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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95화 (95/497)

95화 새로운 신화의 시작

발키리 칩은 상당히 놀라운 물건이었다. 발키리라는 것이 본래 엄청난 활용도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에 빙의시키는 것이 가능한데다가, 프레이야는 혼이 들어있지 않은 육신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아름다운 모습만으로도 가치가 없지는 않았지만, 제성에게는 눈꼽만큼의 의미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여성’은 유혜서와 유혜서가 아닌 존재로 나뉠 뿐이었다. 미추 따위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무심함은 역으로 자상함으로 여겨져서 주변의 여성들 가운데 흠모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대 문물에 있어서 컴퓨터의 존재는 빠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동차 엔진에도 컴퓨터는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기계를 만드려면, 그 기계를 움직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소프트웨어로서 발키리는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

완벽한 인공, 아니 신공지능(神工知能)이라 바이러스등이 침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미 프로그램의 영역이 아닌 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입출력 단자가 있을 뿐, CPU도 필요없으니 저렴했다.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지만, 꽤 다양한 곳에 쓸모있게 사용될 수 있는 무적의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성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전투인형’ 프로젝트였다. 애초의 계획은 터미네이터같은 인간과 구별이 안가는 안드로이드였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인간 수준의 소형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2.5미터 수준의 꽤 큰 인간형 기계였다. 이족보행의 문제 중 하나가 균형감각을 실현시킬 컴퓨터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발키리를 이용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초보적 수준의 로봇 몸체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아주는 발키리칩의 존재는 대단히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균형을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죽마를 타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몸놀림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발키리 칩의 존재를 감추면서 연구자들과 기밀을 엄수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쉽게 결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발키리 칩은 연구자들에게도 꿈과 같은 물건이라, 기밀 유지에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용으로 사용하던 발키리 칩이 도난을 당한 일도 있었다.

물론 발키리는 필요할때만 빙의되기 때문에, 훔쳐간 이들은 속아서 가짜를 훔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조제성이 설립한 로봇 연구를 위한 전자회사의 주가는 역으로 폭등했다.

조제성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일생 미드가르드와 연결되어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프레이야의 신성력이 늘어나면서 발키리의 숫자가 늘어났고, 덕분에 유혜서와 조은혜에게도 발키리가 붙었다.

프레이야가 부활시킨 인간이 지구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발키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원기가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발키리에 여유가 생기고 조제성을 신뢰할 수 있게되면서 원기가 그들에게 발키리를 붙여주면서 지구로 돌아와 생활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그런 만큼 조제성에게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수십년 이상을 내다본 사업도 쉽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발키리 자체도 성장시킬 필요가 있지.’

발키리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인공지능과 비슷한 존재였다. 그 능력은 만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경험과 학습에 의해서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훗날 전투인형의 두뇌가 되었을 때를 위해서, 조제성은 발키리에게 전투 기술을 학습시키고, 전투 경험을 늘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이 가칭, ‘발키리 블러디 라인 입대’ 프로젝트였다.

발키리가 블러디 라인에 들어가게되면 자동적으로 캐릭터가 생성되게 되어 있었고, 일반 유저로 받아들여져서 퀘스트와 전투가 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대상자가 된 것이 바로 프레이였다.

캐릭터를 생성하겠는가 묻는 동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차원 미러를 통해서 발키리가 들어가는 자체로 캐릭터가 생성되는 것이었다.

프레이는 자신에게 엘프 모습의 육체가 생성된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황급히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탁 몇개와 의자들이 있을 뿐 썰렁한 방 한쪽 벽에 거울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흠, 확실히 프레이야의 호위로 바쁘긴 바빴나보군.’

프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쉰 다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한글을 읽을 줄도 몰랐고, 한국어도 몰랐기 때문에 ‘블러디 라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의 의미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이곳이 지구라고 여기고 있었다.

‘흐음, 거리는 깨긋하고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미드가르드와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군.’

판타지의 상식,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블러디 라인이라 프레이는 그다지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는 오딘의 명령대로 하루 정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딘의 영역에서 빠져나오면 신성력의 보급이 끊기고, 내부에 가진 신성력을 소모해서 존재를 유지하게 되어 있었다.

프레이가 자신이 축척해둔 신성력을 이용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틀이 한계였다. 하룻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육체가 생겨서 불편하군. 이건 대체 뭐지? 저주인건가?’

그는 조심스럽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초보자 마을을 지켜보았다.

‘미치겠군. 이 세계의 토끼는 왜 이리 강력한거지? 게다가 지구인들의 호전성이 놀랍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건가?’

인상적인 것은 토끼와 닭, 쥐에게 맞아죽고 쪼여죽고 물려죽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뻔히 죽는줄 알면서 미친듯이 들이대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이거 제정신이 아닌 세상이로군. 오딘은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미드가르드를 버리고 올만한 곳인지 의심스러워.’

프레이는 어차피 거짓 보고가 불가능했다. 오딘은 자신이 보고 들은 정보를 통째로 받아들일테니 그가 보고 들은 것이 여과없이 전해질 터였다.

‘돌아가자. 이정도면 충분히 분위기를 알았겠지.’

그는 처음에 자신이 왔던 건물로 향했다. 그의 기억력은 정확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건물로 돌아오는게 가능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어서오세요. 길드 조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길드를 만드실려면 1번창구로, 길드에 가입하시려면 2번창구로 가주세요.”

프레이는 자신을 반기는 NPC의 대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이 나갈 때, 이 방에는 거울이 있고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많고 거울은 없었다.

아니, 방 자체의 크기가 달랐다. 마치 광장처럼 큰 이 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못알아듣고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길드 조합 NPC가 미소를 지으며 다양한 언어로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미드가르드어가 등장했다.

블러디 라인을 플레이 하는 엘프들을 위해서, 퀘스트와 도움말 등을 모두 미드가르드어로도 서비스 하도록 작업을 한 덕분이었다.

“길드 창설? 길드 가입?”

프레이가 반문하는 순간, 프레이의 눈 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고객님의 주언어를 미드가르드어로 설정합니다.]

“예. 이곳은 길드를 만들거나 길드 가입을 신청하는 곳입니다.”

“아까는 전혀 다른 방이었는데?”

“길드에 가입하신 분들은 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로 길드방으로 자동 연결됩니다. 아마 길드에서 탈퇴하신 모양이네요.”

“탈퇴?”

“예. 다시 길드방으로 돌아가시려면, 길드에 재가입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길드명이 뭐였나요?”

“길드명?”

프레이가 길드명을 알 리가 없었다. 설사 안다고 해도 가입을 받아줄지는 알 수 없었다.

“공개 길드라면, 여기 리스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비공개 길드라면 길드명을 모르시면 찾을 수 없습니다. 친구 등록된 분들은 없으신가요?”

“친구를 등록해?”

그렇게 해서, 프레이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미아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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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대체 왜 안돌아오는거지?”

오딘은 프레이의 귀환을 기다리며 혀를 찼다. 그는 프레이야와 제성을 비롯해 주요 인물들의 움직임을 살폈지만 프레이의 존재에 대해서 눈치챈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건가? 일방통행은 아닌데.”

그는 프레이의 귀환을 기다리다가 사흘째에 프레이와의 연결을 끊어 버렸다. 어차피 소멸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보내봐야겠군.’

오딘은 교활한만큼 신중했다. 지구의 기술문명이 어떤 수준인지 확인될 때까지는 그리고 확실한 대처방법과 승산이 생길때까지는 두 세계를 잇는 차원의 문을 열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휘하로 종속시킬 다음 희생양을 찾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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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군. 아직도 소멸되지 않았어. 아니 변화를 느낄 수 없군. 신성력이 소모되지 않는건가? 이 육체 덕분에?”

이틀이 지난 뒤, 변치않은 자신의 상태에 프레이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때 그에게 접근하는 노인이 있었다.

“이보게. 내게 닭을 세 마리만 잡아다 주지 않겠나? 그럼 먹을 것을 주지.”

“내게 명령인가?”

프레이는 황당한 듯 되물었지만, 퀘스트 제공용 단순 NPC가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웃기는 놈이군. 좋아.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그리고 그것이 24시간 게임폐인 프레이의 장대한 신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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