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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67화 (167/497)

167화 입영전야

나이트 엔젤의 파일럿인 엘프 티리의 장비는 고속전투형 알파 0.52버젼이었다.

테러 나이트의 컨셉은 화력을 중시하는 방식이라면, 나이트 엔젤의 컨셉은 기본적으로 기동성과 움직임을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티리의 경우 계약을 맺은 정령은 바람의 정령이었다.

엘프들 가운데 최근에 죽은 엘프가 드물어서, 정령화된 이들도 많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조화를 사랑하는 종족이라, 미련없이 ‘성불’ 해버리는 이들이 많았다. 티리의 경우 최근 돌아가신 할머니가 정령화된 케이스였다.

“할머니 귀신이랑 함께 싸운다니 좀 웃기지 않냐?”

호철은 팝콘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할머니라고 해도, 엘프들에게 있어선 혈연 개념이 약하니까.”

가족보다는 마을의 개념이 강한 엘프들에게 있어선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는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그거보다, 저 두두두 소리는 꽤 거슬린다.”

찬균은 다크엘프의 통신 회선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미인이라곤 해도 여성 다크엘프가 입으로 두두두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음성 인식 방식이 현재로선 가장 효율적이야. 남자 다크엘프의 경우엔 더 듣기 민망하지.”

호철은 쓴 웃음을 지었다.

나이트 엔젤의 등부에 달린 노즐에서 고압의 압축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을 이용해서 나이트 엔젤은 바닥에 깔리듯이 엎드려서 다가왔다.

무시무시한 고속 기동이면서 화기류로 공격하기 힘든 사각을 노린 것이기도 했다.

“헉!”

다크엘프 라이르는 그 모습에 당황해서 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재빨리 하늘로 뛰어 올랐다.

“지금! 위!”

그리고 그 순간, 티리는 승리를 확신하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팔로 땅을 박차는 순간, 다리부의 고압가스 노즐이 분출되었다.

하지만, 다리의 각도가 좋지 않았다. 간단한 의사 전달과 공유는 가능하지만, 미세한 제어까지 완벽하게 이뤄지진 않았다.

치명적인 빈틈을 노출한 상대를 노렸지만 몸이 멋대로 스핀하면서 허공을 갈랐다.

“파이어!”

라이르의 외침에 허리 부분에서 강렬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근거리 전용 화염방사기였다. 하지만 그 화염은 나이트 엔젤에게 명중하지 못했다.

고압의 압축가스는 추진력을 얻는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화염이 역류해서 테러 나이트를 덥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위로 분산시킬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

“압축 가스를 이용한 능동 방어야. 고속 라이플 탄이 아니면 왠만한 총기의 총알도 빗나가게 만들 수 있지.”

움직임의 부조화 때문에 기회를 위기로 만들어 버린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던 찬균이 미소를 되찾으며 말했다.

제성의 비밀 무기 디자인 팀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들을 최종적으로 채용하고 코디하는 것은 찬균과 호철의 일이었다.

화기 중심으로 나간 것은 호철이 밀덕인 것과도 연결된 것이었다.

“바람을 이용한 능동 방어란 말이지.”

근거리 전투를 상정한 화염 방사기가 통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호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양 팔에 장착된 클레이모어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저런 방식의 방어 수단이 있다면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검을 들고 고속으로 이쪽 저쪽을 노리고 움직이는 나이트 엔젤과 테러나이트의 대결은 장시간 계속 되었다. 하지만 결국 파탄이 난 것은 나이트 엔젤 쪽이었다.

움직임의 싱크가 어긋나서 위기 상황이 계속 된 데다가, 압축 공기양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작렬시킨 클레이모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아, 젠장. 숙련도의 문제가 아직 극복이 안되었네.”

정령과 계약자는 마음이 통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별개의 존재였다. 따라서 전장에서의 돌발 상황에 완벽하게 마음을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반면 테러 나이트의 경우에는 화기관제와 조종을 분리시킨 방식이었다. 간단한 만큼 성장의 폭은 적었다.

찬균과 호철은 말도 안되는 조합도 멋대로 제작시켜서 테스트를 시키고 있었고 그 성과는 파워드 슈트형 전투병기 개발을 위해 착실히 누적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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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에 잘 와주셨습니다.”

염소의 얼굴을 한 화려한 복장의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맞아들였다. 염소의 진수, 그가 바로 현 황제였다.

“무슨 일로 부른 거지?”

전신이 비늘로 뒤덮여서 마치 공룡과도 같이 보이지만,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사내, 아왕이 달갑지 않은 투로 말했다.

비늘이라고 하면 어류나 파충류를 떠올리기 쉽지만, 포유류인 천산갑의 비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드래곤 울프라고 불렀다.

강력한 이빨을 자랑하며, 단단한 비늘로 적의 공격을 무시하는 절대 강자였다.

“아마도 용신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불꽃과도 같은 선명한 붉은 색을 지닌 사자, 조왕이 턱을 긁으며 말했다. 그의 전신은 불꽃과도 같은 기운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들 곁에는 일각수와 같이 뿔이 달린 백색 고릴라, 권왕과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길고 강력한 어금니를 지닌 버팔로, 각왕이 있었다.

각왕의 어금니와 뿔은 냉기를 뿜어내는 청색의 수정과도 같아 보였다.

“용신의 소문은 우리도 들었다.”

혼돈의 대륙은 태반이 황무지였고, 인구 밀도는 꽤 적은 편이었다. 가장 풍요로운 다섯 도시가 수인 제국의 중추라고 할 수 있었다.

황성과 사왕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외의 지역에는 제국에 비협조적인 클랜들이 우글거렸고, 용인족들과 교류하는 반정부 도시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무법도시들이라고 해서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마다 각자 기준으로 범죄자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제국에서 범죄자로 규정된 자들도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범죄자 공유및 인도가 안된다는 점이 약육강식의 수인 제국을 만든 것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용신을 중심으로 뭉친다는 소문은 들었다. 내란도 벌어지고 있다더군.”

불의 사자, 조왕이 관심을 보였다. 개개인의 전투력이 최강으로 꼽히는 조왕맹은 용인족들과 마주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아왕맹 역시 용인족들과 가까이 있지만, 무리의 힘을 믿는 그들은 용인족들에 대해 그다지 경계를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집단의식이 강하고 배타적이라, 용인족들과의 교류가 적고 소식도 늦는지도 몰랐다.

“예. 지금까지는 하나의 구심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신이라는게 나타난 지금은 다르지요. 물론 하나로 뭉치는데 진통이 없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그들은 하나로 뭉쳐서 이 대륙을 제패하려고 들 겁니다.”

황제는 단언하듯이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놈들이 빨리 뭉치게 만들 수도 있지 않나?”

큰 어금니와 날카로운 뿔 때문에 호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중파인 각왕이 반론을 제기했다.

“그럴 위험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늦건 빠르건 놈들은 하나로 뭉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걸 고려하면 지금 준비하는게 좋겠지요.”

“준비라면 무얼 말하는 건가.”

권왕 역시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정벌군을 편성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각 문파들과 부족, 세가들을 모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래서 네 분의 양해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물량전이로군. 난 상관 없다.”

“나도 상관 없다.”

아왕과 조왕이 찬성표를 던졌다. 권왕과 각왕 역시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4대연맹에게 직접 손을 벌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용족의 땅과 사면, 그리고 문도수의 확장을 보상으로 내릴 생각입니다.”

“좋을대로 하게.”

“무림 대회는 어떻게 되는 건가?”

“국가 차원에선 열지 않을 예정입니다. 각 연맹별로 개최하는 것은 인정할 겁니다.”

무림대회는 일종의 올림픽과 비슷했다. 격투기 종목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육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형태로 신체 능력을 측정하고 그 신체를 살린 기술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좋은 성적을 거둔 문파와 세가는 많은 문도를 거느릴 수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좋은 성적을 거둔 자들은 군부로 진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건 좀 곤란한 이야기로군.”

각왕이 난처한 표시를 냈다.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문파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왕과 조왕은 오히려 고소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마차를 끈다든지, 대규모 공사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강자존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각왕께서는 잘못 생각하시는 거요. 전술이나 기동력의 개념이 없는 야수들보다는 우리가 전쟁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오.”

권왕이 각왕을 격려하듯 말했다.

“흠, 그도 그렇군.”

권왕의 도발과도 같은 표현에 아왕과 조왕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속히 군대를 징집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영토 확장은 군부 확대로 이어지고, 그는 황권 강화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4왕 위에 군림하는 황제, 그 날을 기대하며, 황제는 전쟁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원기 일행은 물론이고 디레에게도 전해졌다.

“군대에 지원하고, 고위직을 차지하라는 말인가. 이쪽에서 먼저 군대에 가게 생겼네.”

원기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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