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선물
우각문이라고 해야 할지, 소다리 길드라고 해야할지 애매한 집단에 대해서 원기 일행은 우각문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판타지적 용병 길드보다는 확실히 무림 문파처럼 깊은 관계들을 가지고 있고, 문파 특유의 체술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각왕, 뿔가진 초식 동물들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각왕을 중심으로 한 각왕련은 주로 다리를 살린 문파들이 많았다.
하반신이 수인화된 이들을 위한 문파들이 많은 편이었다. 고양이나 개과의 하반신을 가진 이들도, 아왕맹이나 조왕맹보다는 각왕련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각왕련에서 수련하는 무기는 주로 활과 단검 투척술, 투창 등으로 알려져 있었다. 빠른 발을 살린 원거리 공격을 위주로 익히는 문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권왕련은 그 이름과 다르게, 권법 보다는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곳으로, 다리가 아닌 다른 신체 부위가 수인화 된 반수족들로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곳이었다.
권왕련의 권왕을 필두로 각 무기의 마스터들이 존재했다. 소드 마스터처럼 일정 경지를 넘어선 자들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명실공히 그 무기의 최강자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장수한은 ‘이룰 성成’자를 사용해서, 검성, 창성, 부성, 곤성으로 불렀다.
재미있는 것은 검성이었는데, 단병으로서의 검과 도를 다루는 인물이라기보다는 방패 기술의 달인이었다. 한손에 방패를 들고 있기 때문에 보조적으로 짧은 무기를 사용할 뿐이지, 검이나 도가 무기로서 우월하다는 인식은 전혀 없었다.
방패가 워낙 우월하니, 어쩔 수 없이 반편짜리 무기인 검과 도를 쓴다는 것이 이 대륙의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에, 검성보다는 패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도 몰랐다.
발이 빠르지 않으면서 양 손으로 무기를 쥐고 싸울 수 있는 자들, 그런 이들의 집합이 권왕련이었다.
호랑이 머리나, 늑대 머리를 지닌 이들도, 권왕련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서, 머리 수로는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곳이 권왕련이었다.
반면, 아왕맹과 조왕맹은 규모 면에서 현저히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소속된 이들은 대부분 늑대를 비롯한 개과계 맹수의 진수거나 호랑이나 사자를 비롯한 고양이과계 맹수의 진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극강의 강자들이 무리를 지어 모인 곳으로, 소수정예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문파는 정해진 등급에 따라서, 정식 문도의 수가 정해졌다. 최고 등급의 문파는 500명, 최저 등급은 10명까지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식 문도들은 수인족들의 나라에서는 귀족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는다. 무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으며, 많은 규제들로부터 자유로웠다.
아왕맹이나 조왕맹 소속 문파들은, 각 문파에 주어진 정식 문도의 숫자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소수 정예이면서도 높은 등급의 문파들이고, 권왕련과 각왕련은 정식 문도가 되지 못한 수련생들이 많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각 문파들은 정식으로 인정받는 문도수를 늘이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무림대회에 참가해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했다.
원기는 그런 사실들을 여객 마차에 함께 탄 곰같은 사내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머리는 곰이고, 몸뚱아리는 인간이었지만, 전체적으로 털이 많은 거한이라서 그냥 곰처럼 보이기도 했다.
빼빼 마른 몸에 곰머리를 가졌으면 대단히 어색했겠지만, 보통 반수들은 인간 부위에도 어느정도는 야성이 반영되는게 일반적이라, 그다지 어색한 외모는 되지 않았다.
‘전설의 곰 인간이 있다면 딱 저모습이겠지.’
그는 권왕련 소속 문파인 두부문 소속이었다. 머리가 반수이면서 도끼를 쓰는 문파라고 장수한이 붙인 이름이었다.
그는 방패와 짧은 도끼를 장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이가 나쁘진 않은 것 같네.’
흔히 보는 마교와 사파, 정파 같은 분쟁은 없는 듯 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문도수 제한이었다.
물론 4대 세력간에도 경쟁이 붙어서, 자리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력간 결투에 참여하는 최강자들의 문제였다.
세력간 우열을 가르는 문제는 아래 소규모 문파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고만고만한 경쟁상대였다.
재카이라는 곰머리 사내가 싫어하는 것은 수부문이었다. 고릴라를 비롯해 유인원의 팔을 가진 이들이 소속된 곳으로 그들 때문에 등급 심사에서 두부문이 한단계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수부문 놈들 덕택에, 문도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지. 빌어먹을.”
재카이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문도수 제한 때문에, 각 문파들은 나이들거나 실력이 떨어지는 문도를 방출해야 했다. 문도수 제한이 줄어들면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렇게 방출되는 문도들은 군대로 적을 옮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수인족들의 국가는 문파들을 통해 쓸만한 무사들을 양성해서 군으로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체계로군.’
4대 세력의 허락 없이는 황위 계승자가 황위를 잇는 것조차 안될 정도이긴 하지만, 정예군대를 통수할 수 있는 황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었다.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와도 비슷하군.]
장수한이 파티채팅으로 끼어들었다. 재카이와의 대화는 장수한 역시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재카이에게 들은 정보를 정리해서 사회상을 이해하는 능력은 수한을 따를 수는 없었다.
“자네도 함께 몬스터 사냥에 끼는 것은 어떤가? 자네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걸세.”
재카이는 유쾌한 투로 말했지만,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다. 원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자, 그는 어깨를 으쓱 흔들어 보였다.
“흐흠, 미안하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네가 사냥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노예들의 소유권은 어찌되나 궁금했네.”
“노예? 노예라니 무슨 소리지?”
원기는 어차피 나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만큼, 나이를 무시하고 평대했다. 어려보이면 손해보는 일이 많은게 세상살이였다.
“저 둘 말일세. 목에 판매용 노예의 목걸이를 하고 있지않나.”
원기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저들은 노예가 아니야. 실수를 했군.”
“무슨 소린가, 적어도 저 아이도 노예가 아니라고? 가족 중에 반수라도 있는건가?”
반수를 낳을 수 있는 혈통의 인간들은 하급 평민 취급을 받았고, 문파에 정식 문도가 되지 못한 반수는 상급 평민이 되었다.
그리고 반수 혹은 진수와 혈연을 갖지 못한 이들은 그냥 노예로 취급을 받았다.
문도, 상급평민, 하급평민, 노예라는 형태의 신분 제도가 이 대륙에는 자리잡고 있었다.
“일단 둘 다 노예도 아니고, 팔 생각도 없네. 목걸이를 벗어.”
원기의 말에 굴베이그는 순순히 목걸이를 풀었다. 하지만 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전 이 디자인이 맘에 들어요. 다른 사람 시선에 얽매여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군요.”
재카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머리 속이 이상한게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는 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굴베이그도 다시 목걸이를 찼다.
희연의 생각대로 이 대륙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보든 사실 관계 없었다. 주인이 원기로 되어있는 이상, 딱히 누가 그들에게 간섭할 일도 없었다.
“저대로 괜찮은건가?”
“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희연은 원기를 자신의 주군처럼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는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종속적인 자세를 취한 다음부터 잔소리가 늘었다.
심복이 생겼다기보다는 엄마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자신을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 가끔은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원기는 모르고 있었지만, 희연에게 무언가 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성의 배려 덕분에 왠만한 씀씀이로는 돈이 줄지 않는 풍족한 상황이어서, 굳이 뭔가를 사줄 필요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가끔 같이 식사를 할 때 밥값을 낸 적은 있어도, 무언가 선물이나 장신구를 사준 적은 없었다.
“몬스터 사냥도 괜찮겠지. 그건 그렇고 몬스터가 습격해 오는 일이 잦은가?”
“허허. 자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이런 규모의 역마차를 몬스터들이 습격할 리가 있겠나. 몬스터 사냥은 길닦이라고 할 수 있지.”
도시와 도시 사이는 기본적으로 황무지지만 초원과 숲들이 곳곳에 있어서 몬스터들이 서식할 만한 곳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역마차가 다니는 길 주변의 몬스터 서식지를 지나다니면서 토벌하는 것이 무장 호송단의 또다른 일이기도 했다.
몬스터들의 서식지를 습격해서 숫자를 줄여놓지 않으면, 몬스터들이 증식해서 경로를 바꿔야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수인족들의 전술을 구경할 수 있는 찬스로군.’
-----------------------------------------------
오딘은 매우 빠르게 프레이야 제국의 기술들을 훔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휘하의 인간들에게 구현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일부 드워프들을 비롯해 다양한 재능을 지닌 종족들이 오딘을 위해서 프레이야 제국의 기술들을 베껴내고 있었다.
그 결과, 오딘의 대장장이들이 프레이야 제국의 기술보다 한 단계 진보한 ‘증기 기관차’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미드가르드에 있어서 엄청난 업적이었지만, 현대 사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오딘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열심히 증기 전차를 꿈꾸며 프레이야 제국의 곳곳을 쉴 새 없이 기웃거렸다.
-------------------------------------------------
“천공의 성좌가 1인용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바쁠거야.”
조제성은 혀를 찼다. 프레이를 통해서 알아낸 사실들을 보면, 신이라고 하는 이 정신 생명체들은 1인분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수백명 분의 사고를 해낸다던가, 동시에 수백 곳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천공의 성좌를 통해서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베낀다고 해도, 그 효율은 그다지 높을 수가 없었다.
어찌 본다면, 인터넷 검색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정확히 그 작업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 곳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프레이를 통해서 천공의 성좌에 대한 분석 작업 역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천공의 성좌는 세계수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오딘이 어떤 세계수를 통해서 들여다보는지 알아내서 감지하는 마법을 프레이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세계수를 통해서 보여지는 영상을 왜곡하는 방법이 없는지도 찾아보도록 했다.
“인간들은 정말 말도 안되는 발상을 해내는군.”
프레이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카메라를 통한 감시 기술과 그것을 회피하는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영상을 왜곡하는 기술은 아직 불가능했지만, 오딘의 시선이 어떤 세계수에 머무르는지 감지하는 마법은 실현 단계에 다가가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