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사기스킬
‘피할 수 없어.’
원기는 등돌리고 도망치는 상태로는 적 우두머리의 투창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그는 돌아서서 맞서는 것을 택했다.
“여긴 내가 맡을테니, 넌 레그르를 해치워!”
희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갈등했다. 호위무사가 호위 대상을 버리고 간다는 것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결단을 내리고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 기사단을 상대로 시간을 충분히 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원기라면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것이 틀림없었다. 암살에 가까운 기습이 되겠지만, 그녀는 레그르를 어떻게든 죽이겠다고 마음 먹었다.
함성을 지르며, 용기사단장 노르마가 단창을 날렸다. 원기는 몬스터와 융합함과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단창을 쳐냈지만, 창의 궤도를 살짝 트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창은 어깨를 꿰뚫고 날아갔다.
게임 캐릭터의 회복력은 높은 편이지만, 물리적인 상처는 아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절단 당하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절단된 부위는 서로 붙여두지 않으면 회복이 안되는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우회해서 여우를 사냥한다. 그리고 그물을 사용한다.”
오우거, 판타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거인형 괴물이지만, 실제로는 인간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진짜 피해를 주는건 코볼트나 오크들처럼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놈들이었다.
오우거는 함정을 이용하거나, 올가미를 이용해서 잡을 수도 있고 그물을 사용해서 잡을 수도 있었다. 호랑이 같은 맹수처럼 활동 영역이 넓어서 함정을 설치할 수 없고, 신선한 먹이만 먹어서 독을 쓸 수도 없고, 숨어다니고 빠르기까지 한 맹수에 비하면, 오우거는 잡으려고만 마음먹으면 온갖 방법으로 잡는게 가능한 몬스터였다.
오우거의 피해가 큰 경우라면, 무방비 상태로 마을이 습격받는다거나, 오크들이 길들여서 병사로 써먹을 때가 무서울 뿐이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민첩함을 가진 수인족들은 지혜도 있고 무리지어 생활한다는 점에서 오우거보다 무서울 수 있지만, 사제의 힘으로 혼돈의 힘을 각성한 용족들도 그에 못지 않게 강할 뿐만 아니라, 수인족들과 싸우기 위한 전법도 충실했다. 그 중 하나가 그물이었다. 충분히 굵고 질긴 줄로 만들고, 낚시바늘 같은 날카로운 갈고리가 곳곳에 달린 그물은 뒤집어 쓰기만 하면 끝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길, 시간도 벌기 어렵겠군.’
원기는 상대의 기세와 무기를 보면서, 난감함을 느꼈다. 하지만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쿨타임이 끝날 때 까지는 날뛰어 줘야겠다.’
원기는 있는 힘껏 호랑이 합체 스킬인 ‘포효’를 사용했다.
어흥하는 소리와는 좀 다른 좀더 위압적인 느낌의 포효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용기사단들은 피식 웃었다.
군마들은 이미 숱한 대형 몬스터와 수인족들과 전투 경험을 겪은 훈련된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포효소리에 놀라거나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알수 없는 심적 공포와 함께, 자신들의 고개가 자동적으로 숙여지며 움츠러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압도적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군마들 역시 움추려들면서 고개를 말았기 때문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던 말이 움추려드는 순간, 완전히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면서 전복했다.
흙먼지와 비명과 신음소리, 원기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준비한 날카로운 바늘이 달린 그물이 그들을 덮으면서 유혈사태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벌린 것은 원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기는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리고 희연의 뒤를 쫓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혼돈의 힘이 각성된 용기사들은 왠만한 부상은 금새 회복되기 때문이었다. 목이 부러진 놈들도 없지 않았지만, 심장이 관통되도 회복되는 회복력 덕분에 죽은 놈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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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상태는 어떤가.”
“당장 제 구실을 해줄 말은 없습니다. 적어도 이십 필 이상이 회복 불능입니다.”
다리 뼈가 부러진 말들을 회복시킬 능력자는 그들에게는 없었다. 사제들에게 가능한 것은 혼돈의 힘을 각성시키는 것 뿐이었다.
혼돈의 힘이 각성되면 트롤 저리가라 할 정도의 회복력을 발휘하지만, 치료 마법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부상 정도는?”
“혼돈의 힘을 전부 사용하면 대부분 완치될 겁니다.”
혼돈의 힘은 혼돈의 대지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에게 축척된다. 특히 용족은 그것을 몸속에 저장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드물게 태어나는 능력자들이 그것을 각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용족들은 사제라고 불렀다.
하루에 축척되는 혼돈의 힘은 각성시에 에인페리아와 동등한 수준의 능력과 무지막지한 회복력을 주지만, 각성 시간에는 제한이 있었다. 대부분은 하루 분도 못모으지만, 전사들은 사흘 분, 용기사들은 일주일 분, 단장은 약 열흘 분량의 혼돈의 힘을 축척할 수 있었다.
하루에 모은 혼돈의 힘으로 약 5분 가량을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각성시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용족들간의 전투시에는 사제들이 나서서 상대방을 강제 각성시켜서 상대의 혼돈의 힘을 소진시키는 전법도 즐겨 사용했다.
‘은호, 무서운 놈이군.’
제대로 각성된 상태의 용족은 수인족들에 비해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능력은 비슷하지만, 단단한 비늘에 무지막지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기동력이었다. 가까이 접근해서 각성시켜서 단숨에 제압하지 않으면 수인족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용족들은 외부와 거래를 해서 군마와 사냥개들을 사들여왔다.
하지만 군마를 타고 따라잡을 수 없는 수인족이라면 용족들은 기동력 때문에 상대가 불가능했다.
지옥의 불꽃이라 불리우는 불여우도 문제지만, 무시무시한 포효로 전장을 지배하는 은호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될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들이 불여우에게도 눈만 마주치면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그녀의 문제가 은호보다 가볍다고는 생각치 못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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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의 강제성이라는게, 현실 세상에선 무섭군요.”
[과연 그렇군. 희연양의 능력도 달리는 말에 적용될 수 있을거야.]
원기의 감탄에 장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기오빠처럼 하는 건 무리에요. 달리는 말과 일일이 눈을 맞춘다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희연은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녀는 원기님이라는 호칭을 버릴 생각이 없었지만, 원기 쪽에서 설득해서 오빠라는 명칭을 쓰게 만들었다. 은원에 확실한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녀에게 정체가 밝혀진 이상 원기도 그녀의 태도를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원기역시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게 피곤했기 때문에, 내심 안도하는 면이 있었다.
“내가 적의 눈을 끌테니, 그틈에 희연 네가 레그르를 해치워야 할거야.”
용기사단 문제로 연하를 통해서 디레에게 용족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용기사단의 추격을 물리친 사실을 듣게된 디레는 용족의 능력들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원기와 희연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기도 하고, 리디아의 배가교환의 능력이 작용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디레는 리디아에게 ‘자신이 보일 수 있는 호의’를 보일 뿐이긴 하지만 리디아의 대우가 보다 좋아지고 안전해지는 것은 확실했다.
확실한 것은 사제의 존재는 용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레그르의 호위로 있는 검갑룡 다라흐는 용족 최강의 전사로 일컬어지는 자였다.
쪼렙 학살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신에 큼직하고 두꺼운 비늘로 감싸인 놈이라 희연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물론 원기와 상성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지만, 희연의 능력을 고려한다면 그녀쪽이 레그르 말살에 특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좋아, 간다.”
원기는 결단을 내렸다. 전령보다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적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꽤 거리가 떨어진 이곳에 레그르를 죽이러 나타난다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령이 곧 도착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레그르를 죽이는 것은 무리라고 봐야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원기는 거침없이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고, 희연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천천히 적진을 향해 다가갔다. 적의 시선이 충분히 원기에게 몰릴 때까지는 섵불리 움직여서는 안되었다.
디레의 주문은 잔인하고 까다로운 것이었다. 레그르의 목을 베는 것만이 아니라, 레그르의 머리통을 들고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력한 사제들은 혼돈의 힘 역시 강력해서 잘린 목도 붙여서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만큼 적어도 한시간 이상 목을 붙일 수 없도록 들고 달아나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멀리서 짬타이거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희연은 재빨리 그리고 낮게 움직여서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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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아니, 직장이 주어졌다.”
장수한의 말에 호철과 찬균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직 고3인데요. 이제 대입 시험 준비도 하지 않으면...”
“솔직히 말해서 너희들 대학 갈 마음 있냐?”
“없겠어요?”
장수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대학갈 마음이 없을 리는 없었다. 게임 폐인이라 할지라도. 둘 모두 제법 머리는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프레이와 죽이 맞는 친분 관계로, 그들은 이미 블라결의라는 의형제를 맺었다고 들었다.
프레이가 게임에서 나와서 신으로서 사회복귀를 달성한다면(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장수한이 보기에 정상적으로 입시에 성공해서 대학가기는 많이 틀려 보였다.
“일단 외국에 있는 대학에 합격시켜 줄 것이고, 졸업장도 얻어 줄거다. 이름만 그럴 듯한 곳이지만, 별 문제는 없을거다.”
호철과 찬균도 장수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집안도 혜서 학원에 입학시킬만큼 꽤 상류층 집안이었다. 입시에 실패한 자식들을 위해서 어떻게 간판을 만들어주는지 모를 리는 없었다.
다만 그들은 그런 혜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찬밥신세이긴 했다.
“직장이라면, 어떤 일이지요?”
“부하들 인사관리나 좀 하면 되는 일이야. 제성형님과 내 지시, 그리고 감독은 받아야겠지.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의 사령관이야. 너희들끼리 어느쪽 맡을지 알아서 결정해.”
템플 기사단에서 쫓겨난 과격파로 나이트 엔젤을 습격하는 조직으로 알려진 부대는 ‘테러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불려지고 있었다.
“에? 테러 나이트는 나이트 엔젤의 적이 아니었어요?”
호철이 황당한 듯 반문했다. 찬균 역시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수한은 한숨을 쉬었다. 계약자들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게임 폐인이다보니 알 기회가 없었다.
“그래, 같은 조직이다. 나이트 엔젤의 엘프들이 테러 나이트 부대에서 활동중이야. 그리고 계약자가 아닌 이능 각성자들이 서포트를 하고 있지.”
“제가 테러 나이트를 맡을께요. 제복이라든지 디자인 같은건 사령관 마음대로지요?”
스타워즈 오덕인 호철이 나섰다. 그는 입으로 임페리얼 마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찬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장수한은 두 사람을 선택한 것이 옳은 것인지 살짝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잘 될 거라고 믿기로 마음먹었다.
현재의 나이트 엔젤들 중 상당수를 미드가르드에 돌려보내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현대 사회를 보고 배운 그들이 미드가르드의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문화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새로 유입되는 멤버들 가운데는 다크 엘프들이 많았다.
그들은 프레이야에 대한 충성심은 하늘같지만, 계약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4인회의의 멤버들에 대해서는 엘프들처럼 공경심까지는 아니라도 존중하는 편이지만 다른 계약자들에 대해서는 반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엘프들도 따르긴 하지만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프레이의 친구로 간주되는 두 사람은 다크엘프들이 특별히 존중하는 만큼, 충분히 써먹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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