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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09화 (109/497)

109화 여신강림 - 2

누나를 찾으며 죽어가는 소년, 프레이야의 힘이라면 간단히 되살릴 수 있었다. 이미 죽은 이들은 몰라도, 죽어가는 이들 중 일부는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프레이야는 아니 원기는 소년을 살릴 수가 없었다. 죽어가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없으니, 일부에게만 특혜를 줄 순 없다 같은 머리좋은 사람이나 할 법한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살릴 수 있는 사람, 살리고 싶은 사람을 못살린다면 여신 같은거 때려치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소년을 살릴 수 없었던 것은 소년의 곁에 있는 시신 때문이었다. 도리깨에 으깨어져 일부만 남은 소녀의 시신이었다. 소년이 죽어가면서 간절히 찾는 누나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미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프레이야가 명백히 알고 있는 한계였다. 그렇기에 소년을 되살리는게 옳은지, 죽도록 놔두는게 나은지 알 수 없었다.

누나를 찾는 소년에게서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4인 가족, 원기의 가족은 특출나게 단란한 가정도 아니었고 극히 평범한 가족이었다. 원만하지만 나름대로 갈등도 있는 그런 가정이었다. 누나와의 사이는 사실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먹을 것 가지고도 싸웠고, 심부름가지고도 싸웠다. 라면을 누가 끓이느냐로 싸우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끔찍한 사고가 났다.

사고로 인해 바뀐 것은 원기만은 아니었다. 누나인 승희역시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된 것이었다. 부모만이 아니라, 남동생 역시 죽어가고 있었다. 비록 보험금 등으로 돈은 많이 생겼다지만, 가족들을 모두 잃고 이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다는 것은 십대 소녀에겐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끔찍한 몰골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동생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잃어선 안되는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할 그런 고통 속에서 죽고 싶다고, 죽여 달라고 말하는 남동생이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녀는 헌신적으로 그를 돌보았다. 학교도 휴학하고, 병원에서 침식을 하면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아니,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죽는 것이 차라리 구원이 될 불쌍한 동생에게 매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신히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나 통원치료를 받게 되긴 했지만, 병원비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보험으로 나온 돈이 꽤 많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돈은 더 많았다.

그녀는 학업에 열중했다.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먼 친척들이 도와준다고 갑자기 나타났지만, 그들은 도움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재산을 좀먹으러 나타난 거머리들이나 다름없었다.

친철한 얼굴로 나타나서 돕겠다는 친척들에게 사람이 그리웠던 그녀가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환자가 생활하기 좋도록 집을 고쳐야 했고, 그 부분의 처리에 도움을 받은 결과 실제 경비의 다섯배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동생의 생명을 이어줄 귀중한 돈이, 새어나간 것이다. 동생의 생명이 새어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 그녀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았다.

그녀가 없었다면, 원기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것이었다. 그녀는 원기에 대해 헌신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이 남겨준 재산과 보험금만으로는 병원비를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소모할 수 밖에 없었다.

뇌파로 작동되는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수술과 치료가 필요했다. 컴퓨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누나가 돌아오는 것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속에는 ‘혹시 사고라도 나서 누나가 못돌아오게 되면 어쩌지’‘왜 이리 늦는 걸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등등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늘 끊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누나를 잃은 소년을 살릴 수 없었다. 소년을 살리면 곧 누나의 죽음이라는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나 언젠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년을 살릴 수 없었다. 무력한 자신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여신의 행세를 하면서 소년의 ‘또다른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되살릴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한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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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신’은 고대 종교의 ‘신’이나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신’과는 다르다.

신은 전지전능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현대인의 고정관념이나 다름없었다. 미드가르드에서의 신은 인간에게 없는 힘과 능력을 가진 존재를 의미했다.

요괴든 외계인이든 이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크엘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인 ‘프레이’를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자신들의 수호신이 전지전능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프레이가 자신들의 번영을 바라는 존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프레이야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면서, 다크 엘프들은 프레이야가 자신들의 수호신이 되어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저항감이 있었다. 프레이야에게는 엘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의 취향에 맞는, 프레이야가 아끼는 존재들. 그들이 우선되고 자신들은 뒤로 밀릴 거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프레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그리워했다. 자신들만을 생각해주는 자신들만의 수호신을 원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앞에 소년을 안고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채 슬픔에 잠긴 프레이야의 모습이 보였다.

미드가르드의 신들 가운데, 진정한 슬픔을 아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목장의 양떼를 돌보 듯, 좋은 것을 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줄 줄은 알아도, 양떼의 고민이나 행복 따위는 안중에 없는 목동들과도 같았다. 불행해야 살이 더 빨리찌고, 번식도 잘된다면 양떼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선택할 것이 당연한 목동들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욕망을 부추기고 공포를 이용하는 그런 악신들이 바로 미드가르드의 신들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고통받고 비참하게 죽어간 연약하게 보이는 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강함과 약함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 무엇을 프레이야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은 실감했다.

자신들을 지켜주는 강인함보다, 자신들을 위해서 슬퍼해주는 그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절감했다. 통장속의 숫자처럼 인간의 숫자가 늘고 주는 것에만 신경을 써온 미드가르드의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은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프레이야를 지켜주고 싶어졌다. 프레이야를 미소짓게 만들고 싶어졌다. 엘프들이 날카로운 모습으로 신경질적이 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엘프들이 프레이야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조금전까지 그들은 프레이야가 자신들을 지켜주길 바랐다. 프레이야가 자신들을 미소짓게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자신들의 마음이 어리석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물밀듯이 프레이야에게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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