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쪼렙학살
‘오랜만에 샤워를 할 수 있겠네. 아니 더운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하는게 좋겠지.’
한희연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환경에는 안좋을지 몰라도 샴푸, 린스, 바디클린저 등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녀의 기분이 유쾌해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엘프들은 나름(?) 청결했고 자주 씻기는 했지만 개울이나 호수에서 물로만 닦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코끼리도 아닌데 흙탕물에서도 몸을 씻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쟁통에 이것저것 가릴 수는 없었겠지만, 문명인인 희연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선수들이 사실 방구석 폐인들보다는 청결했다. 그들은 땀을 많이 흘리는 대신에 그만큼 샤워를 자주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원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목욕하러 갈거야?”
“그래. 같이 하려고?”
“그보다는 목욕 전의 대련까지만 같이 하는게 어때? 땀 한바탕 흘리고 움직이는게 낫지 않겠어?”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발키리들이 관리해 줬기 때문에 몸 상태는 특별히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청결하기도 했다.
“그렇군. 땀을 좀 빼고 씼는게 낫겠지?”
원기는 별 생각없이 가볍게 응했다.
그리고 원기는 죽도를 들고 그녀의 앞에 서는 순간, 왜 그녀가 대련을 요구했는지 깨달았다.
바로 그녀가 새로 각성한 능력이었다.
‘그 능력이 아마 자신보다 월등히 약한 상대를 눈빛만으로 제압하는 기술이었지? 이름은 분명 쪼렙학살이라고 붙였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기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몸이 굳어버리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쪼렙이라니! 내가 쪼렙이라니!’
충격에 빠진 원기를 뒤로 두고, 희연은 미소를 지으며 도장을 나서서 타월을 걸치고 목욕탕으로 갔다.
상쾌한 기분으로 목욕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이래야지.’
특수 능력에 눈을 뜨고서야 비로소 전장에서 원기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었다.
거대한 육체를 구사하며,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용자’의 싸움에 가장 많이 반한 것은 누구도 아닌 그녀였다.
그녀도 원기와 같은 크고 강한 육체를 가진 전사 캐릭터를 키워봤지만, 그녀는 그리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어느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원기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몸 이상으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원기는 완벽한 라이벌로 성장해 있었다.
그래서 원기가 그녀의 눈빛에 반응하지 않았을 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래 육체로 돌아와서 그녀의 눈빛에 반응해서 굳어지는 것을 본 순간, 승리의 쾌감이 그녀를 크게 고양시키고 흥분시켰다.
‘냉정하지 않으면 안되지.’
그녀는 굳어진 원기의 모습을 보면서, 들뜬 기분에 저도 모르게 키스를 할 뻔 했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를뻔 한 실수를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며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타고난 우등생에 어려서부터 무도를 수련한 그녀는 대단히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첫키스는 결혼식에서 할 거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여, 오랜 만이다. 죽은 줄 알았다.”
“촬영은 잘 끝났냐?”
원기는 왠지 부담스럽게 친하게 다가온 호철과 찬균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기본적으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사는 친구들이라, 이런 반응은 그다지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니들, 뭐 잘못 먹었냐?”
“그게 말이지. 사인 좀 받아다 줘라.”
“사인? 누구?”
“유연하 말이야. 넌 모르겠지만, 지금 난리도 아니야.”
“그래? 언제 그렇게 떴지?”
원기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일어난 작은(?) 변화에 당혹감을 느꼈다.
사실 원기의 외모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그렇다고 특별히 좋지도 않은 수준의 외모였다. 화상을 입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의 외모를 칭찬하는 사람은 부모님과 부모님과 친한 친구분들 뿐이었다.
동년배 가운데 그의 외모를 좋다고 말한 사람은 적어도 기억 속에는 없었다. 그런 그의 외모가 프레이야의 영향으로 꽤 좋아졌다.
외모의 변화는 일종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눈, 코, 입 등의 파츠가 변하는 것 없이 제대로 자리잡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효과다.
따라서, 원기의 과거 사진을 봐도 지금의 원기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사진빨이 정말 안받는구나.’라고 느낄 뿐이었다.
모든 파츠의 균형이 맞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외모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덕분에 평범한 수준이었던 원기의 외모는 모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델 수준일 뿐이다.
원기를 보면서 ‘쟤, 모델처럼 잘생겼다.’‘모델이야? 그럴 줄 알았어’라는 정도의 반응이 보통이었다. 물론 일반인으로선 엄청나게 부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재 다니는 학원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대부분 잘나가는 집안 자식들이기 때문이었고 그들의 외모도 성역의 영향으로 제법 좋아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모델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수준의 외모로 톱 모델보다는 병풍으로 주로 사용되는 수준의 외모였다.
문제는 한희연과 유연하였다.
그들은 미의 여신인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이 골라낸 미소녀들이었다. 무술의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그 미모는 톱 아이돌이 되기에는 조금 손색이 있을지 몰랐다.
수영선수나 보디빌더만큼은 아닐지라도, 운동선수들의 외모는 미모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외모가 프레이야의 은총을 받아서 엄청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성장과정이라 매일매일 미모의 버프빨이 축척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자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원기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그의 시야 내에는 미모를 자랑하는 엘프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었다. 리디아의 경우에는 종특도 있고, 전대 프레이야의 사랑을 듬뿍받은 데다가 원기와의 관계도 나름 좋아서 버프빨을 충분히 받은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리디아의 미모는 완성된 것이고, 희연과 연하의 미모는 아직 성장중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미모가 상승한터라, 원기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녀들의 미모가 경지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브리싱가멘 브랜드의 광고 포스터는 주기적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광고가 교체 될 때마다 인기의 상승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의 포스터는 도둑이 극성을 부릴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물론 그 폭발적인 인기는 어디까지나 두 미소녀를 향한 것이었을 뿐이고, 그녀들 곁에 서있는 남자 병풍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팬들만은 아니었다. 그녀들을 섭외하기 위한 시도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서 내린 듯한 미모의 두 소녀가 소속사는 커녕 매니져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많은 연예 관계자들이 두 사람의 부모를 찾았다.
한희연의 아버지는 작은 검술 도장을 운영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인기를 노리고 도장에 찾아오는 놈들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기 때문에 굳이 그녀의 연예 활동을 바라지 않았다.
조제성이 잘 처리해줘서 금전적으로 그리 부족함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유연하의 집안은 유복하지만 평범한 가정이었다. 어차피 모델을 할거라면 좀 더 유명하게 잘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요청을 조제성이 받아들였다.
총사대가 성장하고 있는 만큼, 그녀들은 예비 전력으로 돌려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회사에서 간단히 에이전시를 꾸리고, 우선 남미에 있는 유연하를 위해서 사진집을 촬영하도록 했다.
남미를 비롯한 아마존에서 촬영한 그녀의 사진집은 그다지 큰 노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량으로 팔려나갔고, 유명 남자 가수는 그녀에게 뮤직 비디오에 참가시키기 위해서 로케를 일부러 남미까지 가서 촬영해 오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신세대 미의 요정이라 불리우는 그녀가 아마존에서는 정글의 사신으로 멕시코에서는 어둠속의 악마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정글의 사신, 그리고 어둠속의 악마라. 아마존에 아마조네스의 소문도 퍼지고 있다지?”
네이슨도 나름대로 정보를 모으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와 아마존에서 움직이는 묘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그도 제법 들어알고 있었다.
아마조네스, 여자들만이 사는 부족은 한편으로보면 엘프들과 잘 맞아 떨어지는지도 몰랐다.
겉으로 보기엔 부족원들 가운데 남자로 보이는 녀석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전사들의 경우엔 활 쏘기 편하게 가슴도 꽤 부실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미소년처럼 보이는 남자 엘프들은 물론이고, 성숙한 여전사들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리고 활을 주로 사용하는 터라, 엘프들을 목격한 이들은 아마조네스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숲의 일정 영역에 들어가려고 들면 화살로 경고가 날아왔다. 평범한 농부나 원주민들의 경우엔 발 앞치에, 그리고 범죄조직의 경우엔 어깨에 화살이 꽂혔다.
“양쪽을 동시에 치는 것이 옳겠지?”
네이슨은 그렇게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레이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콜롬비아에 만들어지는 진짜 성역은 들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레이니가 쌍권총을 휘두르기는 했지만, 대부분 현대식 화기를 들고 벌인 전투라서, 평범한 갱조직간의 전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멕시코의 악질적인 갱사냥이나 아마존의 영역 확보는 엘프들의 능력을 충분히 사용한 것이라, 그만큼 드러나기 쉬웠다.
하지만, 네이슨은 그리 녹녹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레이나를 완벽하게 믿고 있지도 않았고, 한국에 있던 템플 기사단원을 전부 철수시킨 것도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눈속임이라면, 서울이 역시 유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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