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바토리의 욕조, 헬의 성배
“대기에 숨어있는 독 성분이 저주의 정체였던건가.”
“이 세계의 숨은 의문이 하나 풀린 셈입니다.”
미드가르드의 대기에는 독극물에 가까운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계수의 능력이 이 독을 견딜 수 있는 회복의 힘을 인간들에게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속적이지만 확실하게 작용하는 독은 게임 캐릭터라고해도 장시간 방치하면 확실하게 사망하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우주복이라기보다는 잠수복에 가까운 복장으로 두 사람이 야마토이 함교에 서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더 쉽게 각성하는 것은 그 때문일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신성력의 힘을 해독에 소모하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아무리 좋은 치료약이라도 필요 이상 먹어봐야 효과가 없다. 마찬가지로 농후한 신성력 속에 있다고 해도, 인간의 몸은 조금 활성화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드가르드에 전염병이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전염병이 없으니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과 거주지가 부족해졌다.
세계수의 성장은 인구에 맞춰서 급격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들을 솎아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컨트롤을 해온 것이 아스가르드와 거인족의 신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방침에 대해서 반발해 온 것이 반 신족이어서 결국 반 신족들의 세력만 급속도로 위축되어 전멸 직전까지 온 것이었다.
프레이가 개량해서 천공의 성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세계수는 만들어진 직후라서, 아직 싹도 트지 못했다.
그렇다고 야마토의 선체를 세계수의 수호범위에 집어 넣었다가는 바로 오딘에게 걸릴 수 있었다. 현재 야마토는 건설용 자재들과 함께 죽음의 바다위에 떠 있었다. 공기는 물론이고 바닷속에도 독성 물질로 가득했다. 그리고 물속에는 피라냐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흉폭한 외골격 어류가 자리잡고 있었다.
벌레가 물고기로 진화한 듯한 이 물고기들은 백골전갈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수의 범위 내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야마토에서 떨어지면 순식간에 골로 가겠군요.”
“일단 금속에는 악영향이 없는 듯하니 다행일세. 이 상태로는 작업이 쉽지 않겠어.”
“세계수가 싹이 트면, 적어도 휴식용 공간은 확보되니 다행입니다.”
작업용 자재만 쌓아놓고 작업을 못하는 이유가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싹이 트면 드워프 인부들을 동원해서 야마토 함의 갑판을 비롯해서 건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조제성이 제법 돈을 벌었다지만, 세계적 대기업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업을 알차게 키워나가고는 있지만, 첨단 병기 사업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의료기기회사와 손을 잡고 파워드 슈트개발과 건설 기계회사, 그리고 소규모 총기 생산 회사를 손에 넣고 이런 저런 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전투기나 미사일 같은 첨단 무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영화용으로 제작한다는 명분하에, 2차세계대전 시기의 곡사포 기술 자료들을 손에 넣은게 고작이었다.
질좋은 철강과 드워프들의 정교한 기술로, 2차세계대전 시기의 무기보다 조금 더 나은 포를 갖추는 것이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제어 장비로 포격을 보완한다는 점에서는 2차세계대전시와 비교하는 것이 말이 안되겠지만, 일단 기본이 되는 무기 기술은 2차세계대전 당시의 물건을 재현하는 수준에서 멈춰야 했다.
영화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독일의 타이거 전차 생산시설을 갖추는 것까지 성공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 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을 촬영하는 씬을 넣어야 했고, 영화 예산은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정교하게 재현한 타이거 전차를 밀리터리 애호가와 전쟁사 박물관 등에 판매하는 등의 작업으로 위장하는데까지 성공했다.
일본군의 치하전차에 대한 묘사는 강한 일본을 표방하는 우익 정치가들이 달갑지 않다는 이유로 빼버렸다.
“그건 그렇고, 세계수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방사능 효과까지 감소한다는 것은 예상못한 성과라고 할 수 있겠어.”
10렙 상당의 게임 캐릭터는 일반인과 여러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 점을 이용해서, 조제성과 장수한은 다양한 생체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세계수의 영향권에서는 거의 모든 위험에 대한 극복능력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분만 피복되어도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방사선 속에서도 레벨 3의 세계수가 보호해주면 적어도 10분 이상을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사능에 의한 후유증도 극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혼돈의 세계에 사는 몬스터들이나, 수인등,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기형의 생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면 괴물들이 쏟아져 나와서 쑥대밭을 만드는게 아닌가 했는데, 다행입니다.”
오우거건 트롤이건 지구에 데려다 놓으면 한시간을 못버티고 죽어버렸다. 흡혈귀나 늑대인간, 혼돈의 대륙에 사는 수인족이나 용족들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사실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무서운 건 인간이지.”
조제성의 말처럼, 아스신족이건 거인족이건 반신족이건 현실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탐내고 남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욕망, 혹은 공포 등의 이유로 그들을 끌어들이고 세계수를 키운다면, 충분히 이 세상은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나라면 원자력 발전소를 주로 노리겠지.’
조제성은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스스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세상에는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시키고 남을 힘들이 있었다. 핵전쟁을 일으키거나 다수의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되는 상황은 인류에게 있어서 멸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수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구가 방사능에 완전히 오염되는 그 순간, 인류는 멸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미드가르드의 신들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었다.
조제성은 현대의 지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되도록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프레이야, 원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대 프레이야의 계획대로 엘프들을 전부 데리고 탈출해서, 지구를 정복하는 형태로 일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프레이야는, 원기는 현실에 프레이야에 대한 신앙을 뿌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실에선 그저 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싶어했다.
‘핵전쟁에 대한 대비 시나리오는 좀 짜둘 필요가 있겠군.’
조제성은 유사시에 피난시킬 사람들의 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동일본대지진처럼 세상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법이었으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재앙을 조절할 수 있도록 원자력 시설에 발키리칩을 심어두는 건 어떨까?’
조제성은 고개를 저었다. 전세계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한, 그럴 필요성은 없을터였다. 도리어 오딘이나 여타 신족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바토리의 욕조라.’
사라졌다는 아티팩트를 떠올리면서, 조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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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리의 욕조’는 ‘헬의 성배’라고도 불리웠다. 공포로 가득찬 처녀를 제물로 죽음의 피를 채우면 젊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잔이며, 처녀에게서 뽑아낸 피를 가득 채우는 행위가 필요했기 때문에 바토리 백작부인은 젊은 여성의 피를 마실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목욕한다는 전설이 남아있었다.
실제로 612명에 달하는 젊은 처녀들을 잡아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단순히 죽이고 피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안되었다. 고통과 두려움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잔인하고 끔찍한 물건이었다.
템플 기사단은 이 거대한 잔을 몇번이고 파괴했지만, 저절로 복원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녹이고 태워서 재를 만들어도 봤지만, 그렇게 하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결국 봉인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관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바토리의 욕조, 헬의 성배는 거인족이자 지옥의 여신인 헬과 연결되는 아티팩트였다.
“이게 그 유명한 에르체베트 바토리의 욕조인가?”
휠체어에 탄 초췌한 모습의 노인이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게 젊음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물건입니다.”
“사용법은 어떻게 되지?”
“어린아이, 특히 여자아이를 고통스럽게 죽여서 피를 뽑아 채우면 됩니다. 그리고 이 잔에 손을 대시면 잔이 피를 마시고 당신에게 힘을 주게 될 겁니다.”
“굳이 여자아이일 필요가 있는가?”
“증오, 오기, 용기 등은 두려움을 약화시킵니다. 지옥의 여신께서는 인간의 두려움을 좋아하지요. 남자아이들은 무서워하다가도 오기가 생기면 반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아이들도 그런 경우가 없진 않지만, 적은 편이지요. 오기나 증오로 공포심이 희석되면 약효가 떨어집니다.”
“저 아이들인가?”
한쪽 구석에서 떨고있는 흑인 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종청소가 벌어지는 곳에서 구해온 애들입니다.”
“흐흐, 이왕이면 백인 계집애가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건 그렇고 벌써 겁에 많이 질렸군.”
“선객이 계셨습니다.”
“그런가. 일부러 보여준건가?”
“예. 그래야 공포심이 더 커지기 때문이지요. 이제 그 효과를 보실 시기입니다.”
“그런가. 그런데 말이지. 여신의 성배라면 내가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안되겠지?”
“지저분한 핏속에 몸을 담그고 싶으신가요? 선객도 그렇고 회장님도 그렇고, 악취미시로군요.”
“효과는 어느정도인가?”
“약 1년 정도 젊어지실 겁니다. 건강 상태는 훨씬 좋아지실테지요. 한달에 한번 정도씩만 행하셔도 됩니다.”
“고작 1년인가?”
“한번의 의식 거행, 그러니까 목욕에 적어도 세명의 아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신님이 강림하실 때까지는 효과는 제한적이지요. 헬 여신님께서 강림하시는 날에는 새로운 육체를 선물받게 되실 겁니다.”
“여신님이 강림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이 의식을 반복하면 됩니다. 일정 수의 여아를 제물로 바치면 강림이 이루어집니다만, 바토리 백작부인의 실패를 감안할 때, 적어도 612명은 넘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좀 많아 보이는군.”
“그럼 어떻습니까. 그동안 회장님같은 분들이 회춘을 하시면 되는 겁니다.”
사내의 담담한 말에,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노인의 경호원들이 노인의 옷을 벗기고 그를 성배안으로 들어 옮겼다.
“그런가. 그럼 의식을 시작해 주기 바라네.”
잠시 후, 그들이 머문 방에서 여자아이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죽음을 앞둔 부자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템플 기사단도 테러 나이츠와 나이트 엔젤들도 그들의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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