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개에겐 가끔 먹이를 줘야 한다.
“난 미드가르드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니, 돌아가선 안돼.”
조제성의 권유에 프레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오딘에게 종속되어 있다. 차원을 넘어서면서 그 종속은 끊어졌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내가 미드가르드에 돌아간다면, 이 세계의 정보는 모두 오딘에게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너희의 ‘현실’세계라는 곳에도 갈 생각은 없다. 내가 아는게 적을 수록 안전하지.”
프레이의 말에서는 결연함도 느껴졌다. 다크엘프들이 프레이야의 휘하에 있는 한, 그의 마음은 확고했다.
“그리고, 이 유희의 세상이 난 마음에 들어.”
찬균과 호철과 어울리기 시작한 후, 그들을 통해서 조금씩 게임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친구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거래를 하거나 가끔은 파티를 맺기도 했다.
이 세계를 진정으로 즐기기 시작하면서 그는 게임 중독자의 하나가 된 것또한 분명했다.
그는 찬균과 호철이 미드가르드에 가게 된 것을 반기면서, 미드가르드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서운한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렌과 미라엣도 조만간 이 게임을 시작하게 될겁니다. 1렙부터 시작할테니, 둘을 키워주면 좋을 겁니다.”
프레이야로 접속한 원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은건가?”
프레이는 조금 당황스러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이에요. 그들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기쁘게 여길 겁니다.”
“고맙군.”
“우리쪽에서 더 고맙지요. 지금 레벨도 만렙이고 게임에 익숙해지신 듯 싶으니, 이쪽 세상에 들어오는 이들을 이끌어 주시면 좋겠군요.”
프레이는 프레이야의 제의를 들으며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아니 감동을 느꼈다.
“전대 프레이야는 훌륭한 후계자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오딘에게 종속된 몸이지만, 그 주박이 풀리게 된다면 그대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프레이의 말투가 바뀌었다. 프레이야에게 스스로 종속되기를 청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레이도 프레이야도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프레이야의 각성에 따른 것이었다. 신격의 상승이라고 할까, 격이 오른 덕분에 프레이가 쉽게 자신을 굽히고 프레이야에 종속을 청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프레이가 프레이야에게 종속을 청한 순간, 오딘에 의한 종속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프레이는 발키리에서 미드가르드에서 신이라 불리우는 상위 존재로 되돌아왔다.
오딘은 프레이와 동급의 존재였기에, 복속시키기 위해서 프레이를 강등시켜야 했지만, 프레이야에 종속되면서 그 강등이 풀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게임 캐릭터가 되어버린 프레이는 깨달을 수 없었다. 육신이라는 옷을 입은 이상, 속에 있는 영혼의 변화를 깨닫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천공의 성좌라는건 정말 귀찮은 문제입니다만,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프레이조차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우리가 발전하는 것을 놈은 두고 볼테니까 말이지요. 우리를 지켜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놈이 현대의 기술을 훔쳐가지 않겠나?”
“그정도야 집지켜 주는 개에게 던져주는 살붙은 뼈다귀 정도에 지나지 않지요. 현대 문물이라는게 그렇게 간단히 훔쳐 배울 수 있는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한국말조차 아직 습득못한 등신같은 녀석에게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군요.”
조제성은 코웃음치듯 말했다. 조제성이 두려워한 것은 ‘삭초제근’이었다. 힘을 얻기전에 일방적으로 공격받아 한방에 밀려버리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AK-47 소총을 베꼈다고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우습기 짝이 없는거지요. 확실히 명품입니다. 마치 수저와 비슷한 훌륭한 발명품이지요. 그런데 젓가락이 지금도 쓰인다고 해서 지금의 기술 레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요. AK-47에 사용된 기술 레벨은 반백년 전의 것입니다. 최신 레벨의 기술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게 아니지요. 어떠십니까? 발키리를 이용해서 대기업들의 설계도를 베껴온다고 그들의 상품을 뚝딱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중국은 이미 세계 최첨단의 제품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조제성은 오딘의 정보를 손에 넣자, 오히려 자신감에 넘치고 있었다.
“일단 오딘에 대한 정보는 프레이야님과 저, 그리고 프레이님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상황을 봐서 수한이 녀석에게도 알릴 생각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역정보를 흘려 넣을 수도 있으니 비밀로 해두십시요.”
“중요한 정보가 적에게 넘어가는걸 막을 순 없을텐데.”
“집지키는 개가 굶주리면, 주인을 덥칠 수도 있지요. 적당히 먹이는 줘야 꼬리를 흔들지 않겠습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기술 제공을 할 필요도 있겠군요.”
“괜찮을까?”
“오딘이 현대 세계의 정보를 다 얻어간다면, 어느정도의 생산력을 보유할 거라고 생각되십니까? 미국? 어림도 없지요. 중국? 그들이 얼마나 오래 노력해왔나, 인구가 얼마나 되나를 생각해 봐야지요. 오딘의 치하에 무식한 야만인들이 죽어라고 생산해 봐야, 북한의 경제력이나 기술력 수준도 따라가기 힘들 겁니다. 아니 아프리카의 소국 정도도 쉽지 않을테지요.”
조제성의 자신 넘치는 이야기에, 프레이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기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드가르드의 척박함, 야만성, 그리고 부족한 인구와 교육은 치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게다가 프레이를 통해 확인한 오딘의 관심사는 강력한 무기에 치중되어 있을뿐, 교육, 문화 사회 복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마인드라면, 국민들이 굶어죽는 후진국 수준의 사회를 이루는 것도 무리였다.
“집지키는 개라. 듣고보니 그렇군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지.”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딘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다는 말에 당황했던게 거짓말 같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순식간에 재벌이 되어버린 천재 사업가라는게 어떤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프레이님은 이 가상세계의 신으로, 앞으로 들어올 다크엘프들과 엘프들을 도와 주십시요. 그리고 프레이야님은 오딘의 존재를 의식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시면서 비밀을 지켜 주시면 됩니다.”
“맡겨주게.”
프레이는 그렌과 미라엣, 그리고 다크엘프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원기역시 왠지 마음이 흡족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종속관계에서 오는 일종의 피드백이라는 사실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일단 나가서 말씀드리지요. 프레이님께 알리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게 될테니, 그 점은 양해해 주십시요.”
“알겠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네.”
-------------------------------------
“무슨 일이지요? 문제라니?”
“리디아양이 자신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솔찍히 감추는게 무리일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 때문에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프레이야님의 원정 때문에 정신이 없던 시기에 말입니다.”
“거인 기사들 사건이요?”
“그렇습니다.”
남미에 있는 리디아와 근위 총사대의 경우에는 이번 사태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위 총사대의 경무장은 현실 세계에서의 경비를 위한 것이었다.
미드가르드라면, 근위 총사대는 최대한의 중무장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3번대가 미드가르드의 친위부대이자 실질적 엘리트 부대이고, 4번대는 현대에서의 경호 업무를 맡는 부대가 되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4번대가 남미에서 갱들을 상대로 물밑작업을 펼치면서, 템플 기사단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미드가르드에선 난리가 났었다는 사실이었다.
총사대가 아닌 엘프 부대, 곧 총병대에서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리디아와 근위 총사대에게는 지금까지처럼 남미의 갱조직을 상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리디아는 자신의 능력을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꽤 구체적인 발동 조건까지 깨달은 상태였다.
그리고 조제성과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독단적으로 움직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