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181화 (181/497)

181화 결단

용족과 수인족들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서로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밀무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몰래 무역을 하는 이들은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각국의 화폐는 조금씩은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화폐 사용양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젊고 유능한 포로들을 사고 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물물교환’이었다.

포로들을 몰래 처분하고 원기가 얻은 것은 바로 가축인 돼지들이었다.

오랜만에 먹은 돼지고기는 대단히 맛있었다. 물론 혼자 먹지는 않았다. 최측근인 놀들과 함께 먹었다.

고기를 안먹던 원기와 희연이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놀들에게 원기는 식인의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외부 세계에서 수명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해도 기본 육십은 된다. 그리고 프레이야 여신님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된다면, 80에서 90은 기본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될거야. 그걸 생각하면 인육을 먹는 것은 위험하다고 볼 수 있지.”

원기가 놀들에게 ‘인간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제시한 것은 ‘도덕’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혼돈의 대륙은 고사하고 전란과 야만이 만연한 미드가르드에서 도덕과 윤리에 귀를 기울여줄 만한 인간들은 정말 한줌도 되지 않을 터였다.

“동족을 잡아먹는 존재는 자연에 의해서 배제되게 되지. 그래서 광우병이나 쿠루병이라는 병이 온다. 물론 그건 나이가 들면서 오게 되겠고, 너희는 삼십 살기도 힘든 편이니 그런 의식이 없겠지.”

놀제로가 신수가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잡아먹히기 딱 좋은 나이였다. 인간 노예들은 서른을 넘기기 전에 잡아먹히는게 일반적이었다.

“밖에서 장수하며 살려면, 인간을 먹어선 안돼. 독이다. 팔십은 족히 넘게 살 수 있는데, 사십도 못살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어?”

원기의 설득은 그럭저럭 놀 무리에게는 먹혀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강자이고, 강자에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투력이 떨어지는 반수나, 노예라기보다 가축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인간들에게까지 먹히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사는 것은 고통이고, 죽음이 해방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은 놀들의 반응은 걱정을 덜어 주었다. 그들은 돼지고기의 맛에 반했다. 인간이 돼지를 기른 이유도 사실 그 고기맛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맛있는 식량, 충분한 식량이 있다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원기는 그것을 재삼 인식하고, 혼돈의 대륙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미쳐버린 세상을 보면서, 몸사리고 시간을 보내기로 생각한 것 자체가 원기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운명이라는 게임에 빠진 것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리디아와 연하는 용족의 세상에 지배력을 높이고 있었다. 희연은 새로운 능력에 각성해서, 더욱 강해졌다.

생각해보면, 이 혼돈의 대륙은 매력적인 땅이었다.

미드가르드의 신들이 개입할 수 없는 땅, 들여다 볼 수도 없는 금지된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돌연변이가 태어날 확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만 제외하면 생명력이 충만한 땅이기도 했다.

[멋진 생각이십니다. 병기를 조립하고 생산하기에도, 병력을 훈련하기에도 좋은 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성 역시 원기의 결단을 환영했다. 세계수를 조작해서 오딘의 눈을 피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 수법으로 숨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혼돈의 대륙에 사료용 곡물, 비료, 냉동 육류 등을 보급할 수 있다면, 혼돈의 대륙을 바꾸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교두보를 만들만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권력을 평화 속에서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적어도 수년 내에는 불가능했다.

난세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난세는 원기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지는 의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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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필요하오.”

“이대로 저 던전에 쳐박힌 여우를 놔둘 수는 없소이다.”

“하지만 던전 지역을 점령하려면 대규모의 군사행동이 필요하오.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 벌어지게 될거요.”

“어차피 수인제국은 멸망하고, 수인들은 우리의 식량이 될 운명이요. 뒤로 미룰 필요는 없소이다.”

디레의 정적들은 젊은 무사들을 성과없이 희생시키는데 지쳤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모험할 생각은 없었다.

일거에 전력을 집중시켜 던전 지역을 제압하고, 던전을 무너뜨려서라도 검을 찾는다.

이것이 그들이 낸 결론이었다.

그 결과 수인제국과 용제국의 전면 전쟁이 된다고 해도, 그들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전면 전쟁, 그것은 디레 역시 내심 바라는 것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용족들의 구심점은 용신인 연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디레는 연하를 앞세우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죽는 놈들도 나오고, 공을 세우는 놈들도 나오게 되겠지만 용신의 총애가 누구에게 향하든 별 문제 없었다. 왜냐하면 용신은 그의 손아귀 내에 들어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희들은 내 손바닥 안에서 춤을 춰라. 너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모르는채.’

디레는 연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연하는 그들의 요청에 맞춰서 전쟁의 허가를 냈다. 용신의 삼신기를 되찾는 날, 용족은 혼돈의 대륙만이 아닌 이 세상 전부를 다 지배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용신의 검과 불여우를 첫 목표로 잡고 대규모 전쟁의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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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 좋은 일인지 모르겠군.’

조제성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안전을 생각하고 되도록 위험 요소를 줄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혼돈의 대륙은 매력적인 부분도 많았다.

‘어차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프레이야 여신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광기의 세상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조제성은 일이 번거로워질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어느 한 곳 조용한 곳이 없군.’

조제성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가 눈을 감자, 엘프 아이들과 놀아주는 유혜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혜서 역시 그가 자신을 본 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미소를 지은 다음,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그 모습을 바라다 보며 편안한 기분에 빠지면서 그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니길, 영원히 이어지길 마음을 모아 간절히 청했다.

지나치게 행복한 사람은,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던가.

그가 요즘 꾸는 악몽의 대부분은 유혜서의 빈소에서 눈을 뜨는 것이었다.

여신이 나타난 것도, 유혜서와 함께 영원을 위해 일하는 것도 모두 꿈이었다는 식의 꿈을 꾸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의 소중한 행복이 찰나의 꿈으로 끝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는지, 놓치고 지나간 위험요소는 없는지 보고서들을 훑어 보기 시작했다.

그런 조제성의 모습을 보면서 유혜서는 살짝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녀 역시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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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갈등은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하나로 뭉친 용제국과 내외적으로 느슨하게 결집된 수인제국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용제국의 말단 병사들은 완전하게 하나로 뭉쳐 있었다. 그들은 용신이 영도하는 윤택한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면에서 디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이기건 지건, 말단 병사들은 용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품게 되는 것이다.

파죽지세라는 말처럼, 용제국은 순식간에 수인제국의 군대들을 궤멸시키고 진격해서 던전 지역을 완전히 제압했다.

물론 사전에 정보를 알고 있었던 원기 일행은 미리 던전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용족으로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불여우를 잡는 것이 폐광으로 만들어진 던전을 무너뜨리고 산을 파헤쳐서 검을 찾는 것보다는 빠를 터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의 계산과 다른 점은 불여우와 은호가 수인제국에 있어서 생각만큼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이었다.

원기와 희연은 놀들을 이끌고 이미 후방지역으로 완전히 빠져나간 뒤였다.

사령부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탈영병 취급을 받을 일도 없었다. 적의 급습을 받아서 가장 치열한 격전구를 수비하던 천인대가 패주하고 그 가운데 수십 명이 행방불명이 된 정도는 별 문제도 되지 않았다.

원기와 희연, 흰 호랑이의 진수와 붉은 여우의 반수는 그다지 유명한 인물들도 비중있는 이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원기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었다. 미쳐버린 혼돈의 대륙, 그 시스템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파괴는 불가피했다.

수인제국은 패배해서 적어도 멸망 직전까지는 갈 필요가 있었다. 전쟁이 빠르게 봉합되어 버린다면, 이 미쳐버린 세상도 원래 모습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이렇게 할 권리가 있는 걸까?’

원기는 죽어갈 많은 이들을 떠올리면서 중압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가축처럼 잡아먹히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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