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거점 돌입
“병원이 거점이라는 건가? 예상은 어느정도 했지만.”
“제약회사에서 운영하는 부설 병원이니 연구 설비도 충분할 겁니다.”
켈베로스의 가슴에 박혀있던 머리는 템플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앨런의 것이었다.
하데스의 영혼을 포획했다고 하지만, 영혼이 알고 있는 정보를 빼내는 편리한 기술 같은 것은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제성은 하데스의 영혼을 실험용 쥐에다가 심어 놓았다. 인간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발키리칩을 쥐의 뇌를 개조해서 심어놓은 것이었다.
별다른 고통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왜소함을 인식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발키리칩에 갇혀있는 것이라고 해도, 생쥐의 육체를 제어하는 것은 생쥐 자신이고, 보이지않는 감시인인 발키리와 함께 있는 것이며 그는 생쥐가 보고 듣는 것만을 공유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발키리와는 달리, 하데스의 정신은 무력감에 피폐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인도적인 행위를 일삼아온 하데스에 대한 형벌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절 풀어주셔도.]
앨런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물론이야. 지금까지의 협조만으로 충분하네.”
조제성은 앨런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확보한 다음, 그를 약속대로 놓아주기로 했다. 그 전에 템플 기사단에 화상 회의를 통해서 앨런이 알아낸 바를 보고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앨런의 이능에 대해서는 굳이 듣지 않았다.
템플 기사단이었던, 아니 지금도 템플 기사단의 일원인 앨런은 새로운 육체를 얻어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했다.
유일신의 신자인 그에게 유한한 존재인 프레이야는 인간 이상의 존재일 수는 있으나, 전지전능한 신은 될 수 없었다.
“자네에게 얻은 정보는 잘 쓰도록 하겠네. 그럼 잘 가게.”
유용한 이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조제성은 인간의 영혼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강제로 억류하는 그런 주인 밑에서 수백년 수천년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기에, 조금쯤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안목도 가지고 있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장수한은 조제성의 냉철한 두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런 지혜로움에 대한 신뢰 또한 가지고 있었다.
“아부해도 소용없어. 엘레니아를 내놔.”
“에, 그런.”
장수한은 조제성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현존 하는 엘프들 가운데, 레이니를 능가하는 전투 센스를 가진 이들은 몇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엘레니아였다.
지금 그녀는 행정적인 일에 주로 투입되어 있었지만, 엘프의 전투 센스가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상황은 변했다.
그녀가 총사대를 비롯해서 나이트 엔젤대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장수한이 ‘총질하는 엘프는 엘프가 아니다, 엘프라면 역시 활이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미쪽 기지의 활용도가 더 커질 듯 해. 엘레니아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어.”
“뭐, 그렇겠지요.”
장수한 역시 한 숨을 쉬었다. 숲속 전투에 엘프들이 특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광역 병기와 다수의 투사체 병기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숲속에 포격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면 엘프들이라고 해서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엘프 특유의 기동성을 살릴 수 없는 무식한 파워드 슈트를 사용해 온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넓은 아마존과 같은 밀림이라면, 그들의 이용 가치는 무시할 수 없었다. 운나쁘게 죽어도 약간의 페널티를 안고 금방 부활하는 만큼, 그들의 활용도는 무시할 수 없었다.
장수한 역시 엘프의 전술적 활용도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만큼, 엘레니아를 행정요원으로만 썩힐 수는 없었다.
‘저격수 엘프도 나쁘지는 않겠지.’
장수한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넓은 숲에서 능수능란하게 은신하면서 저격총을 쓰는 엘프는 초기부터 고려 대상이었지만, 하데스와의 전투를 통해서 그 무서움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세라믹 무기를 좀 더 세련되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더군.”
“아, 그것도 있군요.”
엘프들은 마트에서 본 세라믹 식칼을 마음에 들어했다. 엘프들이 금속을 싫어하는 이유는 동물들과 비슷한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자연계에 흔치않은 반짝이는 빛은 숲속에서는 너무 쉽게 눈에 띄는 경향이 있었다.
금속 나이프를 검게 칠해도, 사용하다보면 특유의 금속 광채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날 부분을 검게 칠하면 잘 베어지지 않는 면도 있다.
하지만 세라믹 나이프는 태생부터 무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라믹 나이프를 한자루씩 모두 가지고 있었다.
“세라믹 나이프 제작 회사를 하나 설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색상이나 디자인도 그렇고, 성질도 좀 생각해 봐야겠지요. 세라믹 뿐만이 아니라 카본 나이프 같은 신소재 무기도 있으니, 연구해 볼만한 가치는 있을 겁니다.”
“슬슬 돌입할 시간이군.”
현지 시간으로 밤 1시 46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았다. 물론 한국은 아침 9시 46분으로 사방이 밝았다.
47분이 되는 순간 변전소에서 병원으로 가는 송전탑이 폭파되어 쓸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병원으로 엘프들이 대거 돌입했다.
“비상 전원까지 끊을 수는 없다는게 아쉽군요.”
“어쩔 수 없지.”
병원 답게 곧 비상 전원이 발동되면서 이곳 저곳이 밝아졌다. 중환자실로 가는 전원을 끊을 수는 없었다.
냉철하고 계산적인 조제성은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비밀이 밝혀졌을 때, 어떻게 해야 타격을 적게 입을 수 있는가를 준비하는 타입이었다.
테러 나이트의 활동이나 나이트 엔젤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자료를 모아서 무고한 피해자가 없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증명할 수 있게 해두었다.
엘프들은 짧은 순간에 돌입해서 곳곳에 가스 봄베를 설치하고 열었다. 인화성 가스가 아닌, 화재시 발생하는 탄 냄새가 나는 연막 가스를 압축보관한 것이었다.
곳 화재 경보가 울려퍼지고 환자들의 이동 때문에 법석이 일어났다. 비상용 전등이 다시 켜지는 것은 막지 못하지만, 엘프들의 청력을 이용한 전투는 가능해 졌다.
엘프들은 연기속을 누비면서, 연구소 쪽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연구소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병원 건물과 함께 환자들, 의료진들 모두가 일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엘프들 역시 전원 사망 판정이 떨어졌다.
--------------------------------------------------
“역시 미친 놈들이군. 병원 환자들은 모두 인질이었던 셈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하데스가 연락이 끊긴 순간부터 아마 준비를 해두고 있었겠지.”
“세계수의 반응은 분명 연구소에 있었습니다.”
“숨어서 지내온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조직이야. 이런 결단력은 정말 무시할 수 없겠지.”
하데스나 헬하운드들의 시신은 전부 냉동 보존시켜둔 상태였다. 혹시모를 추적장치나 통신장치를 고려한 것이었다.
“전기를 끊는다고 보안장치가 전부 죽어버리는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충전기와 저전력 전자기술이 스마트폰 덕분에 많이 발전한 상태였다. 전기를 끊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상대의 보안을 뚫을 수 없었다.
“현대에서의 싸움도, 꼬리 끊기 기술도 결코 쉽지 않은 상대일 듯 싶군.”
“하데스를 빨리 굴복시킬 필요가 있겠군요.”
“실험용 쥐라고 해도, 지나친 동물 학대는 조심하도록 하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