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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80화 (180/497)

180화 새로운 능력 각성

던전 공략은 디레의 계산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디레는 자신의 정적들이 처리되기를 원했지만, 불확실한 던전에 뛰어드는 만용을 가진 이들은 별로 없었다. 디레의 정적들은 정치력을 자랑하는 노련한 강호들, 불확실한 도박에 모든 것을 걸 리가 없었다.

결국 던전에 도전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용자들이 왜 젊은지 알 것 같아.’

원기는 던전에 뛰어드는 용족 전사들이 대부분 젊고 용맹하지만 객기로 충만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피식 웃었다.

물론 젊다고 해서, 무조건 약한 것은 아니다. 아직 공을 세우지 못했고, 명성을 날리지 못했을 뿐 정말 뛰어난 전사들도 제법 있었다.

이를테면, 무명 시절의 관우와 장비 같은 이들이라고 할까.

무명의 젊은 용자들 가운데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해서 원기와 희연을 위험에 빠뜨리는 실력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력자라도 디레에게는 이용가치는 있으되 제거할 보람은 없기 때문에, 정치적 소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기와 희연은 그런 이들을 제압해서 지하 감옥에 가뒀다. 그리고 그들을 용족과의 밀거래의 형식을 취해서 리디아와 디레에게 팔아먹었다.

리디아의 은혜를 입은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디레의 산하에 들어갔지만, 실질적으로는 리디아의 수족이 되었다.

소수 정예로 마왕에게 도전하는 젊은 용자들을 상대하는 가운데, 용족에게 있어서 최악의 마왕인 희연 역시 성장했다. 어느날부터인가, 검을 든 순간 상대방의 머리 위에 숫자가 뜨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원기의 머리엔 7이라는 숫자가, 그리고 놀제로의 머리에는 12라는 숫자가 떴다.

숫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그 의문은 원기와의 대련을 통해서 곧 풀렸다.

원기는 그녀와 검을 일곱 번 마주치는 순간, 일순 넋을 잃고 경직되었다. 그리고 여덟 번 째 검격에 속절없이 목을 내주게 되었다.

“어떻게 된거야?”

“글쎄. 뭐라고 해야 할려나.”

원기는 희연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검격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싸우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그저 넋을 잃고 그녀의 검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희연은 자신에게 새로운 이능이 각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돌아다니는 이들을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검을 들자, 대부분의 머리 위에 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직감적으로 쪼렙 학살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면, 놀원의 머리에는 숫자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놀원은 놀제로가 가장 아끼는 딸로, 장차 무리를 이끌게 될 존재였다.

비록 번개를 뿜는 뿔은 없지만, 혈통도 가장 좋고, 가장 강한 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약점은 밤이 되면 절대 변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수들은 기본적으로 전신이 동물형태로 되는 존재를 말하지만, 인간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인간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야성을 억누를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인간 형태가 없는 완전 수인보다는 인간형태를 가진 진수가 무술이건 사회성이건 교활함이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이에나형이라고 모두 밤이 되면 인간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수인 놀 제로와 그 피를 이은 이들의 특성이었다.

놀제로와 놀원, 그리고 몇몇을 제외하면 밤에도 어느정도는 하이에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놀원은 놀제로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순수한 전투 능력은 놀제로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었다.

‘숫자가 없는 건 강함의 척도인건가?’

희연은 그 부분에서는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놀제로나 놀원보다는 원기가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묘하군. 어떤 원칙은 있을텐데.’

숫자가 머리에 뜨지 않는 이는 놀원을 비롯해 몇몇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정 이상의 강함’을 가지고 있지만 놀제로나 원기보다는 약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원칙성은 알 수 없지만, 일정 숫자의 공격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적이 있다는 사실과 쪼렙 학살이 통하는 상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선 큰 이익이야.’

희연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쪼렙학살이 통하는 상대와 통하지 않는 상대를 한눈에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소득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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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죽어준다는게 말이 되는 건가.’

원기는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아서, 차마 입을 못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검격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원기가 이전에 검을 휘두르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살과 뼈를 베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그는 공기를 벨 수 있게 되었다.

첫 단계가 대상을 베는 것이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대상과 검 사이에 존재하는 바람을 베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 희연의 검에서는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 그녀의 검은 공기를, 바람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베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공간을 베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베는 바람 이상의 무언가를 베는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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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줄었어.’

희연은 원기의 머리 위에 있는 숫자가 4에서 3까지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더 쉽게 넋을 잃는 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상대하기 쉬워졌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원기의 검격은 예리하고 위협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능이 발동하는 순간, 넋을 놓고 무방비 상태가 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오히려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검격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다고요?”

“너무 완벽해 보였어. 그래서 저절로 넋을 잃게 되더군.”

원기는 그녀의 새로운 이능을 ‘죽음을 부르는 미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이능은 원기에게 있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넋을 잃고 목이 날아가서 바닥을 구르는 그 순간까지도 희연의 검격을 눈동자 깊숙한 곳에, 뇌리 깊숙한 곳에 새겨 놓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검에 매료되는 것과, 강해지는 것은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의 검에 매료될 수록, 그녀의 능력이 발동되기 쉬워졌지만, 동시에 원기의 수준이 급격히 상승했다.

“아마도 놀원을 비롯해서 능력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은 전투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거야.”

“무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거겠지요.”

실제로 놀제로의 딸들은 번개를 뿜는 뿔을 제외하면, 신체 조건이 놀제로보다 뛰어났다. 타고난 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싸울 줄 알았다.

하지만 무술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보다는 감각적으로 싸우는 경향이 컸다. 한마디로 보는 눈이 없었다.

숫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보는 눈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숫자로 적의 강함을 잴 수는 없다는게 아쉽네요.”

희연은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원기역시 희연을 상대하면서, 한가지 원칙이 생겨났다. 3합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제약은 원기의 성장을 빠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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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원기의 성장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약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무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을 싫어했다. 무술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울릴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강한 사람이 좋은가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강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오히려 극복 대상이자 쓰러뜨릴 적이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흔히 갖는 판타지처럼, 강자에게 동경해서 강자의 트로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을 두고 남자들이 결투를 벌이는 상황이 온다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게 여길 것이었다.

도리어 원하는 남자를 두고, 강한 여성과 싸워서 트로피처럼 획득하는 것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의 신념이 원기의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원기가 강해져서, 만약 자신을 압도하는 날이 온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 한 구석에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어째서지?’

원기와 놀들의 대련을 보면서, 그가 머지않은 시기에 자신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면서도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 흔들렸다.

그리고 그때 놀원이 뒤에서 원기를 덥쳤다. 그 순간, 원기는 앞으로 나서면서 놀 제로를 어깨로 받아 버리고, 놀 제로의 뒤로 돌아가면서 놀 원의 공세를 피해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희연은 깨달았다.

‘저 움직임. 저건 바로 나야!’

그녀는 원기의 움직임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원기는 육체를 움직여서 싸우는데는 완전한 문외한이었다.

백지나 다름없는 원기에게 전투를 가르친 것은 바로 희연 자신이었다.

사소한 움직임부터 전술적 판단까지, 원기의 모든 것은 희연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희연이 갈고 닦은 검의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알아봐 주는 것은 원기 뿐이었다.

그녀의 기본은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것이었지만, 미드가르드에 오게 되고 초인적인 육체인 게임 캐릭터를 지니게 되면서 인간 이상의 스펙을 살린 전투 기술은 모두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만들어낸 기술과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육체 조건이 결합된 존재.

그것이 바로 원기였다.

‘그는 나야. 동시에 내 것이야.’

희연은 원기를 보면서, 사랑도 충성도 아닌 그 이상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귀가 묘한 열기에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붉은 털에 뒤덥힌 것이 다행이야.’

그녀는 살짝 마른 침을 삼키면서, 얼굴로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자신에게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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