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디지털의 천사
“젠장.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거지? 당장 프레이를 불러서 영상 채팅으로 돌려!”
조제성은 황급히 세스룸니르에서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면서 외쳤다. 유혜서와의 연결은 미드가르드와 지구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신수단이라는 점에서 아주 유용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아마, 나와같은 종속된 하급신 중 하나일거야. 발키리와 비슷하지만, 훨씬 강력하지. 발키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건 같은 발키리로는 불가능할거다. 하물며 장소가 프레이야의 권역 안이었다면 더욱 더 그렇지.]
“그런 존재가 몇명이라고 했지? 분명 내가 듣기론 넷이었는데?”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내가 알기론 셋이 한계야. 내가 빠진 자리를 누가 채웠을 수는 있겠지. 날 제외하고는 동물신인 슬레이프 닐과 지그프리드 둘이 있을거야.]
프레이야의 성력이 미치는 권역 내에서 발키리를 밀어내고 발키리 칩을 장악당하는 경우까지는 제성이라고 해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비책도 충분하지 않았다.
“큰일이군. 여보. 장수한에게 전해줘. 이쪽에서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최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거북 전차는 사실, 모양이 괴수 스타일에다가 첨단 장비가 다수 탑재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군더더기가 많았다.
만약 실제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차들을 상대해도 이길 수 없는 그런 물건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깡통 전차인 치하를 제외한다면, 유럽전선의 지포라이터로 불리던 셔먼 전차에게도 당하기 힘든 물건임엔 틀림없었다.
빼앗기는 것은 그리 걱정되지 않았지만, 이번 전투에서 입을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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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대해선 미리 고려해 둔 것이 없는데.”
장수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성도 수한도 미리 준비해 두는 타입의 책사였다. 임기응변에는 그다지 능하다고 할 수 없었다.
“우선, 병사들을 물려. 그리고 나이트 엔젤대가 거북전차의 공격을 유도한다.”
원기는 재빨리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시를 내렸다.
“연하. 거북전차 위에 올라탈 수 있을까? 내부에서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무리야. 외부에서 쉽게 들어갈 수 있게는 안만들어 놨어. 전격 장치가 작동되면 바로 통구이가 될거다.”
장수한의 말에 원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방법은 없는 겁니까?”
“도망치는 것 말고는 없지. 거북전차의 속도는 시속 40키로니까, 엘프들을 제외하면 도망칠 수 없을 거다.”
“최대한 분산시켜서 도망치도록 지시를 내려!”
원기의 명령에 나이트 엔젤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거북 전차가 고개를 들고 큰 입을 벌린다음 불을 뿜으려든 듯이 그들의 머리위에서 움직였다.
후우웅. 하는 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뭐지? 우리를 가지고 놀 생각인가?”
거북전차가 빼앗겼다는 사실을 미쳐 눈치 못챈 병사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트 엔젤들은 그들을 감싸려고 들었다가, 역시 영문을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냐? 왜 불꽃을 뿜지 않은거냐?”
오딘의 질책에 슬레이프 닐은 다시한번 고개를 휘두르며 힘껏 숨을 뿜어냈다. 그러자 역시 목 속의 팬이 열심히 돌아가면서 바람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장수한은 거북전차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령칩이다. 정령칩의 문제야.”
“정령칩이라니요?”
“발키리와 달리, 생전에 인간이나 엘프였던 정령들은 기계를 제어할 수가 없어. 생전에 자기 몸을 움직이듯이 움직이는 것 밖에는 못해. 사람들이 귀를 움직이는 근육이 있어도, 귀를 움직이는게 가능한 사람들은 극히 일부인 것과 마찬가지지.”
장수한의 설명을 들은 원기도 손바닥을 쳤다. 정령칩의 활용도가 떨어져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제성과 수한이 고민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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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점이로군. 발키리가 아닌 이상은 발키리칩의 제어는 완벽할 수 없다는 뜻인가? 무기와 자폭장치의 제어는 불가능하겠군.”
조제성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발키리도 마찬가지야. 프레이야님의 발키리는 아주 특수하더군. 정상적인 발키리와는 달라. 아마도 그런 발키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건 지금으로선 프레이야님과 굴베이그 뿐일거다.]
“무슨 뜻이지?”
[프레이야님의 발키리는 너무나 이질적이야. 단순히 감정이 없는게 아니라, 아예 인간적인 면모가 없어. 인간적인 것은 외모 뿐이다.]
프레이의 말에 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현 프레이야, 곧 원기는 현세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감정이 없는 영혼이자 심부름꾼인 발키리에 대해 알게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이나 단순 프로그램을 떠올렸을 터였다.
반면에 미드가르드의 신들이 만든 발키리는 말 그대로 자유의지와 감정이 없는 인간의 영혼이었을테니,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원기가 만들어낸 발키리들은 기계와 상성이 대단히 좋은 반면에, 인간적 판단력은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유지나 생성에 필요한 신성력도 절반 이하가 되는 편이니, 아주 유용하고 뛰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군. 프레이야님의 발키리는 디지털 세계의 천사인 거로군. 아나로그 방식인 오딘의 발키리나 신들에겐 적응하기 쉽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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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은 짜증을 내며, 몸으로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거북 전차는 목을 길게 빼서 병사들을 물어뜯으려고 들었지만, 땅에 닿을 만큼 목이 길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폼나는 포신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거북전차는 그 다리를 힘껏 움직여서 앞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땅이 푹 파일 뿐, 거북전차의 몸통은 단 1미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장수한은 “다리는 장식이에요.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른다니까요.”라는 애니메이션의 유명한 대사를 읊었다.
바닥에 달린 캐터필러가 움직이지 않는 한은 다리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어를 중립에 놓으면 조금쯤은 기어갈 수 있을텐데.”
거북전차가 발버둥을 치고, 사람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구경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일부 병사들은 타란튤라의 시체들을 가져다가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빨이나 가죽, 껍질 등은 모든 물자가 부족한 이 시대에는 유용한 재료이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김이 새버렸네요. 언제쯤 끝나지요?”
“곧 끝날거야.”
“아직 연료가 많이 남았을텐데요?”
“연료야 남았지만, 디젤 엔진이 돌아가고 있질 않아. 지금 뱃터리로만 움직이고 있어. 발키리가 빠져나갈 때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게 되어있었지.”
디젤 엔진의 발전기를 이용해 전력을 충당하는 구조라서, 얼마안가 움직임도 둔해지다가, 퍽하고 꺼져 버렸다.
“나중에 회수하기로 하고, 일단 칩을 제거해야 겠다.”
장수한은 죽어버린 거북전차에 가서 수동으로 문을 열고, 내부 기판을 부순다음 발키리 칩을 빼냈다.
“대책을 세울 때까지는 발키리 칩의 사용은 조심하는게 좋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거북전차의 존재를 알았을까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른거지요?”
“아마, 토르일거다. 이 거미 괴물도 토르가 보낸 거겠지. 토르가 전에 거북전차를 보고 탐낸 모양이다. 거미 괴물을 이용해서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거라고 생각해.”
장수한과 원기의 대화를 지켜보던 오딘은, 혀를 찼다. 거북전차의 조종은 단순히 발키리를 쫓아내고 대신 빙의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추가로 앞으로는 뭔가 대책을 세울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천공의 성좌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군. 상관없다. 진짜 덫은 따로 있으니까.]
거북 전차를 얻어서 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 하나로 대단한 것들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딘은 마음을 편히 먹고, 원기 일행의 귀환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리고 원기 일행은 오딘의 생각대로 굴베이그 궁의 게이트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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