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거북전차
“미치겠군. 저건 괴물아냐.”
원기는 혀를 찼다.
“몬스터가 원래 괴물이라는 뜻이에요.”
“넌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정말 예쁜데 말이지.”
연하가 딴지를 걸자, 희연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10살 남짓한 소녀의 모습을 한 굴베이그는 희연의 다리에 달라 붙듯이 서 있었다.
2미터를 넘는 원기의 체격은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곁에 있기는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원기가 희연을 은근히 좋아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굴베이그 역시 레벨 10의 게임 캐릭터로 온 상태였다. 레벨 10의 경우엔 죽어도 경험치의 페널티없이 부활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어린이의 체격 때문에 힘이나 민첩에서 손해를 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성인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기보다는 상당히 강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이즈에 의한 보정은 실제치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서, 같은 레벨 10이라면 원기는 보기보다 좀 약하고, 희연은 보이는 그대로이고, 굴베이그는 보기보다 꽤 강한 캐릭터로 실제 세상에서 구현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왠만한 불도 통하지 않고 살충제도 통하지 않는다니 최악이군요.”
전투에 앞서서 타란튤라들과 전투를 벌여본 결과, 불화살은 통하지 않았다. 살충제가 든 화염병과 유사하게 만든 무기 역시 통하지 않았다.
연하의 화살이 몸을 관통해도, 정확하게 핵이 되는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면 죽지 않고 회복했다. 상처를 입어도 먹이의 생기를 빨아들여서 금새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먹이가 되는 것은 아군이든 시체든 별 상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골치가 아팠다.
“퀸이 죽는다고 다 죽는 건 아니라는게 골치가 아프네요.”
원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퀸이 없으면 더이상 번식을 하지 못하지만, 모든 타란튤라가 즉시 죽는건 아니었다.
그게 골치아픈 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북전차를 돌진시켜서 타란튤라 퀸을 잡는 순간, 종속된 몬스터들은 즉시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마치 맹수처럼 지속적이고 교묘하게 파괴활동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수는 늘지않지만, 지속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지금처럼 퀸이 있으면, 퀸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퀸을 지키기 위해서 뭉쳐있게 된다는 점이 약점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대량으로 뭉쳐있다는 점도 골치아픈 점이기는 했다.
퀸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거북전차의 화염방사기는 불에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아니 녹아서 증발해 사라질 때까지 고화력으로 지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 안되면 발과 머리로 물어뜯고 걷어차서 부숴버리면 될 것이었다.
문제는 퀸이 죽는 순간, 타란튤라들이 흩어져서 도망치는 문제였다. 그것에 대비하는 것은 포위망을 갖추는 것 뿐이었다.
“거미들이라, 점프력도 좋으니 미칠 노릇이지. 스파이더맨도 아니고 말이야.”
장수한도 딱히 답이 없는 듯 했다.
“편히 생각하자고. 도망치면 차근차근 죽이면 되는 것이니, 최대한 수를 줄이는게 답이라고 생각해.”
장수한의 합리적 낙관론에 원기는 한숨을 쉬면서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대포와 발리스타, 그리고 원기와 희연을 비롯한 나이트 엔젤들이 전력을 기울이는 수 밖에 없었다.
총기를 사용하는 주력부대라는 뜻으로 총사대라고 이름붙인 이들이었지만 나이트 엔젤대가 대량으로 확충되면서 총사대 멤버들이 전원 나이트 엔젤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이트 엔젤대라고 자신들을 칭하면서, 자연스럽게 총사대는 나이트 엔젤 부대로 개편되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드가르드에서까지 저런 중무장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원기는 미드가르드용 특수 사양으로 만들어진 파워드 슈트, 라기 보다는 파워드 슈트의 흉내를 내서 만들어진 중장갑을 보면서 혀를 찼다.
방패와 거대한 랜스를 든 모습은 그다지 전투에 최적화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랜스의 경우엔 칠지도처럼 칼날이 중간에 튀어 나와있어서, 할버드처럼 휘두르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건 아니지. 중무장은 사실은 가능하면 할 수록 좋은거야. 중국이나 일본에선 경무장에서 싸우는 것을 지나치게 미화해 놔서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가장 강력한 전쟁용 무기는 활과 방패라고. 사실 방패만 잘쓰면, 칼가지고 재주 부리는 것쯤은 쉽게 제압가능하지.”
장수한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실제로 독액을 뿌려대는 타란튤라들을 상대하는데에는 중갑이 유리한 면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덩치가 큰 타란튤라지만 그 송곳니와 발톱을 가지고는 방패를 뚫을 수는 없었다.
“방패의 천적이, 편곤이야. 쌍절곤의 한쪽을 길게 만든 듯한 무기로 토르의 거인기사들이 쓰던 물건이 그렇지. 무협 영화에 검과 도가 주로 나오는건 서부영화에 권총이 주로 나오는 것과 비슷해. 강력한 무기라서 나온다기엔, 불량한 놈들이 술쳐먹고 서로 쌈질할 때는 최고거든.”
장수한은 열띤 목소리로 강변했다. 하지만 그 순간, 원기의 마음속에 뭔가 집히는게 있었다.
“수한형. 혹시 저 갑옷들, 형이 디자인 한거 아녜요?”
그 순간, 장수한은 헛기침을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원기는 피식 웃었다. 왠지 긴장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조제성은 철저하게 계산 하에 움직이지만, 장수한은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는 느낌으로 움직여 나갔다.
‘너무 굳어있을 필요는 없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야. 최대한 숫자를 줄여 나가는 거야.’
“수한형, 형이 뒤에서 상황을 보면서 거북 전차를 컨트롤 해주세요. 전 앞에서 싸울 겁니다.”
거미들에게는 희연의 쪼렙 학살이 통하지 않았다. 물론 원기의 능력인 고통을 느끼게 하는 능력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희연의 강함은 진짜였고, 원기 역시 충분히 강해졌다.
“연하야. 넌 전장에서 흘러나가는 놈들을 노려.”
“맡겨 둬요. 폭죽 화살이라니, 꽤 마음에 들어요.”
그녀의 화살에는 폭약이 달려있었다. 흑색화약이지만 제법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곁에 있는 아군에게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어서 난전 중에 사용하긴 힘들지만, 추적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놈들에게는 충분히 먹힐 수 있었다. 만약 폭발로 죽지 않아도, 연기를 통해서 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특히 강렬한 화약 냄새는 엘프들만으로도 충분히 쫓을 수 있게 만들어 줄 터였다.
“숫자 제한이 있으니까, 신중하게 노려야 해. 그리고 희연아. 나와 함께 돌격하는 거야.”
원기의 말에 희연의 뺨과 목이 좋은 느낌으로 상기되고 있었다. 단순히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깊은 곳에서 부터 느껴지는 충족감 덕분이었다.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고, 그 특별함이 그녀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고독은 그녀에게 있어선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는 동반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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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까요. 타란튤라 퀸과 힘을 합치면, 저들을 궤멸 시킬 수 있습니다만...]
슬레이프닐이 주인인 오딘에게 의사를 물었다. 거북 전차를 강탈하는 타이밍에 따라서 프레이야의 군대에게 줄 타격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놈들이 타란튤라 퀸을 해치울 때까지 기다려라. 그래야 놈들이 귀환을 서두르게 되겠지. 어차피 몬스터 수준의 지능을 가진 놈이라 제대로 협조해서 싸울 수는 없을 거다.]
오딘이 노리는 수는 두 가지 였다. 하나는 거북전차의 강탈, 그리고 또 하나는 게이트에 붙여둔 트랩의 사용이었다.
‘트랩에만 걸리면, 프레이야 여신은 더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겠지.’
프레이야 여신의 급격한 성장과 변화는 오딘의 우려를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현신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미드가르드의 신들의 본체는 신전에 존재하는 세계수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천공의 성좌를 가진 오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신들은 신전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시야를 빌리는 형태로 신관들이나 에인페리아들의 눈을 일시적으로 빌릴 수는 있었다. 그리고 신심이 높은 극히 일부의 고신관들을 통해서 현신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막대한 신성력의 낭비 뿐만 아니라, 빙의나 현신에 사용되는 인간의 육체가 파괴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런데, 프레이야 뿐만 아니라 굴베이그까지 완벽하게 실체화된 육체를 본체처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신용의 육체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신격의 상승, 어느 사이엔가 엘프들의 영혼을 발키리처럼 영체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정령이라는 이름의 영체들은 인간과 계약을 통해서 어느정도 힘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상태대로 방치한다면, 미드가르드의 전력을 기울여도 상대하지 못할 수 있었다. 묘르닐과 궁그닐이 통하지 않는 본체는 오딘에게도 걱정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위협은 확실하게 봉인해 둘 필요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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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해. 역시 계약자들 인가.”
“1호는 어떻게 생각해?”
“글쎄. 우리와 기본적인 조건은 같아.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거겠지.”
나이트 엔젤 1호로 꼽히는 레이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전재 프레이야의 은총으로 주변 상황을 보지도 않고 알 수 있는 ‘심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여신의 계약자들의 능력은 지금 빛을 발할 수 없었다.
그 외의 조건은 게임 캐릭터를 사용한다는 면에서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기와 희연의 활약은 그들이 보기에도 격이 달라 보였다.
그녀는 등 뒤에서 날아오는 거미줄을 느끼고, 재빨리 피하면서 정면의 타란튤라의 복부를 찔렀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용해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왼팔의 방패로 뒤에서 다가오는 타란튤라를 후려 쳤다.
그리고는 주위에 쓰러진 동료에게 다가가서 관절을 감싼 거미줄을 검으로 쳐서 끊어 냈다.
중장갑 자체는 타란튤라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망한 동료는 없었다. 관절부에 거미줄이 엉켜서 팔 다리를 못쓰게 되어 바닥에 누운 동료들만 있었다.
부상조차도 염려하지 않고,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장수한의 선택은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처럼 싸워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레이니는 거미들과 대치 상태에서도 원기와 희연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좌우의 대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러 타란튤라들을 박살내면서도 원기는 주위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크. 닭 날라온다!’
원기는 찔끔 놀라면서 오른쪽 뒷쪽에서 날아오는 거미줄을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서 주먹으로 정면의 타란튤라의 머리를 박살내 버렸다. 빠르게 전진하면 자신이 있던 자리가 비게 되면서 등뒤의 공격이 일시적으로 차단된다는 것을 닭들을 통해서 아주 뼈저리게 학습한 결과였다.
뭔가 히끄무레한 것이 시야 이곳 저곳에서 날아올 때마다, 닭들이 습격하는 장면이 연상되어 움찔움찔하면서도 곧잘 피하며 활약했다.
게다가 양손으로 각각 대검을 휘두르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검을 휘두르기나 찌르기보다는 손잡이나 주먹을 이용해서 가격하거나 발을 사용해서 공격하는 것도 필요했다.
‘이게 모두 양계장 훈련의 성과로군.’
미친듯한 닭 러시에 묵직하고 긴 검으로 모두 대응할 수는 없었다. 발로 차고, 머리로 받고, 주먹이나 팔꿈치, 어깨까지 쓸 수 있는 부분은 다쓰며 살아남기 위해 발악해야 했다.
그리고 중장갑을 갖춘 2미터를 넘는 거구, 인간의 세배에 달하는 완력을 갖춘만큼, 육체 전체가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페인 마스터리 없이도, 원기는 충분히 강력한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수준이 어떻게 가능한건지.’
사방팔방으로 둘러싸여서 미친듯한, 그리고 영웅적인 분전을 벌이는 원기와 달리, 희연은 넓은 공간에서 유유 자적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빠른 속도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이스댄서가 빙상위에서 춤을 추는 듯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녀의 검이 빛을 발하는 순간, 거미들의 다리 관절이, 목이 가볍게 떨어져 나갔다.
거미들이 포위하면서 달려오는 시간보다, 그녀가 움직여서 해치우는 시간이 짧다보니, 그녀의 주위는 한산해보이기까지 했다.
“슬슬, 끝장을 내야겠군.”
장수한은 거북 전차에게 공격 지시를 내렸다. 타란튤라 퀸을 상대하면서 시간을 끌고, 되도록 새끼들을 노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타란튤라 퀸은 거북 전차에게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대가 자신을 노리기보다는 새끼들을 노린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타란튤라 퀸 역시, 병사들과 나이트 엔젤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화염방사기를 써라!”
그가 지시를 내리자, 거북 전차가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거대한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소리는 거북전차가 본격적으로 공격을 개시할 테니, 피하라는 신호였다.
병사들과 나이트엔젤들이 동굴 밖으로 빠져 나오자 거북전차가 푸른색의 강렬한 화염을 뿜어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동굴 내부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입구 가까이에 있던 불붙은 타란튤라들이 미친 듯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병사들을 뛰어 넘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연하의 화살이 그들을 꿰었고 좀 떨어진 곳에서 폭발했다.
“퀸은 그대로 죽은 모양이군.”
“다행이에요. 피해가 크지 않은데다가, 놓친 숫자도 얼마 안되는군요.”
원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발키리가 나타났다. 거북전차를 움직이던 발키리인 수발(수한발키리) 1호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영체가 저를 밀어내고 거북 전차를 차지했습니다.]
수발 1호의 메시지에 원기와 장수한의 안색이 변했다.
“모두! 거북 전차에게서 물러나라!”
그와 함께, 섬뜩한 눈빛을 번뜩이면서, 거북전차의 머리가 아군 나이트 엔젤들과 병사들을 향했고, 아직도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입을 크게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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