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사냥
“사냥감은 고작 네 마리 뿐인가? 시시하군.”
하데스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상대는 생각보다 중요한 인물들로 보였다. 테러 나이트와 나이트 엔젤의 전투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현자회가 얻은 결론은 ‘광신자들’이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듯 싸우는 미친 놈들이었다.
파워드 슈트의 출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에인페리아급 정도의 출력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현자회에서 개발한 초인들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파워드 슈트를 입고 그정도 출력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적은 에인페리아가 아니었다. 에인페리아 특유의 넘치는 신성력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처럼 싸웠고, 패배해서 도망칠 수 없게되면 가차없이 자폭했다.
처음 한두 번 전투에서 그런 자폭이 나온다면 이해할 수 있다. 원격 조종으로 폭발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전투가 연속된다면 제정신이라면 사기가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변함 없었다.
세뇌당했거나, 광신도이거나 둘 다이거나.
아테네의 예측대로 적들은 바토리의 욕조를 노리고 대규모 공세를 시도했다. 그리고 항구의 검역시스템 쪽에는 현자회의 입김이 닿아 있었다.
그들은 현자회가 매복하고 있는 입 속으로 알아서 기어들어온 것이었다. 현자회의 협조자들 가운데 몇 사람을 이용해서 현자회의 습격 작전을 나토 군의 테러 진압작전이었던 것처럼 공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휘 계통이 단일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토 부대를 조종하는 것까지는 어렵지만 자신들의 부대를 나토 특수부대로 위장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작전은 예상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포로의 생포는 기대하지 않았고, 운좋게 감지해 낸 세계수의 반응을 통해서 세계수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세계수는 아티팩트의 재료로서 최상의 물건이자, 바토리의 욕조같은 신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재료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세계수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조종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신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데스가 발견한 것은 멍청하고 긴장감없는 2인조의 남성이었다. 본래라면 은신 상태로 간단히 죽여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반응이 보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놈들은 전투요원도 아니고, 특출난 특기도 없다. 하지만 극도의 중요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인페리아로 보이는 가장 강력한 여성과 에인페리아는 아니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민첩한 움직임을 보이는 여성이 그 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장 강하며, 실전 지휘관으로 보이는 에인페리아가 부하들이 죽는 것은 외면한채, 세계수조차도 방치한 채 전투중에 그 두 사람을 낚아채서 도망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보통일은 아닌 것이었다.
“재밌게 되었군. 월척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헬 하운드 부대를 이용해서 그들의 뒤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주 경로를 봉쇄해 나갔다. 예측대로 그들의 움직임은 프랑스와 이태리 쪽으로 빠져 나가려는 의도가 여실해 보였다.
“냄새를 좀 더 잘 맡아 보라고.”
그는 헬하운드 부대의 대장인 켈베로스를 독촉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늑대인간이 바로 헬하운드 부대였다. 현자회는 이전부터 프랑켄슈타인이나 늑대인간과 같은 인조인간이나 개조인간, 키메라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력과 감정 에너지를 쥐어 짜내서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서 쓰려는 시도를 거듭해 왔다.
유럽에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의 전설이 퍼진 것은 그때문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행각이 드러나더라도, 사람들은 늑대인간이나 흡혈귀의 전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잔인한 고문과 학살을 통해서, 그들은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고 그것을 손에 넣어 온 것이었다.
“결국 도망온 곳이 여기인가? 수고했다.”
하데스는 켈베로스에게 작은 약병을 건냈다. 켈베로스는 황급히 그 약병을 깨고 내용물을 들이켰다. 엘릭서라고 이름붙은 그것은 블러디 크리스탈의 대용품이었다.
그리고 무리하게 만들어진 키메라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고통으로부터 잠시간 해방시켜주는 약이기도 했다.
키메라들의 몸은 성의없이 이종간 강제 결합시킨 장기들의 거부반응때문에 금방 썩어들어가며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
엘릭서를 거부하고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상적으로는 살 수 없지만, 비정상적으로 질긴 생명력 때문에 그들은 지옥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말라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헬 하운드 부대는 현자회가 가끔씩 던져주는 엘릭서 한 방울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예보다 더 비참한 처지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헬 하운드 부대가 동정을 받을 만한가 하면 그것또한 아니었다. 그들은 유럽 각지에서 연쇄살인등을 저지른 흉악한 범죄자들 출신으로 처형 이상의 형벌을 원한 이들에 의해서 현자회에게 맡겨진 교화(고문)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인들이기에 어떤 더러운 임무에도 적극적으로 잘 임할 뿐만 아니라, 괴롭히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좋아. 너희들. 숲 주위에 포위망을 만들고, 잘 감시해라. 혹여 놓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 말이야.”
하데스는 그렇게 말하며 켈베로스를 비롯해 헬 하운드 부대의 네 명만 이끌고 숲 속의 오두막을 향해서 나아갔다. 그가 나선 이상, 놓칠 일은 없어야 정상이지만, 그는 임무보다 쾌락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나머지 헬 하운드 부대원들을 보험삼아 주변에 뿌려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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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렸군. 월척이다.”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너무 나쁘십니다.”
장수한은 쓴 웃음을 지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라는 소리도 있지 않나.”
찬균과 호철은 월척을 낚기 위한 미끼였다. 세계수보다도 더 중요한 인물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프레이야 여신의 사적인 친구들이며, 동시에 다크엘프들의 신인 프레이의 오직 둘 뿐인 친구들이었다.
엘프들이나 다크엘프들이 세계수보다 큰 비중을 두는 것은 당연했다. 전략적 가치는 그다지 없지만, 프레이야 진영의 VIP들임은 틀림없었다.
찬균과 호철을 유럽으로 보내는 명분은, 엘프와 다크엘프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니 중재역을 하면서 유럽 구경이나 다녀오라고 보낸 것이었다.
로이드를 통해서 이미 템플 기사단의 역사를 조사한 바 있었고, 현자회와 세계수를 둔 공방을 벌인 적이 다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현자회를 억눌러온 것도 템플 기사단이지만, 현자회를 존속시킬 힘을 준 것도 역시 템플 기사단이었다.
세계수의 일부를 현자회에게 빼앗긴 바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엘릭서를 비롯한 영약, 아티팩트 등을 만들어서 현자회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었다.
두 조직 중 하나가 없어졌다면, 나머지 한쪽도 사라질 그런 관계인지도 몰랐다. 물론 서로를 증오하는 두 조직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중무장 파워드 슈트들이 무력하게 당한 것은 조제성으로서도 의외였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일수도 있었다.
게임 캐릭터들이 세 배의 힘을 가졌다지만, 양 어깨의 4연장 로켓포와 전신을 두른 금속 장갑, 탄창을 비롯해서 장비들을 합치면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백 킬로 가까운 무게를 짊어지고 가볍게 움직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엘프와 다크엘프의 민첩한 움직임은 기대할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들이 홀가분한 옷차림으로 움직이는 수준이 한계였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열화우라늄탄 기관포를 장착한 신형 전차 앞에서 학살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엘프나 다크 엘프들에게 중무장 타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게 밝혀진 셈입니다. 나중에 인간 병사들이라면 괜찮겠지요.”
“그렇겠지. 보통 인간들이라면 힘이 세졌다고 그걸 제대로 살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제대로 된 파워드 슈트의 개발은 아직 어렵나?”
“일단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엘프들이나 다크엘프들의 순발력을 살릴 수 있는 수준의 기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키리칩이나 정령칩을 이용해도 야수를 능가하는 그들의 민첩한 움직임을 따를 수는 없으니까요. 적어도 수년 내에는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장수한과 조제성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헬 하운드 부대들은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다. 창고에서 학살당한 그들이 부활해서 뒤를 추적해 오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자회야말로 방심한 것이었다.
모든 도로와 항구, 공항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죽은 자들이 좀비처럼 되살아나서 뒤통수를 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물론 그들은 맨몸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이 구한 것은 대형 마켓에서 판매하는 요리용 식칼 하나씩이었다.
그리고 숲속에서 엘프와 다크엘프들에게 들린 식칼 하나는 인간이 감히 당해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그들은 요리용 세라믹 식칼로 헬 하운드 부대를 소리없이 순식간에 요리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장비를 챙기고 하데스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레이니를 비롯해서 호철과 찬균, 마고조차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니의 파티창에는 장수한과 조제성이 연결되어 있었고, 부하들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어서 부활한다는 것을 전략적으로 노리고 이용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치 못해서 생긴 맹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불안감은 하데스를 방심시키고 있었다.
"낚시건 사냥이건 중요한 건 역시 미끼지."
"세계수는 떡밥이었던 겁니까."
"손해를 보지 않는데 집착하면, 큰 이익을 놓치기 쉽지. 소탐대실이라든가, 육참골단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투자라고 해두지. 가장 중요한 건 정보니까 말일세."
"그건 그렇고, 하데스를 잡는게 가능할까요? 말 그대로 초인적인데?"
"글쎄. 그건 나도 확신을 할 수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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