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투명드래곤
용족의 정찰 부대는 일명 불가시부대, 보이지 않는 부대로 유명했다. 불가시용족, 그 이름을 들은 장수한은 ‘투명 드래곤’이라고 외치며 기뻐했다.
장수한이 명명한 투명드래곤부대는 카멜레온의 특성을 가진 용족 부대로, 잠입, 정찰에 능숙한 부대였다.
여우 상태인 희연의 귀는 엘프 이상의 청력을 자랑했지만, 야성이 강한 혼돈의 대륙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는 야수들이 다수 있었다.
개과 동물처럼 무리를 져서, 매복이나 몰이사냥을 주로하는 맹수들은 소리를 굳이 감추지 않지만, 고양이나 뱀처럼 은밀하게 이동해서 적을 덥치는 맹수들은 암살자 저리가라 할만큼 조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사냥꾼이라고 하지만, 암살자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투명드래곤 부대야말로 수인제국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들 가운데 하나였다.
“반응은 이쪽에서 오는군.”
투명드래곤 부대 중에서도 특수임무조의 조장인 크롸롸의 특기는 완벽한 은신이었다. 수인제국의 야수들이 가진 민감한 코에도, 예민한 귀에도 걸리지 않는게 특징이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었다. 특히 크롸롸는 단순히 본능에 의해서 색을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색은 물론 무늬까지 변화시킬 줄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코앞에서 보고도 눈치를 못챌 정도로 뛰어난 은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은신 실력은 뛰어난 살상력으로 직결되었다. 독심술이라도 지니지 않고는 상대의 살의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멀쩡히 눈뜨고도 목에 단검이 박힐때까지 눈치를 못채는 이들이 많았다.
부는 독화살과 교묘하게 감춘 다수의 단검만으로도 적을 제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암살을 저지르고 도망가기보다는 현장에 남아있는 쪽이 더 안전할 정도의 능력자였다.
“용신님의 검이라니.”
그의 꿈은 출세였다. 그리고 그 출세는 요인의 신변 경호였다. 새롭게 탄생한 용신님의 곁을 지키는게 그에게 있어선 최고의 출세가 될 것이었다.
그의 암살 능력은 뛰어나지만, 요인의 호위는 신뢰와 실적이 없이는 맡겨지지 않았다. 젊고 능력있는 암살자는 나이많고 신실한 이를 당해낼 수 없었다.
용신의 신기를 회수해 가는 공을 세운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주변의 정찰을 맡긴 다음, 폐광을 개조한 동굴로 조심스럽게 숨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본 임무는 정찰이지만, 상황이 허락된다면 검을 훔쳐와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불꽃 여우가 가진 검이 용신님의 검이라니.’
수인 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용족들에게 불꽃 여우와 은빛 호랑이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특히 눈빛만 마주쳐도,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을 굳게 만드는 불꽃 여우의 능력은 강자들에게도 두려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눈이 마주치면, 끝이라는 소리겠지.’
암살자인 크롸롸의 전투능력은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불꽃 여우와 눈이 마주쳐서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전사들 중에서도 최상급이어야 했다. 그나마도 사제의 지원을 받아야 겨우 그녀의 눈빛 아래에서 자유롭다는 사실도 알려져있었다.
카멜레온의 능력을 가진 이들 가운데 사제의 능력을 가진 자도 없거니와, 설령 지원을 받는다 해도, 붉은 여우의 눈빛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노리는 것은 불꽃 여우가 잠이 들었을 때였다. 몰래 들어가서, 검만 훔쳐서 달아나는 것이 그가 노리는 것이었다.
물론 불꽃 여우가 무방비한 상태라면, 자고있는 그녀의 목에 단검을 꽂는 정도의 시도는 해볼 생각이 있었다.
‘마침 잘되었군.’
그는 던전의 내부가 횃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횃불의 경우 그림자가 강하게 생길 뿐만 아니라, 불꽃이 흔들려서 그림자가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움직여서 걸어들어가도 상대는 눈치채기 힘들었다. 칠흑같은 어둠 보다는 횃불로 밝혀진 내부가 그에게는 더 편안한 장소였다.
‘경계가 묘하게 보이지 않는군.’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바닥에 보이는 실들을 교묘하게 피해서 움직였다.
‘역시 바닥에도 세공을 해둔 건가?’
바닥의 석판들 중 몇 개는 밟으면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민한 발바닥을 통해서 석판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고 무게를 전신으로 교묘하게 분산시켰다.
특히 그는 네 발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부분의 비늘을 이용해서 이동하기 때문에, 체중이 완벽하게 고르게 분산되는 특징이 있었다.
‘생각보다 쉽군.’
그는 꽤 깊이 파여진 던전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전진해 나갔다. 미궁처럼 여러 갈래 길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외길에 가까운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큼직한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방들 옆에는 대형 몬스터들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적이 들어오면 방문을 닫고, 몬스터를 풀어놓게 되어있는 구조로군.’
그는 굳이 던전 내부를 파괴하려고 들지 않았다. 어차피 검만 훔쳐가면, 이 곳에 다시 올 일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고약하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중간 중간에 몬스터들이 있는 방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비좁은 통로였다.
한번에 세 명 정도는 쾌적하게 지날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비좁아지는 그런 통로였다.
수인 제국 국경에서 십수키로 안쪽으로 들어와 존재하는 험한 산에 폐광을 이용해서 던전을 파놓았다. 대규모 군대가 들어와서 토목사업을 벌일 수는 없었다.
결국 소수 정예로 급격하게 치고 들어와서 치고 빠져나가야 했다.
그런데 이런 구조라면, 동시에 들여보낼 수 있는 것은 고작 수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용족 전사 수명으로 은빛 호랑이와 불꽃 여우를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난제였다.
자칫 잘못하면 뛰어난 용사들이 대량으로 피를 뿌리게 될 가능성이 커보였다.
‘갈수록 잠입이 어려워지는군.’
던전 바깥쪽에는 제법 많은 보초병들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지나갈 때를 노려서 천정에 붙어서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갈수록 경계가 느슨해지고, 보초병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완벽하게 은신중인 만큼,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문들은 고의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함부로 열고 들어가다가는 눈치를 채일 수 있었다.
내부 공간은 던전이라기보다는 저택 내부처럼 인테리어가 바뀌기 시작했다. 소수의 인원이 거주하면서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할 수 없군. 내일을 기약해야 되겠군.’
그는 문 옆에 은신해서 조심스럽게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 것은 안되지만,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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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걸. 과연 투명드래곤이야.]
장수한은 감탄하며 말했다. 크롸롸가 던전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디레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희연의 검 손잡이에 달린 보석을 추적하는 수정은, 역으로 희연쪽에서도 위치를 알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문은 통과 못하는군요. 그게 그나마 다행인가요.”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상대가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밀가루나 페인트를 이용하면 별 문제는 없겠지.]
피부의 색소를 이용해서 위장하는 만큼, 밀가루나 페인트를 뒤집어 쓰면 더이상 은신할 수 없는 것은 틀림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는가인데...”
원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디레의 요구 조건 중 하나였다. 용신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하고 이용가치가 높다는 점에서 크롸롸는 손에 넣을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수인 백인대장들까지도 눈치를 못챌 정도의 완벽한 은신이라면 대처하기 힘들었다. 물론 암살당해도 경험치 손해밖에는 없지만, 이런 은신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역탐지 수단이 없이는 대응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희연의 검을 확인하기 위해 역탐지 가능한 보석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아, 놀들이 일어날 시간이네요.”
쥐죽은 듯이 자기들 방에서 숨어있던 놀들이 하이에나 모습으로 돌아오자마자 법석을 떨며 밖으로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원기는 이제 하이에나 모습들에 익숙해져서는 징그럽다기 보다는 귀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가까이 접근해서 헉헉대는 상황에 대해서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보였다.
‘어쩌면 작전일지도 몰라.’
희연이나 연하, 리디아같은 경국지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미소녀들과 비교하면, 육감적이고 건강미 넘치는 미소녀들이라고 해도 비교 대상이 되면 미안할 정도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볼 수 없는데다가 보여주려고 들지 않으니 왠지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이 들어와요.”
희연이 보석의 반응을 보면서 말했다. 원기의 눈은 자연스럽게 열린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다.
<크롸롸 - 정찰대 대장>
주황 색의 선명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투명드래곤이 있을거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게 대체 뭐지?]
원기는 황급히 파티 채팅으로 물었다.
[예. 글씨가 보이네요. 주황 색으로 선명하게 보여요.]
[그래? 나한텐 안보이는데. 주황색이면 아마 파티 메모기능일거다.]
장수한의 경우를 본다면 직접 보지 않는 한은 저 글씨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파티 메모기능이요?]
[그래. 요새 잘 안쓰이는 것 같은데, 지형이나 몬스터 등에다가 파티원들에게만 보이도록 이름을 달아놓는거야. 던전 등에서 나중에 들어오는 파티원들이 길잃지 않게 표시하는게 주 목적이지.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강한 몹이 있으면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를 해두거나.]
연하는 용신 행세를 하다보니, 용족들을 대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름을 외우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을 보고 구별하는 것도 불가능해서 궁여지책으로 메모기능을 이용해서 소개받은 용족들에게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놓은 것이었다.
[연하가 공을 세웠네요.]
희연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카멜레온이라고해도 눈동자는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작은 눈동자지만 글자가 뜨는 위치 바로 아래에 머리통이 있으니,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희연은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쪼렙 학살 능력을 발동시켰다.
“묘하군요. 여기 누가 들어와있는 것 같아요.”
“호오, 살기를 감지한 건가?”
원기는 희연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크롸롸는 경직 상태가 풀린 순간, 아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글자를 보면서 원기와 희연은 웃음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저 놈이 돌아가고 나면, 슬슬 이곳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겠군.]
원기는 크롸롸를 보면서, 파티 메모기능을 이용해서 메모 내용을 편집했다.
<크롸롸 - 하이디는 어디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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