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용신전설
“어이, 서유기. 변신 좀 풀어라.”
날개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온 후, 팀장인 권우석은 오타쿠에게 말했다.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최선미가 움찔움찔 거리던 모습을 은근히 즐기던 오타쿠는 눈살을 찌푸렸다.
“팔계는 이 모습이 좋다는...”
“얘기가 안되니까. 변신 좀 풀어. 이런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되겠냐.”
“칫. 알겠다는...”
그렇게 말한 뚱뚱하고 불쾌한 오오라를 풍기는 청년은 한쪽 구석을 향해서 걸어가려고 했다.
“이쪽에서 변신을 풀고 가. 설명하기 쉽게.”
그 순간 오타쿠 청년의 표정이 아주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최선미는 살짝 겁을 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오타쿠 청년이 있던 자리에 나타난 엄청난 미소녀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불쾌한 표정 자체는 오타쿠 청년과 같았지만, 그 찌푸린 모습은 되려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미소녀는 구석쪽 테이블로 가서 벽을 보고 앉았다. 맞은 편에 의자도 없어서 정말로 구석에 가서 쳐박히는 듯한 그녀의 전용석이었다.
권우석은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을 내려 놓았다. 스피커 폰 상태가 되어 있으리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서유리라고 하지요. 특기는 남에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변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저 능력으로 저 아이는 여신님께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지요.”
“이해가 안가는 군요. 불쾌감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변하는게 왜 구원받은게 되는 거지요?”
“여신님의 능력은 그런 겁니다. 정말 마음 속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거지요. 저 아이의 경우, 어려서부터 험한 꼴을 많이 당한 편이지요. 급식에 자기 침을 섞는 남자아이 같은 건 애교로 봐줘도 될 정도라고 하지요. 스토킹 피해도 많이 당했지요. 그 가운데는 여자도 섞여 있었다고 하니, 인간 불신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지요. 웃긴건 정말 험한 꼴을 면한건 그녀를 쫓는 스토커들이 복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참 대단하지요? 그래서 저 아이의 경우엔 문제가 된 겁니다. 사람들을 무서워 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싫어하면서도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 때는 무서운 겁니다. 저 구석 자리도, 은근히 시야는 트인 곳이지요. 사람들이 자신을 탐하는 시선은 싫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면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던 참에, 사람들의 비호감을 사는 외모로 변하는 능력을 얻은 겁니다. 그녀를 보고 싶어하지 않지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외모 말이지요. 덕분에 지금은 꽤 정신적으로 건강해 진 편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김민정과 김태훈은 구석에서 혼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건강해진 거라면 전에는 어땠을까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을 품었다.
“다른 분들도 능력자인가요?”
“아, 여기까지요. 일단 최선미씨. 당신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싶군요. 어떻게 우리가 당신의 능력을 ‘없애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거지요?”
“음, 제 능력은 예지몽이에요. 특별한 순간이나 중요한 정보는 얻지 못하고, 그저 일주일 이내의 자신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는 정도에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해가 갑니다. 혹시 지금 이 모습도 꿈에서 본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제가 본 건 아마도 내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때부터 예지몽을 못꾸게 되어서 갈수록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그 때문에 인터넷을 뒤졌는데, 여신님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땐 바보같은 이야기라고 지나쳤는데, 조금 전에 여러분들이 나타났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무얼 믿고 이곳까지 따라오신 겁니까?”
“글쎄요. 왠지 괜찮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능력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잃고 싶지 않다고 할지, 잃게 되면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해야할지.”
권우석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능력은 수신계 능력으로 예지몽 능력을 갖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했다. 추가로 육감에 가까운 미래 예지 능력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군요. 아마도 그 능력은 사고로 죽은 언니의 영향이 컸겠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언니만이 아니에요. 제 눈앞에서 친구가 죽은 일도 있어요.”
언니는 교통사고로 그녀의 눈앞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그녀의 친구는 크레인에서 떨어진 철골에 맞아서 그녀의 눈앞에서 죽었다. 스스로는 자각하고있지 못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녀의 뇌리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랬군요. 저도 구원받았던 것일지 모르겠네요.”
자물쇠를 몇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진 않을지, 건물이 무너지진 않을지, 도로에서 차가 튀어나오진 않을지 늘 불안해하며 강박증 속에 살았지만, 예지몽 덕분에 어느정도는 안심하고 지낸 것이 사실이었다.
“대체 이 힘은 어떤 거지요? 여러분들은 누구고, 어떤 힘들을 갖고 계신 건가요?”
권우석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서유리의 능력은 보여주기 쉬운데다가 실전에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우석은 스피커 폰을 향해 물었다.
-------------------------------------------
원기는 자신의 덩치보다 큰 짐을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다. 가까운 마을이라고 해봐야 이십 키로 이상 떨어져 있었다.
물론 하루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니, 그렇게까지 많은 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마을 주변에서 마을 사람들의 상황을 살펴볼 예정이었다.
혼돈의 땅은 외부와는 어느정도 단절되어 있는 곳이니만큼, 언어가 다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단절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만큼 문화는 확실히 다를 터였다.
적어도 며칠 정도는 몸을 숨기고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가능하면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악역이 분명해 보이는 무리가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으면 최곤데 말이지.’
판타지나 무협 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전개지만, 막상 특정 마을에 접근하는데는 최고의 수법일 수도 있었다.
‘미인에 신분 높은 아가씨의 정조를 지켜주는건 뭐 갑중의 갑이긴 하지만 말이야.’
원기는 그럴 확률은 로또보다 적을 거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일단 마을 주변에서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는 상황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본래 몬스터 드레스업은 단순한 코스 플레이에 지나지 않았다. 스펙이라고 할까, 스탯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덩치도 마찬가지였다. 덩치를 크게 만들건, 작게 만들건 스탯은 똑같았다.
하지만 미드가르드에선 달랐다. 덩치가 크면 힘이 세고, 덩치가 작으면 힘이 약했다. 스탯에 비례해서 강해지는 것은 맞지만, 외형이라고 할지 물리적 조건에 의해서도 달라졌다.
그리고 짬타이거로 드레스업 한 상태도 확실히 달랐다. 힘은 조금 더 강해졌고, 후각이 더 예민해졌다. 웃긴 것은 청각과 야간 시각은 되려 좀 떨어져 버렸다.
엘프의 청각과 적외선 시각은 호랑이를 능가하고 있었다.
‘하긴 토끼가 호랑이보다 청각이 발달하는게 당연한 것이니...’
가장 좋은 것은 모피였다. 호랑이 모피를 두르고 있으니 아주 더울 때를 제외하고는 최상이었다. 모래바닥에 뒹굴어도 편안한 이불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문제는 이나 벼룩이 되겠지만, 리디아가 즙으로 만들어서 발라준 약초 덕분에 적어도 일주일은 문제가 없을 터였다.
‘북두신권의 그 수법을 써먹을까.’
초췌한 모습으로 물을 부르짖으며 마을 앞에 무력하게 쓰러지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 될 듯도 싶었다.
‘아냐, 호랑이 모습으로 그건 좀 곤란하지. 엘프 모습으로 나가는게 좋을려나?’
원기는 열심히 고민하며 마을로 향했다. 어디선가 무기가 부딛치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
“용신이라니, 용신이라니. 말도 안돼는 소리야.”
위대한 용족의 사제 중 하나인 디레는 자신의 방에서 짜증스럽게 외쳤다. 그는 부족에 내려오는 역사를 거듭 살펴본 결과, 용신의 강림이라는 것이 그저 뜬소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혼돈의 힘이 점차 줄어드는 만큼, 그는 외부 세계의 신들에게 복속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지옥의 여신 헬을 믿기로 결심하고, 몰래 거래를 맺었다. 개종하기로 하고, 자신과 추종자들이 헬의 백성으로서 이 대륙을 지배한다는 계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용신의 화신이 나타난 것이었다.
니드호그가 이 대지에서 죽고 세계수가 폭주하면서 혼돈의 세상이 열렸다. 펜릴과 니드호그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폭주한 신성력은 인간들을 오염시키고 변화시켰다.
이 대륙에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니드호그의 영향으로 파충류화 된 인간들은 자신들을 용족이라고 부르며, 선택받은 위대한 존재라고 믿었다.
그리고 언젠가 용신의 화신이 나타나서, 이 대륙을 넘어서 이 세계를 용족의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희망사항이라는 사실을 디레는 여러 문헌을 분석하고 외부의 역사를 조사한 결과 알아낼 수 있었다.
용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혼돈의 힘은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혼돈의 힘이 극대화 된 대륙 중심부는 수인족도 용족도 감히 들어갈 수 없는 끔찍한 곳이었다. 강력한 몬스터들이 우글대는 곳이었다.
그리고 고위 용족과 고위 수인족들은 대륙 해안쪽으로는 갈 수 없었다. 혼돈의 힘이 부족하면 그들은 살 수 없었다. 해안과 중심부의 사이가 바로 그들이 살 수 있는 땅이었다.
문제는 이 중간 지대가 중심부보다 더 빠르게 수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판단하기엔 적어도 200년 내에 대륙의 절반이 신들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용족과 수인족들이 살 수 있는 땅은 백년 내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었다. 중심부 역시 수축하고 있으니 대형 몬스터들도 밖으로 밀려나와 날뛰다가 죽어갈 것이고, 그걸 생각하면 이 대륙에 미래는 없었다.
그걸 믿고 그는 외부의 신, 헬에게 개종을 약속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희망사항의 존재인 용신의 화신이 나타난 것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번개를 뿌리는 그 모습을 본 용족들은 기다렸던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그리고 용신을 영접하기 위해서, 대규모로 대륙 각지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용족의 사제 디레였다.
‘그래. 진정하자. 용신의 화신이 진짜로 존재할 리가 없어. 아마도 돌연변이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 그래. 잘하면 이용할 수 있을지 몰라. 잘만하면 내가 용족의 황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다른 용족들은 그저 용신을 모시러 온 자들이었다. 하지만 디레는 용신 처럼 보이는 존재를 사냥해서 포획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냥과 영접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손에 넣게 될 가능성이 커지지.’
용신을 사칭하는 사기꾼이라면 공개처형해서 자신의 진가를 높일 것이요, 용신처럼 보이는 존재라면 이용해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눈에 띄는 것을 꺼려서 정찰 비행을 포기한 연하와 희연 일행은 주변에 용족들이 깔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