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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54화 (154/497)

154화 바퀴벌레를 잡으니 개미가 들끓는다.

장수한과 조제성은 머리를 싸매쥐고, 손에 들어온 디레라는 패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를 벌였다.

그리고, 그 결론은 전적인 협력이었다. 디레의 야심에 등을 떠밀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디레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용족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머리 좋은 야심가, 그가 용신의 대역을 할 수 있는 연하를 손에 쥔 것은 그가 언젠가 용족의 황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연하가 없더라도 그는 스스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는 인내심이 강하고, 교활했기 때문이었다.

“욕심이 많은 자는 결코 지혜로울 수 없지.”

조제성은 디레에 대해 이런 저런 분석 끝에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교활하지만 지혜롭지 못하다는 결론 끝에 장수한은 디레에 대해 방침을 내렸다.

야심에 불을 붙이는 것, 등을 떠미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간을 들이면, 많은 이들을 복속시킬 수 있고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을 것이지만 서두르면 내란이 잃어나고 많은 피가 흐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디레는 눈치챌 수 없고, 설사 눈치챈다고 해도 그의 욕심이 그를 현명한 선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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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

디레는 리디아의 호출이 달갑지 않은 듯 말했다. 그녀는 협력자 행세를 하고 싶어 하지만, 단순한 인질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용신은 자신을 도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적극적으로 협력한다고 떠들어 봐야, 써먹기 좋아질 뿐이었다.

“제게 호위가 둘이 더 있다는 사실은 아시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아, 그러고보니.”

디레는 숨어있던 토굴에서 뛰쳐나간 두 여자를 생각했다. 불꽃의 여우계집과 등에 업혀있던 꼬마 계집이었다.

불꽃의 여우 계집은 꽤 많은 용족의 용사들을 가볍게 죽여버린 괴물이었다.

“그 계집도 네 부하라고?”

디레의 귀가 솔깃하게 변했다. 하지만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용신과 달리 지옥의 야수는 수인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용족들과 어울릴 수도 끌어들일 수도 없었다.

등에 매달린 인간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함께 업혀간 소녀가 호위무사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지요? 그녀와 대등한 수준의 무사가 하나 더 있어요.”

디레는 그녀의 말에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은빛의 호랑이였다. 지옥의 야수라고 불리우는 공포의 존재와는 다른 의미로 전장을 지배했다.

거대한 덩치와 포효로 단신으로 용족들의 진지에 쳐들어와서 닥치는데로 쳐죽이고 물어죽이고는 방목노예들의 요새로 훌쩍 뛰어 돌아갔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눈빛으로 용족들을 마비시키기고 예리한 검과 잔인 무도한 불꽃으로 죽음을 선사하는 지옥의 야수.

전장을 울리는 거대한 포효와 함께 강인한 거체를 가지고 용족의 전사들을 마치 개미들을 짓밟듯이 압도하는 패왕.

“설마 은빛 호랑이도 네 호위 무사인가?”

“예. 정찰을 보내뒀었군요.”

“그렇다해도 그들이 무슨 도움이 되는거지?”

디레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 괴물들이라면, 설령 반발이 있더라도 용족의 휘하에 끌어들여 볼만 했다. 용신의 활 솜씨와 능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전장을 지배하는 은호(銀虎)와 죽음을 흩뿌리는 염호(炎狐)와는 비교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연하양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들은 제게 보고하고 명령을 듣게 되어 있지요. 만약 그들이 수인족들을 통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수인족들은 어차피 양립할 수 없는 적들이다. 수인족따윈 손에 넣을 생각 없어.”

“저도 그걸 권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당신의 눈엣가시들이 처리될 수 있겠지요. 적과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형태로 말이지요. 그들을 키워서 써먹든, 그들을 죽여서 공을 세우든 편한데로 하시면 됩니다.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해야겠지요. 원하신다면 받으세요.”

리디아는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독이 든 먹이를 디레에게 넘겼다.

“그, 그렇다면 놈에게 레그르를 처리하라고 명령해 봐라.”

“레그르가 누군지 모르는걸요. 그리고 어느정도는 가까이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충분히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깝다. 일단 놈들이 실제로 네 명령대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어야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디레는 용족의 대사제인 레그르가 있는 위치와 그 모습을 리디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리디아는 연하에게 그것을 똑같이 전했다.

“직접 용신이 명령을 내리면 안되나?”

“그건 안되요. 연하양은 셋 중 가장 어리고 약하답니다. 명령을 내릴 권한도 보고를 들을 권한도 모두 제게 있습니다.”

“사실인가?”

“예. 그래요.”

연하는 흔쾌히 말했다. 가장 약하다는 말에 발끈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그럼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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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는 희연과 굴베이그가 무사히 합류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겼다. 희연이 합류한 덕분에 도마뱀들이 대거 몰려와서 이천마리를 족히 넘어서는 숫자가 득실대고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든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연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탓에 크게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원기에게 존댓말을 쓰고 정중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심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뀌었다.

사람이 완전히 바뀐 듯한 희연의 모습에 원기는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제성이 미드가르드에 들어서자, 원기는 재빨리 귓속말을 시전했다.

[제성 사장님. 희연이가 이상한데 무슨 일 있나요?]

제성은 원기의 반응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희연의 변화는 제성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희연의 가치관은 유교적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었다. 유교적 가치관의 기본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무사도, 기사도가 되었든 사무라이 정신이 되었든, 화랑도가 되었든 기본적으로는 이 유교정신과 유사한 면이 많았다.

희연은 지금까지, 원기를 라이벌로 보아왔다. 경쟁상대로 여기고 호적수로 여겨왔기 때문에 애써 대등한 입장이 되려고 해온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그 역할이 호위무사 겸 부관으로 바뀌어 버리자, 그 역할에 맞춰서 모든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 같은 사람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유비보다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으로 자리잡은 다음에는 유비에게 절대적으로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은 그 역할을 거스르는 것을 용납치 못하는 성격이 있었다.

귀족다운 귀족이 되는 것을 원하지만, 평민 또한 평민다워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특성이 이런 타입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완고하고 높은 프라이드가 때로는 파멸을 불러오기도 하는 그런 타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랫사람에게 엄격하고, 윗사람에게 극진한 타입이 바로 유교적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냥 받아 주세요.]

[연기라고요?]

[옙. 호위무사겸 부관역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서 추천했습니다. 그녀가 원래 철두철미하지 않습니까. 그냥 연기라고 생각하고 어울려 주세요.]

조제성은 원기에게 진실을 온전히 말하지도, 거짓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연기라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결단력이 빠르군. 무사도나 군발이 정신이나 그게 그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래서 타인의 명령에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군인들이나 관료들이 머리가 나빠서 시키는 데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책임 의식은 강하지만, 매뉴얼대로만 움직이고 융통성이 없는 것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희연에게 바란 것은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상대이지, 명령만 내리면 무슨 짓이라도 할 듯한 분위기의 빠릿빠릿한 부하는 아니었다.

“일단 레그르라는 놈을 해치워야겠지.”

원기는 자신의 팔에 채워진 건틀렛을 쓰다듬었다. 짬타이거로 드레스업을 하면 좋은 점이 많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손 대신 앞발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육구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손가락은 짧고 대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크고 날카로운 발톱이 존재했다.

문제는 그 때문에 무기를 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체격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민첩해지지만, 무기를 들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물론 용족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동급의 적, 이를테면 희연이 검을 휘두르는데, 발톱세운 앞발로 맞선다는 것은 그냥 자살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앞발이 길어지고 발톱이 날카롭다고 해도 대검의 공격 반경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엉뚱하게 이 마을에서 해결되어 버렸다. 바로 수인들을 위한 특수한 건틀렛 때문이었다.

건틀렛 안쪽에 팔꿈치 부근의 근육에 맞춰서 움직이는 마치 매직핸드와 같은 집게가 있었다. 팔에 힘을 주면, 집게가 검을 꾸욱 눌러 쥐는 효과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집게는 손목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정도는 검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섬세함은 좀 부족하지만, 힘과 민첩성을 살려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특수한 도구라고 할 수 있었다.

수인족들의 특수성에 맞춰서 도구를 발전시켜온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가볍게 희연과 검을 맞대보자, 제법 쓸만했다.

양 팔에 채워진 건틀렛을 가볍게 점검한 다음, 등에 교차해서 맨 두 대검을 손에 쥐었다. 잠금쇠가 풀리면서 대검이 건틀렛에 장착되었다.

“그럼, 가볼까.”

“예.”

희연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그녀 자신도 믿기지 않지만, 원기의 수하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마음이 편안해 진 느낌이었다. 머리속도 맑아지고 활력이 느껴졌다.

원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의아함을 조금 느꼈지만, 연기를 좋아한다고 멋대로 단정짓고는 힘있게 목책을 뛰어 넘어서 적진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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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놈들이야. 대체 왜 저리 쓸데없는 짓들을 해대는 걸까.”

오딘은 프레이야의 영토를 보면서 혀를 찼다. 과학문명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작은 공장들을 세워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모습들은 인상적이었다.

철도의 활용이라든가, 선박을 제조하는 것도 역시 훔쳐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장수한이 문화와 유희, 유흥에 힘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장수한은 정보 길드를 이용해서 신문사를 만들고, 각지에 편지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시켰다.

소설과 연극, 노래 등을 즐길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모습들은 철저하게 승패를 추구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오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라디오 방송을 사용하기 힘들고,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적다는 사실을 안 장수한은 인형극을 다수 준비했다. 연극처럼 다수의 사람이 필요치 않고,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동화들을 인형극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도록 유도했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놀이 거리가 없던 세상이라, 아이들만이 아니고 어른들도 꽤 많이 관심을 가졌다.

마을에서는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신문을 촌장이나 학당 선생이 읽어주는 모임도 열렸다.

인간의 질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오딘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인간들은 늑대 무리나 마찬가지고, 잡념없이 적을 향해 돌진하는 놈들만이 쓸모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삶에 쓸데없는 미련을 갖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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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성은 야마토 건조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역시 어리석다는 의견이나 반발도 제법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극우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이 알아서 움직여주고 있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은 틀림없었다.

이미 히로시마 구레에는 야마토만을 위한 제조창을 설립하기 위한 조례가 성립되었고, 일부 선동 정치가들이 공사를 시작해버린 만큼 야마토 건조는 순조롭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야마토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플랜 B는 바로 잠수함이었다. 모국의 원자력 잠수함이 그의 노림수였다. 건조는 물론 불가능했고, 노림수는 강탈이었다.

잠수함이라면 토르의 해머에서도, 오딘의 궁그닐에서도 안전했다. 고속의 질량병기는 수심 수십미터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 쉽지는 않군.”

큰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지만, 후폭풍이 적지 않을 터이기 때문에 그것을 최소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레이나양에게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조제성은 비서의 보고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템플 기사단에서 빠져나온 과격파 일부를 제외하고는 템플 기사단은 거의 무력화 되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온갖 민형사 소송을 비롯해 진상 구명의 요구가 커졌고, 사태 수습이 어려워져 있었다.

나이트 엔젤도 만약, 세상에 그 정체가 드러난다면, 온갖 민형사 소송에 시달려서 순식간에 천참만륙될 것이 틀림없었다.

“과격파들이 어디 숨어있는지 알아낸건가?”

“아니에요.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에요. 정말 큰 일이 났어요.”

레이나의 얼굴엔 당혹감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템플 기사단에서 보관중이던 중요한 유물을 도둑맞았어요. 세상의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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