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호사스런 접대
“족장님, 앞쪽에 노예들의 요새가 있습니다.”
용족 병사의 보고에 족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통 백명 이하를 마을이라고 하고 천명 이상을 도시, 그 중간을 요새라고 불렀다.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이 대륙에서 목책이 되었건 성벽이 되었건 방벽을 갖지 않은 마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경이 척박한 탓에 체계를 잘 갖춘 국가는 성립되지 못했다. 용족에게 평범한 인간들은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가축 겸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주위에 다른 부족에게 전갈을 보내라. 식량을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일 공격한다.”
백 명 가량의 부족 전사만 데리고는 습격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족장이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본 원기는 기회가 왔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건 푸른유성에 나오는 패턴이로군. 당신들을 노리는 적이 있다고 알려주면 붙잡히더라도 죽이지는 않겠지.’
원기는 조심스럽게 그들 곁을 물러나서 목표로 한 마을을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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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들을 끌고 오다니, 제정신인가. 용신님을 맞이하러 가는데 왠 사냥개들인가.”
북부 부족연합의 대사제 레그르가 디레의 부하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용족들의 경우 작은 부족은 부족장만 존재했고, 규모가 커지면 부족장과 사제가 역할을 분담해서 통치했다.
사제는 부족의 종교적 의식을 주관하는 동시에 군사적 지휘관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관할하는 역할이 그들의 주역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용족들에게 사제는 사제로서의 의미보다는 군사적 지도자, 곧 장군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
“용신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주변을 깨끗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망 노예나 짐승 놈들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장기 체류를 위해서 식량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 아닙니까.”
“웃긴 놈이군. 너무 소란을 피우진 마라.”
레그르는 경고성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디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용신이라니, 멍청한 놈들 같으니.’
용족에게 종교는 규율을 강제하고 사기를 북돋는 역할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사제들은 그다지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디레는 명백한 이단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대륙의 전쟁 이전의 역사를 조사해서 알고 있었다. 용신 전설이라는 것은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용족이라는 것들이 한낱 돌연변이에 지나지 않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파충류의 날개를 지니고 번개를 쏘는 돌연변이가 나온 것을 가지고, 용신 타령을 하는 멍청이들 같으니.’
“좋아. 레그르님의 허가가 떨어졌다. 주변의 숲속부터 샅샅이 뒤지도록 한다.”
디레의 지시에 따라서 용족 전사들이 사냥견을 앞세우고 주변 숲부터 차근차근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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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원기는 할 말을 잊었다. 마을 사람들이 은호로 드레스업한 그를 본 순간, 바로 납작 업드린 것이었다.
“저희 방목노예들의 마을에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이 혼돈의 대륙에는 인간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용족의 노예가 아니면 수인족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용족들은 가축처럼 철저하게 관리한다면 수인족들은 방목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용족들은 비늘만 덮여 있을 뿐,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반면 수인족들은 상당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대신 용족은 많은 숫자를 자랑했고, 수인족들은 수가 적은 편이었다.
수인족들은 정기적으로 방목 노예들의 마을에 방문해서 세금을 걷어가고는 했다. 물론 그 세금이라는 것은 혹독할 정도로 무거워서 근근히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점과 방문할 때마다 재미로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가는 등 공포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수인족의 방목 노예들도 그다지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수인족들은 신체 변화 정도에 따라서 진수와 반수로 나뉘었다. 그리고 진수들 가운데서 평범한 동물이 아닌 특수한 형태를 지닌 신수가 존재했다.
원기의 은호는 기본적으로 금속성의 광택을 지닌 백호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신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수들은 드물어서 수인족들 가운데서도 귀족 취급을 받았다.
“저희를 구하러 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방목노예의 삶이 가혹하다고해도, 완전히 가축취급을 받으며 조금 나이만 먹으면 식량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용족의 노예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랬기에 주변에 용족의 무리들이 늘어나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런 와중에 강력해 보이는 진수, 아니 신수가 경고를 하러 와준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나 다름 없었다.
“우선, 이쪽에 거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잠시 쉬시고 계시면 드실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촌장의 극진한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원기는 태연을 가장했다. 그리고 그가 알려준 거처로 자리를 옮겼다.
거처는 촌장 저택보다 더 크고 화려한 건물이었고, 내부는 극히 청결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인족의 감각이 예민한 탓에 노예들이 몰래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떼로 죽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꾸준히 청소를 하면서도 냄새가 배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때문에 꽤 좋은 상태였다.
‘이거 우리가 판 토굴보다 꽤 좋은 걸. 이리로 옮겨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무 경계없이 맞아들이는 것으로 판단하건데, 수인족들간의 대립은 없는 듯 했다. 용족이라는 적이 존재하는데다가 숫자가 적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군. 잘만 교섭해 보면 안전할 수도 있겠어. 리디아양도 있으니]
“그렇지요? 굳이 마찰 안일으키고 지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원기 일행의 힘이 미약한 만큼, 노예 해방이나 사회 개혁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나중에 저희를 구하러 오실 때, 병력과 무기를 좀 가져오면 이 대륙에 기반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노예 해방도 시킬 겸.”
[유감이지만, 그 대륙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야. 혼돈의 힘 때문에 아이가 기형아나 돌연변이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군.]
“그다지 기형아 같은 건 못봤는데요.”
[그게 프레이의 말에 따르면, 태어나는데로 잡아먹기 때문이라고 해. 장애를 가지고 살 수 있을만큼 녹녹한 곳도 아니고, 시신을 묻어줄 수 있을만큼 풍족하지도 못하고 하더라고.]
“식인 괴물에 식인종들이 사는 곳인가요.”
원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환대해 준 탓에 잠시 긴장을 풀었지만, 주변을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들창을 열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변덕스럽고 포악한 수인족의 비위를 건드릴만큼 용감한 인간은 없었기에 그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제법 있는 것 같은데...’
목책은 제법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가 본 용족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적어도 오백명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듯 보였다. 방목 노예라지만 무장도 제법 되어 있는 편이었다. 긴 창과 활과 화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수인족들이 대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아주 작았다. 딱 침실 하나 들어갈 크기였다. 화장실도 취사장도 모두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피서철에 빌리는 방갈로만도 못한 것 같군.’
원기에게 제공해준 청결하고 큼직한 화장실이 포함된 건물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취사장을 보니, 청결한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음식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곁에는 아이 둘이 보였다. 남매로 보였는데 서러운 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서 맞고 돌아온 건가? 아니면 엄마한테 혼나고 있는걸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돌리려는 순간, 식칼을 든 여성이 여자아이의 목을 찌르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포효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원기가 짬타이거와 퓨전해서 스킬 ‘포효’를 쓴 것이었다. 쪼렙학살처럼 상대를 마비시키는 사기 스킬은 아니고, 상대가 잠시 움찔하면서 방어태세를 취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다만 범위가 크고 넓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원기는 소녀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만 둬! 대체 무슨 짓이야!”
원기가 외치자, 여성과 어린 남매는 엎드려서 그저 영문도 모르고 빌어댈 뿐이었다.
육식형 수인이 방문해서, 그들이 늘 해오던 대로 육질이 좋은 어린 여자아이를 요리해서 대접하려고 했던 것 뿐이었다.
목을 치려던 여자는 아이의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자식 중 몇을 이미 수인의 식사를 위해 내놓은 적이 있었다.
“미친...!”
원기는 노예 해방 따위를 할 생각은 없었다. 제성의 생각처럼 자신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은 사실 그리 정이 안가는 야만인들이기 때문에 그냥 흘러가는데로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정말로.’
원기는 용족도 수인족도 적으로 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원기의 포효에 몰려나온 사람들은 촌장을 비롯해서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식사 대접이 시원치 않아서 화가 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분풀이로 그들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원기 앞에 부복해서 꼼짝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원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사냥개들이 몰려왔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대로는 발각나서 용족들에게 잡힐 것 같아.]
희연의 다급한 파티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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