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나이트 앤젤
남미, 치안의 부재라는 상황은 사실 극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남미의 갱조직은 이미 갱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존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흔히 통용되는 ‘갱’이라는 범법자들은 남미에서는 ‘일개미’의 역할을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마약을 팔거나 거리에서 돈을 거둬들이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일개미 대신 병정개미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직 경찰’ 그리고 ‘전직 군인’ 등이 주축이 된 일종의 용병집단들이다.
일개미들이 벌어온 돈으로 움직이는 용병같은 놈들도 있고, 되려 갱 조직의 상층부를 힘으로 제압하고 갱들을 부하로 부리는 군벌같은 놈들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경찰들에게 ‘투항 및 귀순’을 요구하는 플랜카드를 붙이거나, 경찰 부대를 습격해서 학살해버리는 일도 심심치않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빈민들에게 조금 뿌리고, 무력을 이용한 공포로 통치자가 되어 정계에 진출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국가가 더이상 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야만의 세계화가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일반 범법자 출신의 갱들이 차라리 양민처럼 보이는 용병 집단들은 말 그대로 ‘전범’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마을을 점령하고 유린하고 학살하는 일들도 심심치않게 벌어졌다.
전투력 자체는 높지만, 더이상 망가질 수 없을 만큼 망가져서 구제 불능인 쓰레기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리디아 전하도 꽤 무른 구석이 있단 말이야.’
제성은 피식 웃었다. 리디아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같은 편이 된 이들에 대해서는 신뢰로 답하고자 하는 그런 순수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가진 지독한 악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때로 인간은 적으로 있을 때보다, 아군으로 있을 때 더 끔찍한 존재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제성은 악의에 가득찬 존재들을 세상에서 좀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 믿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했다.
‘우선 초법적 행동이 가능한 집단을 만들어야겠지.’
영화 등에서 나오는 슈퍼 히어로 같은 존재들은 실제로는 위험한 범법자에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악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이는 일은 문명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법 기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시점에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조제성은 판단했다.
갱들의 사주를 받은 경찰이나 군인들에게 쫓기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하지.’
조제성은 그렇게 확신을 내리고 미드가르드의 드워프들에게 특수 갑옷을 제작시켰다. 먼저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과 아이언맨 같은 영화를 보여준다음, 그걸 토대로 파워드 슈트처럼 보이는 갑옷을 만들게 한 것이었다.
실제로 파워드 슈트처럼 힘을 증폭할 필요는 없었다.
게임 캐릭터들은 보통 사람의 세배 가까운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 파워를 살리면 갑옷만으로도 충분했다.
미사일이나 로켓을 막을 수는 없지만, 소총이나 저격총, 수류탄 등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갑옷의 제작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관절부는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듯이 위장해서, 파워드 슈트의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실제로는 그냥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나중에는 추가로 고용량 배터리 팩을 등에 장착하고, 머리에 보조할 수 있는 각종 센서를 추가하는 것이 첨단 기술의 적용이 될 것이었다.
‘문제는 센서 자체가 필요가 없다는 거지.’
엘프의 뛰어난 청각과 후각, 그리고 적외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다가, 현재로는 통신 장비도 필요 없었다. 파티 채팅으로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령의 도움을 얻으면, 벽 너머에 몇명이 있는지 누가 적이고 인질인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훗날 대규모로 운용하게 된다면, 전술 컴퓨터가 필요하겠지만 당분간은 그리 많은 수를 운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나이트 앤젤(Night Angel)? 나쁘지 않은 이름이군요.”
유일하게 장착된 첨단 기술이라면, 나이트 앤젤의 문장을 벽에다가 순식간에, 그리고 정교하게 프린트 할 수 있는 특수 스프레이였다.
제4번대 대장 레이니는 조금은 불편하고 무거운 장갑복을 걸쳤다. 지나치게 범죄적이나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장갑복은 여성의 몸매를 살려서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이트 앤젤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듯 싶었다. 아무래도 아름답고 날씬한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친근감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그럼 잘 부탁하네. 레이니 대장, 아니, 나이트 앤젤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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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돈을 노린 것이 아니로군.”
얼마남지 않은 양심적인 정치가이자 학교 교사 출신인 오스카 로마르 시장은 자신을 붙잡은 범죄자들을 보며 일갈했다.
“흐흐. 네가 가난뱅이라는 것쯤은 우리도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린 널 죽이지 않을테니까.”
특수부대 출신들로 이루어진 용병 조직 중 하나인 벌쳐의 단장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비웃는 듯한 미소를 보면서 오스카는 상대가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놈들이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날 죽이겠군. 설마...경찰?”
“호오, 머리가 좋긴 좋은 놈이로군.”
돈을 노린 납치나 유괴는 일상다반사가 된지 오래였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도 많았다. 깨끗한 경찰들이 갱들의 습격으로 죽어갈 때, 그들의 정보를 팔아먹은 부도덕한 경찰들은 승진을 거듭했다.
영리목적의 유괴로 위장해서, 경찰의 총탄에 죽어나가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줄 뿐만 아니라, 그를 제거하려 한 정적(아마도 부시장)은 별 부담없이 잇권을 챙길 수 있게 될 터였다.
‘어떻게 빠져 나갈 수는 없을까?’
경찰조차 믿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실내에는 자동소총과 서브머신건으로 무장한 백전연마의 사내들이 열명도 넘게 자리잡고 있었다. 구조하러 올 사람도 없지만, 설령 온다고 해도 먼저 자신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 뭔가 방법은 없을까?’
그때였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그리고 천정에서 흙먼지가 쏟아졌다.
“뭐냐! 무슨 일이냐!”
제대로 훈련받은 이들이라 확실히 달랐다. 십여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패닉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들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펜라이트를 꺼대서 총기에 장착하고 주위를 살폈다.
“인질은 어떻게 되었나?”
단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라이트로 오스카 로마르가 있는 자리를 비췄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것은 사람의 모습을 한 쇳덩어리였다.
“저, 저건 뭐지?”
“쏴라!”
동시에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쇳덩어리는 오스카 로마르를 감싼 채, 조용히 그 자리에서 버텼다. 금속음과 불꽃이 튕기고 사방에서 비명과 신음 소리가 흘렀다.
“젠장! 사격 중지!”
단장이 외치자, 발사음이 멎었다. 쇳덩어리에 맞고 튕긴 총알에 부상을 입거나 절명한 이들도 있었다.
“총은 쓰지 마! 칼로 잡아라!”
단장의 명령에 병사들은 큼지막한 정글도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벽에서 팔이 뻗어나왔다. 좌우의 벽을 부수고 동시에 두기의 갑옷이 뛰어들어온 것이었다.
“파, 파워드 슈트? 실용화 되었을리가!”
그들은 황급히 정글도를 휘둘렀지만, 도합 세기의 파워드 슈트는 그들의 도를 가볍게 쳐냈다. 그리고 그들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여성의 날렵한 몸매를 지닌 파워드 슈트는 일반 남성정도의 크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한손에 거구의 남자들을 가볍게 들었다.
그리고 갱들을 향해 손에 든 시신을 집어 던졌다. 평범하게 싸우는 듯 싶지만 수법은 하나같이 치명적이었다. 목이 부러지거나 가슴 혹은 두개골이 함몰되어 피는 많이 흘리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절명당했다.
“누, 누구냐. 너희들은.”
용병들이 모두 절명한 뒤, 로마르는 긴장하며 물었다. 그때, 맨 앞에 있던 파워드 슈트가 헬맷을 벗었다. 그러자 그 안에선 아름다운 금발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아, 그렇소이다만. 대체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나이트 앤젤. 정의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선량한 이들을 위해 복수하는 복수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헬멧을 쓴 다음, 빠른 몸놀림으로 건물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하얀 벽에는 나이트 앤젤이라고 적힌 엠블렘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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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의 활약은 물론, 금발 미인의 얼굴까지 CCTV에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이는 동영상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세상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물론 얼굴은 레이니의 실제 얼굴은 아니었다. 엘프들의 외모는 골상학적으로는 조금 날렵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헤어는 백금발이나 은발에 가까웠다.
게임 아이템을 이용해서 외모 변경을 시킨 얼굴이라 추적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추적 가능성은 없다지만, 굳이 얼굴을 노출할 필요가 있었나요?”
“캐릭터를 성립시키는데 매우 중요하지. 사람들은 예쁘면 다 용서되거든.”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남미에 나타난 미모의 히로인, 나이트 앤젤대의 소문은 꽤 크게 퍼졌다.
그녀가 얼굴을 보인 덕분에, 한손으로 거구의 사내들을 번쩍 들어서 휙휙 집어던진 모습은 파워드 슈트라고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시에 청렴한 정치가인 오스카 로마르도 세계적 인기인이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인기 검색어에 파워드 슈트가 포함되었군. 제성 인더스트리도 검색 대상이 된건가.”
제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리 동영상 사이트에 정령칩을 사용한 파워드 슈트의 영상을 올려놓은 것이 효과가 있었던 셈이었다.
물론 제성 인더스트리에서 개발하는 것은 ‘진짜’ 파워드 슈트였고 실용화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보여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잘하면 국방부에서 연락이 오겠군.”
국가와 무기 개발계약을 맺게 된다면, 개발이 손쉬워 지는 것은 분명했다. 정령들은 굳이 꼬실 필요도 없었다. 여신님의 명령이라고 하면, 누구하고라도 계약을 맺을 것이므로 대량 생산은 어렵지만, 외부에 납품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의지가 통해서 탑승자의 의지를 읽고 그대로 파워드 슈트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기술이라면, 실용화는 가능했다.
제성 인더스트리의 파워드 슈트에 비하면 가볍고 작고 날렵한 나이트 앤젤의 파워드 슈트가 더 우수하다고 믿겠지만, 그런 기술이 있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을 터였다.
“유괴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군. 저곳은 바이퍼 조직의 구역이야. 그리고 바이퍼 조직의 아지트 중 유괴 사건에 쓰일만한 곳은 일곱 곳이 있군. 지금 곧 움직여 주게.”
제성이 지시를 내리자, 나이트 앤젤은 곧 움직여서 바이퍼 조직의 아지트를 파괴하고 유괴당한 소녀를 구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소녀 역시 매우 아름다운 금발 여성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제성은 리디아를 대신해서 ‘나이트 앤젤 척살령’을 내리면서 백만 불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경찰과 군대, 갱들이 나이트 앤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그런 와중에도 나이트 앤젤이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은 갱들을 처단하면서 인신매매를 당하는 이들이나 유괴당한 이들을 구하고 갱들을 처치해 나갔다.
조제성은 로이드에게 일처리를 맡긴 뒤, 재빨리 한국으로 출발했다. 굴베이그 여신을 탄생시키는 의식이 다가온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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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드디어 저 게이트를 사용한 건가?”
굴베이그 왕국측 게이트를 통해서 제성을 비롯해서 희연과 연하가 모습을 드러내자, 오딘은 미소를 지었다. 굴베이그 왕국측 게이트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아서,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프레이야가 게이트를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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