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토르의 에인페리아
조제성은 방패를 인계하고, 프레이야와 인사를 나눈 후, 헬리콥터에 탑승했다. 에어울프로 이름 붙은 이 헬리콥터는 조종사가 없었다. 헬기 조종사를 미드가르드로 끌어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파일럿을 양성하기에는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발키리 칩이었다. 발키리 칩은 발키리가 기계에 빙의할 수 있게 해주는 기적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소수의 인간만이 미드가르드와 접점을 가지고 있고, 운전 면허를 가진 것도 장수한, 조제성, 유혜서, 신근호, 크리스의 다섯명이 전부였다. 자동차 외의 장비를 조종해본 사람은 없었다. SAS 출신의 크리스도 헬기나 비행기를 타고 다닌 적은 많아도, 조종해 본 적은 없었다.
그때문에 현대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발키리칩을 이용해서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기체 전체를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컴퓨터를 대신해서 발키리 칩으로 대체하면 끝나는 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발키리는 마치 제 몸처럼 기체를 조종하게 된다. 아무리 숙련된 조종사라도 사각은 생긴다. 하지만 발키리에겐 사각이 없다.
그래서 아주 정교하고 안전한 비행이 가능했다.
“그쪽 상황은 어찌되었나? 알파 1.”
“타겟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전장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메가 1. 오버.”
희연이 이끄는 알파팀과 연하가 이끄는 브라보팀은 일종의 인해전술 부대였다. 죽어도 되살아나며, 레벨 손실은 있지만 신성력 소모가 없는 게임 캐릭의 특성을 이용해서 자살 공격에 가까운 반복 공격으로 적의 발을 늦추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에어울프를 이용해서 적을 공격하는 건 어떨까.’
에어울프를 본따서 벨 222를 개조해 만들어진 가짜 에어울프는 드라마에 나온 에어울프같은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비행 성능은 벨 222 그 자체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에어울프가 아니면 안된다고 주장한 장수한과 그에 동조한 박원기 때문에 이미 나온지 오래된 벨 222를 사서 개수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나온 고성능 민간 헬기보다도 좀 떨어지는 비행 성능이었다. 하지만, 추가된 부분은 좀 달랐다. 양쪽에 수납된 기관포는 로봇팔에 가까울 정도로 유연한 가동포좌로 제어되었다.
발키리의 뛰어난 조종 능력 덕분에 두 가동포좌는 뛰어난 공격범위와 명중률을 자랑했다. 날아오는 휴대용 미사일을 기관포로 요격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전투기나 SAM에 장착된 고성능 대공 미사일은 무리였다. 물론 요격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역시 일러.’
조제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칫 잘못하면 미드가르드의 신들 전부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물론 프레이야가 위험하다면 이판사판 안가리겠지만, 되도록이면 감추는게 좋았다.
“오메가 1. 지금부터 정찰 임무에 들어간다. 이상.”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고,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다크엘프 결사대와 알파팀의 모습이 보였다. 브라보팀은 멀리 떨어진 티르의 영토에서 테러나 다름없는 후방교란임무를 띠고 있으니 현재 상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박호철이라는 녀석이 좋은 능력을 갖고 있었지. 역시 여신님의 곁에 있었던 덕분인가? 최찬균이라는 녀석도 나쁘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박호철의 능력은 광역 개별 지휘라는 독특한 능력이었다. 전장의 모든 병사에게 동시에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야구 감독이라면 몰라도 축구 감독이라면 월드컵 우승같은 건 일도 아니겠지. 미식축구도 가능하겠군. 하지만 역시 최고는 전쟁터가 될려나.’
조제성은 호철이 가진 이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감독이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게임을 했다하면 줄창 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용 무전기라고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쓸만 했다. 그리고 사실 지휘관으로서의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능력이 정말 빛을 발하려면, 유닛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유닛들이 멋지게 하나의 유기물처럼 움직이며 적을 녹여줄 터였다.
문제는 그가 게임을 할 때는 병력을 뽑느라 정신이 없어서, 주로 적진에 랠리포인트를 찍어놓고, 어택땅 하기만도 바빴다는 사실이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손이 복잡하니 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전략 게임은 10분에서 20분 정도면 승부가 결정되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몇시간 이상 장시간의 전투에서는 별 문제가 안될 것이었다.
찬균의 능력은 프리미엄이 붙을 아이템(인간을 포함)을 알아보는 능력이었다. 박승희와 팀을 이루면 조제성을 능가할 사업가가 탄생할 수도 있을터였다.
‘문제는 어떻게 꼬셔들이느냐지.’
애석하게도 그들은 바라는게 없었다. 나름대로 집안에 돈은 있었고, 야심도 없고 의욕도 없고, 생각하는건 오직 취미생활 뿐이었다. 집안에서도 별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적당한 대학 나와서 집안 망신 안시키고 조용히만 지내면 게임폐인이 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방임하고 있었다.
아쉬운게 없으니 끌어들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돈으로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그 경우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어느정도는 절실함이 필요했다.
‘리디아 전하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겠지만...‘
[적들이 탐지 거리내에 들어왔습니다. 모니터를 봐 주십시오.]
제성은 조종석에 비치된 모니터를 살펴 보았다. 고성능 카메라와 연동된 모니터였다. 꽤 선명하게 적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뭐지? 로봇인가? 골렘인가 기간트인가 하는 것들인거야?”
일반 병사와 기병들 옆에 3미터쯤 되는 거대한 철갑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크지만 그냥 인간들입니다. 거인족이라고 불리웁니다. 토르의 정예 병력입니다.]
“허어. 정말 크군. 거인이라고 해서 2미터 좀 넘는 그런 거인을 생각했는데, 그냥 괴물이로군.”
거인증에 걸린 사람들의 키가 2미터를 조금 넘기는 정도이지만,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었다. 3미터의 키에 단단한 체격은 이미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미드가르드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판타지 소설들도 찾아본 조제성이 거인이 아니라, 로봇을 연상한 것도 한편으론 당연한 것이었다.
거인들은 태생이 거인이 아니라, 토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존재였다. 에인페리아를 탄생시킬때, 고의적으로 거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갖는 에인페리아의 견고함을 이용해서 거인을 조제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은 노화도 생식능력도 없는 에인페리아지만, 토르는 두가지 모두를 부여해서 거인족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전쟁은 체격과 몸무게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토르의 신념이 탄생시킨 괴물들이었다. 거대한 체격에 비하면 두깨 2cm의 철판은 은박지나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온 몸이 노출되지 않는 갑옷을 입고 거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 병사라면, 그들의 갑옷을 창이나 칼로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화살은 더더욱 어림도 없었다.
다른 에인페리아들이 갖는 민첩성이나 빼어난 전투 기술들은 살릴 수 없지만, 일반 병사를 학살하는 속도는 믿을 수 없을만큼 빨랐다. 방어와 학살에 특화된 에인페리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인간들로는 대적할 수 없을 것 같군.’
토르가 자랑하는 거인 군단은 거인족들이 부리는 몬스터 군단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부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희연에게 적 부대의 상황을 전달했다.
“거인이라고요?”
“거인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로봇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할듯 싶구나.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을거다.”
“전방 20km라. 시간은 어느정도 걸릴까요?”
[알파팀의 현재 위치까지 도착한다면 예정시간은 약 8시간입니다. 경로 탐색결과 행군 거리는 약 50km입니다.]
“추천할만한 매복 위치를 알려주세요. 적에게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요.”
[전방 15km 지점에 적이 통과할 확률이 높은 숲이 있습니다. 통과 예상 시간은 약 2시간에서 2시간 20분 가량 후입니다.]
“우선 붙어볼께요. 전투 상황 기록과 분석 부탁드려요. 오메가.”
희연은 힘있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조제성은 그녀가 은근히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조제성으로서는 그녀의 기분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저 무인의 기질이라는게 존재한다는 것만 새삼 느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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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레이는 친구를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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