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무한 컨티뉴
“하데스에 대한 능력 분석은 끝난건가?”
현자회는 하데스가 돌입해서 전투를 벌이기 전에, 모든 형태의 전파망을 교란할 수 있는 교란장치를 사용했다. 유선 통신도 될 수 없도록 유선 통신망도 확실하게 차단했다.
하지만 조제성과 장수한은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기본적으로 통신을 파티 채팅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선 통신이건 유선 통신이건 관심이 없었다. 찬균과 호철, 마고가 사용하던 통신 장비가 일시적으로 차단되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하데스의 전투 장면등은 모든 엘프들의 동영상 공유를 통해서 생생하게 전해져서 분석되었다.
“일단, 그가 말한 대로 중력을 조종하는 능력자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그가 천정에 붙거나 걸어다니는 것은 중력을 제어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중력제어가 객체 지향이 아닌 공간 지향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은?”
“그가 서있는 천정 주변에서 파편이 위로 떨어지는 것을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정 공간, 아마도 원형, 아니 구형이라고 해야겠군요. 일정 공간의 중력을 원하는데로 조종할 수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건 적어도 둘 이상으로 보입니다.”
“둘 이상?”
“예. 먼저 천정에 자신을 붙여두는 공간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총알들을 왜곡시키는 공간이 하나였습니다. 그래비티 볼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치 블랙홀이 빛의 방향을 굴절시키듯이 총알들의 방향을 왜곡시켜서 그가 있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꽤 무서운 능력이군. 조심해야 하겠어. 그밖의 능력은?”
“현자의 돌과 인공심장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체 능력이 레이니와 비교했을 때, 약 두배 가까이 뛰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근력이나 순발력 등에서 보통 인간의 다섯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 에인페리아용 전략의 개선이 필요하겠군.”
“그렇습니다만, 이번 경우에도 무적의 전법은 통용될 거라고 봅니다. 코드 네임, ‘무한 컨티뉴’말이지요.”
장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쓰던 수법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한 컨티뉴.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길때까지 계속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돈은 소모되지만, 어떤 보스도 무한 컨티뉴 앞에서 버티지 못하는 법이었다.
사망 쿨타임과 부활후 핸디캡을 고려해서, 죽어 나가는 시간을 조절하면 끝없이 계속 부활해 나오는 무한의 좀비 군단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오는 에인페리아급 신체 능력의 엘프 좀비 군단, 대량의 레벨 다운은 각오해야 하지만, 상대도 무한한 힘을 자랑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일회용 건전지를 사용하는 셈이니, 우리쪽의 승리는 확실할 겁니다.”
“문제는 헬 하운드 부대의 대장이로군. 켈베로스라고 했나?”
“예. 그 놈도 일단 제우스와 하데스 급의 위험분자로 계산해서 작전을 실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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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베로스, 삼두의 머리를 가진 지옥의 번견.
그는 사실 장수한과 조제성의 예측을 넘어서는 존재였다.
그의 양 가슴에는 인면창처럼 보이는 두개의 얼굴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인간의 얼굴이기도 했다.
이능 각성자의 머리를 가슴에 이식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그는 인위적으로 이능을 늘인 것이었다.
물론 그 가슴에 달려있는 머리는 끔찍한 삶을 강요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 머리들은 현자회의 협조자가 아닌, 배신자와 적대자의 머리이기도 했다.
특수 키메라들은 고통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인간의 외형을 포기하고 다양한 생체조직과 기계를 이용해서 꿰어맞추었기 때문에 신체 능력 자체도 탁월했다.
켈베로스의 사냥개로서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냄새를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공포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큭큭. 그런데, 좀 묘하군요. 걱정하던 계집에게서 걱정의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하데스는 켈베로스의 말에 발을 멈췄다. 켈베로스는 사냥감들의 강한 감정을 냄새를 통해 보고 알아내는 재주를 지녔다.
그리고 그들이 추적하는 네 사람은 조금씩 다른 감정을 보였다. 남성 두 사람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보였고, 여성 두 사람은 각각 긴장감과 걱정, 사명감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인간은 감정에 맞춰서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에, 가능한 재주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걱정이라는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공포는 사라질 수가 있다. 마음을 바꿔 먹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을 걱정하는 마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자포자기는 아니겠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황급히 무전을 켜서 헬 하운드 부대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했군. 어떻게 이렇게 빠른 타이밍에 역습이 올 수 있지?”
하데스는 망설였다. 탈출을 시도하느냐, 사냥에 박차를 가해서 인질을 잡느냐.
인질은 무력하고, 중요도는 높았다. 단순한 미끼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연기하는 것만으로는 감정이 발하는 호르몬의 냄새를 속일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지. 놈들을 잡는다. 숲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도록 하자.”
그는 야수를 합성시킨 켈베로스의 야성을 알고 있었다. 탁월한 후각은 어두운 숲속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하데스 자신은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벽이건 천정이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숲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면에서 하데스는 숲에서의 사냥에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민첩하게 움직여서, 레이니를 따라 잡았다. 찬균과 호철은 마고에게 이끌려서 여전히 도망중이었다.
“에인페리아가 이렇게 시간을 끌려고 들다니, 어지간히 중요한 인물들인가 보군.”
레이니는 그의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하데스를 상대하기에 자신이 지닌 무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있었다.
달랑 권총 두 정이었다.
‘시간만 끌면 되겠지.’
하데스를 잡기 위해서 신중하게 포위망을 짜는 만큼, 도착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귀는 설마 엘프인건가? 미드가르드엔 정말로 엘프라는 종족이 있는건가?”
하데스는 레이니의 귀가 머리칼에서 삐져 나와서는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가 당혹감을 보이는 순간, 레이니는 양손에 총을 뽑아들고는 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사의 대상은 헬 하운드와 켈베로스였다.
“흥. 네 년의 노림 수는 알고 있다.”
총알은 궤도가 휘면서 모조리 빗나갔다. 하데스가 헬 하운드들의 무사를 확인하는 순간, 레이니의 모습이 사라졌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것이었다. 켈베로스가 윗쪽을 바라봤지만, 허공에는 그녀의 모습이 없었다. 뛰어오르는 짧은 순간에 나무 둥치를 잡고 나무 뒤로 돌아서 뛰어오른 것이었다.
켈베로스가 그녀의 냄새를 눈으로 추적하며 나무의 뒤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헬 하운드 부대의 뒷쪽에서 총을 쐈다.
“이런!”
하데스는 황급히 몸을 날려 레이니에게 달려 들었지만, 헬 하운드들은 목 뒷쪽의 급소에 총을 맞고 절명한 상태였다.
키메라라고 하지만, 온 몸을 방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라서 급소에 맞으니 절명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데스는 그녀보다 빠른 속도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녀는 나무를 툭차면서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켈베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다시 작렬하는 탄환, 하지만 켈베로스는 그 총알들을 가볍게 튕겨냈다. 헬 하운드와는 달리 주요 장기와 급소 등을 금속 뼈대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켈베로스가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녀는 가볍게 그 주먹을 스치면서 허공으로 뛰어올라서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미친!”
켈베로스는 물론이고 하데스 역시 당황했다. 그는 황급히 그래비티 볼을 발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구.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중력에 이끌리는 바람의 소리가 그녀의 귀에는 생생하게 들렸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볍게 중력구를 피했다.
“말도 안돼!”
하데스는 중력구를 사방에 전개하고, 자신에게는 중력장을 펼쳐서 나무 사이를 뛰면서 고속 기동전투를 시도했다.
빡!
레이니를 쫓던 그의 뒤통수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코 앞에 있던 레이니가 어느 틈에 뒤로 돌아가서 그의 뒤통수를 권총 손잡이로 후려갈긴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데스는 자신이 모든 면에서 상대보다 뛰어나다고 믿었다. 하지만 상대는 중력구의 위치를 알고서 교묘하게 피해다녔다.
중력장에 휘말려서 공중에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정도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종특이라는게 무섭군요.]
장수한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조제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데스의 능력은 대단했다. 숲에서의 전투에 상당히 유리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레이니의 전투 능력은 그것을 가볍게 능가했다.
신체 능력, 하드웨어에서는 하데스가 압도적이지만, 운동신경과 균형감각, 숲속에서의 활동 경험 등 소프트웨어가 따라주지를 못하고 있었다.
엘프들은 어려서부터 숲속에서 나무를 타면서 살아왔다. 나무 가지가 휘거나 부러지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하데스는 나무가 휘거나 부러지는 것을 중력장을 이용해서 막아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전투 감각이 뛰어난 엘프들은 휘거나 부러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어느정도의 힘을 받아주고, 어느 정도에 부러지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아는 것이었다.
레이니가 왼손으로 붙잡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그녀는 오른손으로 나무 둥치를 가볍게 긁으면서 나무 뒤로 돌아갔고, 그 다음 왼손에 쥐고있던 부러진 나뭇가지가 하데스의 뒤통수를 갈겼다.
하데스에게 피해를 주기엔 가벼운 타격이었지만, 자존심에는 큰 상처가 되었다.
“으아아악!”
그는 광전사처럼 날뛰었지만, 레이니는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을 피해다니며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엘프들이 헬 하운드의 총과 장비들을 가지고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 유효한 장비는 세라믹 식칼이었고, 하데스와 켈베로스는 식칼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준비된 두 체의 발키리는 하데스와 켈베로스의 머리 중 가슴에 있는 남성의 영혼을 포획했다.
[음, 무한 컨티뉴는 제 로망이었는데 말이지요. 애써 세운 제 작전이.]
[엘프들을 상대하려면 그냥 숲을 태워버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군.]
[아스 신족들이 멸종시키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군요.]
[이제 정보를 빼내는 대로 진짜 역습을 준비해야겠군. 시간 승부가 될거야.]
조제성은 그것을 위해 켈베로스의 가슴에 심어진 머리를 노렸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현자회에 대한 증오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데스에게 고급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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