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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84화 (184/497)

184화 굴베이그 -2

용족들은 수인들을 포로로 잡지 않았다.

그 이유는 수인들이 인간들보다 강해서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인들의 뱃속에는 혼돈의 덩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장수한이 내단이라고 명명한 그 것은 혼돈의 힘이 저장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없으면 혼돈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복부에 있는 내단과 심장 곁에 있는 내단, 그리고 드물게 연수 부근에 있는 내단이 나왔다.

수인들에게 이 내단은 큰 의미가 없었다. 먹어봐야 그냥 소화가 될 뿐이지, 그 힘으로 더 크게 성장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용족들에겐 달랐다.

번식종이 나은 새끼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내단을 먹이면, 전투종의 새끼들은 내단을 지니게 되어 사제나 전사로 자라날 수 있었다.

심장 부근에 내단이 형성된 용족은 사제가, 그리고 하복부에 내단이 형성된 용족은 전사가 되는 것이었다.

내단을 먹지 못하고 내단없이 성장한 용족은 평범한 용족 병사가 되는 것이다. 인간보다 조금 강하지만,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용족들은 내단을 모아들이는게 부족들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었다.

수인은 잡히는데로 도축, 당장의 병량으로 쓰이고 따로 추려진 내단들은 소중히 수송되어 갓 태어난 새끼들 중 싹이 보이는 새끼들에게 먹여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 덕분에, 절반 이상의 수인제국 영역이 점령당하면서 수인들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특히 점령지역에서는 극소수의 몸을 숨긴 수인들 이외에는 살아남지 못했다. 결국 해방시킨 지역에는 인간들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인간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었다.

인간 해방의 깃발을 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것을 원하진 않았다. 수인들만이 용전사나 용사제들과 맞서서 싸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간들의 역할은 커짐에도 불구하고, 해방된 인간군들이 수인제국의 깃발을 들고 있게 만들어 주는 상황은 그다지 변치 않았다.

하지만, 인간들의 역할과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는 원기가 수인제국을 변화시켜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건 그렇고, 용족과 수인족들을 화해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겠군.’

원기는 용족들에 대해서 난감함을 느꼈다.

연하가 용신으로 여겨진다고 해서, 용족들의 생활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도를 넘어선다면, 연하 역시 배척받고 제거하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일단 몬스터들에게서도 내단이라는 것이 나오는 듯 하니.’

몬스터라고 하지만,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 같은 인간형 몬스터는 혼돈의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동물이 더 거대화되고 흉폭화된 것이었다.

특히 강자가 곤충류였다.

개미와 벌 종류는 여왕을 중심으로 무리가 ‘하나의 생식기를 가진 개체’와 같은 개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벌이라고 해도, 거대화되어 하늘을 날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개미와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꽁무니에서 산을 뿜어내는 것이 개미고, 독침을 찔러넣는 것이 벌이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거대한 덩치로 꿀을 빨아서 먹고 살 수는 없으니, 고기를 뼈채로 으적으적 씹어먹는 놈들을 보면서 ‘벌’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굴베이그는 몬스터를 지배하는 능력을 얻은 후에, 쓸만한 몬스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력한 몬스터를 지배하게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강력한 몬스터는 대량의 혼돈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대륙 중심부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굴베이그를 비롯해 원기 일행은 혼돈의 힘을 대체할 수단이 없으므로, 그 상황은 변치 않았다.

수인이나 용족이 혼돈의 힘이 희박한 대륙 해안부에 진출할 수 없는 것처럼, 강력한 몬스터는 혼돈의 힘이 짙은 대륙 중심부에서만 살 수 있었다.

게다가 무리를 짓는 몬스터들도 문제였다.

굴베이그가 여왕개미, 혹은 여왕벌을 지배해서 여왕의 몸에 올라타면 병정들이 굴베이그가 여왕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해서 굴베이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여왕이 병정을 공격하면 병정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여왕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굴베이그를 공격하려고 들었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그녀를 먹이로 간주하고 공격하려고 들기 때문에 무리를 가진 몬스터역시 지배해서 수족처럼 부리는 것은 무리였다.

여왕이 정신지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역할 분담만을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혼돈의 힘은 야성과 공격성, 육체를 강화할 뿐이었다. 인간과 같은 지혜나 소통의 능력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리고 용족과 수인족들이 생활하는 기본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몬스터의 크기는 큰 곰 수준의 덩치를 지니는 것이 최대였다.

능력 자체는 수인족들보다 강하지만, 다수의 수인족들이나 용족들을 제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혼돈의 대륙보다는 외부에서 유용한 능력이겠군.]

장수한은 간단하게 평했다. 혼돈의 대륙 외부에는 신성력으로 움직이는 몬스터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몬스터들은 지배해서 어렵지않게 부릴 수 있었다.

원기는 오니마 부족의 군대가 출발한 다음에도 점령지들을 공격해서 해방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병력 규모와 배치는 디레를 통해서 확인한 바 있었다.

디레를 따르는 세력들의 점령지와 정적들의 점령지는 미리 계획을 세운 디레에 의해서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기 일행은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아주 신출귀몰 하군.”

부족장이자 사제인 오니마는 이를 갈았다. 원기 일행은 인간들을 해방시키면, 그들과 즉시 나뉘어져서 신속하게 다른 점령지를 공격했다. 이동 속도를 떨구지도, 따로 근거지를 두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니마는 그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용기사들만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오백기의 용기사들이라면, 멀찌감치에서 포위를 한 다음 말에서 내려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불러올 것인가의 문제였다.

‘할 수 없다. 몰이를 해나가야겠다.’

오니마는 결단을 내렸다. 용기사대만으로 전투를 벌인다면 승산은 충분하지만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다.

양떼를 모는 개나 늑대처럼, 기병대가 원기 일행의 움직임을 제압하면서 후방의 전투 부대쪽으로 몰아서 협공을 하는데 성공한다면, 적은 피해로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들 군대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그것을 역이용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신님이다. 용신님이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고 계신다.”

연하는 하루에 한차례 정도씩 전선을 순회하면서 전장을 감시했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을 지도로 만들어서 용족들에게 나누어 주어왔다. 그렇기에 오니마 부족은 그녀가 하늘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적에게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용신님께서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불여우를 비롯한 짐승들은 북쪽에 존재하고 있다. 서쪽으로 우회해서 적의 북쪽으로 접근한다. 남쪽으로 적들을 몰아 붙이는 거다.”

용기사대의 선두에 선 오니마의 지시대로 용기사대가 움직였다.

용기사대는 북측으로 자리잡은 후, 원기 일행을 압박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 일행이 기대한 대로의 움직임이기도 했다.

“굴을 부수고 올라와! 그리고 싸워!”

굴베이그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기마대가 질주하던 평원의 지하에서 여왕개미가 땅굴을 부수면서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마대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 여왕개미에 당황한 용기사들은 여왕개미에게 공격을 가했다. 준비없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당황한 탓에, 효과적으로 공격하는데는 실패했다.

사제의 축복으로 각성해서 일거에 공격했다면, 여왕개미 한마리가 아니라 대여섯마리가 튀어나와도 순식간에 죽이고 짓밟았을 터였다. 하지만 당황해서 공격한 탓에 여왕개미를 죽이지 못했다. 다만 꽤 큰 타격을 입혔고, 여왕개미는 분노와 고통에 비명과도 비슷한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개미굴에 있던 병정개미들과 일개미들이 일제히 천정을 부수고, 땅위로 튀어 나왔다.

그들은 굴베이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지만, 여왕개미를 공격하는 적들에 반응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여왕의 피와 체액을 뒤집어 쓴 용기사대의 냄새를 맡은 병정개미들은 눈이 붉게 빛나면서 광전사처럼 앞뒤 안가리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놈을 자극하지마! 여왕개미는 건드리지 마라!”

흔히 접할 수 있는 몬스터였기에, 기사단들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보통이라면 부상을 입은 여왕개미는 도망을 치고 병정개미들은 여왕개미를 호위하면서 물러나게 되어 있었다. 일개미들이 마지막으로 빠져나가지만, 위협도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여왕 개미는 끝까지 기사대에게 달려들었다. 개미굴 곳곳이 무너지면서 기마대가 움직일 수도 없었다.

오니마는 당황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거대 개미들은 자신들의 덩치가 있기 때문에, 굴을 파더라도 충분한 깊이에 파고든다. 기병들이 빠져들 정도로 얕은 깊이에 굴을 파는 일은 없었다.

‘여왕 개미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죽자고 달려드는 여왕 개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왕 개미는 자신의 생존만을 우선하는 특성이 있어서, 궁지에 몰리더라도 공격하기 보다는 몸을 사리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이 여왕 개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신들을 공격했다.

‘빨리 죽이는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인가? 하지만...’

여왕 개미가 죽으면 병정 개미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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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것 같다.”

원기의 말에 굴베이그는 여왕 개미에게 퇴각을 명했다. 여왕 개미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굴 속 가장 깊은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병정 개미들도 땅 속으로 숨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원기와 희연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굴이 무너지면서, 지형은 엉망이 되어서 기마병들은 말과 함께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흙먼지 때문에,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원기와 희연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적진을 누비면서 용족의 사제들을 골라 해치웠다.

연하가 사열식을 하면서, 사제들에게 일일이 마킹을 해놨기 때문에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오니마는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는 희연을 보면서 최후를 직감했다.

기마를 잃고, 사제들을 모조리 잃은 용기사들은 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개미들에게 당한 용기사들은 백 기도 되지 않았기에 남은 용기사들은 놀들의 열 배 이상이었지만, 이미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은 오니마 부족의 병사들에 대해서는 인간들의 저항군에게 맡기면 되었다.

놀 제로가 그들과 함께 하는 만큼, 남은 소수의 용전사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용기사대에 오니마부족의 용사제들이 전부 참전한 탓에 용사제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놀 제로 홀로, 충분히 인간들을 이끌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변수는 없어. 그건 그렇고 고생한 보람이 있군.’

원기는 굴베이그의 지배 능력으로 여왕 개미를 조종하기 위해서 그녀를 안고 일개미들을 피해 사방으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포효 능력이 일개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면, 여왕 개미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대규모 무리를 이끄는 여왕개미라, 일개미나 병정개미들의 수효도 적지 않았다.

병정 개미들의 수비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일개미들의 먹이 사냥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서 원하는 장소에 둥지를 틀게 만들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둥지를 튼 다음에는, 여왕개미를 이용해서 개미굴의 천정 부분을 깎아내도록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다.

대부족 가운데 하나인 오니마 부족의 궤멸과 인간 저항군의 승리는 전황을 뒤흔들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디레는 지나칠 정도의 승리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추종하는 하이에나 무리 정도는 제거해 둘 필요가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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