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개목걸이
“이거 받아요. 지도하고 보석이에요.”
연하는 원기에게 가벼운 주머니를 넘겼다. 그녀의 비행 능력은 활공에 의지하는 것이라 무거운 짐을 나르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하늘을 날아서 이동할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이 혼돈의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널 전령으로 쓰다니 예상 외인걸.”
“디레 녀석은 리디아 언니를 완전히 여신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수한 선생님 지시대로 그렇게 연기하고 있어요. 제가 에인페리아인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디레는 리디아를 여신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연하의 활동 범위를 넓혀 주었다. 여신을 쥐고 있는 한은 에인페리아들이 자신을 배신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일행에게 있어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럼, 전 돌아가 볼께요.”
“괜찮겠어?”
희연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묻자, 연하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생각보다 대우가 좋아요. 완전 공주님 대접이라니까요. 이런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디레에게 있어서, 연하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활을 사용하는 전투 능력은 발군이지만, 그게 그다지 필요한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처세술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순진해서 효과적으로 정략을 발휘할 인재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디레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정적들은 연하가 정략적이지 못하고 순진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연하를 용신으로 받아들일 의사가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연하를 앞세워서 뒤에서 조종하는 디레의 위치였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순진한 연하의 비위를 맞추고 디레를 실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레는 리디아를 쥐고 있으므로, 연하에게 다른 이들이 환심을 사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적들이 자신들이 연하를 조종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을 가지고 연하를 용신으로 인정하면 인정할 수록 디레의 힘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이 난 것도 디레고, 혼자 바쁜 것도 디레였다.
그리고 원기와 희연을 효과적으로 써먹을 욕심으로 그는 연하를 통해서 정보와 돈을 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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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가 건내준 지도에는 용족들의 부대 배치와 세력권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쉽게 알아낼 수 없는 기밀 정보였지만 디레는 자신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내 준 것이기도 했다.
대륙의 북서부는 용족이, 그리고 남동부는 수인족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수인족들의 체계였는데, 유명무실한 황가가 존재하고 있었고, 네 개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세력의 우두머리는 왕을 자처하지만, 세습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세상 같다고 봐야겠지.]
장수한은 간단히 말했다.
기본적인 치안과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것은 황제와 군대의 몫이었다. 그리고 사왕은 변경백처럼 각 방면의 군대를 지휘해서 영토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의무라기보다는 권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각 세력의 우두머리는 말 그대로 강자존, 혈통보다는 강한 자가 왕이되는 시스템이었다.
마치 무림 문파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동물과 인간이 융합된 형태인 진수족과 몸의 일부가 동물과 융합된 반수족들 가운데서도 강자들만이 각 세력에 들어가서 강함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수인족들이 세상에서 인간의 수명은 삼십대까지 였다. 늙어서 힘이 약해지고 시들해지면, 도축이 이뤄져서 식량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 한한 것만은 아니었다. 반수족이나 진수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강자라고 해도 나이를 먹고 약해지면, 다른 이들의 식량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강함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유지해야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무림문파처럼, 강함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생기고, 그에 대한 동경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디레의 지시는 바로 ‘조왕’을 노리라는 것이었다.
전신이 호랑이화 되어있는 원기는 진수, 혹은 신수로 볼 수 있지만, 귀와 꼬리만 여우화 되어있는 희연은 반수로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희연이 이빨을 주무기로 하는 아왕 집단에 들어가서 아왕의 좌에 올라서는 것은 어려웠다.
수인족들이 추구하는 것은 강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과 교접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미추에 대한 감각은 인간들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아름다운 모피나 날카로운 이빨, 예리한 발톱 등도 미추에 포함되기는 했다.
문제는 인간적 아름다움이었다. 희연처럼 인간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반수족다운 동물적 부분이 포함된 반수들은 암수를 가리지않고 권력자들이 총애하는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강한 자식을 위해서 진수를 찾지만, 가능하면 예쁜 짝이 좋다는 이유로 첩실 등을 들일 때에 희연 같은 타입을 찾는다는 사실이었다.
수인족의 영역에 들어서자, 희연은 그 아름다움과 희소성 때문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 마을에서 역마차를 이용하면 되는 건가?”
원기는 지도를 살폈다. 보석을 바꾸기에도 역마차라는 무장 수송단을 이용하기에도 좋은, 제법 큰 규모의 교역도시였다. 디레가 챙겨준 보석을 돈으로 바꿔줄 만한 규모의 도시는 이 혼돈의 대륙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혼돈의 땅은 황무지가 많고, 물을 얻을 만한 곳이 적은 편이었다. 제법 나무가 우거진 산들이 있지만, 그런 곳에는 제법 강력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그렇고 사람들 시선이 거슬리는군. 그렇게 특이하진 않을텐데.”
희연의 불여우는 불꽃의 오러를 끄면 붉은 여우가 되었다. 그리고 은호역시 금속 오러를 끄면 백호가 되었다. 시베리아에 제법 있는 백호는 전설의 동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붉은 기가 도는 여우와 백색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호랑이로 보여졌다. 그리고 용족들에게야 엄청난 악명을 떨쳤지만, 수인족들사이에는 그들의 소문 같은게 퍼졌을 리는 없었다.
“음, 원기 오빠 같은 진수는 드문 것 같아요. 사람들 대부분이 반수로 보이는군요.”
“일주일에 한번씩 수도로 가는 역마차가 있고, 다음 역마차는 나흘 후가 되는군. 적당한 숙소를 잡아야겠어. 먹을 것은 좀 조심해야겠지.”
혼돈의 대륙에서 ‘고기요리’는 대부분 그 재료가 한정되어 있었다. 소고기 요리는 소와 반수가 된 인간일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라고 봐도 좋을 터였다.
혼돈의 힘 때문에 기형이나 몬스터가 곧잘 태어나지만 치유력이나 생명력이 넘치기 때문에 전염병이 돌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단 숙소를 잡고 쉬도록 하지.”
식당겸 주점, 여관을 겸하는 가게를 향해서 원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들 일행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 이유중 하나는 바로 굴베이그였다. 순수한 인간으로 보이는 노예 계집아이였다. 그런 노예 계집애가 진수의 어깨에 올라탄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손이 진수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수인족들에게 있어서 목덜미, 특히 경동맥이 지나가는 부근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건드리게 허용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완전히 굴복했다는 뜻이었다. 왠만한 작은 도시에선 구경하기도 힘든 진수, 그것도 강력하기로 이름난 호랑이형 진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미친놈 아니면 변태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수족 세상에서도 미모와 특수한 희소성을 자랑하는 희연의 목이었다.
그녀의 목에는 목걸이가 없었다.
목걸이가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속해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미성년의 여식에게는 부모가 목걸이를 주는게 일반적이었다.
목걸이가 없다는 것은 짝을 찾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나 사왕의 첩실에 어울릴 듯한 ‘힘없어 보이는’ 미녀가 날 꼬셔달라는 차림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짝이 없는 암컷들도 ‘난 연애에 관심이 없어요. 적어도 지금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라는 의미를 지닌 목걸이들을 하고 다니는게 보통이었다.
목걸이를 하지 않는 여성은 창녀나 짝을 빨리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희연의 단정한 옷차림과 허리에 찬 검, 그리고 담백한 분위기 때문에 그녀를 창녀라고 여기는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녀를 꼬셔보려는 이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곁에 함께 걷고있는 무시무시한 진수가 없었다면 벌써 난리가 나도 크게 났을 판이었다.
디레가 수집한 정보는 제법 구체적이었지만, 이런 풍습에 대한 부분까지는 터득하지 못한 탓이었다. 특히 연애라는 것을 모르는 용족들에게 있어서는 분석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정보였다.
‘마을 입구에서 눈이 맞은 건 아닐텐데...’
‘저 호랑이랑 일행이 아닌건가? 그럼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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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회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호철님.”
마고는 요염한 느낌의 가죽 드레스를 입고 호철에게 말했다. 호철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지만, 특주 다스 베이더 헬멧이 그걸 가려주고 있었다.
마고에게 옷차림 같은 것을 요구하면, 그 자리에선 말도 안된다고 일축해버리지만 다음날 보면 요구한 차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말한대로 호철에게 그녀에 대한 명령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다크엘프들은 모두 게임에서 레벨업 과정을 거치면서, 프레이와 호철, 찬균의 친분 관계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막상 거절은 하고 나서도 이리 저리 생각해 보고는 호철의 요청대로 입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잠시 후, 회선이 열리고 각 화면 안에는 스톰트루퍼의 복장을 한 테러 나이트의 협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까지 스톰트루퍼의 복장을 한 것은 바로 수한의 지시였다. 그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거나 도청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호철이 지시하는 내용은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들이 하는 발언이나 반응은 보는 사람들에게 뜬금없게 느껴지기 쉬웠다. 하물며 영상에 등장한 것이 다스베이더 코스플레이 한 인물이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스톰 트루퍼의 복장을 하고 있다면, 그걸 가지고 뭔가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이 회의하는 장면을 도촬, 녹화한다고 해도 법정 증거는 커녕, 동영상 사이트에서도 바보취급 당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해둔다. 우리는 악의 조직이다.]
호철이 준비된 원고 내용을 염파로 전달하자 사람들은 긴장했다. 그들도 내심 테러 나이트가 어떤 조직인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그들 가운데 우리가 택한 것은 미움이고 증오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악이다. 나는 많은 것들에 대한 미움을 가지고 있다. 사소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특히 난 커플들이..큭]
다스베이더의 염파가 갑자기 끊기고 영상 내의 다스베이더가 몸을 뒤트는 모습이 보였다.
‘꼬집혔군.’
‘쓸데 없는 소리를 하니까.’
“쯧쯧”
누가 무의식 중에 소리를 내어 혀를 차자 방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누군지 찾으려는 듯 움직였지만, 스톰 트루퍼의 헬멧 덕택에 알 수는 없었다.
다스 베이더가 진짜 보스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다들 눈치채고 있었다.
[우리는 악을 증오하기에 악을 선택했다. 용서를 원치 않기에 처벌을, 복수를 원했다. 나이트 엔젤같은 위선자들과 우리는 다르다. 그들은 드러난 악만을 처리하며 가증스런 외모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위선자들과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악을 용서치않고 말살할 것이다.]
다스베이더의 연설문에 테러 나이트의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테러 나이트의 협조자가 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었다. 악을 증오해서, 불법적인 방식으로라도 악을 처단하는 악이 되겠다는 것이 테러 나이트의 주장이었다.
나이트 엔젤은 테러 나이트의 적이지만, 그들과의 싸움에 협조자는 필요치 않았다. 테러 나이트의 협조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처단해야 할 악이었다.
[나이트 엔젤은 사회의 위정자들에게 아부를 한다. 그들은 정의라는 탈을 뒤집어 쓰기 위해서 악한 권력자, 독재자들에게도 꼬리를 친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악이기에, 우리가 혐오하는 악을, 악으로 처단할 수 있다. 우리의 원동력은 미움이다. 그리고 질투인..것..으윽]
염파에 신음까지 전해져왔고, 또 회의실 한 구석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늘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굳이 거부감있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들이 증오하는 것들에 대한 제보를 받겠다. 그리고 그 제보들과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때, 우리는 악의 이름으로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꼴보기 싫은 것들은 내버려 둬선 안된다. 치울 것은 치워야 한다. 나 그대들에게 선언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다스베이더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오른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서 나치를 떠올린 이들이 헬멧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지크 지오..캑”
'역시 나왔다. 뒤통수 후려치기'
‘맞을 줄 알았다.’
‘숏다리군.’
‘나도 저런 미인에게 맞아보고 싶다.’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테러 나이트와 그 협조자들의 발족 모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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