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군기강
“이거 참 어이없게 되었군. 법이 바뀔 줄이야.”
유럽에서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찾아보던 조제성은 피식 웃었다. 국방력과 복지를 함께 해결한다는 정책이 결실을 거둔 것이었다.
병역이 3개월로 줄어들었고, 실질적인 모병제로 전환하게 된 것이었다.
사병도 군인이며 군인은 국가 공무원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진 결과였다. 힘없는 서민을 국가가 강제로 일정기간 억류하고 싼 임금으로 부려먹는 대신에, 복지를 위해서 월급을 올려주고 인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을 보장해 준 것이다.
소총하나 들고 탱크밑에 뛰어드는 광전사나 자폭병은 키우기 힘들지만 유연한 사고를 갖고 경험이 많은 군인을 확보할 수 있는 선진화 정책이기도 했다.
수십만의 쓸만한 일자리가 확보되고, 서민들에게 돈이 돌아가니 내수 경제가 살아난 것이었다.
수년 전부터 대학 등록금을 군대에서 모아서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학자금 금융상품도 꽤 인기가 있었다.
“어디 댓글들을 좀 볼까.”
[아, 젠장. 이제 군대갈려면 시험쳐야 하는건가?]
[공무원이라고 경쟁 무지 세질텐데.]
[빌어먹을 정치가놈들. 서민을 위한다고 해놓고는 서민에게서 일자리를 뺐냐?]
[군대가 약해지면 외세에 침략받는다. 모병제는 말도 안된다. 월급도 줄 필요 없다. 병역을 10년으로 늘려라. 물론 난 군대 갔다왔지만]
[윗글 쓴 놈, 본전생각나나보네.]
조제성은 혀를 찼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나오게 마련이었다.
군대를 거저 주어지는 인턴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문제는 프레이야님인데,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계시니 별 동요는 없으려나?’
제성은 턱을 살짝 쓰다듬었다. 혼돈의 대륙에서 고립되어 고생스러울 때, 약간의 위안이 되도록 군대 문제를 들고나온 것이었다. 사생활과 여가시간이 제공되고 급료가 올랐다고 해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군대 가는 것이 즐거울 리는 없었다.
법이 바뀌는 것은 그의 예정엔 없었다.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사장님. 야마토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서의 조금은 당황스러운 어조였다.
“무슨 일이지?”
[해상자위군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몇년 전 우익들이 득세하면서 자위대는 자위군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꿨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반대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자위군 창설식에 참가하는 인사들도 많았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전함을 박물관이 아니라, 해상자위군의 기함으로 쓰고 싶다는 의사를 물밑으로 타진해 온 것이었다.
[원자력 전함 탑재용 신형 레일건을 개발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원자력 함선에 신형 레일건 탑재라면, 능히 한반도 전역을 포격 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상정한 사태야. 걱정할 필요 없다. 이 기회에 해상자위군 놈들한테도 협조를 받지.”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고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장수한에게 연락했다.
“이봐. 파워드 슈트의 개발은 어떻게 되었지?”
[테러 나이트와 나이트 엔젤의 실전 데이터를 토대로 시안이 확보되었군요. 생각보다 꽤 재밌는 물건이 될 듯 합니다.]
테러 나이트의 음성 인식 시스템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패작이었다. 입으로 방아쇠를 조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지만, 실제 전투에서 입이 쉬는 일은 없었다.
동료와 교신하면서 쉴새없이 입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테러 나이트에 도입한 것이, 만능 손잡이였다. 모든 무기의 손잡이에 방아쇠와 조작버튼을 넣은 것이었다.
두주먹으로 싸울 때라도, 손잡이는 쥐도록 했다. 양손 검지와 엄지를 통해서 왠만한 무기의 조작이 가능했다.
손에 검을 들고, 검의 손잡이 버튼을 누르면 어깨의 유탄 발사기가 발사되는 그런 방식이었다.
빈손으로 싸울 일은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리고 나이트 엔젤에 채용된 것은 역으로 음성인식이었다.
필살기의 패턴과 동작을 정령과 조종자가 함께 익히고 기억한 상태에서, 조종자가 필살기 이름을 외치면 그 공격에 맞춰서 정령이 압축가스를 분사해서 위력을 높여주는 것이었다.
물론 상대에게 들리도록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장수한은 무협소설에서 보던 초식명들을 붙이려고 했지만, 찬균과 엘프들은 대전 게임에서 사용되는 스킬 형태가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선풍열참이라든가 천패봉신참, 승룡권, 백열각, 전광석화(XX몬?) 같은 기술 등을 나름대로 재현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양자의 기술을 접목시킨 발키리 나이트의 시제품이 나올 예정이었다.
“철도의 건설은 예정대로 되어가고 있겠지.”
[순조롭습니다. 하지만 도로가 더 급한게 아닐까요? 증기 기관차의 성능이 너무 열악합니다. 환경 오염도 생각해야 할 것 같고 말이지요.]
“열차포를 투입할 생각이네. 장사정 대구경 곡사포지. 야마토용으로 제작하고 있는 그 놈들 말일세.”
[18인치 포 말씀입니까? 그걸 열차에서? 호철이 녀석이 좋아하겠군요.]
장수한은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슈베러 구스타프라든가 도라같은 괴물에 비하면 18인치 포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사거리 40키로 이상의 포를 국토 전역에 재빨리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이었다.
[단선을 이용한다면, 포의 방향이 제한되지만 복선을 이용한다면 이동 포대로 사용이 가능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걸 위해서 복선 철도의 규격을 그리 엄격하게.]
장수한의 손바닥을 쳤다. 장기적으로 철도는 대단히 쓸모있는 운송수단이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도로를 정비하고 차량을 투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수한은 증기기관차의 도입이 그저 오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계획이 있었다.
“포는 전쟁의 신이지. 난 그렇게 알고 있네.”
[철도 공사를 서둘러야겠군요.]
야마토를 빼돌리고 열차포를 배치한다면, 프레이야 제국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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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제국의 군대는 기본 단위는 백인대라고 할 수 있었다.
센츄리라고 불리우는 백인대가 있고, 센츄리가 셋 모이면 바탈리온이 되며, 바탈리온이 셋모이면 레기온이 된다.
이 레기온에는 천부장 직속의 백인대가 포함되는 천인대라고 할 수 있었다.
레기온이 열 부대가 모이면 디비젼(사단), 그리고 사단이 셋 모이면 군단이 된다.
기존의 3개 군단, 9만의 정규군에 추가로 신규 군단을 모집하는 것이 황제의 모병계획이었다.
수인제국이 황폐한 대지에 존재하지만, 9만의 정규군은 사실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4왕의 견제 때문이었다. 그들 산하에 있는 전력은 각각 황제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규 훈련을 받거나 편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수준높은 전사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넘볼 수 없는 전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대단하군. 악명높은 그루드 클랜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전원 진수로 이루어진 그루드 클랜은 이래저래 유명한 편이었다. 진수들 가운데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노리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물론, 인간의 외형을 하게 되는 밤시간이라고 해도, 경험많고 흉폭한 전사들인 그녀들을 쉽게 제압할 수는 없었다.
사실 최후를 위한 비상 수단도 없지 않았다. 인간 형태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으면 혼돈의 힘이 폭주해서 강제로 진수 형태로 변할 수 있었다.
[만명을 지휘하는 놈이니 만호라고 불러야 하나? 저 놈도 신수로군.]
조제성이 유럽에 체류하고 있는 중이라, 미드가르드에는 간섭을 하기 힘들었다. 장수한이 틈나는대로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사벨 타이거와 같은 거대한 이빨을 가진 늑대의 모습을 한 사단장이 그를 맞이했다.
진수들의 전투력은 발군, 대부분의 클랜이나 문파들은 그 규모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졌다. 원기에게는 레기온, 천인대가 맞겨졌다. 장수한의 무협식 표현으로는 천호라고 할 수 있었다.
사단장은 진수인 백호와 신수인 놀제로, 그리고 반수인 붉은 여우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인제국은 약육강식의 문화가 있었고, 특히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만으로도 충성을 얻어내기 쉬웠다.
진수인 백호를 제압하는 것만으로도, 싱싱한 암컷들을 대거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고양이과의 흰 호랑이는 말을 듣지 않을지 모르지만, 무리를 짓는 습성을 가진 하이에나나 개과 짐승인 여우라면 흰 호랑이를 압도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히 자기말을 들을 거라고 믿었다.
“잘 부탁하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지막지한 악력을 자랑하는 그의 손으로 원기의 손을 꾸욱 눌러쥐었다. 뭉툭한 개과 동물의 발톱이 원기의 손을 파고들어왔다.
‘털이 있는데도 좀 아프군. 대체 무슨 생각이지? 기선 제압이라도 할 셈인가?’
원기는 별다른 느낌은 없지만,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서 원기는 힘을 주지 않고, 그의 손을 살짝 눌렀다.
“캬호오오옹!”
인간도 동물도 내지 않을 듯한 묘한 소리가 사단 사령부 건물 안에 울려퍼졌다.
사단장이라는 놈이 무슨 짓을 하려고 들었는지 알고있던 놀제로와 희연은 예상했던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특히 놀제로의 귀가 뒤로 누우면서, 꼬리가 말렸다.
‘저거, 정말 마음이 부러져 버리는 고통이지.’
놀제로 역시 긍지 높은 신수였다. 누군가에게 굴복하느니 죽음을 택할 각오가 있기에, 황야를 떠도는 생활을 택했다.
하지만 원기에게 붙잡힌 순간, 죽음보다 더 무서운게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디 안좋으십니까?”
원기는 살짝 손에서 힘을 빼면서 걱정하는 듯 말했다. 사단장은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흐, 흠.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네...요.”
그는 허리를 펴려고 했지만, 다리가 엉거주춤하게 벌어져있었고, 꼬리가 말려서 사타구니를 덮고 앞쪽으로 허리까지 올라와있었다.
‘상당히 추하군.’
마치 거시기처럼 보이는 꼬리를 보면서 원기는 눈살을 찌푸렸고, 놀제로는 그 마음 이해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이제 군생활 핀거나 다름없네.]
장수한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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