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미드가르드 루트 돌입
“이게 인간의 짓이라고? 증거를 의심하게 만드는군.”
“남아있던 소년의 증언에 따르면, 고작 5분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보스를 처치할 때까지 5분밖에 안걸렸다는군요. 게다가 여자라고 하니.”
“이게 정말 말이 되는건지.”
베테랑 감식관이 혀를 찼다.
총알의 탄흔을 검사한 결과 사용된 총기는 딱 두 자루였다. 그것도 극히 평범한 베레타였다. 갱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여타 총기에 비하면 살짝 비싼 편이지만 손에 넣기는 어렵지 않았다.
연막탄의 가루가 바닥에 남아있어서,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냥 걸어갔어. 신발도 평범한 여성용 구두야. 하이힐은 아니지만, 그다지 굽이 낮은 편도 아니군. 쇼핑몰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걷는 그런 발자국이로군.”
“설마, 그런 일이.”
“쌍권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군. 그리고 발사한 높이가 대부분 일정해. 그냥 걸으면서 직립자세로 권총을 난사? 아니 조준사 했다고 해야 할 것 같군.”
시신이 열다섯 구가 나왔지만, 사용된 탄환은 고작 22발이었다. 게다가 한발 씩 맞은 8구는 모두 즉사, 7구는 치명상에 해당되는 첫발, 그리고 두번 째 발로 모두 즉사한 것으로 보였다.
“이건 단순한 히트맨이라고 볼 수 없어. 슈퍼 영웅이라도 되는건가?”
“마치 터미네이터로군요.”
“아니, 더 고약해. 터미네이터는 뒤에서 쏘거나 숨어서 쏘면 몇발 맞아주기라도 했지. 이 여자는 사선에 들어오는 순간 치명상을 입혔어. 마치 뒤통수에도 눈알이 달려있는 듯 하군. 다들 쏴보지도 못하고 죽지 않았나.”
“숨어서 손만 내밀어서 쏘거나 하지 않나요? 보통?”
“생각해 봐. 갑작스러운 정전, 그리고 연막탄이 터졌어. 연막이 침침한 상태에선 플래시 라이트도 효과가 별로 없지. 그런 상황에서 적이 어딨는지 알고 쏘겠나? 이 여자가 해치운 15명 말고 7명이 서로 쏴서 죽었네. 아마도 이놈들은 적이 어디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봐야지. 미간에 총을 맞은 놈들보다 뒤통수나 옆에서 맞아죽은 놈들이 많은게 그 증거야.”
“특수 장비를 사용했을까요?”
“아마, 그렇겠지. 배트맨이라도 되는 건가?”
영화팬인 감식관이 영화속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경우엔 배트우먼일까요.”
“일단 우린 소견서만 제출하면 되겠지. 그건 그렇고 다들 열성적이군.”
경찰과 갱조직의 유착은 지금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탓에, 경찰 고위층까지 이번 사건에 모든 재원을 투입한 상태였다.
“경찰들이 떼죽음 당했을 때보다 갱들이 떼죽음 당한 것에 이런 반응이라니 말이야.”
“그런데, 감식관님 말씀대로 터미네이터보다 무섭다면, 경찰서도 안전하지 못한 거 아닙니까?”
“그건 좀 그렇군. 하지만, 지금 진짜 무서운건 삼류 영화시나리오만도 못한 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걸세.”
“아, 그도 그렇군요.”
증거라고 할만한 것이 남은게 없었다. 정체불명의 히트맨은 들어와서 아무것에도 손을 대지 않고, 총알만 뿌리고 떠났다. 유유히 걸어와서(뛴 흔적도 없었다. 몸을 굽히거나 피할 일도 없었을 것 같았다.) 그냥 걸어나갔을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차가 저 두꺼운 문짝하고 충돌하고 파편조각, 페인트 칠 하나 안남긴 걸까요.”
“그도 그렇군. 정문은 또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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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떡밥이면, 남미로 시선을 끌 수도 있겠는걸. 크리스. 자네 정말 잘해주었네.”
“글쎄요. 이정도면 실책이라고 봐도 될 것 같군요. 이런 결과는 의도하지 않았으니까요.”
경비 회사가 도착할 때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릴 것이고, 그들이 진입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5분은 걸릴터였다. 레이니는 어느쪽 담장이건 손쉽게 넘어서 탈출할 수 있을테니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좀 더 총알을 뿌리도록 지시를 내릴 걸 그랬습니다.”
“아니, 이정도가 좋아. 서울에서 이쪽으로 시선을 끌어들일 필요는 있어. 아마존의 소문은 좀 허황되게 들리니까 말이지.”
얼마안가 멕시코의 황색 언론에선 배트우먼의 응징이라는 소설에 가까운, 기사가 흘러나왔다. 기존 대조직의 혼란으로 미국에 반출되는 마약의 양은 줄었지만, 돈이 궁해진데다가 세력싸움이 격화되어 많은 범죄들이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측에서는 그저 히트맨에 지나지 않는 살인마라고 해명했지만, 악화된 치안에 염증이 난 시민들은 도시전설에 가까운 이야기 쪽을 선호했다.
“배트우먼, 정말 재밌어. 어때? 한번 활약시켜 보는게.”
조제성의 말에 크리스와 로이드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사히 로이드의 장례식이 마쳐지고, 레이나는 네이슨의 지휘하로 돌아갔다. 그녀는 로이드가 아마존에 대해 조사한 것을 알렸다. 실제로 로이드는 조제성이 단 한번 다녀온 아마존에 대한 조사도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조사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로이드는 조제성이 타천사들의 무리와 접촉한 후에는 그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고 봤어요. 그래서 여러차례 오고간 호주 보다는 딱 한번 오간 아마존이 유력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럴 듯 하군. 엘프들이 활약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지.”
네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엘프들이 대거 들어왔다고 하지만, 헬기 공격으로 대부분 죽은 만큼, 한국쪽에 매달릴 가치가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안그래도 신경쓰이는 이야기가 있었지.”
네이슨 역시 아마존에서 금발의 악마들이 목격되었다는 소문을 지나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레이나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썼다.
“그건 그렇고, 멕시코에서도 눈길을 끄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 뉴스 봤어요. 배트우먼이라지요?”
“흠, 아무래도 엘프의 짓인 듯 싶다. 레이나 너도 저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네이슨의 말에 레이나는 살짝 웃었다. 그녀의 평범해 보이는 귀가 팔락거리며 움직였다. 템플 기사단들 가운데 엘프의 피를 지닌 이들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아기일때 성형수술을 시켜서 귀의 모양을 평범한 인간처럼 바꿔 버렸다. 청력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을 능가했다.
“쌍권총 질은 무리지요. ’보조귀‘를 장착하면 비슷하게 싸울 수는 있지 않을까요?”
보조귀라는 것은 템플 기사단에서 개발한 일종의 장착식 장비였다. 특수 집음장치와 분석장치가 붙어있어서 실제 귀에서 듣는 소리와는 다르지만, 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하이브릿드들은 훈련으로 분석해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소음이나 폭음 속에서도 사용가능할 수 있는 뛰어난 장비였다.
눈에 띄는 결함이라면, 길죽한 금속판 형태의 소나가 귀에 장착되는 형태라서, 코스플레로 오인당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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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 요새와 데지스 성은 상호 협력하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데지스 성의 북부엔 프레이야와의 숲과 굴베이그 왕국이 존재했다.
그리고 남부에는 니드호그라는 이름의 험한 산맥이 존재했다.
이 험한 산맥은 엘프나, 다프 엘프만 드나들 정도의 험한 산맥이었다.
만약 지르 요새를 티르가 장악하면 데지스 성은 고립 무원이 된다. 그리고 데지스 성을 함락하면, 폴크방 평원은 본래 장악하고 있던 프레이야의 영토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펜릴 측에서 제안한 것은, 데지스 성을 한달 이내에 함락하라는 것이었다.
지르 요새를 함락시킨 후에 데지스 성을 함락하는 것은 쉬웠지만, 그 경우엔 지르 요새 함락에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컸다.
프레이야의 군세가 데지스 성을 공격하면 지르 요새에서 도움을 주러 움직일테고, 그 틈을 노려서 지르 요새를 친다는 것이 펜릴측의 계획이었다.
한달 안에 데지스 성을 함락하면 폴크방 평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 펜릴 측의 제안이었다.
“고민이로군요.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려 의심받을 거다.”
굴베이그 왕국의 영토 가운데 상당 부분을 펜릴 왕국이 먹어들어간 상태였다. 폴크방 평원을 손에 넣지 못하면, 인간들의 자급자족은 불가능했다.
지금처럼 거의 모든 인력을 군대에 돌리고, 식량을 지구에서 밀반입하는 방법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은 결국 주위의 관심을 끌어올 수 밖에 없을 터였다.
펜릴 왕국이 점령한 굴베이그 왕국의 영토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데지스성과 폴크방 평원을 양보한다는 펜릴측 주장은 공평하진 않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주장이었다.
펜릴 왕국이 점령한 영토를 되돌려 줄 리도 없고, 되찾으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펜릴 측은 지르 요새를 점령하지 못하면, 남쪽으로 진출할 수 없지만 프레이야가 이끄는 엘프들은 니드호그 산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프레이의 다크엘프들 역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까다롭기는 하지만, 게이머들을 투입하면 다크엘프에게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었다.
레벨 노가다로 인적 피해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그건 그렇고, 로이드와 레이나 덕분에 얻은게 적지 않군요.”
템플 기사단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가지 확실한 것을 알게 되었다. 미드가르드에서 지구로 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진출하고자 해도 템플 기사단의 방해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템플 기사단이 약해져서는 안되었다. 그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동시에 현재 적대관계에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로이드와 레이나를 통해서 주요 멤버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되도록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폴크방 평원을 점령하고, 내실을 조금만 기할 수 있다면 충분히 현대 문물을 도입해서 티르를 칠 수 있게 되겠지요.”
“문제는 펜릴의 경계를 사지 않기 위해선, 데지스 성을 피해없이 점령해서는 안된다는 거로군요.”
장수한은 원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총사대의 일개 대장에 지나지 않아. 총사령관이신 수한님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거야.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다.”
‘그리고 책임 역시 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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