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닭사냥과 친구
“아, 젠장. 말이 되는 소리냐? 컴퓨터 수업 과제가 블러드 라인이라니.”
“뭘 그래. 편하고 좋은거지.”
“이 게임 얼마나 지랄같은 걸로 유명한데. 이걸로 레벨 10올리기가 쉬운 줄 아냐?”
“그러니까 레벨 10이지. 다른 게임이라면 만렙 찍으라고 했을껄.”
찬균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불만이 뭔데?”
“게임 정도는 고를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이런 매니악한 게임 말고, 예를 들자면 스페이스 크래프트 3라던가.”
‘그럼 넌 영원히 과제 해결 못할 거다.’
찬균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호철은 전략게임을 사랑했지만, 전략게임에게 사랑받지는 못했다.
“일단, 공략 사이트는 확인해 뒀으니까, 잘 해봐야지. 너 이런 게임에 경험은 좀 있냐?”
찬균은 별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호철에게 물었다.
“아니. 이런 게임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렇겠지.”
찬균은 스스로를 부지런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호철과 함께 있으면 왠지 부지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덜 게으른 놈이 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음...그러니까 우선 마을에 가서 닭을 잡는 것으로 레벨을 올리는게 빠르다고 되어있네.”
찬균은 자신이 확인해 온 정보를 읽었다. 닭잡는 퀘스트는 나름 보상도 좋고, 닭이 피가 적어서 나름 할만하다는 이야기였다.
“와, 저게 닭이야? 독수리야?”
호철이 혀를 내두르는 소리에 찬균이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닭에게 미친듯이 쪼이면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프레이의 모습이 있었다.
“와, 잘한다. 저 사람 장난 아닌데?”
호철은 프레이의 몸놀림을 보면서 감탄했다. 처음에는 몸을 다룰 줄 몰라서 고생했던 프레이였지만, 지금은 꽤 숙달된 상태였다. 전쟁터에서 전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봐왔던 만큼 제법 흉내를 낼 수 있었다.
“아, 죽었다.”
하지만 아직 닭을 잡을 만한 능력은 되지 못했다. 닭은 그의 시체 위에 올라서서 홰를 치며 승리의 함성을 울부짖었다.
꼬끼요오.
“저걸 잡는게 그나마 쉽다고? 미치겠다.”
찬균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닭의 3차원 입체 기동은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상대하곤 했다. 그리고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닭을 상대하지 않는 편이다. 저건 닭이라기보단 날개달린 작은 악마나 다름 없었다.
작은 동물보다는 큰 동물이 차라리 맞추기라도 쉬워서 그걸 선호하는게 블러드 라인의 특이한 법칙이라면 법칙이었다.
그리고 그냥 레벨만 올리려고 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도 닭이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물을 씌우는 것이다.
물론 그물을 씌우는 것도 그냥은 불가능했다. 삼차원 입체기동을 하는 저 약먹은 닭들을 상대로 그물을 씌우는 것은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했다.
하지만 두 사람 이상의 콤비 플레이라면 가능했다. 블러드 라인의 닭은 비선공이지만, 아주 호전적이었다. 누군가 공격하면 반드시 반격한다. 그 타이밍을 노려서 아군을 그물로 덮어서 닭과 함께 잡은 다음 몽둥이로 후두려 패다보면 피가 작은 닭이 죽는다. 물론 아군이 먼저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닭이 그물에서 빠져나오진 못하기 때문이었다.
리듬액션도 젬병인 호철에게 그물을 맡기는 것은 자살행위였지만, 그렇다고 찬균도 그물을 정확하게 씌울 자신은 없었다.
‘아까 그사람이라면 도와줄려나?’
찬균은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가, 부활한 프레이가 나타나자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닭을 잡아야 되는데, 좀 도와주실래요?”
그렇게 그는 프레이에게 도움을 청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프레이의 자존심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세 사람(두 오덕과 한 폐신?)은 서로를 친구 리스트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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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엘프들과 다크엘프들의 엄폐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즐겨입는 녹색 옷은 나무 위에 숨는 그들의 습성에 의한 것인지도 몰랐다. 갈색 가죽 바지와 갈색 가죽으로 곳곳을 보강한 녹색 상의는 나무 위로 올라가자 자연스러운 보호색이 되었다.
희연은 그런 재주는 없었으므로 구덩이를 파고 나뭇잎으로 몸을 덮은채 기다리고 있었다.
쿵, 쿵하고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희연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를 두려움과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상하네. 평소엔 이렇게 초조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평소의 자신을 떠올리려 애썼다. 평소라면 지금 쯤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왜지?’
그녀는 곧 그 답을 깨달았다. 원기였다. 그를 떠올리자, 희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평소의 원기는 사실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고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희연은 그런 그를 격려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재미있는게, 보호받는 입장에선 두려움이 커지는데, 누군가를 보호해 주려고 들면 두려움은 되려 줄었다.
‘그런 주제에, 싸움터에만 나가면...’
희연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필사적으로 인명피해를 줄이겠다고 헌신하듯 칼날 앞에 뛰어들던 원기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렌은 희연을 검사로, 원기를 용자로 표현했다고 다크엘프들에게 들은 바 있었다.
‘용자라, 틀림없지.’
그녀는 어느새 떨려오던 손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굳이 심호흡을 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늘은 내가 원기 오빠의 역할까지 해내야겠지.’
그녀는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와 동시에 엘프들이 나무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일제 사격을 가했다. 총사대들은 어차피 죽을 각오를 했다. 하지만 첫 전투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번 전투가 가장 중요해.’
죽으면, 레벨이 떨어지고 장비를 떨군다. 물론 죽음을 각오한만큼 적의 손에 들어가도 무방한 장비들을 갖췄다. 하지만 만렙인 상태에서 싸우는 지금이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
미드가르드에서 전투에서 죽은 전사가 부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빈번히 그리고 너무 간단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관심을 갖게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전투에서 최대한 효과를 거둬야 했다.
그녀는 단숨에 뛰어나가서 주위의 적들을 베고는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뭐야? 저걸 달랑 검으로 싸워야 한다고?’
3미터의 거인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보다 무척 크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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