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굴베이그
원기의 옆에 있는 무력한 소녀 굴베이그.
사실 드러난 것과는 달리 원기 진형에 있는 가장 위험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녀는 원기와 비슷하게 신으로서의 아바타를 가지고 있고, 신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원기의 본질이 인간이라면, 그녀의 본질은 신이었다.
원기는 굴베이그를 만들 때, 너무 서둘렀다.
보통 새로운 신을 낳을 때, 상위 신은 오랜 세월을 거쳐서 성숙된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신을 분리해서 만들어 낼 때, 자신들이 가진 많은 것들 중 일부를 뽑아내서 새로운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100을 가지고 있다면, 최대 10에서 1정도를 분리해 내서 만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젊은 신인 프레이는 새로운 신을 분리 창조할 생각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원기가 굴베이그를 만든다고 들었을 때 프레이는 새로운 프레이야는 강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스물도 채 되지않은 원기의 인격은 한사람 분을 이루기에도 미숙했다.
보통 인격을 이루는데는 학습한 것과 경험한 것들이 포함된다. 물론 인격을 분리할 때, 사적인 영역에 해당되는 개인적인 추억 등은 전이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굴베이그를 이루기 위한 인격 정보가 부족한 탓에 일부지만 사적인 추억까지 흘러들어갈 정도였다.
보통 이런 정도가 되면, 굴베이그는 원기의 쌍둥이 신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리고 쌍둥이 신의 경우에는 정체성의 혼란이 와서, 서로가 서로를 소멸시키려고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원기는 가장 끔찍하고 위험한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체성의 위기는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체성의 위기가 오기에는 굴베이그와 원기가 본질적으로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원기의 영혼은 순수한 인간이다.
그는 게임을 통해 게임 세계 내에서만 통용되는 유사신적인 아바타를 가질 수 있었고, 프레이야의 신격을 이어받음으로써 미드가르드와 현실에서도 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굴베이그는 프레이야에 의해서 태어난 미드가르드의 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매개체로 게임 캐릭터를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현실세계나 미드가르드에 신성력을 소모하지 않고 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아바타를 필요로 할 뿐이며, 그녀의 본질은 인간과는 별개의 존재였다.
원기가 신의 씨앗과는 전혀 무관하며, 평범한 인간 남성의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굴베이그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원기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원기의 영혼이 신의 씨앗이 아니고, 평범한 인간의 것이었다고 알게 된다면, 원기의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굴베이그는 원기의 곁에서 평범한 어린 소녀처럼 굴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각이 많았다.
그녀의 본질은 여신이고, 원기의 본질은 인간 남성이라고 하지만, 그녀가 원기에게 종속된 존재이며 피조물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인격적인 면에서 원기와 거의 같은 존재라는 점도 그녀에게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원기를 또 다른 자신으로 여겼다.
이를테면, 유체이탈한 영혼이 과거의 자신을 보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
경쟁상대로 여기기보다는 잘되는 모습을 보고싶고 잘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굴베이그의 창조는 원기에게 있어서 위험부담이 큰 행동이었지만, 운좋게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원기보다 고차원의 존재였지만, 원기에게 종속된 상태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녀의 현 상태였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것이 실수였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네.’
레벨 10, 평범한 성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린 소녀의 몸으로는 그리 큰 힘을 낼 수는 없었다. 외모에 비해서 강할 뿐, 기본적으로 약했다.
동렙이라도 외모라고 할까, 신체 능력에 비례해서 능력치의 변화가 있었다.
MP나 SP같은 특수 능력을 위한 스킬치들은 스태미너와 결합되어 버렸다.
블러드 라인의 게임 캐릭터들은 지치는 일이 없지만, 미드가르드에서 구현되면서 지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은 MP나 SP에 영향을 미쳤다. MP와 스태미너가 연결되어서, 육체적으로 지쳤을 경우엔 마법이나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소녀의 외형은 귀엽지만 그런 면에선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체 조건이 열악하면 마법 위력이 올라간다는 메리트는 있지만, 저렙에서는 아예 쓸모가 없었다.
인격을 이루기 위한 데이터로 경험이나 학습 등을 원기에게 이어받기는 했지만, 경험이나 학습은 시간을 거쳐서 인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기가 필사적으로 연희에게 배운 검술이나 전투 경험등은 거의 전달받지 못했다.
원기에게서 흘러들어온 사적인 추억 등도 어린시절 중심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이능 뿐이로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베이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받아들이는 신성력은 여신 아바타를 이용해야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원기의 경우 여신 아바타가 여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적이고 절대적이라면, 굴베이그는 선택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
여차하면 세계수와 여신 아바타의 링크를 끊고 자신과 직접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게임 아바타에 묶인 상태에서 가능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능의 능력을 조합해서 각성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녀의 영혼에 주어진 이능의 힘은 프레이야에게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량 자체는 프레이야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떤 이능으로 각성하는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면 리디아의 배가교환과 같은 능력을 얻는 것도 가능했다.
‘문제는 능력 하나 각성하기에도 부족한 양이라는 거로군.’
굴베이그는 원기 곁에서 늘 머무르고 있지만, 그림자가 옅을 수 밖에 없었다. 이심전심처럼 마음이 통하고 취향이 통하다보니, 대화가 필요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보니,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주어지는 이능의 능력은 희연이나 연하, 리디아보다도 현저히 적은 편이었다.
그녀는 여신다운 이능을 선택했다.
‘하위 피조물에 대한 강제 지배’
그녀가 이능을 언어로 구체화하자, 그것이 실현되었다.
제약은 있었다. 한번에 한개체, 그리고 지성에 입각한 자유의지를 지닌 자들에 대한 사용불가라는 조건이었다.
이러한 조건을 붙이지 않고는, 강제 지배라는 강력한 능력이 발동될 수 없었다.
‘이걸로 어떤 몬스터든 한마리는 내 수족처럼 지배할 수 있게 되겠지.’
굴베이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혼돈의 대륙에 엄청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일인지는 그녀로서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혼돈의 힘이라는 강대하고 변질된 신성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수백년 이상을 지속적으로 대륙을 덮고 있던 혼돈의 힘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거인족의 여신 ‘헬’이 있었다.
토르를 비롯한 아스 신족들은 거인족들이 움직이니 견제삼아, 덩달아 쫓아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헬은 용족들과 거래를 맺고, 혼돈의 대륙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사소한 거래라면 모를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오직 헬 뿐이었다.
‘아마도 수인족들과도 접촉하고 있을게 틀림없어.’
굴베이그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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