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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85화 (85/497)

85화 사면초가-2-

갑작스럽게 불어난 3만명의 병사들 때문에 곤혹을 치렀지만, 장교라고 할 수 있는 귀족들과 기사들이 복귀하면서 수습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신분은 평민이 되었고, 동시에 직업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귀족들의 사병에 가깝던 병사들과 기사들을 새롭게 편제할 필요가 생겼고, 조제성과 장수한은 현대의 군 편제를 빌리기로 했다.

그 결과 3만명의 병사는 사단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헨릭 공작은 사단장인 소장이 되었으며 귀족들과 기사들은 편제에 맞춰서 계급을 수여받았다.

“귀족이 군을 이끄는게 아니라, 직업군인이 군을 이끄는 체제라는게 이렇게 쉽게 구축될 줄은 몰랐군요. 제성형님.”

“그걸 노린거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변할 수 있지요?”

원기는 헨릭 공작을 비롯한 귀족과 기사들의 돌변한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디아의 특수능력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호의를 갖고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과,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별개였다.

호외호식을 하려들고, 늘 삐딱하게 굴고 게으름을 피우며 잘난척하던 귀족들이 군기가 바짝든 모범적인 군인이 된 것이었다. 보기만해도 절로 믿음이 가는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게 기사라는 족속이야.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한마디로 개같은 놈들이지. 나쁜 의미에서도, 좋은 의미에서도. 이놈들은 완전 진돗개 같은 놈들이네.”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개들은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배신을 모르는 동물이다. 다만, 그것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했을 때에 한해서였다.

상대가 주인으로서 어울리는 존재라고 판단하면, 개들은 주인을 위해 살 줄 안다. 하지만 상대가 주인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위에 올라서려고 드는 법이었다.

“주인을 찾은 개와, 주인 없는 개는 완전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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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공작, 아니 헨릭 소장은 아주 곧은 자세로 자신의 막사에 앉아서 서류를 정리하며 차를 마셨다. 귀족에서 직업군인이라는 존재로 크래스 체인지를 하게 되었지만, 마음은 지극히 흡족하고 평화로운 상태였다.

‘마치 며칠간의 일들이 아득한 예전의 꿈만 같군.’

그는 머리도 맑아지고, 온 몸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젊은 시절이 되돌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쾌락과 권력을 탐해온 과거의 자신이 한심하고 불쌍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기사에겐 역시 충성의 대상이 필요한 거였나. 아니, 이젠 군인이로군.’

충성심이라는 것이 한때는 너무나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충성한다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지고, 굴욕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최고였다.

장수한과 조제성이 군의 편제를 바꾸긴 했지만,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은 것이 헨릭 소장이었다. 그는 귀족들과 기사들의 신상명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능력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대단하군. 어찌 내게 이런 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인지.’

작전권은 장수한이 쥐고 있지만, 병력들을 실제로 운용하는 권한은 헨릭 소장에게 그대로 넘어와있었다. 아무런 견제책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반란을 결심했을 때보다 권한이 컸다.

‘역시 의원들은 그 도량이 다른건가.’

리디아에게 목숨빚을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내린 결단이지만, 그것을 모르는 헨릭 소장으로서는 그들의 도량이 크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날 살려주신 리디아 전하를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지.’

그는 각 귀족 세력들을 염두에 두고 편성을 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혹시 또 배신하는 놈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검토했다. 물론 그런 그의 배려는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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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아이돌의 콘서트는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도치않은 효과도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병사들이 엘프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었다.

과거에 동양인들에게 백인은 추한 괴물이었지만, 헐리우드 영화가 극장을 점령하면서, 어느사이엔가 백인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아랑드롱, 마를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고리 팩 등등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흑인들 역시 본격적으로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 미모를 뽐내게 되었다.

던젤 워싱턴, 할리 베리 등 그리고 사람들은 흑인의 아름다움을 뒤늦게 깨닫고 그들에게 매료되었다.

과거엔 괴물, 야만인, 노예, 짐승으로 여겨지던 인종의 벽이 문화를 통해서 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럽이나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도 황인종을 원숭이 취급하다가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 현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미드가르드에서도 태동하기 시작했다.

‘별 문제는 없겠지?’

장수한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거라고 내심 판단을 내렸다. 일단 엘프의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데다가, 장교들의 충성심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특히 인간의 미적 기준에 근접한 한희연과 리디아의 경우에 병사들의 음담패설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장교들의 처절한 응징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장교들의 경레는 아예 “리디아 전하와 프레이야 제국에 영광있으라”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4인 의회에 인간의 대표가 들어가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인간의 대표로 리디아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디아는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의 대변자로서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었다.

장수한은 리디아가 조제성과 함께 다시 남미로 떠난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녀가 저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기막혀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업 진척 속도가 빨라졌네요.”

원기는 만들어진 수많은 공성병기들을 보면서 말했다. 공성 병기의 제작 인원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탓이었다.

거기에는 솔선수범해서 굳은 일을 마다않는 충성스러운 장교들과 새롭게 편제되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인간 군대도 한몫을 했지만, 난민들도 큰 역할을 했다.

데지스 성에 프레이야 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을 데지스 성에 모아들였지만, 평민들에게는 아스 신족보다는 반 신족에 대한 선호가 있었기 때문에 피난하지 않고 도망친 이들도 있었고, 피난이 늦어진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굴베이그령으로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렸지만, 데지스 성의 병력이 얼마 남지 않았고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 이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피난민 캠프를 만들고 공성무기 제작을 돕고 있었다.

2만에 달하는 피난민이 돕고 있으니, 작업 속도도 신전의 중심인 세계수의 성장도 예정보다 확실히 빨라지고 있었다.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

“예? 지금 계획보다 몇배는 빨리 공성병기들을 만들고 있는데요?”

반문하던 원기는 장수한의 말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그렇군요. 공성병기를 쓸 생각이 없는 건가요?”

“설마. 공성병기는 쓸모가 많지.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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