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배틀크루저
“저게 벌써 완성된건가? 파워드 나이트가?”
템플 기사단의 후원자인 존 하워드는 TV에서 나오는 검은 파워드 슈트를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템플 기사단의 프랑스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과 모양만 대충 본 적이 있지만, 저렇게 높은 완성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파워드 나이트의 어깨에는 프랑스 연구소의 테스트기를 상징하는 표식과 넘버가 붙어 있었다.
“굉장하군. 마치 인간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어. 나이트 엔젤의 파워드 슈트와는 비교도 안되는 성능이로군.”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후원자 동료들에게 템플 기사단의 쾌거에 대해서 시청하도록 문자를 보냈다.
나이트 엔젤의 무장은 중장갑에 덩치가 큰 파워드 나이트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나이트 엔젤의 기관포 공격을 가볍게 씹으면서 다가간 파워드 나이트는 나이트 엔젤의 팔을 잡아 뜯어버리고는 그 팔로 미친 듯이 나이트 엔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뜯겨진 어깨 부분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머리 부분이 움푹움푹 파이면서 동체 안으로 구겨져 들어갔다.
존 하워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파워드 나이트가 개틀링으로 나이트 엔젤이 포획해 둔 범죄자들까지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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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템플 기사단이 속을까요?”
장수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파워드 나이트의 탑승자는 템플 기사단에 의해서 나이트 엔젤에서 실격된 레이니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파워드 나이트는 템플 기사단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에 잠입해 있는 협력자인 레이나가 보내준 사진을 토대로 겉모양만 같게 만든 것이었다.
정령칩을 이용해서 일부분이 구동하게 되어있다는 점에서, 모양만 파워드 슈트인 나이트 엔젤의 갑옷과 달리, 진정한 파워드 슈트의 면모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상대하는 나이트 엔젤은 일격을 맞는 순간 즉사 판정으로 시체를 남기고 사망상태가 되었고, 시신이 사라지기 전에 레이니가 참혹한 처형신을 연출한 것이었다.
흩뿌려지는 피도 미리 대원들에게서 추출한 혈액을 펌프를 이용해서 뿜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투에 말려들어 죽게 되는 갱들 역시 엄선된 흉악범들로 되어 있었다.
죄가 가벼운 자들이 말려들어 죽지 않도록, 미리 조사가 확실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조제성의 모토나 다름 없었다. 모든 음모는 밝혀질 위험성이 있으므로, 밝혀졌을 때 최대한 데미지가 적도록 배려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현재 연출로 본다면, 범죄자를 생포하기 위해 움직인 나이트 엔젤이 정체 불명의 적에게 습격당해서 목숨을 잃고, 정체불명의 적은 무자비하게 인명을 살상한 것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템플 기사단에서 저걸로 혼란을 일으킨다는건...”
“비밀 조직들은 기밀 유지를 위해서 점조직을 선호하지. 점조직의 장점은 각 멤버가 아는 바가 적어서 기밀 유지에 유리하다는 점이야. 그리고 단점은 역시 ‘아는 바가 적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랬다.
템플 기사단을 지탱하는 것은 많은 후원자들의 돈과 협력이었다. 그리고 많은 후원자들은 템플 기사단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그저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비밀 조직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나이트 엔젤이 적이라는 사실과, 나이트 엔젤에 대항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비밀 연구소에서 파워드 나이트라는 파워드 슈트가 개발되고 있다는 정도가 알고있는 대부분이었다.
파워드 나이트의 제작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나이트 엔젤의 존재가 대항 불가능한 위협이라고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조제성은 레이나를 통해서 어느정도 정보가 하부 점조직에 전해졌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비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는 불안감을 정확하게 찌른 한 수였다.
예상과 달리 템플 기사단 상부조직조차 혼란에 빠졌을 정도였다. 이미 일부 템플기사단원들이 나이트엔젤을 공격하고 프레이야의 조직을 습격하겠다며 이탈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부의 무기들을 빼돌려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에선 파워드 나이트는 아직 개발단계이고 완성은 한참 멀었다고 몰려오는 연락에 일일이 답변했지만, 상층부조차 연구소를 의심하는 판국이었다.
“강경파 녀석들이 몰래 완성시켜서 빼돌린 것 아냐?”
“나이트 엔젤 놈들이 우리 정보를 빼서 장난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강력한 아군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나도 동감이요. 요즘의 젊은 것들은 지나치게 과격해.”
“그렇소이다. 우리가 어둠속에서 이 세상을 지켜온 숭고한 희생의 의미를 모르고, 힘에 취한 듯한 젊은 이들이 적지 않소.”
템플 기사단이 혼란과 내분까지 안게 되었고, 후원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까지 이끌어내고 있었다.
“비밀 조직이라는건, 의외로 무른 법이야. 아는게 힘이지. 그 힘에는 결속력도 포함되고 말이야.”
조제성의 한마디에 장수한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조제성의 민활한 머리에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듯 했다.
최근 나이트 엔젤에 대한 인기와 함께 반감도 상승하고 있었다. 처음에야 초법적으로 활약하는 영웅에 매료되었지만, 원래 통제 불가능한 힘에 대해서 불안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웅은 악을 필요로했다. 악이 사라지면, 영웅은 필요악에서 불필요한 악이 되기 때문이었다.
템플 기사단에게 악의 조직, 아니 적어도 ‘무자비한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덮어 씌운 만큼, 그들도 쉽게 움직이기는 어려워 질 것이었다.
이미 나이트 엔젤을 습격했던 미군의 공격헬기와 어둠의 손에 대해서 대중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벗어버리기는 쉽지 않을터였다.
‘진짜 현대전은 심리전이라더니.’
“그건 그렇고, 항모는 대체 어떻게 손에 넣으실 생각입니까?”
“항모? 내가 언제 항모라고 했나. 생각해보게, 항모가 미드가르드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것 같은가.”
“역시 그렇지요? 하지만 5만톤 이상의 전투함이라고 해봐야...”
장수한이 생각하기에도 전투기를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호할 수도 없었다. 레벨 5의 세계수를 심는다고 해도 보호받는 것은 반경 수백미터의 범위에 지나지 않았다.
전투기가 날아가면, 폭풍에 휩싸일 수도, 얼음창에 꿰뚫릴 수도 있었다.
‘운석에 맞지는 않겠지만, 굳이 운석을 쓸 필요도 없겠지.’
오딘이라면 전투기를 궁그닐로 해치울 수 있을 터였다. 신성력 소모가 크겠지만, 전투기 가격을 생각하면 이쪽의 피해가 더 컸다.
‘파일럿 양성도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5만톤 이상의 전함이라고 해봐야 역사적으로 비스마르크급과 야마토급 뿐인데.’
“비스마르크 입니까?”
“아니, 야마토를 생각 중이지. 독일은 비스마르크를 다시 만들자고 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말일세.”
“어리석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헛된 돈을 쓸 만큼 어리석지. 야마토에 관련된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를 계속함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영화들을 찍어내고 있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비스마르크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다큐멘터리로 끝낸 것과는 대조적이야. 일본에는 눈먼 극우들도 많지. 특히 정치가가 많다는게 마음에 들어.”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당시 전함을 만들던 기술은 거의 사장되서, 지금은 만들고 싶어도 못만든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그거야 상관없지.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당시 기술자료들이나 기술자들을 동원할 수 있을거야.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방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미 시나리오도 확보했어.”
조제성은 한글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책상위에 꺼내 놓았다. 장수한은 그것을 조금 훑어 보았다.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완전히 미화에 예비군용 방공영화보다 더 유치한데요.”
“그게 극우파 인간들에겐 더 잘 먹힐거야. 영화야 쫄딱 망하든 말든 상관없지. 우리는 전함을 만들어서, 영화 촬영중에 빼돌리면 되는거야. 튼튼하게 만든 함체와 주포만 남기고 나머지는 분리해서 폭파시켜 수장해 버릴 생각이야. 함교와 대공포대, 훗날을 위한 미사일 발사대를 새롭게 장착하면, 오딘의 천공성에 맞설만한 상징적 요새가 생겨나게 되겠지.”
“하지만, 한국 회사가 이런 걸 만든다는게 가능할까요?”
“이미, 위장용 일본 회사를 하나 사들였지. 극우파를 지원하던 꼴통 사장이 말아먹은 회사야. 제법 이름은 알려진 극우 잡지 회사야. 야마토 영화와 함께 회사까지 폭파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일본에서 거대 전함을 건조하는게 가능할까요? 그런 거대함선 제조는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지 않을까요?”
“원래 경제가 어려우면 극우파들이 득세하게 마련이야. 이미 극우 정치가들에게 손을 써 놨어. 돈한푼 안줘도 야마토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면서 의욕이 넘쳐나더군.”
“정말 사람이 나쁘시군요. 극우파의 돈과 정치력을 이용해서 만들고는 빼돌린다니, 사람이 나쁘세요.”
“돈과 힘은 올바른 사람에게 있을 때 제 구실을 하지. 극우파들이 갖고 있어봐야 사회에 해악일 뿐이야.”
“혹시, 2년에서 3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래. 다큐멘터리 제작을 겸해서 야마토 함선을 제작하고 영화를 찍는데 걸릴 기간이지. 야마토는 촬영 도중, 폭파신에서 잘못되서 폭침하는 것으로 생각중이야. 계약서에는 촬영이 끝나고 히로시마 구레시에 있는 야마토 뮤지엄에 양도하기로 되어 있지. 침몰해도 CG로 영화는 마저 찍을 수 있을거야. 흥행은 보장 못하지만...”
조제성의 입가에는 절대 흥행에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믿음에 근거한 비웃음이 실려 있었다. 사실 야마토 전함이 등장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소리는 장수한 역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년에 한 번씩 꾸준하게 등장하는게 놀랍기는 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야마토의 경우에 실제로는 별볼일 없는 함선이었다는 꽤 근거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독일의 거함 비스마르크도 실제 전적은 빈약하다고 하지만, 영국의 최대크기 전투함인 후드를 순식간에 격침시킨 전력이 있었다. 반면 야마토는 취역하고 4년동안 활약했지만 전적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갑의 재질이 안좋아서, 실제 방어력은 형편없다는 설도 꽤 유력했다.
“실제의 야마토는 그렇지. 하지만 극우파들의 망상속에 존재하는 야마토는 시대를 앞선 완벽한 전함이야. 그리고 우리는 실제의 야마토를 재현하는게 아니라, 망상속에나 존재하는 완벽한 전함 야마토를 신규 건조하게 될걸세. 그리고 우리가 만들 신규 전함의 밑거름이 되어 줄걸세.”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벽면의 거대한 모니터에 새로운 전함의 설계도를 띄웠다. 내부 구조는 실제 전함 야마토와 꽤 많은 곳에서 달랐다.
“엔진은 전기 모터 엔진이지. 명분은 간단하네. 환경 오염과 에너지 절약이야. 속도는 20노트도 안나오는 매우 느린 배가 될걸세. 실제 전함 야마토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아는데다가 현대전에서 전함이 무용한지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다지 경계하진 않을걸세. 그리고 승무원은 단 10명이 모두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었네. 실제 3300명에 달하는 승무원까지 재현할 수 없다는 핑계로 자동화할 예정이지. 훗날 레이더와 화기관제용 컴퓨터가 장착되면 꽤 정밀도가 높은 고성능 장거리 포대로 되살아나겠지만, 그때는 폭죽이나 쏘는 큼직한 모형에 지나지 않지. 곳곳에 빈 공간은 박물관이 되었을때 전시실로 사용될 거라고 해놨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장비들이 장착될걸세. 그게 사실 큰 과제지. 특히 전함용 원자로 같은 것 말일세.”
“전기모터에 원자로라. 정말 사람이 나쁘군요. 제성 형님.”
배수량 7만5천톤의 제대로 된 장갑을 지닌 원자력 전함, 물론 전투기와 어뢰, 대함 미사일은 여전히 천적이겠지만, 미드가르드에서라면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운석 공격도 레벨5 이상의 신전이라면 충분히 극복될테니...’
40키로 이상의 사거리를 지닌 장거리 포대와 이번에 제대로 만들어질 사상최대의 장갑을 갖게 될 새로운 함, 장수한은 은근히 기대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전함의 이름은 배틀크루저가 어떨까요. 마침 야마토포도 달려있으니.”
장수한의 반응에 조제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막대한 돈과 소중한 시간이 투자되는 만큼, 혼자 결단 내리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30만톤급 유조선을 전투함으로 개조하는 만약을 대비한 프로그램도 진행중이었다.
‘장기적으로는 항공모함도 생각해 봐야겠지. 십년이 걸릴지, 몇십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조제성은 언젠가 미드가르드와 지구 사이에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시기가 올 것이라고, 아니 올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많은 대비를 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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