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오딘
그렌과 미라엣은 프레이의 신전에서 눈을 떴다.
그들은 전투 결과를 영혼이 된 상태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죽임을 당한 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알고 있었다.
3000에 달하는 정예 신관들의 죽음.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너희를 되살리는 것은 이게 마지막이 되겠구나.]
“죄송합니다.”
그렌과 미라엣은 바닥에 엎드려서 고개를 숙였다.
[난 너희들이 행한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너희들을 책망할 뜻은 없다. 단지 앞으로는 너희들을 되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 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고개를 숙이고 분루를 삭히던 그렌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오딘이 우리를 버렸다. 조만간 토르의 병력이 내 사랑하는 백성들을 죽이러 올 것이다.]
“그런...!”
성기사와 성전사들을 포함한 신관들이 3000이나 죽었다는 것은 엄청난 병력 손실이었다. 특히 질적인 면에서 컸다. 남은 것은 생산을 주로 담당하는 비전투원들이었다.
반 신족을 싫어하는 무투파인 티르와 토르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오딘이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서 패하고 병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오딘이 토르에게 프레이를 공격하든 말든 상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오딘은 이 기회에 날 종속시킬 예정이다. 그의 발키리의 하나가 되겠지.]
발키리는 일종의 천사와 비슷한 존재로, 신에게 사역당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일부의 하급신은 신이면서 발키리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프레이는 남신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성별에 구애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완벽한 현신용 육체를 지닌 프레이야를 제외한다면, 그 부분은 상당히 모호하다고 할 수 있었다.
토르는 오딘의 아들로 취급받지만, 사실 아스신으로서 토르는 오딘보다 더 오래된 존재였다. 인간들의 사념이 합체되어 적당히 분열되고 자아를 갖게되면서 사념을 흡수 독립된 존재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성이나 족보 같은 것은 큰 의미를 갖지 않았다.
오딘은 프레이를 신으로서 존속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토르의 병력이 쳐들어오면, 지금의 다크엘프들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다수의 신관이 죽음으로써, 성역 자체도 약화된 상태였다.
[무언가 노리는 바가 있겠지. 신성을 가진 발키리를 다수 필요로 하는 것을 보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은 하나 뿐이다. 난 오딘에게 복속할 것이다. 너희는 프레이야에게 의탁하라. 그녀는 반족의 일원이니, 너희를 받아줄 것이다.]
그렌과 미라엣은 프레이의 지시에 이마를 땅에 대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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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개시!”
조제성이 지시를 내리자, 엘프 성기사를 향해서 AK-47 드워프 사양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총알은 엘프 성기사에게 적중했지만, 모두 튕겨 나갔다.
“탄두가 강화된 소총인데도, 가볍게 튕겨내는군.”
조제성은 성기사의 존재에 대해서 판단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난 전투에서 엘프 총병대가 가진 소총은 펜릴에게 넘긴 후장식 소총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총열에는 강선도 있었고, 탄두는 텅스텐, 장약은 현대식이었다. 흑색화약을 쓰는 펜릴용 소총과는 내용물이 전혀 달랐다.
한발씩 장전해서 쏘는 불편함은 있지만, 한발 한발의 파괴력은 일반 소총보다 강력했다.
그런데, 다크엘프 성기사들은 그런 총탄을 가볍게 씹어버렸다.
물론 장시간의 전투에서 많은 총알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신성력도 무제한은 아니고, 정신력의 소모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진에 뛰어드는데 시간을 버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엘프 총병대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그들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후방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다크엘프 성기사들을 실제로 처리한 것은 굴베이그의 성기사들과 병사들이었다. 조제성이 리디아를 이용해서 그들을 회유하지 못했다면, 전투의 승패는 어찌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게임 캐릭터들은 모든 능력에서 성기사를 능가하지만, 총알을 막아내는 능력은 일부 직업, 특히 사제 같은 비전투에 치중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숫자를 쉽게 늘릴 수가 없었다.
미드가르드와 지구 사이에는 차원의 벽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이 연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게임을 통해서 게임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의 숫자는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 소설들에 나오는 내용처럼, 가상현실이라고 사기치고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고려는 해봤지만, 세살 먹은 아이도 속지 않을게 분명했다. 미드가르드의 비밀만 퍼져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그렇고, 성기사라는거 의외로 강력한걸.”
조제성은 엘프 성기사들을 지구로 직접 투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상대의 총알은 튕겨내면서, 강력한 근력으로 중기관총을 긁어댄다면 말 그대로 터미네이터급 활약이 가능해 질 것이었다.
‘당분간은 미드가르드는 안전할테니, 성기사들을 좀 빼 돌려볼까.’
조제성은 그렇게 판단했다. 현재 프레이야 왕국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은 총 셋, 펜릴과 티르, 프레이였다. 세 세력 모두 출혈이 컸던 만큼 당분간은 평화로울 거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아스 진영인 프레이가 같은 아스 진영인 토르에게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너무도 맥없이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도 조제성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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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니 회장님 어디 가셨어?”
“예. 국외 출장으로 한달 이상 자리를 비운다고 하셨습니다.”
“아, 젠장. 또야? 그럼, 결재는?”
“알바님한테 받으시면 될겁니다.”
제성그룹 전무는 비서의 말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어딨는데? 그 알바님은?”
“개강해서 학교에 가셨답니다. 동아리에도 얼굴을 내민다고 하시던데요.”
“아, 젠장. 미치겠군. 대체 학교는 왜간다는거야? 뭐가 부족해서. 그것도 좋은 대학도 아니고.”
전무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박승희가 다니는 학교는 나름 서울에 있는 대학이긴 하지만, 최고 학벌만 모인 제성그룹의 눈높이에서 보면, 서류전형에서 거들떠보지 않을 학교였다.
현재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리우면서, 건드리는 것마다 뻥뻥 터지는 덕택에 사업을 마구잡이로 확장하고 있는 제성 그룹이었다. 제법 충실한 중견 기업에서 미칠듯이 성장하는 재벌 후보 그룹이 되어있었다.
조제성은 해외쪽 사업 확장에 치중하면서, 국내의 문제는 거의 박승희에게 맡겨놓은 상황이지만, 문제는 그녀가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신분은 어울리지 않게, 비서실 잡용직 알바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회장 결재를 그녀가 대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장한테 결재 받으면, 회장이 그녀에게 재가를 받고, 그녀가 결재하면 그대로 적용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신임이 큰 상태였다.
그리고, 조제성은 계약자들에게 신규 사업의 지분을 상당 부분 나눠주었고, 박승희에게도 그 지분이 있는만큼 어떤 상황이 되어도 무시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의 주 업무는 단순히 회사를 유지하고 결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업을 벌이다보면, 적자가 나는 곳도 있고 흑자가 나는 곳도 있게 마련이었다.
적자가 나는 곳은 모두 실패라고 볼 수는 없었다. 투자를 더 하면 흑자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특수 능력은 그런 사업 정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녀는 장부를 보면 한눈에, 얼마를 더 투자하면 사업이 정상화가 될지, 혹은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지가 보였다.
사업을 정리해서 줄일 수 있는 적자가 100억인데, 20억 투자하면 흑자로 전환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20억 추가 투자로 사업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사업을 정리해서 손해를 줄일 것인가의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판단 때문에, 기업 내에서는 조제성보다도 그녀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젠장, 다시 한번 계획서를 검토해 봐야겠군. 회의 계획이나 잡아.”
근무 시간 자체는 길지 않지만, 그녀의 업무 처리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게다가 예산안 관련해서는 면도날보다 더 예리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계획안을 내는 것은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몇시에 출근한데? 파트타임 알바는.”
“메일로 결재만 하고, 오늘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래. 차라리 메일이 낫겠다. 그건 그렇고 이런 업무도 재택알바라니.”
전무는 투덜대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파트타임 여대생 잡무대행 알바라는 사실 때문에 회사에서 그녀를 멀리하거나 비웃는 사람들이 적진 않았지만, 그녀의 능력을 인정못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보여서 출세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입지는 날로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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