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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02화 (102/497)

102화 폭풍전야

희연의 무시무시한 위용에 놀란 밀레니아가 희연을 상대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을 무렵, 희연 역시 밀레니아와 거인 기사들의 공포를 실감하고 대책 마련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거인 기사들의 발목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하니 이걸 어쩌지?’

거인 기사들의 움직임은 에인페리아들처럼 민첩하진 않았지만, 일반인 수준은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보폭 자체가 엄청나게 큰 만큼 이동 속도 자체는 굉장히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거인 기사들이 아군 진영에 뛰어든다고 하면,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희연이 거인 기사들을 여럿 해치웠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군들이 다칠까봐 제대로 공격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만약 아군들 틈에서 미친듯이 도리깨를 휘두르게 된다면, 그들을 저지할 방법이 희연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편곤이로군. 정말 무시무시한 병기야.]

파티로 연결된 장수한이 그녀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서 혀를 찼다.

“편곤이라고요?”

[그래. 조선시대에 그 유용함이 입증된 무기지. 편곤이 등장하니 칼창이 무용지물이 되었다고까지 말해지는 무기야. 쌍절곤과 비슷하지만, 실력이 없이 마구잡이로 휘둘러도 자기가 다치는 일은 없지. 위력은 절대적이고, 막기 어렵고, 쓰기 쉬운 강력한 병기야. 도리깨처럼 내리치는 방식 말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할 수 있지.]

수한의 말에 희연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의외성이 강한 무기라서 막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피해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상대할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 획기적이고 강력한 병기야. 흠잡을 데도 없지. 좁은 공간에서 쓰기는 어렵지만, 전장에선 최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야. 아니, 그냥 최고야. 게다가 저렇게 주렁주렁 달린걸 휘둘러 댄다면...]

거인들은 모두 사슬로 만들어진 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추가로 가죽치마를 안에 입고 그안에는 두꺼운 판금 갑옷과 부츠까지 신고 있었다. 희연을 제외한 이들은 거인들의 하반신을 노린다손 치더라도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전차네요. 하아.”

희연은 막막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야. 지난번처럼 게릴라 전투를 벌이는 것 뿐이지.]

“토르의 해머는 어떻게 하지요? 그 공격은 피할 수도 없다는 것 같은데.”

[그냥 맞아주는 수 밖에 없지. 되도록 적들 한가운데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성력 소모가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군. 에인페리어를 10번은 부활시킬 정도의 신성력 소모가 있다고 하니까. 어차피 맞아봐야 아프지도 않을텐데.]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아요. 레벨도 떨어졌고.”

희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앞이 번쩍하고 순식간에 사망판정이 떴다. 수한의 말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네게 토르가 해머를 사용했다는건, 적들도 널 당해내기 어렵다는 뜻이야. 그러니 최대한 피해를 입혀. 우리한텐 토르의 해머도 없다. 거인이 아군 진영에 뛰어드는 일이 발생해선 안돼.]

“알겠어요. 조사장님이랑 방법이 있으면 찾아주세요.”

희연은 파티 채팅을 끝맺고 다크엘프 결사대와 총사대를 살펴 보았다. 총사대는 다크엘프들에게 맡겨 둔 여분의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희연은 아끼던 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곤이라...’

확실히 효율적인 무기이긴 했지만, 그녀의 전투 방식에 어울리는 무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검사답게 예리하고 날카로운 무기를 선호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능 ‘쪼렙학살’에도 날카로운 무기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적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희연은 한숨을 쉬고는 허리에서 검을 풀었다. 검은 거인 에인페리어를 상대하기에도 일반 병사들을 상대하기에도 어울리는 무기는 아니었다. 그녀가 택한 무기는 대낫이었다. 사신이 사용하는 불길한 느낌의 큰 낫이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는거야.’

희연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몬스터 불여우를 소환했다. 몬스터들은 죽으면 레벨 다운과 충성도 다운까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전멸 작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엘프 총사대가 리자드 나이트들을 소환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탑승형이 아니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주행 속도가 말과 비슷한 정도에다가 지구력도 꽤 좋은 편이라 탈 것을 그다지 펼요로 하지 않았다.

‘장병을 휘두른다면, 역시 어느정도는 높이가 필요하지.’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대겸을 이용한 목치기였다. 횡으로 휘둘러서 광범위하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충분한 높이가 필요했고, 그것을 불여우에 기승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좋아. 다시 한번 간다.”

한번 당했던 만큼 매복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야습은 충분히 가능했다. 적도 경계하고 있을테니, 기습의 효과 자체는 그다지 없지만 인간은 여타 아인종들의 눈으로 보면 새눈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밤눈이 어두운 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인들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야간에 충분히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적들의 행군을 늦추는데에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었다. 광전사화는 강력하지만 극도로 피로도를 높여주는 특성이 있었다. 행군과 광전사화를 함께 해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적이다. 적이 온다!”

과연 토르 진형도 엘프들의 야습에 대한 대응은 충분히 잘 되어 있었다. 특히 거인들이 인간 병력들을 보호하는 형태로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발사!”

희연의 지시에 따라서, 총사대의 장총과 다크 엘프들의 화살이 적진을 향해서 날아갔지만,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특히 거인들은 기본적으로 갑옷 자체가 무지막지한데다가, 신성 보호까지 받고 있기 때문에 화살이나 총알은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했다.

“좋아. 돌격이다!”

희연은 그렇게 외치면서 앞장서서 달려갔다. 야간 전투의 장점은 도주가 쉽다는 점에 있었다. 다크 엘프들의 경우 병력 손실을 경계해야 하는 만큼 꼭 필요한 처사이기도 했다.

그녀를 선두로 엘프 총사대가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블러드 라인의 캐릭들은 기본적으로 검이나 도의 스킬을 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장창등보다 검과 도가 효율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편곤같은 마이너한 무기는 물론이고 장창류는 스킬이 충분히 받쳐주질 않기 때문에 쓰는 의미가 없었다.

“적들의 접근을 용서치 마라!”

밀레니아의 외침에 거인들이 편곤이라고 불리기엔 주렁주렁 달린, 말 그대로 사람들 탈곡하는 도리깨를 들고 엘프들의 접근을 기다렸다가 일제히 휘둘렀다.

엄청난 굉음이 땅바닥에 울려펴졌다. 그리고 엘프 총사대의 약 70%가 그 자리에서 사망판정이 떨어졌다. 도리깨들의 변칙적인데다가 넓은 공격 범위는 엘프들이라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희연은 무사히 적진에 돌입하는데 성공했다. 쪼렙 학살의 이능이 발동한 탓이었다. 그녀의 능력은 이미 최상급 에인페리아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거인 기사들 대부분은 그녀의 쪼렙 학살을 견뎌낼 실력이 있는 에인페리아들이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이 굳어진 거인 기사를 발견한 희연은 불여우를 점프시켰고, 이능으로 강화된 큰 낫이 거인의 목을 날려버렸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불여우의 모습과 그 위에 올라선 희연의 의연한 모습, 그리고 빛나는 낫과 목을 잃고 쓰러지는 거인의 모습은 병사들에게 패닉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광전사화다! 광전사화 발동!”

신관들이 다급히 광전사화를 발동시켰다. 병사들의 체력을 고려해서 에인페리아만으로 싸우려던 의도가 완전히 어긋난 것이었다. 전투를 위해서 광전사화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의 공포를 진정시키고 군대가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광전사화를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란에 빠진 병력들 사이를 무서운 기세로 낫을 휘두르며 헤치고 나아갔다. 눈깜빡할 사이에 수십명의 병사들이 목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전장에 섬광이 번쩍하고 일어났다. 마치 벼락과도 같은, 그리고 다음 순간 천둥과도 비슷한 굉음이 들려왔다. 천둥은 번개가 밀어낸 공기가 제자리를 찾아오면서 나는 굉음이었고, 토르의 해머, 묘르닐도 마찬가지 현상을 일으켰다.

섬광과 함께 일어나는 천둥소리, 묘르닐이 단순한 물리공격임에도 번개로 오인할 만한 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토르의 해머는 순식간에 희연을 영혼으로 만들어버렸다.

“잔당들을 처치해라! 망할 엘프는 토르님께서 처치해 주셨다!”

총사대들은 곧 얼마안가서 전멸했다. 하지만 광전사화된 병사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이 드는 것은 무리였다.

‘차질이 크겠군. 어쩔 수 없어. 일반 병사들을 물리고 기사대만으로 나가야겠군.’

밀레니아는 이번 전투로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희연 역시 거인을 피한다는 사실이었다. 약자는 눈만 마주쳐도 전의를 상실하지만, 어느 정도만 넘어서도 그녀의 눈빛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보급품을 챙겨라. 기사들만으로 승부를 낸다.”

거인 기사의 수는 45명, 전체 50명 가운데 희연의 공격에 죽은 이가 지난 전투에서 2명, 이번 전투에서 1명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속행이 어려운 부상을 입은 이가 2명이 더 있어서, 총 5명이 전선을 이탈한 상태였다.

“그리고 너희들은 병력을 보호하면서 후퇴하는 임무를 맡긴다.”

밀레니아는 남은 이들 중 기량이 떨어지는 10명을 골라서 퇴각을 지휘하도록 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

밀레니아는 결단을 내리고 거인 기사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폭이 큰데다가, 에인페리아들인만큼 체력은 충분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이 향한 방향은 프레이야가 장갑열차를 타고 가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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