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may the force be with you
용족 최강의 전사 다라흐.
원기는 그 말을 절감하고 있었다. 짬타이거 드레스업으로 더 커진 덩치를 넘어서는 거대한 덩치와 단단한 껍질, 그리고 무지막지한 파워는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대사제 레그르의 진형에는 레그르만이 아닌 다른 사제들도 다수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희연이 레그르만 처리하면 빠져나올 충분한 틈이 만들어지리라고 예측했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몬스터 융합을 통해서 최대의 힘을 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원기는 연신 타격을 입고 물러나야했다.
원기의 강력하던 손톱도 검갑룡의 비늘을 뚫지 못했다. 비늘틈을 긁어서 상처가 났다고 해도, 그 상처의 깊이는 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시간을 끈다는 것도 무리였다. 융합하고도 5분을 버티기 힘든데, 50분 이상을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원기는 몬스터 융합 시간이 다 되어가자, 안색이 변했다. 희연을 위해 시간을 충분히 끌지 못한다면 레그르를 잡기는 힘들어질게 틀림없었다. 부활을 이용해 반복해 습격한다고 레그르를 잡기 쉬워질 리가 없었다.
장비를 풀로 갖춘 지금이 아니면 성사시키기 힘들터였다.
원기는 재빨리 포효를 이용해 적들을 움추리게 만든 다음 가까이 있는 용족의 다리를 붙잡고 휘둘러서 검갑룡을 후려 갈겼다. 하지만 두꺼운 갑옷과 무지막지한 완력 때문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원기가 붙잡아서 휘두른 용족만 처참하게 터져나갔을 뿐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등 뒤에 대검을 아직 쓰지는 않았지만, 몬스터 융합시의 발톱은 대검보다 더 날카롭고 단단했다.
‘시간 끌기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건가.’
원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양손에 대검을 들어올렸다. 넘치던 힘이 사그러들고, 더이상 포효를 쓸 수도 없었다.
원기의 특기인 페인 마스터리가 검갑룡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두꺼운 비늘 때문이었다.
상대에게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발톱이 스치는 순간, 비늘 틈에 상처를 입히기는 했지만, 그 순간에 맞춰서 고통을 발동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원기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검갑룡의 발이 원기의 복부를 후리듯이 날아왔다. 원기가 그것을 피해 주저앉자 머리위로 검갑룡의 꼬리가 떨어져 내렸다.
쿵하는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가까스로 바닥을 굴러서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다행히 사지가 무사할 수 있었다.
꼬리는 날카로운 비늘들이 검처럼 돌출되어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패여 나갈 것은 틀림없었다.
구르며 몸을 일으킨 원기는 양 손에 검을 들었다. 구르며 입을 돌에 부딛친 듯 입속에서 피의 맛이 느껴졌다.
다크엘프 에인페리아 그렌을 떠올렸지만, 그렌은 동급의 체격이라면 상대는 훨씬 큰 상대였다. 그렌과의 전투 경험은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제일 많이 싸워본 상대는 희연이로군.’
그 순간, 원기는 깨달았다. 자신과 희연의 대결이나 검갑룡 다라흐와 자신의 대결이나 비슷한 것이었다.
원기는 과감하게 검을 하나 바닥에 던져서 박아 넣고, 두 손으로 검을 쥐었다. 그리고 열심히 희연의 모습을 머리 속에서 그려 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희연의 모습에 맞게 자신의 움직임을 만들어 나갔다.
‘뭔가 달라.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곳에서 전혀 달라.’
가볍게 움직이는 것은 비슷했지만, 자신에게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예리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리함, 그것만이 상황을 타개해 줄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원기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검갑룡과의 대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갑룡은 어느 틈에 덩치큰 짬타이거가 되어 있었고, 자신은 조금씩 희연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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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이군. 하지만 내 승리다.’
검갑룡은 은색 호랑이를 상대로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그의 회복력과 체력은 평소 비축해 둔 혼돈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끝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 은빛 호랑이는 자신보다 강한 자와 만난 일이 없었던 듯, 자신에게 위축된 기색이 역력했다. 특이한 힘을 가진 울부짖음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몇번 공격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움추린다는 것은 일종의 방어이고, 그 자세를 갖추기만해도 그의 방어력을 철통보다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발톱은 제법 날카로워서 보검으로도 상처받지 않는 그의 피부에 몇번 발톱자국을 남겼지만 그게 전부였다. 상대의 사기가 떨어지고, 위축되는 모습이 보였다. 힘이 다해가는 것이었다.
‘슬슬 끝이로군’
마음이 여유를 얻기 시작하자, 주위 상황이 조금씩 더 보이기 시작했다. 진지 한쪽 편에서 심상치 않은 소란이 일어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슬슬 각성을 중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급의 용전사들은 사제들의 각성의 노래 속에서도 각성 상태를 중단하거나, 각성하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각성의 노래 없이 각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각성을 억제함으로서 혼돈의 힘을 저장하는 기술은 후천적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우선 이 놈을 빨리 제압해야겠군.’
검갑룡이 결심을 굳히고 한발 앞으로 나섰을 때, 은빛 호랑이가 등에 엑스자 형태로 매고있던 대검을 뽑아 양손으로 쥐었다. 그러더니 한자루를 땅 바닥에 꽂아 두고는 한 자루를 양손으로 쥐었다.
‘대체 뭘 하고 싶어하는 건지.’
검갑룡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 나갔다. 그리고 날아오는 검격, 그것은 그리 날카롭지도 강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의 비늘을 손상시킬 수 없는 그런 공격이었다.
‘차라리 발톱을 쓰던 때가 훨씬 낫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팔목에 달린 검모양 비늘을 휘둘렀다. 그러자 은호는 촐랑거리는 듯한 가벼우면서도 어색한 동작으로 피했다.
‘용을 쓰는군.’
상대가 전법을 바꿨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날렵한 전사가 크고 육중한 전사에게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대를 다뤄본 경험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볍고, 별 위협이 되지 않는 공격들을 무시하면서, 상대방을 몰아쳐서 숨통을 끊는 것이 그의 전형적인 수법이었고, 생각대로 은호를 몰아칠 수 있었다. 그러던 한 순간, 상대의 대검이 묘하게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헉.’
그는 숨을 들이키며 몸을 재빨리 피했다. 오랜시간 전장에서 연마한 감이 그 일격이 위험함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검은 가볍게 그의 가슴 비늘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서 피가 솟았다. 쉽게 갈리지 않는 비늘이 너무도 가볍게 베인 것이었다.
‘검의 움직임이 전혀 달라. 어떻게 된거지?’
검갑룡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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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는 머리속을 비우고, 희연의 움직임을 최대한 따라하기에 바빴다. 그것만이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희연의 움직임이 갖고 있던 의미를 몇가지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날붙이의 사용법이었다.
낫으로 풀을 벨 때, 낫의 날이 가진 절삭력을 최대한 쓸어내면 질긴 풀들이 가볍게 베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원기는 자신보다 날렵한 희연을 상대해왔기 때문에, 맞추기 급급한 면이 있었다. 게다가 무지막지한 힘과 묵직한 대검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검의 절삭력을 끌어내지 않는다해도 상대를 박살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대검은 날카롭고 얇은 몽둥이로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희연의 경우엔 달랐다. 베기 위한 도를 중점적으로 연마해 온 그녀는 날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가볍고 얇은 도로 최대의 공격효과를 얻어왔다.
그녀의 도는 공기를 가르고, 적을 가르는 ‘칼’이었다.
원기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서, 무엇이든 절단하는 궤적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 방향이나 범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정확하게 그것을 적에게 맞추는 것은 네번에 한번 꼴도 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여전히 위태로웠다. 검갑룡의 공격은 하나 하나가 치명적이었다. 몬스터와 융합이 풀린 만큼, 잘못 맞으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힘이 아니라, 기술로 상대를 이겨나가는 것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기술을 연마해서 강적을 상대해나간다는 것은 중독성이 강한 쾌감이기도 했다.
희연의 흉내를 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배운 모든 검술의 기본이 희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 중 상당부분들이 이해가 가면서 그는 무술이 가진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뭐해요! 빨리 도망쳐요!”
갑자기 튀어나온 희연이 그를 스쳐지나가듯 도망치고 있었고 그 뒤로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적들이 물불 안가리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대사제 레그르를 잃은데다가 적이 도망가자 통제를 못하고 분노에 미쳐 쫓아오는 모습들이었다. 지금까지 원기를 둘러싸고 있던 적들이 검갑룡의 통제하에 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휘말리면 죽는다.’
원기는 직감하고 희연의 뒤를 따라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검갑룡은 그런 원기의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어차피 추적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고, 심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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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 마고라고 합니다. 호철님의 비서 겸 보좌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호철은 눈 앞에 나타난 다크 엘프 여성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선탠을 잘 한 듯한 피부색깔에 대조적으로 밝아보이는 백금발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물론 미모는 뛰어나지만, 그가 감탄한 것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마치 흑표범같군.’
표범이 연상되는 묘한 분위기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다크 엘프 여성이었다. 정장에 가까운 슈트에 스커트 차림이 안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것도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래. 난 호철이라고 하네. 앞으로 잘 부탁하네. 그건 그렇고 옷차림이 좀 그렇군. 내가 생각하기엔 비서라면 역시 차이나 드레스가...”
“사양하겠습니다. 수한님께 들었습니다. 호철님을 옆에서 잘 감독하는게 보좌역이라고 말이지요.”
호철은 감독역이라는 그녀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역시 생각대로 쉽게 풀리진 않을 듯 했다.
영상회의를 이용한 원격 근무라는 것 말고는 그리 메리트가 없어보였다. 비밀의 흑막 역할로 임무만 하달하면 된다니까,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내일 이 시간에 영상회의를 시작할 겁니다. 이 회의실을 이용하시면 역 추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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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임페리얼 마치?’
테러 나이트 뉴욕 지부장 제리 골드먼은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테러 나이트들을 이루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현지 협력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부분은 돈으로 고용된 인물들이지만, 악인들은 아니었다.
테러 나이트가 대외적으로는 악의 조직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로 그들이 죽인 것은 나이트 엔젤 외에는 갱이나 부패 경찰들이었다.
그리고 핵심멤버이자 간부들은 그들의 피해를 입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회유된 사람들이었다.
나이트 엔젤에게 적대한다는 점과, 폭력에 의한 응징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렇게까지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조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국가 차원에서 본다면 나이트 엔젤이나 테러 나이트나 범법자들임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쉬-익.
영화에서 많이 듣던 숨소리와 함께, 화면에 등장한 것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갈색 피부의 은발 미녀를 옆에 낀 ‘다스 베이더’였다.
영상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웃긴 것은 다스 베이더의 모습을 한 보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왠지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 아임 유어 파..드...컥!”
차이나 드레스의 은발 미녀가 다스 베이더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그리고 그녀가 다스 베이더의 귀에 대고 몇마디를 한 뒤, 갑자기 화면의 스피커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하늘의 소리라도 되는 양,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제군들. 테러 나이트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한다.]
간단하지만, 충격적인 인삿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비로소 인지를 초월한 특수한 조직의 일원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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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왠 외국인들이 저래 많아? 세계 정복을 꿈꾸는 외계인도 다 한국말 써야 되는거 아냐? 악의 조직답게 한국 정복에서 시작해야지. 일본 애니라면 일어쓰고, 미국영화면 영어쓰는게 정상아냐.’
임페리얼 마치와 함께 시작되는 영상회의를 기대했는데, 수많은 화면이 열리면서 각양각색의 외국인들의 모습이 우글거렸다.
준비한 연설 원고가 있긴 했지만, 한글로 쓰여 있었다.
“참, 한국어를 사용하시면 안되요. 한국에 본거지가 있다는 것도 호철님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비밀이에요.”
다스 베이더의 헬멧을 보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마고였지만, 할 수 없다는 듯 넘어갔다. 어차피 호철의 얼굴은 영상처리를 통해서 보이지 않게 처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별 상관 없다고 본 것이었다.
그리고 호철은 그녀의 한국말 금지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영어라고는 굿모닝, 하와유 같은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 아임 유어 파..드...컥!”
마고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능은 뒀다 뭐해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머리속으로 메시지를 전하세요.”
그리고 그것은 게임말고 발동할 일이 없을 듯 하던 호철의 이능 개별광역지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테러 나이트들의 구성원들이 조직의 뒤에는 외계인이 숨어있는게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주선을 주웠거나, 외계인을 고문했거나, 외계인이거나 셋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마법이나 판타지, 종교적인 것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든 것은 호철의 다스 베이더가 가져온 임팩트 때문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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