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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72화 (172/497)

172화 던전 마스터

서울의 밤거리, 한가한 골목길에서 여자의 짧은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말 그대로 짧은 비명소리였다.

젊은 여성은 자신의 입을 천으로 틀어막는 투박한 손길을 느꼈다. 기습적인 습격, 그녀는 구조를 요청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용기를 소주로 대신한 젊은 남성은 그녀를 끌고 빈 상가로 향했다. 주변에 인적은 없었고, 짤막한 여성의 비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여보, 여자가 비명지르지 않았어?”

“쥐라도 나왔나보지. 뭐. 금방 조용해졌는데.”

가까이 살고있던 중년 부부가 그녀의 비명을 들었지만, 그들은 딱히 신고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의 비명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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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엔젤 [광진]으로부터 연락입니다. 여성의 비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제시한 좌표로 보면 성동구 방면입니다.”

“나이트 엔젤 [중구] 역시 확인했습니다. 역시 성동구 방면입니다.”

“어느쪽이 가깝나?”

“[중구]쪽이 가깝습니다. 확인차 이동 개시했습니다.”

엘프들은 본래 숲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는게 장기였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넘는 순발력과 가벼운 몸놀림으로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숲을 누빈다.

그리고 그것은 빌딩의 숲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을 빌리는 나이트 엔젤들의 도약력은 가볍게 20미터를 넘었다. 게다가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들에 비하면 도심의 전깃줄은 아주 튼튼한 편이었다.

하늘을 날으는 만큼은 안되겠지만, 거의 완벽한 직선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녀들의 기동력은 서울 내에서라면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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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난폭한 사내에게서 자신을 구해준 헬멧을 쓴 벽안의 미녀는 백마를 탄 왕자만큼이나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기 때문에, 젊은 여성은 어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구급차가 오고 있네요.”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검은 라이더 슈트 차림을 한 여성은 헬멧의 바이저를 내린 다음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잠시 후, 구급차와 경찰차가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겪고있는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사람들이 이끄는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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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엔젤의 소규모 구조 활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파워드 슈트를 입고 갱들과 전투를 벌이거나, 큰 재난 상황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 범죄나 응급 상황에서 귀신처럼 나타나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라지는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SNS의 이용이었다.

그들은 상황 판단이 끝나는 즉시, SNS를 이용해서 협조자들에게 구급차나 경찰을 부르도록 알렸다.

처음에는 협조자들이 대신 신고했지만, 얼마안가 응급센터와 경찰청 측에서 SNS를 통해 알리는 나이트 엔젤의 통보 사항을 접수하고 바로 움직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협조자들을 조사하거나 IP 추적등을 이용해서 나이트 엔젤을 추적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SNS는 위성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추적이 불가능했다. 경찰의 추적이 계속되면 활동을 접거나 활동 방식을 변경할 수 밖에 없다는 나이트 엔젤의 선언 때문에, 결국 경찰도 SNS를 소통의 수단으로 방치하고 감시하게 된 것이었다.

사건 현장에 돌입하기 전에 신고하고, 사건 현장에 돌입하기 때문에 경찰이 빠른 대응으로 나이트 엔젤을 체포하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거짓 범죄를 연출해 본 것은 경찰들 뿐만 아니라, 나이트 엔젤을 보고 싶다는 일부 팬들이나 파파라치도 있었다.

하지만 집음 증폭 장치를 사용해서 수키로미터 밖의 비명소리도 정확하게 읽는 나이트 엔젤을 속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음색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등에 익숙해지는데도 꽤 힘든 편이었다.

지금은 도리어 ‘모두 거짓말이니 작중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힘들다. 인간들은 이런 기분인가’라면서 오히려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을 속이는 인간의 심리도, 속아 넘어가는 인간의 마음도 이해할 줄 알게 되는 진보를 갖게 되었다.

음색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그들은, 남을 속일 수 없으니 속이려고 들지도 않았고, 의심할 필요도 못느꼈다.

그런 면에서 엘프들은 인간보다 우월하면서, 열등한 존재였다.

그리고 인간들의 소설, 영화, 드라마등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인간과 더 깊이있는 교류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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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시각, 원기는 하이에나들과 함께 열심히 땅굴을 파고 있었다.

마왕은 왜 탑이나 던전에서 용자 일행에게 토벌당하는가.

그것은 바로 마왕이 강하기 때문이고, 아무리 강해도 다구리앞에는 장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희연은 최강이었다. 충분히 마왕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혼돈의 대륙에서 그녀보다 센 놈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놀제로의 말로는 수인제국의 최강자들과 비슷한 강함이라고 하니, 그녀만큼 강한 이들이 있을지는 몰랐지만.

물론 놀제로는 희연보다 원기를 더 강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생각하면, 전투적 강함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희연은 강하지만 용족들의 군대와 싸워 이길 실력은 아니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바로 던전이었다. 폐광을 이용한 던전을 만드는 것이 바로 해법이었다.

디레가 처치하길 원하는 자들은 분명 수뇌들이지, 일반 병사들은 아니었다. 성이라면 공성병기로 어떻게 할 수 있겠지만, 땅속의 던전은 소수 정예로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왕은 나쁜 놈이고, 나쁜 놈은 원래 친구보다는 적이 많은 법이다. 다수를 쥐어짜서 자신과 측근을 챙기는 쥐새끼같은 족속들은 다수가 들고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마왕들은 벙커나 던전 같은데 숨는 것이다.

소수로 덤비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전쟁터에서 여자에게 맞아죽는 마왕도 없지는 않지만.

[멋진 아이디어야.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보통은 아닌데.]

뒤늦게 야마토 전함 포획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장수한은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땅굴을 파고 들어가 있으면, 다수의 적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아이디어십니다.]

제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네요. 유럽일은 잘 되신 건가요?”

유혜서를 통한 간접 대화는 종종 나눴지만, 파티 채팅을 나누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혼돈의 대륙에서는 모든 판단을 원기님께 맡기겠습니다.]

[음,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저도 찬성입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원기 역시 조제성과 장수한이라는 뛰어난 두뇌들이 있다보니, 거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의견은 앞으로도 듣게 되겠지만, 조언을 무조건 따르는 것과 타당한 조언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은 리디아를 살리는 것, 그리고 하이에나 클랜을 살리는 것만 주력하자.’

사실, 조제성과 장수한 역시 대단히 바쁜 만큼, 혼돈의 대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장수한이 최근 원기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서 집중하고 있는 시간 동안 밀린 일들이 많았다.

국민의 수준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장수한은 미드가르드에 지구의 문화를 도입하는 수위나 방향성을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행복을 추구하고, 유희를 즐기는 문화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 쾌락주의는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원기 역시, 미드가르드와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굴베이그령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중세의 기사 계층에 해당하는 전사 계층들이 불만을 토하고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빈민들은 풍족한 먹거리에 감사하고 있지만, 그들은 애초부터 먹거리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가난하고 못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이들이 배불리 먹게 되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싸우지 않는 놈들을 배불리 먹이면, 타락한다. 프레이야 여신은 인간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이런 주장이 조금씩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남이 못누리는 것을 자신만 누릴 때, 인간은 만족한다. 인간은 평등보다는 차별을 사랑하는 본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장수한을 중심으로 보급되는 유희,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등을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세를 모으고 있었다.

총기를 보급해서, 총기 훈련만으로 군인을 양성하는 것도, 검과 활을 써온 전사계급들을 분노시키는 원인 중 하나였다.

외부 난민들에게 풍족하게 대접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굴베이그 여신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이들인 굴베이그 국민들은 난민들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리디아가 빠진 자리가 생각보다 큰 것 같군요.”

원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불만 세력들이 생길 듯 하면, 리디아가 적당히 인심을 베풀고 오면 상황이 좋아졌다.

[그녀의 능력은 말 그대로 사기나 다름 없으니까요.]

“일단, 전 작업에 들어가야겠군요.”

원기는 몸을 부르르르 털었다. 몸에 묻었던 진흙들이 사방으로 튀기고 몸이 조금 깨끗해졌다. 동물들이 흔히 하는 몸털기를 이젠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가 인간으로 못돌아갈 것 같아.’

원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호랑이 모피는 너무나 좋고 편해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면 정말 그리워질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구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미료가 듬뿍 든 음식이 먹고싶다. 짜장면과 햄버거, 콜라 마시고 싶다. 그리고 고기 좀 먹고 싶다. 호랑이로 풀만 뜯고 사는 것도 참 죽을 맛이다.’

원기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무 기둥을 어깨에 짊어졌다. 폐광이라지만, 그대로 던전으로 쓸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해서 무너져서 생매장 당할 수는 없었다.

‘남은 기간 고작 한달이로군.’

연하가 날아와서 가져다 준 추적용 아티팩트가 희연의 칼에 장착되었다. 펜던트와 흡사한 형태의 보석이라 손잡이 부분에 장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이 추적용 아티팩트에서 나오는 신호를 ‘용신의 신기’에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알고있는 용족들이 용신의 검을 얻기 위해 이쪽으로 몰려들어올 것이었다.

‘저것들을 어떻게 다 살려야 하나.’

원기는 하이에나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혼돈의 대륙에서는 다들 죽음에 익숙하다보니, 제 목숨 아까운 줄을 몰랐다. 용맹하게 싸우다 죽는 것이 영광인 것은 혼돈의 대륙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기의 고민도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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