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개벽!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을지, 살리는 것이 옳을지 망설이는 가운데 소년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죽어갔다.
발키리는 영혼을 속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이미 죽어서 육신을 떠난 영혼에 대해선 어떤 간섭도 불가능했다.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난 영혼은 미드가르드의 짝퉁 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눈 앞의 소년과 소녀 만큼이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의 숨이 조용히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소년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듯한 죄책감과 소년이 슬픔에서 해방될 거라는 근거없는 희망이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프레이야는 주위의 반응은 물론이고, 자신의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입술을 깨물고 소년을 내려다보던 프레이야는 소년의 몸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을 살리기 위해 힘을 쓴 기억은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프레이야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프레이야는 자신의 몸이 소년의 몸보다 더 강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도, 등에서 크고 아름다운 날개가 빛을 발하며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프레이야는 소년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년은 빛을 발하며 눈을 뜨고 자신을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죽었구나.’
프레이야는 소년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년은 빛을 발하며 손을 뻗어 프레이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와 함께 소년의 몸에서 빛의 가루가 뿌려지면서 하늘을 향해서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프레이야는 죽어버린 소녀의 시신 역시 빛의 입자로 변해서 흩어지며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아니, 소년과 소녀만이 아니었다. 죽어간 이들의 시신이 그렇게 부서지면서 빛의 입자로 변했다.
‘눈? 아니 천사의 깃털 같군.’
프레이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의 변화를 지켜 보았다. 바닥에 구르는 시신들은 거인 기사들의 거대한 몸뚱이들 뿐이었다.
그리고 프레이야의 눈에는 소년과, 그리고 소년을 닮은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어둡게 변하면서 프레이야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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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드십니까?”
프레이야가 정신을 차렸을 때, 2호 차량의 침실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곁에는 조제성과 장수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셨어요? 대체 무슨 일이...”
정신을 잃기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조제성의 잔소리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졌다. 대와 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부터, 혼자 만의 몸이 아니니 사려야 한다는 것 등등 한참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아, 하아. 아무튼 잘하셨습니다.”
조제성의 잔소리는 마지막에 작은 목소리로 프레이야의 행동을 칭찬하면서 끝을 맺었다. 조제성의 기분을 알기에, 프레이야는 그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수한 선생님은 왜 그리 기분이 좋은건가요?”
“어라? 모르는거야? 아니 모르시는 겁니까?”
장수한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답하다가 조제성의 눈치를 보고는 살짝 말투를 바꿨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정령이라니...정말 멋진 생각이야, 아니 생각이십니다.”
장수한의 말에 프레이야는 잠시 영문을 몰랐다. 그리고 장수한의 설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빛을 발하며 날개를 편 기적을 보였고, 죽은 다크 엘프들이 모두 정령으로 변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죽은 이들까지 모두 정령으로 변했다는 소리에 프레이야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들이 널, 아니 여신님을 뵙고 싶다고 하시는군요.”
존댓말이 뒤죽박죽인 상태로 말하면서 장수한이 손짓을 하자,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 보던 요정처럼 조금 큰 나비 정도의 작은 불꽃과 부드러운 물의 덩어리가 날아왔다.
[여신님. 감사드려요. 제 동생과 절 구해주신 은혜를 꼭 갚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 왔어요.]
살짝 부끄러움을 타는 불의 정령을 감싸 듯이 물의 정령이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프레이야는 직감적으로 물의 정령이 누나고, 불의 정령이 그 죽어간 소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도 제대로 못봤지만, 직감과도 같은 느낌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단다.”
[아니요.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답니다.]
불의 정령의 이름은 에드, 물의 정령의 이름은 세라라고 했다. 인간, 아니 다크엘프적의 이름 그대로였다.
피난민들 속에서 거인의 습격으로 죽어간 이들 모두가 정령으로 다시 깨어났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죽은 엘프도 정령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정말 잘됐다.”
프레이야가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살짝 넘쳤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라와 에드는 꼭 여신님의 힘이 되고 싶다고 청했다.
“제가 여신님이 잠든 동안 정령들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말입니다.”
장수한이 신이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비상하고 냉철한 조제성보다도 판타지 관련된 쪽으로는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이 장수한이었다.
장수한이 알아본 정령의 능력과 특징에 따르면, 정령에게는 속성이 있고 그 속성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령에게 결여된 것이 있는데, 바로 ‘의지(will)’였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자유롭게 자연에 녹아서 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인연이 닿는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의지’가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돕고 싶다는 의지로 상대와 마음이 통하게 되면, 살아있는 이의 ‘의지’를 좀 빌려서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의지력이라니, 좀 의외로군요.”
“의지력이라고 할까, 의욕, 욕망 같은거지. 아니, 겁니다. 정령은 자유롭게 의지력을 빌려서 속성력을 구사하지만, 그 댓가로 계약자는 의지를 잃게 되는거지요.”
“부작용이 있는 겁니까?”
“의욕 감퇴 말고는 없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사용했을 때의 문제기는 합니다만, 배가 무지 고픈데도 밥먹기 귀찮고, 숨이 가쁜데도 숨쉬기 귀찮아지는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 겁니다. 계약되지 않은 정령들도 비슷한 상태지요. 보고 듣는게 가능한데,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귀찮아서.”
이미 엘프들과 다크 엘프들, 그리고 드워프들 사이에서는 프레이야가 정령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따로 정령계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정령의 형태로 자신들이 사랑하던 존재들 곁에 머무르는 것을 모두가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정령이 되기 위해서 빨리 죽고 싶다는 이들도 꽤 되는 듯 했다. 다만 프레이야에 대한 신심이 강한 만큼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인간들의 불만이 좀 있는 듯 합니다. 인간들만 차별받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에도 정령이 안나오는 것은 아닙니다만...”
조제성이 살짝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프레이야도 인간과 다크엘프들이 엘프들과의 차별을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다크엘프들의 프레이야에 대한 충성도는 맥스를 찍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엘프들보다 다크엘프들의 열성이 더 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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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되는 일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오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프레이야가 정령을 창조하는 것은 그가 생각한 범주를 훨씬 넘어서는 문제였다.
게다가 죽어버린 엘프들과 다크엘프들, 드워프들이 정령들로 되살아난다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문제였다. 자칫하면 엘프를 죽여서 상대방의 전력을 키워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오딘은 새삼 프레이야의 가능성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섵불리 손을 쓸 수는 없게 되었군. 토르에게 다크엘프 사냥을 말려야겠고. 프레이야를 어떻게 봉인할 방법이...있었군!”
오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야를 봉인해 버리고 상황을 좀 더 살펴볼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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