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신들의 전쟁 (2차 라그나로크)
프레이와 희연의 매치.
사장은 원기의 의견에 재미있을 듯 싶다고 동의를 표했다.
[섭외는 쉽지 않을 겁니다. 희연양은 동의 했나요?]
“프레이와는 아는 사이니까, 말을 해보지요. 그리고 희연에게도 지금부터 이야기 해볼 생각입니다. 제 생각엔 좋아할 듯 싶군요.”
[그럼 섭외건은 맡기도록 하지요. 섭외가 끝나는데로 방송국과 조건을 조율해보지요. 이정도 이벤트라면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물론 시간은 좀 늦은 시간대가 되겠지만 말이지요.]
원기는 사장과 이야기가 끝나자, 희연의 방에 가서 노크를 했다. 응답이 없자, 문고리를 돌려보니 문이 열렸다.
“윽!”
문을 여는 순간, 원기는 당황해서 숨을 삼켰다. 희연이 샤워실에서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몸에 걸친 것은 팬티 한장 뿐이었다.
“아! 미안. 문 잠그는걸 잊었나 보네. 잠시만 기다려. 일단 문은 닫아주고.”
희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타월로 가슴을 가리고, 침대 위에 있던 파자마를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원기만 당황해서 문 앞에서 굳어 있었다.
“이상하네. 오토 도어록이라, 자동으로 잠긴다고 들었는데.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건가? 아뭏든 미안해.”
파자마를 입은 희연이 머리를 타월로 두들기며 샤워실에서 나왔다. 원기는 저도 모르게 바보같은 질문을 던졌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 화내지 않나?”
“왜? 사고아냐? 고의로 훔쳐보러 온거였어?”
원기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희연의 말대로 기숙사의 문은 자동잠금장치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사용자 인식장치가 있어서, 방 주인같은 정당한 사용자에겐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풀리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원기도 몰랐지만, 조제성이 건물을 지을 때 모든 잠금장치에 원기를 정당한 사용자로 인식하게 해놓았다. 회사부터 학교, 기숙사 등 조제성의 입김이 닿은 모든 건물의 문은 원기에게 자동으로 열리게 만들어 둔 것이었다.
원기 역시 그 사실을 몰랐으므로, 잘못이 있다면 제성에게 있을 수 있었다.
“보통은 화내는 걸로 알고 있어서 말이지.”
“그건 개인적으로는 경계라고 생각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 약자에게 특히 중요하지.”
“경계?”
“보통은 남자가 더 완력이 강하니까, 원치않는 사태가 일어날 걸 두려워하고 기선을 제압하려는게 아닐까? 그래서 여자가 남자 옷갈아입는 걸 보는 장면들은 별 문제가 안되는거 아냐?”
원기는 희연의 독특한 사고 방식에 내심 감탄했다.
‘오오, 대인배가 있다. 대인배 횽아라고 해야 하나 마초라고 해야하나.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고.’
“네가 옷갈아입는데 내가 보게되면, 화내도 받아줄께.”
희연의 말에 원기의 얼굴은 살짝 구겨졌다.
‘강자의 논리인건가. 어쩌겠어. 내가 약한 건 사실이니.’
“대체 왜 그렇게 강하고 약한거에 구애되는 거야?”
원기의 질문에 희연은 살짝 윗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파자마 차림으로 생각에 잠긴 모습은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었다. 그녀의 희고 긴 목에 시선이 도달하는 순간, 원기는 조금 전에 본 모습을 떠올리고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강하다는건 선택지를 늘려준다고 생각해. 이 세상에 있는 자유라는 건, 결국 주어진 선택지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밖에 없다는 거야.”
“호오. 특이한 생각이네.”
“약자가 자신을 죽이려는 스토커랑 단 둘이 되면, 그에게 자유란 뭘까? 죽는 것 말고는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건 없어. 하지만 조금 더 강하다면 죽거나 죽이거나의 선택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더 강해진다면, 죽어주거나 죽이거나 제압한다는 선택이 가능해 진다고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죽는 것과, 죽어주는 것과는 같아보여도 다르다고 생각해. 난 육체적 강함만을 말하는건 아냐. 공부를 잘하는 것도 강함이라고 생각해. 보다 많은 선택이 가능하니까.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 수록, 자유는 의미가 있지. 그리고 그 사람의 신념도 보다 의미를 갖게 되고 말이야. 만약 네가 잘생기고 강하지 못했다면, 여신님의 선택을 받아서 병을 고치고 지금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희연의 반문에 원기는 살짝 당황했다. 희연과 연하가 미모와 무의 재능으로 선택된 건 틀림없지만, 원기 자신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잘생겼다니, 무슨 소리야. 강하지도 못하고 그쪽으론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프레이야님이 미의 여신이고, 계약자를 선택하는데 외견도 영향을 줬다는 건 다들 아는데 무슨 소리야. 수한선생님이나 오덕 둘은 특수 능력이나 제성회장님하고의 관계때문에 선택되었지만, 너나 연하 그리고 나까지 미모와 강함때문에 선택되었다고 봐. 우리보다 무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외견이라니, 부모님 빼고는 나 잘생겼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아, 누나는 해준 적 있을려나? 아니, 역시 없어.”
“글쎄. 딱히 남자다운 외모는 아니지만, 괜찮다고 생각해. 요새 인기인 여성스러운 외모는 더더욱 아니지만. 그리고 분명한 건 네겐 내게 없는 재능이 있어. 그건 그렇고 이런 이야기 하러 온거야?”
“아, 미안. 실은 프레이와 네가 게임 상에서 대결을 벌이는게 어떤가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가능하면 주선해 보려고.”
“프레이랑 아는 사이야? 그러고보니 이름이 좀 걸리긴 했는데.”
“그 프레이가 네가 생각하는 프레이가 맞아. 다크엘프들의 신이었던 프레이야.”
“에? 어떻게 게임 속에 있는거야?”
희연에게는 오딘의 능력이 비밀로 되어 있다보니, 프레이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제성 사장님이 그 부분은 비밀이라고 하셨어. 프레이는 신으로서 소멸될 상황에서 게임 캐릭터로 있게 된건데, 엘프들이나 다크엘프들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했으니 너도 비밀은 지켜야 할거야.”
원기의 석연치 않은 해명에 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성이 비밀로 한 것 이라면, 그녀가 알 필요는 없었다.
“일단 프레이와의 대결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니까. 난 좋아.”
“그래? 그럼 프레이에게 알아보고 연락해 줄께.”
원기는 그렇게 말하고, 희연의 방을 나와서 상기된 얼굴을 살짝 식힌 다음 방으로 돌아가서 블러드 라인에 접속했다.
‘프레이야로 접속하는 것 보다는 짬타이거로 접속하는게 낫겠지.’
별명에 맞춰서 캐릭 이름을 바꾼 원기는 거구의 엘프 전사 캐릭 ‘짬타이거’로 접속했다. 프레이가 접속을 안했을 리는 없기 때문에 곧 귓말을 보내서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프레이야님.”
짬타이거로 만난 적이 없었던 원기는 살짝 놀랐다. 원기가 프레이야라는 사실은 프레이에겐 아직 밝힌 적이 없는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 스스로 말했듯, 오딘에게 정보가 누설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은 원기가 프레이야라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설사 원기가 프레이야라는 사실을 안다손 치더라도, 그 내부 사정까지 알게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프레이에겐 밝힌 적이 없었다.
“어떻게 안거지요?”
“주인을 몰라볼 리가 없지요. 응? 그러고보니 이상하군요.”
프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임 캐릭터 상태라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영혼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차이가 몇가지 있었다.
특히 주인을 영혼으로 느끼는 것은 완벽한 종속관계를 의미했다. 프레이는 오딘에게 종속된 상태에서, 프레이야에게 ‘이성으로’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그리고 영혼을 통한 연결은 ‘종속 관계’없이는 불가능했다.
오딘과 연결이 끊긴 상태라지만, 새로운 종속관계가 대치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프레이야님은 상급신이 되셨군요.”
“상급신?”
원기는 반문하듯 물었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스 신족을 섬기는 신자들은 각각의 신을 섬기는 동시에 그를 통해 오딘을 섬기게 되는 것이었다.
“예. 그리고 제 느낌이지만, 저도 발키리보다는 하급신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님이라면, 반 족의 최고신으로 반 족을 새롭게 이끄실 수 있을 겁니다. 하급신을 늘리면 충분히 가능해 집니다.”
충성을 맹세하는 하급신을 만들거나, 새로운 하급신을 만드는 것이 상급신에게는 가능했다.
보통 자녀로 강력한 신을 갖는 존재가 상급신이었다. 반면 하급신은 발키리나 영웅, 혹은 무자녀로 존재하는게 신화속 상급신과 하급신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키의 세 자녀가 거인족의 신인 펜릴, 헬, 요르문간드라든가, 오딘의 아들들인 발드르와 호드, 헤임달 등이 신인 것도 그때문이었다.
토르는 오딘의 처 프리그의 동생으로도 오딘의 자식으로도 묘사되는 것은 오딘의 하급신으로서 오딘에게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상급신은 로키와 펜릴, 헬, 요르문간드, 오딘과 토르, 티르, 헤임달의 여덟 신들이었다.
‘그래. 굴베이그가 있었지.’
원기는 굴베이그의 존재를 떠올렸다. 굴베이그의 씨앗은 아직 인간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지만, 신으로 승격 시키는 것이 가능할 듯 싶었다. 현재 인간과 다크엘프, 엘프들이라면 세 명의 신을 존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프레이는 게임속에 있으니 굴베이그를 각성시킬 수도 있을 터였다.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무슨 일이지요?”
“오딘이 만약 프레이야님이 상급신이 되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면 잠자코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겁니다. 뭔가 손을 쓰지 않을까 싶군요. 조제성이라는 인간에게도 알려두시는게 좋을 겁니다.”
프레이 역시 조제성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의 여왕과 싸우는 것은 꼭 한 번 해보고 싶군요. 그렌과 미라엣을 통해서 많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프레이는 원기의 캐릭 짬타이거를 보면서 말을 잇지 않았다.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다크엘프들에게 많이 맞아죽기도 했고, 많이 죽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내 이름은 ‘원기’이고 평범한 에인페리아의 한 사람으로 대해줘. 내 정체는 아직 비밀이니까. 호철과 찬균에게도 감춰줬으면 해. 녀석들은 내 친구들이기도 하니까.”
“알겠습니다.”
원기는 프레이를 통해 알게된 사실을 떠올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프레이가 말한대로라면, 신격이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신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다에 피신해서 인어들과 살고 있다는 반 신족의 생존자인 에기르 역시도 복속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아스 족과 반 족의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
‘보험도 될 수 있겠지.’
원기가 현재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죽는 순간, 모든게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었다. 홀로 죽는게 아니라, 원기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멸망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굴베이그가 여신이 되어 굴베이그의 발키리가 그의 영혼을 잡아준다면, 훅하고 날아가는 것은 피할 수 있을지 몰랐다.
‘생존을 위한 싸움에서 ’라그나로크‘ 신들의 전쟁으로 구도를 바꿀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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