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오딘의 야망
“거북열차라 정말 재미있지 않나? 저런 놀라운 물건이 존재한다니 정말 흥분되는군.”
“저걸 위해서 날 발키리로 만든건가? 오딘?”
“그걸 꼭 물어봐야 하는건가? 그건 그렇고 역시 반 신족이야. 지킬게 없으니 강해지는군.”
오딘은 미소를 지었다. 아스가르드에 존재하던 천공의 성좌, 그곳에서 오딘은 전 세계 모든 곳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어서, 그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했다.
이 세계로 온 뒤 그가 제일 먼저 재현한 것도 그 천공의 성좌였다. 물론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세계수와 연결된 천공의 성좌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성역 모든 곳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게 해주었다.
신의 신성력에 의해서 존재하는 발키리는 신성력을 보급해 줄 수 있는 에인페리아 없이는 다른 신의 성역에 들어설 수 없다. 하지만 신성력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에서 몰락한 발키리는 본연의 신성력을 바탕으로 좀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지구를 내 눈으로 볼 순 없지만, 그곳에는 60억을 넘어가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군. 게다가, 삶의 의미를 추구하던 그런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하네. 돈의 힘으로 세상이 움직이고, 도덕은 사라진 세상 말이야. 악마라고 해도 건강을 주고, 돈을 주면 영혼을 팔아넘길 인간들로 넘쳐난다고 하더군. 옛날처럼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던 인간들은 사라진 모양일세. 웃기지 않나? 그런 세상에 가장 유력한 종교가 우리를 두렵게 하던 ‘그 종교’라고 하니 말이지. 종교적 신념, 구원을 위해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던 그 꼴통들의 후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아. 만약, 지금 세상에 나 ‘오딘’이 강림한다면, 죽어가는 권력자들 세도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도덕은 사라지고 욕망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세상이야말로 우리 아스 신족을 위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빌어먹을 놈.”
프레이의 비난에 오딘은 기분이 더 흡족해졌다. 어차피 프레이는 오딘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생각과 말은 자유로울 수 있으나, 오딘에게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딘에게 적대하는 일체의 행동도, 오딘의 지시에 거스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프레이의 반발과 혐오는 오딘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과도 같았다. 오딘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라면 그가 강한 혐오와 함께 반발할 리는 없었다.
“뜻대로 잘 될 것 같은가?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널 거부하는 이들도 많을게 분명한데?”
“걱정할 필요 없어. 나름대로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오딘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딘의 눈은 미드가르드에 미칠 뿐, 지구의 상황을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핵병기에 대한 것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가스와 같은 화학병기라든가 병원균을 이용한 생물 병기, 그리고 저주를 이용한 주술 병기 등을 개발하고 있었다. 신성력은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저주로부터도 몸을 보호해 줄 수 있었다.
이것을 이용하면 인간들을 굴복시켜서, 자신에게 복속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레이야를 왜 방치하고 있는거지? 그저 훔쳐보기만 할 셈인가?”
“그저 훔쳐보고만 있지는 않아. 오히려 놈들을 키워줄 생각이지.”
“어째서?”
“그들이 지구의 문명과 기술을 더 끌어들이게 만들 셈이다. 그리고 지구와 미드가르드의 기술을 결합시키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지. 놈들은 내가 지구에 진출할 때를 대비한 일종의 실험장이지.”
“네가 건드릴 수 없이, 성장한다면 어쩔 셈이지?”
“걱정하지 마. 놈들의 약점은 내가 잘 알고 있지. 저 거북열차를 보게. 놈들의 약점이 바로 보이지 않나?”
프레이는 거대한 거북괴물이 이끄는 수레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거북열차를 보며 의아하게 여겼다. 그 순간 오딘에게서 프레이에게 기억의 일부가, 아니 현대 문명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갔다.
프레이가 오딘에게 종속된 이상, 그에게 정보를 주는 것도, 그에게서 정보를 빨아들이는 것도, 그에게 허락된 정보를 제거하는 것도 자유로웠다.
“무시무시한 물건이군. 저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지?”
“왜 저런 무시무시한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오딘의 반문에 프레이의 입이 다물어졌다. 오딘이 넘겨준 정보를 토대로 한다면, 지구에는 엄청난 인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물자도 풍요롭고 엄청난 과학 기술이 존재한다.
하지만 프레이야는 미드가르드에 그것을 들여오는데도 조심스러웠고, 동시에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꺼렸다. 오딘이 그들을 키워주려는 의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좀 더 대담하게 지구의 기술문명을 도입하도록 유도하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지구의 기술문명을 미드가르드에 들여오는데 엄청나게 소극적이었는데, 상황이 그다지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무지막지한 괴물, 기술문명의 덩어리 같은 놈을 미드가르드에 가져온 것이었다.
‘단순한 신앙심의 발로는 아니로군.’
“프레이야는 말이지, 원기인지 간장인지 확실치 않지만, 인간행세를 할 때 쓰는 육체가 따로 있지. 그리고 녀석은 그 몸일 때는 죽는 것을 개의치 않더군. 엘프 한마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상처를 입거나 죽는 것을 택했어. 그리고 그런 그를 주위에서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보기는 해도 말리지는 않더군. 그런데 프레이야가 직접 다크엘프의 영토에 들어가게 되니까, 상황이 바뀌었지. 저런 무식한 물건을 가져 온거야. 움직이는 재앙 덩어리를 앞에 붙인 거대한 금고를 말이지.”
“프레이야.”
“그래. 바로 그게 놈들이 두려워하는 약점이야. 프레이야 자신도 그들의 야단법석을 말리지 않더군. 지금까지의 태도라면 저런 야단법석을 좋아할 리는 없었거든. 프레이야는 죽는 것을 두려워 해. 프레이야를 잘 알고 있는 측근들은 더 두려워하고 말이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저 프레이야의 육체는 ‘본체’인거야. 죽을 수도 있고, 그것이 바로 프레이야의 끝인거지. 우리와 같은 정신체가 아닌거야.”
오딘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토르에게 묘르닐이라는 해머가 있듯이 오딘에게는 궁그닐이라는 창이 있다.
막강한 신성력을 소모하지만, 정신체만이 아니라 육체까지 날려버리는 피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였다. 신성력 소모가 크다지만, 몇발 정도를 못날리는 것은 아니었다.
에인페리아를 죽이는데 쓰는 것은 신성력의 낭비지만, 프레이야를 죽이는데는 단 한발이면 충분했다.
“때가 오면, 프레이야를 죽이고, 유혜서를 잡아들이면 되지. 그러면 놈은 나를 위해서 일해주게 될거야.”
오딘은 조제성의 모습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유혜서만을 먼저 납치하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그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유혜서와 조제성은 프레이야의 존재와, 그녀를 따르는 엘프 왕국을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가 사라지고, 희망을 상실한 상태에서라면 오딘을 따르는 길 말고는 남아있지 않을 터였다.
“그건 그렇고, 정말 마음에 드는걸. 저 거북 열차라는 물건. 저걸 흉내 내는 것은 무리겠지.”
오딘은 실제 거북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있지만, 거북 열차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펜릴과 티르의 싸움을 좀 더 키워보는 것도 좋겠지.”
오딘은 로키와 뒤로 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전쟁을 키우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탈락되는 신들을 오딘에게 제공하는 것, 그리고 오딘이 제 2차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는 것, 오딘은 지구를 차지하고 로키는 미드가르드를 지배하는 것이 협정 내용이었다.
“프레이. 네게 지금부터 사명을 내리겠다.”
오딘의 말에 프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명령이나 사명에 대해서 거부할 권한은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프레이야가 설치한 게이트를 이용해서 지구를 살펴봐라. 간단히 돌아보고 하루 안에 귀환하라. 너라면 별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미드가르드 외의 장소까지 눈이 미치지 않는 오딘이 택한 것이었다. 프레이는 입을 다물고 프레이야의 궁전으로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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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는 거대한 장갑판으로 둘러쌓인 객차 안이 의외로 쾌적함에 놀랐다. 제성은 상류층들을 위한 럭셔리 트레일러를 사다가 그 내부 구조를 완벽하게 장갑 열차안에 옮겨 놓은 것이었다.
에어컨은 물론 완비되어 있었고,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하고 내부 산소만으로도 일주일은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여기 살고 싶을 정돈데.”
거북열차와 장갑열차는 대용량 디젤 엔진을 사용해서 외부 소음이 큰 편이었다. 게다가 거북열차와 장갑열차의 경우 크기가 너무 커서 다닐 만한 길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길을 만들면서 가야 했다. 아니 거북열차가 가면 그 뒤로 길이 생긴다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갑열차 안은 아주 조용하고 흔들림도 거의 없었다. 창문 대신에 사방으로 붙은 얇은 박막 대형 TV가 외부 카메라를 통해서 비춰주고 있었다.
컴퓨터가 제어하는, 아니 발키리들이 제어하는 외부 서스펜션이 아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요동을 잠재우고 있었다. 제성이 신경을 많이 쓴 탓에 엘프 못지 않은 아름다운 인간 시녀들이 시중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굴베이그 왕국의 귀족 영애들이었다. 왕궁의 고위 시녀들은 귀족 영애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제후급인 백작위 이상의 작위를 가진 귀족 자녀들은 ‘프린스’, ‘프린세스’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왕족과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므로 시녀 생활이 의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왕이나 왕자, 공주의 측근들은 그 자체로 큰 권력이 되기 때문에 높은 신분의 귀족이라고 해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성이 엘프가 아닌 인간 시녀를 택한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프레이야의 곁에 인간을 둠으로써, 굴베이그 왕국을 위한 배려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엘프들 자체가 프레이야에 대한 신앙심과 충성심은 충만하지만, 접대의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엘프들은 누군가의 시중을 들거나 시중을 받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눈치도 요령도 없었다.
육체가 없었던 전재 프레이야들의 기억에는 시중 받아본 경험이 있을리가 없었고, 서민 출신의 박원기가 시중을 받아본 거라곤 이발소에서 귀를 파주는 것 정도 뿐이었으니 시중을 받는 측도 무지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대로 둬도 문제는 없지만, 조제성은 인간 시녀를 도입해서 엘프 신관들이 제대로 시중드는 요령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좁은 공간 내에서 여신을 24시간 모시면서 장시간 여행을 하는 그런 임무는 신관들이나 귀족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큰 영광이었다.
덕분에 프레이야는 원기가 꿈에도 꿔본적 없는 초호화 럭셔리 여행을 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여신님.]
“무슨 일이지? 제발1호.”
너무나 아름답고 쓸모있고 고귀한 존재이지만, 찍어낸 듯 개성이 없는 발키리들에게 이름 붙이기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신성력이 충분하다면 필요한만큼 더 찍어내면 되기 때문에 전부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구별할 필요가 있어서 프레이야는 붙여준 사람들의 이름 첫자와 발키리의 ‘발’자를 붙여서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제성의 발키리인 ‘제발이’와 수한의 발키리인 ‘수발이’였다. 거북열차에 제발이를 배치하고 장갑열차에 수발이를 배치했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발키리 둘을 제성과 수한에게 재배치했기 때문에 그들은 제발2호, 수발2호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제발이와 수발이는 제발1호와 수발1호가 되었다.
[앞쪽에 개울이 나타났습니다. 요동이 예상되므로 주의해 주십시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었나.”
길이 없는 곳을 마구잡이로 진행하다보니 고도의 로봇 서스펜션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거나 기울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안내방송은 의자에 편히 앉아서 대형 박막 TV에 연결된 게임기로 게임을 하고 있는 프레이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중을 들기 위해서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는 시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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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인가.’
프레이야의 원정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터라, 프레이야의 궁전은 텅 빈것처럼 조용했다. 물론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프레이는 오딘이 가르쳐 준 게이트를 향했다. 인간들이 주로 드나드는 거울형 게이트였다. 오랜 세월의 연구에 걸쳐서 만들어진 신기라 오딘도 단시간에는 흉내내기 힘든 물건이었다.
‘신관들이 없다는게 다행이군.’
발키리도 신관들도 없으니 프레이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레이는 안심하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웃, 이곳이 바로 지구인가? 차원 통과가 이렇게 간단하다니.’
미드가르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세상이 프레이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예상치 못한 문구가 나타났다.
[블러디 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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