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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16화 (116/497)

116화 보이지 않는 싸움

“그건 그렇고 왠 일이야? 이런 레스토랑에 오고?”

원기는 주위를 살펴 봤다. 조용한 분위기의 깔끔한 식당이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조제성 회장이 투자한 곳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제성 회장이 투자한 곳이었다면, 훨씬 비싸고 고급스럽고 화려한 곳일터이고, 승희와 함께 들어서면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일단 윗대가리들이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기 때문에 말단 웨이터들까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이 식당의 웨이트리스는 건성으로 그들을 상대할 뿐이었다.

‘왠 일이야. 구두쇠 누나가 이런 곳에서 외식이라니. 조사장님하곤 관계 없는 듯 한데.’

돈이 많건 적건, 낭비를 극도로 싫어하는 박승희의 태도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서민적인 레스토랑이지만 원기는 좀 낯선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없는 사이에 이사했다. 한 번 새 집에 들르지 않을래?”

승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원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사했어? 넓은 집으로 한거야?”

“아니. 그냥 혼자 지내기 좋은 집으로 구했어. 이전 집은 너무 크니 쓸쓸하더라.”

원기는 예전 집을 떠올리니 복잡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이미 예전에 팔아버렸다. 그리고 승희가 택한 집은 크고 살풍경한 집이었다.

환자용 침대와 화장실이 갖춰진, 그런 집이었다. 환자 간병이 쉽도록 휠체어나 침대가 드나들기 쉬운 그런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원기는 고독이 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누나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

원기는 새삼 눈앞의 승희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순수하게 원기가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조용히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원기가 유일한 친인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희생은 아니었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이번엔 좀 좋은 집이었으면 좋겠네. 오늘 집에서 자고 가도 될까?”

“물론이야. 우리 집인걸.”

승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지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아픔을 아는 슬픔을 아는 그리고 사랑을 아는 그런 성인 여성의 매력이 숨어 있었다.

“그럼 집에서 먹는게 낫지 않았을까? 왜 식당에 온거야?”

“가끔은 손님 접대도 해야 하니까. 아, 왔나보다.”

왠지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리고 식당 문이 열리면서 몸에 달라붙는 라이더 슈트에 라이더 재킷을 걸친 여성이 들어왔다. 희연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연하의 모습이 보였다.

승희가 초대한 것이었다. 잘나가는 모델 두 사람이라는걸 생각하면 식당 수준이 좀 낮을 지도 모르지만, 노숙을 밥먹듯이 하면서 굴러다닌 여전사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별 문제는 없었다.

그들이 들어오자, 조용하던 식당 안이 조금씩 웅성거리면서 휴대폰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언니 오토바이에 다신 안탈거야.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 미친년이 따로 없더라니까.”

인사를 마치고 앉으면서 연하가 투덜거렸다. 원기는 잘 몰랐는데 승희와 희연, 연하는 꽤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원기가 제성과 수한과 어울리는 사이에 여자들끼리 친해진 듯 했다.

리디아나 엘레니아를 비롯해 엘프들과도 나쁘지 않은 관계이기는 했지만, 문화적 차이도 있고 어울릴 기회가 부족한 편이었다.

희연은 2종 소형 면허를 직접 취득한데다가 오토바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조제성이 고급 바이크를 선물했다.

“그거 의외네. 얌전하게 법규 지키면서 운전할 줄 알았는데.”

“라이더들에겐 라이더들의 룰이 있는거에요.”

희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승희언니가 몰라서 그러는데, 희연 언니 완전히 꼴통이에요. 말이 안통하는 구석이 많아요. 융통성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말도 안되는 규칙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고.”

‘그러고보니, 수한 형이 조사장님하고 희연이는 양날의 칼처럼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했지.’

연하가 말한 꼴통이라는 표현이 의외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원기는 피식 웃었다. 분명 희연은 머리가 좋긴 하지만, 그녀의 성향은 기사라기보다는 무사에 가까웠다.

명령만 떨어지면, 무슨 명령이든 실행하는 그런 융통성 없는 면이 있었다. 보수적이고 윤리적이지만, 규율이나 명령대로 살아가는게 익숙한 성격이었다.

죄없는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그런 면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조제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비윤리적인 면이 있었다.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지나치게 냉철하고 냉정하다는 점에서 그도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둘 모두가 프레이야 여신을 위해 움직이는 강력한 칼날인 만큼 칼자루를 쥔 원기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빠한테 슈퍼카 준다고 하던데, 오빤 어떻게 했어? 언니차 타고 왔더라?”

“그런 차 어떻게 타고 다니냐. 부담스러워서. 난 안탈거니까 타고 싶으면 네가 타던지.”

“에? 음. 그건 나도 좀 싫다.”

“아깝네. 오랜만에 경주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희연도 살짝 아쉬운 듯이 말했다. 고출력 오토바이와 무식한 슈퍼카가 경주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자 원기는 등골이 오싹했다. 민폐도 이만저만한 민폐가 아닐터였다.

“안전운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럴 거면 바이크를 안타지. 스릴이 없는걸.”

희연은 가볍게 일축해 버렸다. 연하는 꼴통언니라고 투덜거렸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검을 들고 생과 사의 기로에 서는 순간은 보통 인간들에겐 끔찍한 경험이지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끊기 힘든 쾌감으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희연은 원기를 보면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제법 날카로웠다.

“왠지 먹이를 앞에 두고 입맛 다시는 암호랑이 같아. 좀 자중해.”

연하가 희연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원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원기가 느끼기에도 희연의 눈빛에는 많은게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원기와 희연은 함께 원정을 했지만, 희연은 그 사실을 모르다보니,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이 있었다.

원기에 대한 호감 30%가량, 그리고 호적수로서 라이벌 의식이 50%가량, 그리고 빈약한 육체에 대한 실망감 20%가량이 혼합된 눈빛이었다.

“오빠. 슈퍼카 나좀 태워줘.”

“그냥 네 거 해도 될 거야. 어차피 탈 사람도 없어.”

“음. 일단 난 면허도 없고, 그런 차는 갖고 싶은 생각 별로 없어. 그런데 얻어타고 싶은 마음은 있어.”

연하의 말에 원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도 연하도 엄청난 미소녀였다.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트위터라도 했는지 식당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연하쪽이 희연보다 많은 활동을 한 덕분에, 연하의 인기는 요즘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가수나 탤런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명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슈퍼카에 연하같은 미소녀를 태우고 드라이빙을 한다는 것은 왠지 매력적이었다. 드라이빙 자체가 매력이라기보다는 그냥 남자의 로망같은 것이었다.

“좋아. 기회되면 한번 드라이빙 해보자.”

“누나는 놔두고 연하만 태워주려고?”

“물론 누나도 질리게 태워줄게.”

원기는 당혹감을 느끼며 얼버무렸다. 여자들과 하는 식사는 생각만큼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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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룸니르에 존재하는 대형 창고, 그 안에 거북전차와 금고차, 거북열차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부는 넓고 청결한 편이지만, 아무도 없이 어둠과 고요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북 전차의 거북 머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눈이 뜨였다. 입이 열리고 화염방사기가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수납되었다. 각종 무기들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거북전차는 조용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잠이 들었다. 아니 작동을 중지했다.

“좋아. 잘했다. 슬레이프닐.”

오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증기기관차 제작을 부하들에게 시키면서도 거북 전차의 말도 안되는 성능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하위신인 슬레이프닐을 이용해 거북전차를 작동시켰다. 발키리보다 상위이지만, 감정이나 이성이 없는 독립적인 신이 될 수 없는 존재인 슬레이프닐은 프레이처럼 프레이야의 성역을 침범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발키리칩에 빙의됨으로써 거북전차를 작동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오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슬레이프닐이라면 설사 프레이야의 발키리가 조종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발키리를 밀어내고 거북전차의 조종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카드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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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지겹군. 나도 오딘에 대해선 그 이상은 몰라.”

프레이는 진절머리를 쳤다. 조제성의 집요한 질문에 지친 것이었다.

“오딘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수한이 말하자, 제성은 피식 웃었다.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건 아냐. 놈이 노리는게 현대의 기술이라는 것을 안 이상, 우리의 숨통을 끊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하지만 그게 우리가 편히 놀게 놔둔다는 뜻은 아니야. 아마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괴롭히려고 들거다.”

“원기 녀석한테는 그런식으로 말하지 않았는데요?”

“여신님한테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여신님은 원기라는 인격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싶어하시지. 십대라는 시기는 소중한 시기야. 당분간은 좀 느긋하게 쉬도록 해드릴 생각이다. 상대가 어떤식으로 나올지 모르는데 신경 곤두세우고 있을 필요도 없고.”

“저도 엘레니아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요.”

“넌 내가 못보는 걸 보고, 생각하지 못하는걸 생각해 내니까 어쩔 수 없지. 엘레니아양을 위해서라도 좀 더 고민을 해봐. 오딘에 대해 궁금한게 있으면 이번엔 네가 좀 물어봐.”

“이봐. 나 템맞추러 가야 하는데. 찬균이랑 호철이 곧 올거야.”

조제성 역시 대 오딘용 전략을 준비하기 위해서 프레이와 수한을 쥐어짜고 있었다.

전투는 싸우기 전에 승패가 결정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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