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124화 (124/497)

124화 여신 탄생

“쳇, 아깝게 되었군.”

거울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프레이야 여신인 것을 본 오딘은 혀를 찼다. 그가 탐내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그곳의 문물, 실마리가 될 프레이야를 죽이거나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그가 원치 않았다.

프레이야 일행은 신전의 중심부를 향했다. 거대한 세계수가 있는 곳이었다. 오색 찬란한 빛으로 나무잎의 일부가 빛나고 있었다.

레벨 5가 넘는 거대한 나무지만, 현재는 레벨 3에 지나지 않았다.

주인이 바뀐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굴베이그 여신의 씨앗을 품은 굴베이그 왕국의 왕녀가 그 거대한 나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신의 씨앗이 자연 각성한다 하더라도 왕녀의 육신이 죽을 때까지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여신의 씨앗을 프레이야가 각성시킬 때에도 그녀가 죽지 않으면 여신의 씨앗을 꺼낼 수 없었다.

다만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프레이야의 발키리가 왕녀의 영혼을 붙들어서 새로운 육체로 넣어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꼭 칼로 목을 쳐야 하는거야? 약물 주사도 있을텐데.”

“어쩔 수 없지. 이쪽 세계에서는 날붙이에 죽는게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하니까.”

희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희연은 프레이야 휘하의 최강 전사로 알려져 있었다. 검의 여왕이라는 별칭은 거인족들의 신들 귀에 들어갈 정도였다.

토르가 자랑하는 거인 기사들은 미드가르드에서도 강한 축에 끼는 에인페리아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 탓에 굴베이그의 왕녀가 희연에게 자신의 목을 쳐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미드가르드의 왕족들은 대부분 기사 계통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강한 전사에게 죽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희연은 그 요청에는 차마 응하지 못했다. 저항하지 않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가 간직한 나름의 도덕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후보로 올랐던 것이 원기였지만, 프레이야로 이곳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희연보다도 마음이 약했기 때문에 도저히 무리였다.

결국 성기사 그렌이 그 역할을 맞게 되었다. 그렌은 전사로서 더할나위없는 영광이라며 흔쾌히 그 역할을 맞아 들였다.

그리고 성기사 그렌이 화려한 갑옷을 걸치고 거대한 청룡언월도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 무기가 여기서도 쓰인다니, 참 복잡한 기분이군.’

이미 클레이모어 두 자루를 휘두르는 전술에 익숙해져서 청룡언월도를 찾는다고 해도 쓸 마음도 없었다. 프레이가 축복해서 아티팩트가 된 성도를 수하가 된 그렌이 잘 쓰고 있으니 좋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복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죄도 없고, 저항하지도 않는 자를 목을 쳐서 처형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많은 이들이 엄숙한 눈빛으로 구경한다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신앙이라는게 무섭긴 무서워.’

왕녀는 검의 여왕은 아닐지라도, 프레이의 휘하에서 최강으로 꼽히던 성기사 그렌의 ‘성도’에 죽는다는 것을 기쁨으로 그리고 영광과 긍지로 여기고 있었다.

하물며 프레이야 여신의 입회하에 이뤄진다는 것은 더욱 더 큰 영광이 되는 것이었다.

‘에인페리아로 부활시키니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두고두고 악몽이 되었을 것 같군.’

원기가 장내를 둘러보자, 연하와 희연만이 아니고 수한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예외라면 조제성이었을까. 그는 침착하고 그저 경건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렌이 처형대에 오르고, 청룡언월도가 허공을 가르자 그녀의 목이 일순간에 떨어져서 머리를 받기 위한 상자에 떨어졌다. 그녀가 사형수가 아닌 만큼 머리를 받는 상자는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금사로 짜여진 쿠션이 머리를 상처 안나게 받았다.

단 일격에 목이 떨어졌으니 고통은 없을 터였지만,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그렌과 청룡언월도를 적시고 주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젠장.’

원기는 이 장면을 보면서도 눈살을 찌푸리지 못하고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게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이들의 문화인만큼 함부로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이런 문화를 유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의식이 바뀌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존중해 줘야 하는 것도 납득하고 있었다.

발키리가 모습을 드러내어 왕녀의 영혼을 거두고, 굴베이그 신의 씨앗은 프레이야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발키리와 인간 사이의 느낌이야. 아니, 발키리와 인간을 합쳐놓은 느낌이군.’

프레이야는 손을 뻗어서 굴베이그의 씨앗을 받아 안았다. 아직 미숙한 여자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영체임에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는 그녀를 손에 받아 안아들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굴베이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와 함께 소녀의 모습이 점차 구체화 되어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굴베이그 신전의 세계수가 소녀에 감응해서 강한 빛을 발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정도의 나이인 소녀의 모습을 한 굴베이그 여신의 모습을 보면서 프레이야는 강한 영적인 연결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굴베이그는 어떤 존재입니까.”

소녀, 새로운 여신은 프레이야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삶과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여신, 그것이 내가 아는 굴베이그 여신입니다.”

“어머니께서 원하시는데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제 신민들에게 참 풍요와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저는 존재할 것입니다.”

그녀의 선언이 이뤄지자,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이 환호했다.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자신들만의 신을 되찾은 것이었다. 물론 주신으로서의 프레이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한층 더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회가 벌어졌다. 연회의 음식은 꽤 훌륭한 것이었지만, 연회 자체는 꽤 짜증나고 지루한 것이었다.

인간들 가운데 대신관을 비롯해서, 재상을 필두로 하는 관료들, 귀족들이 모두 나와서 한마디씩 하는데, 그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굴베이그의 왕녀는 에인페리아로 부활하긴 했지만, 새로운 육체를 부여받은 것 뿐이었다.

그녀는 기사학교로 가서, 에인페리아에 부끄럽지 않은 역량을 키우기로 되어 있었다. 아마 그렇게 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늙지않으며 인간을 초월한 육체를 가진 이상 시간은 충분하다고 해도 좋을 터였다.

‘나이트 엔젤의 갑옷은 이쪽 세계에선 쓸모가 없었지.’

나이트 엔젤은 순식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에 등장할 법한 영웅이 실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게다가 그 얼굴은 흠잡을데 없는 미인이었다.

살인 강도를 저질러도 얼짱이면 팬클럽이 생기는 세상이었다. 엄청난 미모의 젊은 여성이 파워드 슈트를 입고 범죄와 싸우는 모습은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스카 로마르 시장은 나이트 엔젤을 두고 ‘최후의 범죄자로서 검거할 것’을 선언했다. 그것은 로마르 시장의 입김이 닿는 경찰들은 나이트 엔젤을 다른 범죄자들이 있는 한 우선시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잡아들일 범죄자가 더 없을 때, 그녀들을 잡아들이겠다는 선언이며 실질적으로는 그녀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녀들을 제외한 모든 범죄자들을 체포할 날은 결코 오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미국쪽에서는 나이트 엔젤을 소재로한 코믹북이 쏟아져 나왔고, 일본에서까지 미소녀화된 나이트 엔젤의 동인지들이 등장할 정도였다.

희연과 연하도 나이트 엔젤의 갑옷을 갖고싶다고 제성에게 청해서 그녀들을 위한 갑옷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소총류를 사용하지 않는 이쪽 세상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에인페리아의 육체는 게임 캐릭터보다 미묘한 면에서 더 우수했고, 신성력 버프까지 받은 에인페리아가 검으로 한대 치면, 그 파괴력은 나이트 엔젤 갑옷쯤은 가볍게 우그러뜨릴 수 있었다.

밀레니아를 비롯한 토르의 거인기사들이 휘두르는 도리깨 한방이면 나이트 엔젤의 갑옷은 그냥 납짝한 철판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나이트 엔젤의 활용도는 총기가 주인 현대에서나 쓸모가 있을터였다.

다만 스나이핑이 주특기인 연하의 경우에는 나이트 엔젤로 활약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저격총 훈련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그녀에겐 저격을 위해 깃발을 꽂을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냥 바람을 보고 쏘면 되기 때문에, 초 장거리에서 대물 저격총으로 정확하게 저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장수한은 그런 그녀를 이용해서, 제 3세계의 독재자들을 모조리 처치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그들이 사라져봐야 비슷한 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그 사이에 인명피해만 커질 뿐이라는 제성의 반론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신근호, 오랜만에 보는 걸.’

굴베이그 왕국의 어둠의 지배자, 라고 해봐야 수십 명 정도되는 도둑 길드의 장에 불과하고, 표면적으로는 돈으로 산 남작 자리가 전부인 신근호였다.

그는 발키리들을 이용해서 정보를 모아들이는 수법을 사용해서, 꽤 알찬 정보들을 모아들여서 기여도는 컸다.

정보 수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범죄 조직을 수천명 단위로 만들었다가, 조제성의 범죄자 박멸에 싸그리 소탕당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범죄조직을 키워보니 괜히 신경쓸 일만 많았고, 자기 자리를 넘보는 흉악한 놈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아랫것들이 터치는 일들의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도 별로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일거에 모아들여서 박멸한 터였다.

지금은 부하들은 적지만, 경쟁 조직도 없었고 물좋은 술집들을 독점한 상태에 예쁜 여급들도 전부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래서 아주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오랜만이로군요.”

프레이야 여신이 아는 척을 할 때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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