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다크엘프
박승희의 능력, 한눈에 돈이 새는 구멍을 찾아내는 능력은 많은 이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횡령, 착복 등을 행한 사람들은 그녀가 한번 장부를 살펴보기만 해도 금방 전모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이중 장부를 만들어 놓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지만, 그녀는 일견 완벽해 보이는 이중 장부를 보고서도 한 눈에 이상한 부분을 찾아 냈다.
그녀가 장부를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하기만 하면, 어디선가 곡소리가 터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능력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금방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사 중 한사람이 자신이 횡령한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각오한 상태에서, 나중에 선처를 받기를 기대하고는 자신이 횡령한 돈보다 많은 돈을 회사에 돌려놓은 것이었다.
당연히 장부는 엉터리가 되었다. 그녀가 아닌 다른 회계사가 확인하더라도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만큼의 오류 투성이 장부였다. 하지만, 박승희는 그 장부를 살펴보면서 어떤 오류도 찾아내지 못하고 넘어갔다.
혹시 돈을 더 넣은 것을 눈치채고 봐준것인가 하는 의심도 당연히 들었지만, 그녀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회경험이 그리 많지않은데다가, 융통성이 별로 없는 여대생 알바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그 희소식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박승희의 능력은 귀신같은 회계능력이 아니라, 그냥 ‘감’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그녀의 능력이 평가절하 되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감’이 100%의 적중률을 갖는 이상은 어떤 천재적 회계 능력보다도 더 가치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에 횡령이나 착복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나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간 이상의 돈을 회사에 환원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장부도 제대로 정리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자산과 이익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결과적으로는 횡령, 착복한 이들을 모두 잡아내는 것보다 좋은 결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존재하는 이상, 더 이상의 횡령이나 착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초능력자 아니면 점쟁이가 그녀에 대한 평가였다.
“죄송한데요. 선배님. 이 장부 좀 봐주실래요? 아버지 회사가 요즘 어렵다고 하시네요.”
친한 후배가 USB메모리를 손에 들고 애처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하아. 간단히만 볼께. 적어도 사흘 정도는 걸릴거야.”
승희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학교에서도 이런 청탁이 가끔씩 들어오고는 했다. 사실, 회계 관련 정보는 극히 중요한 것이지만, 그녀의 능력을 기대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절박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가 지금의 능력을 얻게 되고, 제성 그룹에서 일하게 되고 난 다음에 알게된 사람들의 경우엔 절대 봐주지 않지만, 그녀가 원기를 돌보며 어렵게 생활할 때 곁에서 위로해주고 함께 있어준 친구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빨간 볼펜으로 표시해 놨어. 정확한 내역은 모르겠지만, 지출이 과다한 느낌이야. 여기서 지출을 절감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여기는 좀 더 과감하게 돈을 들여야 할 것 같은 곳에는 파란 볼펜으로 표시해 놨어.”
사실 그녀는 10분 정도 주욱 훑어 보는 것만으로 간단히 처리했지만, 집에 가져가서 살펴본다고 하고, 사흘 뒤에 돌려줬다. 너무 빠르면 무성의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고, 빨리 간단히 처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것도 나름대로 피곤하기 때문이었다.
바빠서 장부를 못봐준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고마워요. 사례는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음.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줘.”
“오늘 어떠세요?”
“오늘은 남동생하고 오랜만에 식사나 해볼까 해서. 다음 기회에.”
승희는 그렇게 말한 다음, 원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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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연하가 끼면 재미없지 않을까?”
원기는 찬균과 호철의 제의를 듣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셋이서 가끔 노래방을 가서 놀긴 했지만, 뭐랄까 여자와 함께 노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마법소녀 주제가와 로봇 애니 주제가를 목이 터져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불러대는 즐겁지만 남보여주기는 곤란한 분위기였다.
희연만큼 융통성이 없지는 않아도, 스포츠 소녀였던 연하와는 어울릴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념이지. 기념.”
“너야 자주 어울리지만, 우리야 좀 그렇지 않냐. 요즘 너희들도 꽤 바쁜 것 같고 말이야. 학교에 대체 얼마만에 오는 거냐. 정식 학교가 아니라지만.”
“연하 뮤직 비디오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아냐? 사방에서 틀어놨더라.”
연하가 출연한 뮤직 비디오는 제법 유명한 발라드 가수의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 뮤직 비디오인지 모를 정도로 연하에게만 촛점을 맞춰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큰 인기를 만들어 놓은 거였다.
유명 동영상 사이트에는 뮤직 비디오의 삽입곡(?)을 연하가 직접 부르는 것을 들어보고 싶다는 댓글이나 의견도 적지않게 실려있었다.
기념 사진 삼아 같이 사진도 좀 찍고, 그녀가 노래 부르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녹화하는 것도 기대 중이었다.
물론 원기로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고, 연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다만, 원기로선 희연이나 연하없이 셋이서 게임이나 같이 하면서 노는 쪽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연하가 오늘 저녁이나 내일 중으로 남미에서 돌아온다고 하니까, 한번 이야기는 해볼께. 잘 안되면 우리끼리 놀자.”
“그럼 좀 있다가 PC방이나 갈까?”
“아, 오늘은 누나랑 식사 약속있어. 조금 있다가 태우러 올거야.”
잘 나가는 집안 사람들이 많은데다가, 제성그룹 관계자 자녀가 많은 학교 내에서 승희의 존재는 제법 유명했다. 하지만 찬균과 호철은 취미 생활에 빠져서 꽤 따로 노는 쪽이라서 승희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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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넘치도록 있는데, 차 좀 좋은걸로 사면 안되는거야?”
원기는 승희가 몰고온 차를 보았다. 꽤 연식이 오래된 경차였다.
“이걸로 충분해. 돈은 아낄 수 있는 한 아끼는게 좋은거야. 돈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데 꼭 필요한 도구야. 탄약이라고도 할 수 있지. 돈을 벌려면 돈이 있어야하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데도 필요해.”
승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원기는 그런 그녀의 말에 안타까움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건 그렇고, 저녁 식사는 어디에서 하게 되는걸까.’
원기가 궁금하게 여길 때, 승희는 자연스럽게 고급 호텔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리고 호텔 앞에는 고급스런 옷차림의 남녀들과 호텔 직원들이 다수 있었고, 그들의 시선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 승희의 차에 모였다.
그리고, 그녀의 차가 정문에 서는 순간, 반백의 멋진 신사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그녀의 차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박승희님. 어서 오십시요. 이봐! 빨리 와서 모시지 않고 뭐하나. 차 키는 이리 넘겨 주십시요.”
반백의 중년 신사는 호텔 매니저였다. 무역과 유통업종에서 시작해서 최근 확장을 거듭한 제성 그룹 소유가 된 호텔이었다.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요.”
“일행 분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일행분들?”
“희연이하고 연하야. 나도 한번 식사 대접을 해야겠길래.”
“이런데서 먹으면, 누나 자동차값보다 더 나올 것 같은데?”
“걱정마십시오. 승희님과 일행이라면,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호텔 매니저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접대업으로 성공한 사람이어선지, 불쾌감을 주지 않고 자신을 적당히 낮출 줄 아는 듯 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계열사 분들에게 그럴 수는 없지요. 걱정마. 사장님 카드가 나한테 있으니까. 어차피 자기돈으로 자기 회사에서 먹는 거니까, 얼마나 나오든 상관없다고 하면서 주셨어. 자기 회사 매상 올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거 괜찮네.”
원기는 제성의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승희는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에 극히 인색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님? 지금 들어간 분이 누구시지요?”
“글쎄다. 복신이 될지, 사신이 될지. 아뭏든 잘 모셔라. 우리 호텔의 명운이 달려있다.”
호텔 매니저는 근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경제난과 부동산 실패로 모그룹이 잘라낸 것을 제성 그룹이 사들였다.
호텔 자체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과잉 투자 때문에 그다지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조만간, 그녀가 사업을 확장할 것인지, 축소할 것인지를 정하게 되어 있었다.
“메뉴판에 왜 가격이 안나와 있는거야.”
“그냥 평범한 중국집에 가는게 낫지 않았을까? 난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래도 모처럼 모델 아가씨들이 동석했는데 말이지.”
승희는 희연과 연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도 이런 쪽과는 인연이 없어서. 연하 넌 어때?”
“저도 이런 식당엔 와 본적이 없어요. 돈까쓰는 먹어봤어요.”
“헤에. 꽤 서민적이네. 둘 다.”
“누나. 얘네들은 서민이라기보단 야만인에 가까워. 머리쓰는 것보다 몸쓰는 걸 좋아하는 애들이라. 연하는 그냥 머리가 나쁘고, 희연이는 머리는 좋은데 몸쓰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
야만인 소리에 발끈하던 희연은 이어진 말에 입을 다물었다. 어려서부터 검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했던 만큼, 미드가르드에 가면 그냥 단순한 검사로 명령이 떨어지면 가서 싸우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수한과 제성, 원기가 작전을 짜느라고 머리를 쥐어짤 때, 그녀는 머리를 비우고 주어진 지시대로 적을 공격하는데만 집중했다.
“왠지 사람들이 자꾸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아요?”
연하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최근 최고의 화제가 된 미인 모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한국 쪽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미쪽에서는 리디아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리디아는 북구 미인으로서 연하와 동급 이상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남미쪽 사람들의 시선은 아시아 여성인 그녀보다는 리디아에게 몰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아마존에서 전투를 벌이는 틈틈이 조제성이 보낸 사진사들 앞에서 가끔 포즈를 취한 것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네가 찍은 사진집하고 뮤직비디오가 엄청난 인기라고 하던데. 이제 함부로 못돌아다닐거야. 희연이한테도 관심이 쏠리는 모양이던데. 너희 덕분에 난 ‘병풍남’이라는 별명도 붙은 것 같더라. 연하 넌 내일 오후에 무슨 계획 잡힌 것 있어?”
“없는데요?”
“그럼, 같이 노래방에 가지 않을래?”
원기의 제안에 연하는 기분 좋게 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희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원기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박원기님. 조제성 회장님이 급하게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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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들이 귀순이라고 할지, 개종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전령을 통해서 트리아 여제에게 전해졌다.
토르의 군대가 다크엘프 멸종을 노리고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도 동시에 접수되었다. 같은 반 신족이지만, 굴베이그나 프레이야와는 달리 오딘의 보호아래서 나름대로 번영해온 프레이의 다크엘프들은 숫자가 적지 않았다.
3000에 달하는 신관이 지난 전투에서 전멸했지만, 남은 신관의 수도 약 2000에 달했다. 다크엘프의 전체 인구는 50만을 조금 넘길 정도로 많았다.
“에인페리아들은 어떻게 되지요?”
“그렌과 미라엣을 비롯해 전부 4명이라고 하더군. 문제는 그들이 다크 엘프들의 피난이 모두 끝날때까지는 개종하지 않을거라고 하더군.”
“혹시, 프레이의 위장은 아닐까요?”
“가능성은 있지. 하지만 50만의 신민이 생긴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바뀔거다.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다크엘프들은 엘프이면서도 인간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평균 전투력은 엘프보다 떨어지지만, 공격성과 인구 증가율은 엘프보다 높은 편이었다. 엘프와 인간 사이에 존재한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다크 엘프의 남성은 조금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장신에 강한 힘을 가진 충분한 전사였다. 따라서 여성만 전사로서 활용할 수 있는 엘프보다는 전사의 비율도 높았다.
다크엘프 50만이 충실한 백성이 되어준다면, 병력과 무기의 질을 높여서 충분히 여타 세력들에게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현대에서 가져오는 병기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이, 아니 한명이라도 잃지 않고 그들을 구해와야겠군요.”
원기는 그렌과 미라엣을 떠올렸다. 다크 엘프 에인페리아다운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가장 강력한 전력인 희연조차 무력화시키는 능력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구출 계획을 세워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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