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역습
“굉장하다고 해야 하나. 멋지긴 멋지군.”
찬균과 호철은 유럽에 도착해서, 직접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 부대를 확인했다.
“역시, 프라모델도 그렇고, 피규어도 그렇고 모아놓아야 멋지지.”
다스베이더와 심히 비슷한 빨간 옷을 입은 소령의 코스플레를 한 찬균이 다스베이더 헬멧을 쓴 호철 옆에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테러 나이트의 다이아몬드 팀과 서울을 수비하는 이들을 뺀 아시아의 정예 나이트 엔젤 팀이 완전 무장으로 집합한 것은 극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들과 다크엘프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며 작전을 펼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현자회의 근거지, 제우스라고 이름을 댄 자를 고려해서 올림퍼스라고 명명한 곳을 찾아내 섬멸하고 바토리의 욕조를 찾아서 봉인하는 것이 그 임무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세계수까지 옮겨 심었다.
발키리는 신성력으로 창조되고 유지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계수의 성역 내에서는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존재하기 위해 신성력을 축척하고 소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발키리들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생기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계약자 주변에서만 의지를 유지할 수 있는 정령과도 비슷했다.
그래서 유럽 지역에서 발키리들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아예 세계수까지 옮겨온 것이었다.
인간들이 이능을 각성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세계수가 성역을 함부로 뻗지 못하게 해왔지만 이번엔 사태가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변태들도 와있었나?”
초대 나이트 엔젤대 대장인 레이니가 냉정한 태도로 말했다. 그녀가 전투 지휘관으로서 합동 부대를 움직이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호철, 찬균의 지휘하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그들을 대접하지는 않았다.
“고생이 많군. 다크엘프.”
다스베이더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레이아 공주 코스튬을 입은 마고를 향해서 던지는 인삿말은 그다지 호의가 담겨있지는 않았다.
다크엘프들에 대해서 그다지 큰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탓이었다.
“변태라니 듣기 좀 거북하네. 남들과 조금 다른 이상형을 갖고 있을 뿐이야.”
호철이 반박했지만, 찬균은 고개를 저었다.
“보통 그걸 변태라고들 해. 인정하면 편해.”
“너처럼 인형 같은 걸 좋아하는걸 변태라고 하는거지. 난 어디까지나 사랑이라고.”
찬균의 옆에도 아름다운 여성이 서 있었다. 문제는 그 여성이 인간도 엘프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시작품인 안드로이드였다.
원기는 원한다면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만들어서, 그 안에 발키리를 넣어서 그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편리한 이성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제성을 통해서 그와 비슷한 제안이 있었지만, 찬균은 거부했다.
그리고 그가 옆에 둔 것은 발키리를 운동제어계 칩으로만 활용한 움직이는 마네킹에다가, 그가 프로그래밍한대로 반응을 보이는 AI칩을 장착한 물건이었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피규어에 지나지 않았다. 지시대로 움직이는 발키리조차도 그는 거부하고 자신이 프로그래밍해서 만드는 것을 즐겼다.
“사랑이라는건 결실을 기대하고 하는 걸 사랑이라고 하는거야. 너처럼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만을 좋아하는건 충분히 변태지.”
“손에 넣을 수 없으니까 더 불타오르는거 아니냐? 이 모에를 이해 못한단 말이야?”
“너야말로 이상형을 창조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즐거움을 이해 못하는거냐?”
두 사람이 티격대는 모습을 보면서 마고는 관심을 끊었다. 현실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과 현실을 사랑할 수 없는 인간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달랐고 그 면에서 두 사람은 충분히 변태였기 때문이었다.
항구에 대절된 큼직한 창고에 등빨좋은 중무장형 테러나이트 슈트가 삼십기 나열된 것은 장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나이트 엔젤대의 멤버들도 테러 나이트 장비를 갖추기로 결정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중화력이고 대외적으로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는 적대 조직이기 때문에 합동 작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정령칩으로 제어되는 양 어깨에는 4연장 휴대용 로켓런쳐가 장비되어 있었고, 머리에는 서브머신건이 연동되어 있었다. 일각수의 뿔과도 같이 서브머신건의 총구가 나와 있었다. 한발 한발의 파괴력은 돌격소총에도 못미치지만, 특수 탄창용으로 설계된 터라 등부에 장착된 500발짜리 탄창을 전부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팔에는 화약 발사식 칼날이 각각 세자루씩 달려 있었다. 탄두 대신에 단검형 칼날이 발사되는 터라 왠만한 방탄 장비는 쉽게 관통시킬 수 있었다.
“불과 2년 만에 이런 무장 수준을 갖추는데 성공하다니 회장님 능력도 장난 아니야.”
밀리터리 매니아인 호철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가? 고작 2년이로군. 우린 자그마치 수백년인데 말이지.”
갑자기 천정에서 들려온 소리에 호철과 찬균, 레이니는 위를 처다보았다. 그리고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천정에 붙어있는 사내가 보였다.
“스파이더맨?”
“아니야. 난 스파이더맨이라기 보다는 그래비티 맨이라고 해야겠지.”
레이니는 재빨리 총을 뽑아서 상대를 향해 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 총알의 궤적이 휘면서 다른 곳에 맞았다.
“그깟 총알 맞아도 별거 아니지만, 옷이 더러워지니까.”
“중력 제어? 그런 것도 가능한건가!”
찬균이 당황해서 외쳤다.
“흐음. 역시 무능한 놈들이 윗대가리인 조직인건가?”
그가 손을 뻗는 순간, 찬균과 호철은 바닥에 짓눌리듯 깔렸다. 갑자기 닥쳐온 세 배 가까운 중력에 자유를 빼앗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크엘프인 마고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을 빨리 보호해.]
장수한의 명령이 주어졌다. 제성은 현재 미드가르드에서 수면중이었다. 장수한 역시 잘 시간이었지만, 급히 보고를 받고 들어왔다.
치명적인 방심 때문일까, 호철과 찬균 그리고 마고는 모두 게임 캐릭터가 아닌 본래 육신으로 온 것이었다.
테러 나이트 슈트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브머신건들이 불을 뿜었다. 그래비티 맨이라고 자처한 사내는 서브머신건의 탄환들 역시 탄도를 왜곡시켜서 자신을 보호하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레이니의 지휘에 맞춰서 테러 나이트 한기가 뛰어오르면서 양 손에서 단검을 발사하자, 그것까지 왜곡해서 막아내지는 못했다.
토탈 여섯자루의 단검 중 두 자루가 그의 양팔에 박혔다.
“이거 만만히 볼 수는 없겠군.”
그는 덜렁거리는 왼 손의 단검을 오른 손으로 뽑았다. 오른쪽 어깨에는 단검이 박혀있었지만 그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단검이 뽑히면서 그의 왼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의수!”
그의 팔은 내부에 기계와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었다. 피와 기름이 섞여서 손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내가 네 아비다.”
그래비티맨은 그렇게 피식 웃으면서 다스베이더의 투구를 쓴 호철에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인가?”
레이니의 질문에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이니까, 여유라고 해야겠지.”
다음 순간, 창고의 문이 부서지면서 전차가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전차포가 불을 뿜으면서 순식간에 네 기의 테러 나이트가 박살이 나버렸다. 지금까지 실내라서 로켓 런쳐를 쓰지 못했지만, 독일제 신형 전차 상대로 통할 무기도 아니었다.
경기관총에 부서진 창고 지붕 사이로 전투 헬기가 비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레이니는 상황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눈짓을 보내자, 엘프 하나가 테러 나이트를 이용해서 공격 헬기에 대해서 공격을 걸었다.
로켓 런쳐가 불을 뿜었지만 무유도 로켓탄이라 공격헬기는 회피 기동으로 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공격헬기의 개틀링이 테러 나이트를 박살을 내면서 폭발했다.
레이니는 그틈에 재빨리 찬균과 호철을 낚아채고 창고 지붕 틈을 통해 빠져 나갔다. 마고 역시 그녀의 뒤를 쫓아서 몸을 숨겼다.
곧 테러 나이트들을 단 한기 남지않고 모조리 파괴되어 버렸다.
“하데스. 놈들을 잡지 않고 무얼 한건가.”
제우스가 나타나자, 자신을 그래비티 맨이라고 소개하던 사내가 쓴 웃음을 지었다.
“내 꼴을 보고도 그 소린가?”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생포는 물론이고 추적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상대가 상대이니 어쩔 수 없지. 예쁘고 강하더군. 내 취향이야.”
하데스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핥았다. 그는 이미 수십년 전에 성 기능을 상실하고, 고문을 통해 지배욕을 채우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고문 이상으로 좋아하는 것이 사냥이었다.
“켈베로스를 쓸 생각이로군.”
“그래. 아무리 뛰어난 사냥감이라도 놈의 후각을 벗어날 수는 없지.”
“적당히 해두게. 그건 그렇고 소득이 정말 크군. 세계수라니.”
테러 나이트의 성격상, 그들도 항복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포도 불가능할 터였다.
제우스가 노린 가장 큰 수확은 컨테이너에 실린 세계수였다. 세계수는 거대한 사념의 집합체이자 네트워크이고 막대한 에너지가 순환하며 잠자는 존재였다.
“이거라면, 새로운 성배를 만들어 낼 수 있겠군.”
그는 컨테이너가 열리자 안에서 나타난 세계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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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로군.”
소녀들이 무참하게 참살당한 사건이 최근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그리고 그 주범이 테러나이트라고 공표되었다.
그리고 대규모 테러를 일으키려던 이들이 나토군과 교전을 벌이고 소탕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진입한 전차와 헬기들이 나토군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생중계로 나토군과 교전을 벌이는 테러 나이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테러 나이트들의 협조자들에 대한 일제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혐의 자체가 확실치 않은 만큼, 실형을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많은 협조자들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고, 테러 나이트의 지원 조직은 와해되어 버렸다.
“공권력의 뒤에 그들이 있다는 건가.”
조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고, 세계수를 빼앗긴 것은 타격이 큽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뭘 어쩌긴 어째. 템플 기사단 녀석들을 쥐어 짜야지. 세계수가 놈들 손에 들어갔다고 겁좀 주면 녀석들도 협조해 주겠지.”
장수한은 조제성의 빠른 생각 전환에 감탄했다.
“설마 처음부터 그걸 노리신 겁니까?”
“멍청한 소리. 하지만 언제든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야. 사고는 언제든 터지는 거야.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가 문제지. 이런 사고가 터질 줄 몰랐네라고 떠드는 놈들이야말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거지.”
장수한은 이리 저리 계산을 해봤다. 이번에 입은 피해는 작지 않지만, 템플 기사단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었다.
“템플 기사단 놈들은 사이보그 기술 하나 개발안하고 뭘 한거야.”
“교리 때문에 인간 생명을 주무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돌연변이나 합성 기술은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 상대로도 금지되어 있어서, 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골치 아픈 상대야.”
장기 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거부반응이었다. 하지만 신성력을 이용하면 장기 이식에 의한 장기적인 부작용을 치유 능력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
인공 장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자회라는 조직은 인공심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이보그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총알을 왜곡시키는 이능이라니. 엄청나군. 그것도 역시 블러디 크리스탈의 힘이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게다가 레이니가 눈치 못챌 정도라면 놈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은신 능력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그들을 구해 내야겠군.”
프레이야 여신이 나설 수 없는 현 상황인 만큼, 게임 캐릭터가 아닌 이들이 죽게 된다면, 그들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물론 발키리를 통해서 혼을 보관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 상태로는 발키리와 영혼이 함께 묶여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적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태리나 프랑스쪽이 좋을거야. 그리고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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