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134화 (134/497)

134화 게임의 법칙

“예. 오늘은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특별 이벤트가 벌어집니다. 아주 특별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지요. 인기 모델이자, 최근 드라마에도 출현해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희연양이 등장합니다. 불여우라는 캐릭터로 굉장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대회에 출전한 적은 없지만, 검도 실력이 보통을 넘어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상대는 폐인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겜신 프레이가 등장합니다. 근성의 게이머. 수많은 몬스터들의 공략을 이뤄냈고 스킬과 체술의 활용이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지요. 아름다운 인기 여모델과 가상공간의 카리스마의 대결입니다.

오늘 이벤트의 해설에는 한선우 해설위원, 그리고 저 김주식 캐스터가 보내드리겠습니다.”

캐스터의 해설이 벌어지면서, 블러드 라인의 화면이 오버랩되면서 프레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굉장히 화려한 모습의 프레이 선수가 등장했군요. 최근 수일간에 걸쳐 특집으로 프레이 선수가 장비를 갖추는 모습을 방영해 드린 바 있습니다만, 프레이 선수의 장비에 대해서 간단히 해설해 주시겠습니까?”

“최근 들어 블러드 라인의 인기가 급상승했군요. 과거 전성기였던 시절에도 이런 중계는 없었는데, 이번 이벤트가 갖는 의미가 새삼 크게 느껴집니다. 프레이 선수의 장비는 일명 ‘투신’셋이라고 합니다. 투신의 일곱 분신이 하나씩 떨구는 장비를 모두 합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다양한 공격 스킬과 특수 효과가 사용가능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궁극기 투신의 절대공격이라는 것입니다. 회피가 불가능한 기술이며, 걸리면 자그마치 5초간 경직되며, PK가 끝날 때까지 모든 움직임이 느려지는 효과가 있습니다만...”

“아! 지금 희연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희연양은 붉은 머리의 엘프 종족인 듯 합니다. 역시 셋트 아이템을 갖추고 있군요. 어떤 장비입니까?”

“아, 참 오랜만에 보는 군요. 옛날엔 정말 흔하던 셋입니다. 일명 국민셋이라고 부르던 건데 말이지요. 개나 소나 다입는다고 일컬어지면서 ‘평민셋’ 혹은 ‘찌질셋’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나중에는 블러드 라인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아이템가가 폭락해서 ‘만원셋’이라고도 불리우던 겁니다. 특징은...”

“그렇군요. 그런 셋으로 겜신 프레이에게 도전하다니, 꽤 용기있는 듯 합니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직업도 다르지요? 특히 아버지가 검도 도장을 운영하며, 그녀 자신도 굉장한 검도 실력이 있다는 희연양인데, 왜 검사가 아닌 도적을 택한 겁니까?”

“블러드 라인을 좀 해본 분들은 다 아시겠습니다만, 검사라는 직업이 없습니다. 전사라는 직업이 있지요. 겜신 프레이는 전사라는 직업을 택해서 무거운 장비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만, 몸놀림은 무거운 편이지요. 반면, 도적은 방어구에 제한은 있지만, 빠른 몸놀림을 지녀서 정면 대결에도 능한 편입니다. 전투계 도적은 검사와 암살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전투의 양상은 어떻게 진행 될까요. 아, 지금 막 PVP를 상징하는 결계가 만들어 졌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투신의 절대 공격이라는 궁극기가 승부를 좌우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만, 궁극기를 쓰면...”

“아, 프레이가 움직였습니다.”

프레이는 처음에는 주위에 달랑 몇명밖에 안보인다는 상황에 내심 당황했지만, 호철과 찬균의 설명을 듣고 생중계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의 사념이 자신에게 밀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후후, 너희들의 기대에 답해줘야겠지.’

프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원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새로운 주인이었고,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렌과 미라엣을 통해서 알게된 프레이야의 모습은 그의 충성심을 좀더 자발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세계에서 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드려야겠지. 이 세계에서만큼은 내가 신이다.’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한 느낌은 들었지만, 프레이는 의욕을 불사르는데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셋 아이템의 효과가 발휘되면서, 궁극기가 봉인에서 풀리는 순간, 오랜 노가다가 성취되는 쾌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레벨빨과 스킬빨과 장비빨의 삼위일체를 굳게 믿었다. 이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요, 정의인 것이었다.

궁극기가 반칙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고 찬균과 호철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프레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인 만큼 문제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패치 이후로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다는 투신의 분신들을 상대로 유일하게 도전해서 차례차례 굴복시키고, 투신의 인정을 받은 자신이었다.

이렇게 얻은 힘을 쓸 수 없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절대공격!”

프레이가 외치는 순간, 프레이의 전신에서 빛나는 빛이 희연의 불여우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리고 불여우의 캐릭터를 빛이 감싸는 순간, 뇌전과 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프레이는 피를 토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어떻게 된겁니까? 투신의 절대공격이 적중한 것 아닌가요?”

“예. 아까 말씀드리려던 건데 말이지요. 투신의 궁극기는 초반에 절대적인 PK용 기술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제작사에서 패치로 내놓은 것이 천공신 셋입니다. 천공신의 부활 퀘스트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만, 거기에는 자동 스킬 카운터라는 것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반격기가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이것에 걸리면 상대가 사용하려던 기술의 위력이 되돌아 옵니다.”

“저, 그거 사기가 아닌가요?”

“절대공격 자체가 사기성 기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너나 할 것없이 모두 저 천공신 셋을 갖췄었지요. 그래서 국민셋이라는 겁니다. 시도때도 없이 저거 입고다니는 놈들은 찌질이다라고 욕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만...저걸 무력화하는 상위 셋트가 마신 셋트라고 또 있습니다. 투신 셋트는 천공신 셋트의 하위 셋트라서 천공신 셋트의 밥이지요.”

“아니, 투신을 최초로 해치운게 겜신 프레이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민첩이 떨어진 프레이는 희연의 불여우에게 연신 두들겨 맞고 있었다.

“‘패치 이후로’ 최초입니다. 옛날에는 투신이나 천공신과는 비교도 안되는 상위 암흑 7마신의 던젼조차 국민 사냥터였지요. 공대 꾸며서 들어갈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다들 쉽게 만렙되는데다가 템들이 워낙 좋아서.”

“이, 이건 말도 안돼!”

"돼!"

프레이의 절규와 더불어 게임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뭔가 석연치 않은 결말이로군요.”

“당연한겁니다. 레벨제한, 스킬제한, 템제한 없이 PVP라는게 재미있을리가 없지요. 두 사람은 플레이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말이지요. 아까부터 말을 자꾸 끊으시니...”

“아, 그렇군요. 현장의 인터뷰로 돌리겠습니다.”

더이상 좋은 말이 안나올 듯 하자, 황급히 캐스터가 마무리를 지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 천공신 셋트는 어떻게 얻으셨나요?”

“아는 분한테 만원에 샀어요.”

희연은 담담하게 말했고, 그 순간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프레이에게는 ‘근성의 겜신’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동시에 많은 게이머들이 ‘근성으론 현질을 이길 수 없다’는 자본주의적 진리를 다시한번 뼈에 사무치게 실감했다.

“수한이형. 왜 만원 받고 판거에요? 길드 창고에 널려있지 않아요?”

원기가 묻자, 네로 캐릭터로 들어온 장수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는 오빠한테 받았다고 하면, 자살할 놈들 엄청 나왔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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