래곤의 보스가 머무르는 저택이었다. 저택 옥상에는 늘 두 명의 소총을 든 경비가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내에는 약 스무명 정도가 머무르고 있었다. 멕시코하면 왠지 미국 영화의 영향으로 건조한 곳을 연상하기 쉽지만, 아열대에 우기가 길어서 비가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어두운 새벽녘에는 아무래도 경계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레이니가 단독으로 진입하고, 혹여 사망하게 되면 다음 타자가 진입하기로 되어 있었다.

레이니의 무장은 무난하게 베레타M92FS 7정이었다. 구하기 쉽고 흔하면서 뛰어난 성능의 권총이었다.

15발 탄창이지만, 약실에 1발을 넣어둔 상태라 16발 장전된 상태로 112발과 탄창 네 개 60발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엘프라지만, 쌍권총을 들고 저글링하면서 탄창교환하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에, 16발을 쏘고 버리고, 쏘고 버리고 하면서 마지막 한정으로는 탄창을 교환해가면서 싸우기로 되어 있었다.

“Go!"

크리스가 사인을 내리자, 레이니는 아주 민첩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2미터 높이의 담장을 뛰어 넘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문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건물로 들어가는 전기가 차단되며 몇군데 켜져있던 불빛이 사라졌다. 옥상의 경비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그녀는 저택의 정문을 뚫고 들어갔다.

묵직한 나무 문이었지만, 그녀의 몸통 박치기는 그것을 파괴할 충분한 파괴력이 있었다.

그리고 비상벨이 울리면서 조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가볍게 웃으면서 연막탄을 던졌다. 건물의 설계도를 미리 확인한 상태라서, 그녀가 던진 연막탄 세발이면 충분히 건물 내부를 연기로 꽉 채우고 남음이 있었다.

비상 발전기로 조명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환풍기까지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에, 연막은 적어도 10분간 자욱하게 껴있을 예정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베레타 두정을 양손에 뽑아 들었다.

7정 모두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녀는 연막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조명을 향해서 총을 쐈다.

영화에서는 피육 하는 작은 소리 밖에는 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꽤 큰 소리가 났다. 다만 건물 밖까지 울려퍼질 정도는 아닐 뿐이었다. 그녀는 조명을 차례대로 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무슨 일이지?”

“적이..!”

방문이 열리면서 튀어나온 두 사내가 그대로 총에 맞아서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 중 하나에게서 미약한 숨소리가 들려오자, 레이니는 걸으면서 다시 한 발을 쐈다. 생명을 잃고 숨이 끊기는 전형적인 소리가 들려오자 레이니는 다시 앞으로 향했다.

“침입자다!”

윗층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와는 관계 없는 장소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프렌들리 파이어, 오인 사격이었다. 아군이 하나 없이 혼자 돌입한 그녀는 망설임없이 쏠 수 있지만, 상대는 어둠과 연막 속에서 상대를 확인하고 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적이 있군.’

그녀는 앞쪽의 책상 밑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를 알아챘다. 그리고 클릭하는 금속음을 들었다. 안전장치를 풀고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였다.

하아, 하아, 흡

긴장된 숨 소리가 들리다가, 호흡을 들이키는 순간 그녀의 총이 불을 뿜었다. 상대는 책상에서 튀어나오다가 그대로 총알에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레이니의 헬멧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서 바깥에서 지켜보는 크리스에게 전해졌다.

‘저건 반칙이야.’

크리스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숨소리를 듣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기술은 말 그대로 반칙에 가까웠다.

‘단독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청하더니만...’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이용해, 단독 잠입하게 된다면 이런 재주를 부리는 것도 가능했다. 총소리로 요란해지면 아무리 엘프의 청력이 좋아도 온전히 활용할 수 없을 터였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안에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녀를 당해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체크 메이트.”

그녀는 홀로 떨고 있는 보스를 발견하고 그를 처형했다. 그런 다음 침대 한쪽 구석에서 숨어서 떨고있는 여자를 향해서, 꼼짝않고 있으면 살아날 거라고 친절한 경고를 해준 다음 유유히 밖으로 빠져 나왔다.

보스의 가족,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는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비 전투원은 살려두라고 하길 잘했군.”

크리스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완벽할 정도의 확인 사살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호흡을 완전히 멈추고 죽은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부상자 제로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엘프는 인간이 아닌 몬스터라는 소리를 지금은 납득할 수 있었다.

나중에 경찰이 와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지 내심 궁금해졌다.

“신속하게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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