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새로운 힘
‘게임 캐릭터로 게임하고 있는 나는 대체 뭘까?’
프레이야는 엑박1080의 패드를 쥐고서 갑자기 든 생각에 빠져 들었다.
“여신님. 용사가 죽어요!”
프레이야가 잠시 정신을 판 사이에 굴베이그 왕국 출신의 시녀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 순진한 아가씨는 프레이야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용사를 조종해서 자신은 모르는 어떤 세상을 구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사소한 오해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오해하도록 둔 것이기도 했다.
“아, 그래. 잠깐 정지 시켜두자.”
스타트 버튼을 눌러서 일단 정지를 시켜두었다. 물론 시녀는 그것이 여신의 권능으로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알고 있었다.
여신의 몸은 신성이 깃들어 있지만 육체 자체는 완벽한 인간에 가까웠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에인페리아에 가까웠다.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육체였다. 워낙 튼튼하고 질겨서 며칠쯤 게임하고 있다고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을 쐬고 싶다던가 스트레칭을 하고 싶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여신의 육체인데 먹으면 싸야 하다니.’
여신이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먹고 화장실을 가야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였지만, 블러드 라인의 캐릭터들도 먹고 싸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프레이야는 잠시 바깥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누가 말리지는 않지만, 프레이야가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면, 주위를 정찰하고 사방을 살피느라 난리법석을 떨 터였다.
‘아직 식사시간도 좀 남았지.’
프레이야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풀 필요가 없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작스럽게 진동이 오면서 차가 흔들렸다. 밟고 지나가던 나무 둥치가 부러지면서 온 현상이었다.
프레이야는 순간적으로 발이 미끄러지면서 나동그라질 뻔 했다. 하지만 프레이야의 몸을 가볍게 들어올린 부드러운 손길이 나타났다.
“아, 고마워.”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를 받쳐주었을 시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시녀가 아니었다. 바로 발키리였다.
‘어떻게 된거지?’
발키리는 실체가 없는 유령같은 존재였다. 신성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존재한다. 어떤 공격도 통용되지 않는 존재이지만, 아주 약간의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기일 때, 가끔 리모콘을 찾아 가져오게 한다던가, 전등을 끄던가 하는 정도로 사용했다. 리모콘이나 핸드폰도 잠깐 드는게 고작이고 카메라조차 무거워서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런데 여신의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여신의 몸은 날씬한 여성의 육체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몸무게는 그랬다. 아마 50키로는 거뜬히 넘어갈 터였다.
여신의 기억을 잠깐 검색해 봤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았다. 프레이야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실체화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했다.
기존의 여신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게임 캐릭터를 통한 실체화였기 때문이었다.
‘실체를 가진 덕분에 이런 힘이 발휘되는 건가? 이전에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혹시 신자가 늘어서 그런건가?’
굴베이그의 신자들을 흡수하면서 격이 다른 신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발키리에게 이런 식으로 영향이 미치게 된 사실은 몰랐다.
‘이건 의외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프레이야 역시, 제성이 자신의 시선을 고의로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 가운데는 모르는 편이 나은 것들도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장갑열차 안에서 게임기의 패드만 붙잡고 시간을 죽여온 것이기도 했다.
‘발키리를 필요한 만큼만 만들었는데, 좀 더 늘리는게 좋겠군.’
신관이 신성력을 발휘할 때, 여신이 가까이 있으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성력을 더 소모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상승작용이라고 봐도 좋았다.
발키리가 물리력을 발휘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발키리가 칼을 들고 휘두르면, 완전히 이기어검술이 되겠는걸?’
그렇게 생각하며, 프레이야는 우선 발키리를 10명(마리?)창조했다. 만약 쓸모가 없다면, 새로 생길 에인페리아에게 불하(?)하면 되는 것이었다.
“잠시 멈추라고 해봐. 중요한 볼 일이 생겼어.”
어차피 식사시간이 좀 남기는 했지만, 새로운 능력을 확인하는 것은 나름대로 중요했다. 무력한 여신 캐릭터가 조금 더 쓸만해지면, 부담은 줄어들 터이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는 호위병들의 칼을 걷어서, 주위의 땅에 꽂았다. 예전에 본 애니에서 등장하는 장면을 연출할 생각이었다.
‘발키리들이 눈에 보이는게 좀 아쉬운 걸. 그냥 칼만 날아다니면 더 멋질텐데.’
과연 프레이야의 생각대로 발키리들은 검을 뽑아서 가볍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호위 엘프들과 시녀들이 탄성과 환성을 질렀다.
“좋아. 저 나무를 공격해.”
프레이야의 명령과 함께 검들이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도중에 검들은 금속성을 내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발키리들의 물리력이 급격하게 사라지면서 그들의 손을 통과해 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검이 날아가는 속도도 그다지 빠르진 않았다. 검을 든 발키리의 이동속도는 화살처럼 빠르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빨랐지만, 이동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했다.
리모콘을 들던 때처럼 비실대면서 날아간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멋지게 날아갔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반경 약 20미터에서 30미터인가.’
실체화된 프레이야의 주위는 랭크 5의 성역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의 강한 신성력을 가진 공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범위는 그리 만족스럽게 넓지는 않았다.
‘신성력이 강해지는 공간이라면 나름대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
신관들이나 발키리들의 능력이 극도로 상승하는 공간이지만, 프레이야 자신에게 영향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레이니의 허리에 찬 쌍권총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거야. 이기어총이다. 왜 검만 생각한거지? 판타지를 너무 봐서 그런지도 몰라. 검만 무기인건 아니지.’
이번에는 총들을 들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힘이 좋아서인지 양손에 총을 들고도 거뜬했다.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프레이야의 뇌리에 떠오른 문구가 있었다.
“가라! 핀판넬! 아니, 발판넬!”
그리고 하늘에서 약 스무정의 총이 불을 뿜었고, 목표로 한 나무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RPG-7의 로켓탄이 나무를 뿌리채 박살내 버렸다.
총사대 레이니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총사대들은 멋지다며 환호했고, 시녀들은 굉음과 불을 뿜는 총들에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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