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93화 (93/497)

93화 거북열차.

“조금 기다려 줄 수는 없겠습니까? 아직 백성들이 모두 피난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거지. 네가 소멸을 택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오딘의 답변에 프레이는 분노를 느꼈다. 반 신족들의 근간은 신자들의 염원에 있었다. 욕망이나 공포를 기본으로 한 아스 신족이나 거인족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프레이 역시 다크 엘프들의 존속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었고, 오딘은 그것을 이용해서 그를 완전히 속박하고 있었다.

다크 엘프들의 피난이 끝나기 전에, 그를 종속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크 엘프들에겐 크나큰 재앙이었다. 갑작스럽게 그들과 그들의 영역을 지키던 신이 실종되는 것이다. 굴베이그가 힘을 잃던 상황보다 더 안좋은 것이다.

성역은 급격하게 축소되고 약해지고, 신전의 세계수는 일주일 내에 말라비틀어진다. 그리고 모든 신관들과 에인페리어가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신이 사라져버린 세계수는 신관에 의한 개종이 이뤄지지 않는다. 신이 직접 나서서 성스러운 각인을 남기지 않으면 그 생명을 되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전부 다 살게 해줄 수는 없다. 토르에게도 배려는 해줘야 하니까 말이지.]

오딘은 살짝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프레이는 할 수 없이 그에게 굴복했다.

---------------------------------------------

수일 내로 프레이의 신성이 소멸된다는 전갈을 받게 된 즉시 4인 의회가 열렸다.

“뒤통수 맞을 염려는 없어진 셈입니다. 다크 엘프들을 받아들여도 될 듯 싶군요. 하지만 다크엘프들을 어찌 수용할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량 문제도 있고, 주거 문제도 있고. 조사장님이라면 그정도쯤은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그건 큰 문제가 안될 겁니다. 승희양 덕분에 마음놓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으니, 물자 반입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프들과 다크엘프들이라면 적지않은 감정이 쌓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조제성의 말에 트리아 여제는 약간은 달관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지구와 달리, 이곳은 난세입니다. 늙은 부모를 자식들이 쳐 죽이고, 부상자들을 죽여버리는 것이 당연시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온 만큼, 별다른 원한은 없습니다. 그들은 본래 우리의 일족이기도 했지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명이라도 더 살리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프레이야가 직접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테지요. 원기가 아니라.”

원기의 말에 세 사람의 안색이 굳어졌다. 에인페리아들이 부활하는 것은 부활시켜줄 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임 캐릭터들이 부활하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에인페리아도 부활하도록 만들어진 캐릭터도 아닌 원기 본체와 프레이야 여신이었다. 혹여 사고라도 나서 원기 본체가 죽는다면 과연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부활한다는 설정이나 스킬이 없는 프레이야 여신이 죽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전대 프레이야 여신의 신성을 이어받은 것은 원기 본체가 아닌 프레이야 여신의 캐릭터였다.

모든 것이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그래서 모두가 암묵중에 원기가 여신 캐릭터로 다크엘프들을 구하러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그것은 원기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원기의 성격상, 자기 사람을 죽게 버려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설령 며칠전까지만 해도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적들이었다고 할지라도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버릴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성격이 전대의 프레이야 여신에게 선택받게 된 이유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프레이야 여신에게서 물려받은 신성의 특성 때문에 그 기분이 더욱 강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을 것 같군요. 안전책을 나름대로 강구해 두긴 했습니다. 이 기회에 프레이야 연구소의 성과도 좀 보여드리지요.”

프레이야 연구소는 제성이 프레이야 여신의 힘을 기술 개발에 사용하기 위해서 설립한 곳이었다. 주된 작업은 주로 인체 실험이었다. 인간을 이용한 인체 실험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일이지만, 프레이야 여신의 힘을 빌리면, 영혼이 없는 인간의 몸뚱아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조제성은 자신의 발키리를 그 영혼에 빙의시켜서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는 인도적이지만, 외형적으로는 사회적으로 금기되는 인체 실험을 벌이는 연구소였다.

그와 더불어,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중이었지만 임상실험 허가를 얻지 못해 망해가던 제약회사를 사들여서 장기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성과를 올린 바 있었다.

희연과 연하, 그리고 총사대는 먼저 출발시켰다. 그들의 임무는 다크엘프들의 결사대와 손을 잡고, 토르의 진군을 늦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한한 에인페리아들과 다크엘프의 유능한 인재들이 죽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맡겨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해 작전을 세우고 다크 엘프들과의 협조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장수한이 따라 나서기로 되어 있었다.

그의 능력은 이제 엘프만이 아닌, 이종족 사랑으로 진화해서 드워프 및 다크엘프들에게도 효력을 발휘했다. 물론 그의 사랑에 비례하는 만큼, 엘프에게 가장 효과가 크지만 다크엘프나 드워프에게도 어느정도 효과는 있었다.

장수한은 이종족과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인간들에 대해선 리디아가 절대적 효과가 있는 만큼, 민심과 충성심을 얻는 것은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장수한의 능력은 상대에 대한 호감에 비례하는 능력이고, 리디아의 능력은 상대에 대한 혐오감에 비례하는 능력이라는 점이었다.

원기는 프레이야의 몸으로 미드가르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프레이의 신성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면 움직일 예정이었다. 다크엘프들의 영역 깊숙히 들어갔다가 배신당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제성은 프레이야 호위 계획의 마무리를 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이게, 로이드군에게 얻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발키리 칩입니다.”

그는 손 안에 든 칩을 보였다. 보통 PC에 쓰이는 CPU보다 조금 작은 칩이었고, 가운데에는 진공관처럼 생긴 것이 붙어 있었다. 진공관 안에는 액체가 들어 있었다.

“발키리 칩?”

“예. 템플 기사단들이 최근에 개발한 기술입니다. 로이드군에게 어떤 물건인지 개요만 얻어서, 저희 회사의 기술로 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말 그대로 초고성능 컴퓨터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지요.”

“에? 그런 기술이 있었어요? 제조업은 거의 손 안대셨던 것으로 아는데?”

“발키리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세요. 답은 간단합니다. 발키리를 컴퓨터로 만드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수한군의 설명이 맞습니다. 발키리는 인간의 육체에 빙의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하지만 인간의 뇌를 이용해서 사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신성력 하에서 사고하고 존재하지요. 죽은 영혼을 발키리가 이 세상에서 유지시키고 신의 곁으로 데려올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지요. 그들이 빙의할 때는 뇌의 극히 일부, 육체와 연결되는 소위 입출력 부분만을 간섭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남거나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상당히 뛰어난 컴퓨터지요. 그래서 프레이야 연구소에서도 인간의 뇌를 기계와 연결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물론 프레이야님 덕분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깨끗한 뇌와 그것을 제어하는 발키리를 얻을 수 있어서 가능한 연구였습니다. 그런데, 뇌가 아닌 칩에도 빙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템플 기사단에서 알아낸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이 입출력 단자가 붙어있는 칩과 신성력을 담는 성수를 이용해서 전자제품이나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얻은 겁니다.”

“어디에 쓰는 거지요?”

“일단 기계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보안 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지요. 그리고 미사일 등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발키리 미사일이라고 이름 붙일지, 가미가제 미사일이라고 이름 붙일지 고민중입니다만, 발키리를 빙의 시켜서 미사일을 목표에 적중시킬 수 있습니다. 상대가 스텔스 할아비라고 해도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지요.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로봇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발키리를 영혼이 아닌, 컴퓨터로 해석한 조제성의 발상은 대단히 독특한 것이었지만, 이미 템플 기사단에서도 그쪽 연구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여신님을 위한 전용 탈것입니다. 이름은 거북열차라고 할까요?”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짓을 했다. 그러자 드워프 중 하나가 도끼로 밧줄을 끊었다. 밧줄이 끊기자 기차보다 훨씬 큰 구조물을 덮은 천막이 벗겨졌다.

거대한 거북과 거기에 이어진 거대한 차량이 보였다.

‘가X라 같이 생겼군.’

어금니가 불쑥 튀어나온 거북의 얼굴은 괴수 영화에 나올법 하게 생겨있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코끼리 거북보다는 바다거북에 비슷했다.

“이쪽 세계의 인간들에게 자동차를 보여주기는 좀 곤란하다 싶어서 발상을 전환했습니다. 자동차를 처음 본 인간들이 ‘말없이 달리는 마차’라고 생각했다지요. 만약 자동차 앞에 말이 달려있다면,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물건일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게 바로 이 거북열차를 탄생시킨거지요.”

“다리로 걸어가면 느리지 않을까요?”

“거북이 형태로, 그것도 바다거북 형태로 만든 것이 그것 때문입니다. 저 밑을 보십시요.”

조제성의 말에 프레이야는 허리를 살짝 굽혀서 아래쪽을 보았다. 그러자 뱃쪽 껍질 아래쪽으로 탱크나 불도저에서 볼수 있는 캐터필러가 보였다.

“다리는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른다니까요.”

조제성이 그렇게 말하자, 작업에 참여한 드워프들을 비롯해 주위에 서있던 엘프들이 모두 프레이야를 쳐다 보았다.

“지금 말한 높으신 분들은 절 말하는게 아니에요.”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조제성보다 높아보이는 인물, 아니 존재는 프레이야 뿐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차량 역시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장갑차입니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들었지요. 자체 동력을 가지고 있어서, 앞의 거북차량과 분리되어서도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거북차량은 너무 무거운 편이어서 말이지요. 적이 습격하면 거북차량이 전투를 벌이고, 뒷 차량은 도망치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두 차량 모두 발키리 칩을 이용했기 때문에 따로 운전자가 필요 없습니다.”

“전투라니, 무기가 탑재되어 있는 건가요?”

“예, 최소한의 경우부터 최악의 경우까지 모두를 상정해서 만들었습니다. 우선 일단계는 머리에서 나가는 화염방사기입니다. 머리에서 불을 뿜고, 다리를 휘둘러서 적을 치우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동물적인 대응을 하게 해놨습니다.”

‘불을 뿜는게 상식적이진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2단계는 1단계에서 적이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을 경우를 위해 만들어진 단계입니다. 입에서 연기를 뿜습니다. 동시에 탑승한 전투 요원들이 주위로 연막탄을 발사합니다. 그리고 도망치는 겁니다. 연막을 통한 도주가 불가능할 경우 3단계 대응이 들어갑니다. 강력한 최루탄을 사용합니다. 최루탄의 경우 이 시대의 정상적인 병사들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4단계에선 독가스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잠깐만요. 더 있는 겁니까?”

독가스 이야기가 나온 순간, 프레이야는 조제성의 입을 막았다. 더이상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독가스를 금지하는 조약 따위는 없으니 별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화염방사기로 적병을 굽는 것도 비인도적인 전범 행위가 될 수 있지요. 그리고 5단계부터는...”

“되도록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요. 안전 문제는 신경 안써도 될 것 같군요.”

“그렇군요. 보안 문제가 있군요. 일단 12단계 모든 방어책은 거북 열차를 조종할 발키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쪽에 매뉴얼도 있고 저도 함께 갈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미드가르드 최악의 재앙이 될지 모르는 거북열차(가칭)가 미드가르드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