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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189화 (189/497)

189화 세이프

유럽 경제 위기 이후, 세계 정세는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럽에 이슬람 신자가 증가하면서, 유럽이 중립 노선을 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거듭된 전쟁에서 쌓인 반감이 여러모로 폭발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동의 석유 자원은 여전히 미국이 대부분을 쥐고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이나 입김은 대폭 약화되어 있었다.

무리해서 친미정부를 세운 나라들에서도 선거나 쿠데타 등을 통해서 반미 노선을 택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간, 아니 그보다 악화된 나라들이 많았다.

남미의 경우는 경제난보다는 치안의 혼란이 컸다. 특히 친미 정부가 일으킨 경제적 혼란은 반정부, 반미의 흐름을 키운 것이 사실이었다. 대기업과 재벌들이 돈을 벌고, 노동자들이 몰락한 M국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갱들이 공권력을 무시할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더욱 격해지게 되었다.

하이재킹이라는 구시대의 범죄가 부활하게 된 것도 이런 결과 때문이었다. 세계적 치안 악화가 그 원인이었다.

납치범들은 기장실을 점거하고, 항로를 남미로 잡았다. 그리고 미국측과 교섭을 시작했다. 납치범들의 요구는 잡혀있는 갱단의 간부 석방과 막대한 돈이었다. 요구를 들어주면, 남미 공항에 착륙한다는 것이었다.

남미에 착륙하게 되면, 납치범들의 체포는 불가능하지만, 승객들의 안전은 미국측이 확보할 수 있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중동으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군수 사업체 관련자들은 중동에서 전범으로 간주해서 처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외에 중동에서 특별히 적대하지 않는 승객들이라고 해도 돌려받으려면 어려움이 클 터였다.

몇차례의 잇권을 둘러싼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자원에 대한 권한은 확보했지만, 대량의 피와 혈세를 낭비했고 그 결과 반미 정부 설립에 기여하는 결과만을 낳았다.

결국, 여론이 악화되어 중동에 대해서 전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기 힘들게 되어버린 것이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하이재킹이라는 한때는 근절되었던 범죄가 공공연하게 부활된 이유였다.

약 한 시간쯤 지났을까, 루시는 잠에서 깨어났다. 물론 눈을 뜨지는 않았다. 납치범들이 긴장이 풀리면서, 조금씩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줄리 파웰이라고?’

그녀는 재빨리 그녀가 들은 스튜어디스의 이름을 레이니에게 보고했다.

[줄리 파웰이라는 여성이 협조자라는 말이지.]

‘아무래도 협박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납치범들도 그다지 협조를 기대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으니.’

[아들이 있군. 좋아. 크리스에게 일단 알리도록 하지.]

크리스 맥케이는 사장이고 대외적으로 상급자이긴 하지만, 엘프들은 그와는 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엘프가 윗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은 원기, 제성, 수한 세사람 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크엘프들에겐 프레이의 친구인 두 사람이 포함되었다.

루시는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정보를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남미의 갱단 소속이며, 리디아의 산하에 들어있는 이들임을 알 수 있었다.

‘어이 없군. 리디아가 없는 탓인가.’

리디아의 능력, ‘배가교환’은 대단히 편리한 능력이지만, 세뇌 능력과는 달랐다. 상대는 리디아에 대해 호의를 갖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호의에 지나지 않았다.

고양이가 자기 주인에게 죽은 쥐를 가져다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리디아의 장기 부재로, 남미 조직들은 조직의 확장이 리디아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디아가 없으니, 그들에 대해서 통제할 수단도 없었다.

전적으로 리디아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 호의에 힘입어 손에 넣은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디레도 마찬가지였다.

디레는 리디아에 대해 호의를 갖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호의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놀들은 리디아와 일체의 관계가 없었다.

원기와 희연, 굴베이그를 제외하면 놀제로를 비롯한 그녀의 부족들은 리디아와 면식도 없는 이용 대상이었다.

원기 일행이 지나치게 유능해서, 후방 교란이 지나치게 이루어졌다고 보았기에 인간들의 사기를 꺾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었다.

자신이 빨리 이 대륙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는 것이, 리디아에게 이런 저런 배려를 해줄 수 있다고 믿기에, 디레는 놀들의 제거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알아낸 정보는 조제성에게도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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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

치안이 나빠져도, 치안이 좋아져도 조제성은 돈을 벌고 있었다. 물론 치안이 나빠지는 상황에서는 수입이 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상황에서 조제성은 투자를 통해서 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올리고 있었다.

권력과 토지를 확보하는데는 치안이 안좋은 상황이 더 좋은 편이었다.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의 활동은 악인을 처단하는 좋은 활동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 지역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결정적인 것이 그들이 활동하는 것이 사람들의 공권력에 대한 믿음을 실추시킨 것이었다.

법과 경찰을 믿어야 국민들이 스스로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과 경찰은 신뢰가 가지 않고,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같은 초법적 존재들이 날뛰다보니,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총기를 갖게 되고 폭력에 의존하니 치안이 더욱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자경단과 민병대 같은 것이 흥하게 된 것이었다.

‘현실에는 스파이더맨이고 배트맨이고 모두 민폐일 뿐이로군. 뭐,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조제성은 극단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치안을 예상하고 거대 주상복합 건물을 지었다. 사무실, 상가, 주거건물이 전부 하나로 뭉친 건물이었다.

건물 내에는 무장 경비원과 감시 카메라로 완벽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이었다.

하나의 건물이면서, 하나의 도시.

그것을 소유함으로서 조제성은 그 지역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리디아 산하 폭력조직들이 멋대로 날뛰는 상황이 되자, 치안 유지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출입하는 사람들 전부를 공항처럼 보안 검색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디아양의 부재가 아쉽군.’

원기일행과 리디아를 현실로 귀환시키는 것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최우선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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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부모가 납치되어 있었다.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보고다. 그녀는 수동적 협조자에 불과해. 문제는 그들을 납치한 놈들을 통해 알아낸 건데, 비행기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추가로 유감스러운 소식이지만, 정부가 타협할 생각이 없다. 중동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녀의 질문에 잠시 레이니는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파티 채팅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움직이지 마. 비행기에 장착된 폭탄은 리모컨 식이다. 중동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폭발하지는 않을 거다. 놈들은 테러리스트는 아니야.]

루시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편하게 돌아가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저 분이 심장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돕지 않으면.”

김태훈이 황급히 일어나서 움직였다. 극도의 긴장에 심장 발작을 일으킨 환자가 있었던 것이었다.

“제자리로 돌아가!”

“아니, 잠깐만 멈춰라.”

괜히 나섰다고 생각한 김태훈이 자리에 돌아가려는 순간, 냉혹해 보이는 눈매의 남자가 김태훈을 불러 세웠다.

“너 의사인건가?”

스탑이라는 말에 멈춘 김태훈은 닥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의사는 아니지만, 의술에 대한 공부는 했고, 응급치료에 대한 경험은 많았다. 의사라고 하면 환자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영어에 능숙한 편은 아니지만, 납치범이 사용한 간단한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냉혹한 눈초리의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일그러지고 가학적인 미소였다.

‘죽일 생각이군.’

루시는 죽음이 난무하는 미드가르드 출신답게, 살의를 읽었다. 그녀는 이미 돌발사태를 대비해서 맨 뒷좌석으로 이동해 있었다.

‘죽으면 미안.’

루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후방 감시원의 뒷통수를 힘껏 갈겼다. 게임 캐릭터의 힘을 생각하면 일격에 즉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녀석은 기절하는 것에 그쳤다.

적어도 몇시간 내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터였다.

그와 동시에 루시는 표창을 던졌다. 그녀의 움직임이 컸던 탓에 납치범은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고 놀란 표정이 되었지만 미간에 표창이 박히면서 즉사했다.

동료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주시하던 납치범도 놀라서 총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표창이 날아오던 쪽을 보다가 역시 미간에 표창을 맞고 사망했다.

“이봐. 적들 가운데 몸에 의료장치 비슷한 걸 가진 사람이 있어?”

루시가 묻자,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간기능 저하 같은 내과계 질병은 있어도 특별히 몸에 기계 같은 것을 장착한 이는 없었다.

“환자나 돌봐.”

루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총 한자루를 주워들었다. 후방 좌석쪽이 시끄러우니 2층에서 내려오는 납치범의 발소리만 들어도 그녀는 충분히 두 사람의 납치범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호, 득템이다.”

그녀는 적이 단검을 가진 것을 보고서 권총보다 더 기뻐했다. 도적계의 기본 스킬중 하나가 단검 회수였다. 패시브 스킬로 5초의 쿨타임이 있지만, 단검류 무기를 던지면 즉시 손안으로 돌아오는 스킬이었다.

5초에 한번씩 밖에 못쓰는 스킬이라 게임에선 그냥저냥 쓸만한 스킬이라면, 현실에서는 사기성 기술 중 하나였다.

그녀는 2층에서 내려오는 사내를 본 순간, 단검을 던져 한명을 즉사시키고, 한 사내는 목뼈를 분질러 버렸다.

민첩 위주의 도적계 캐릭터라지만 만렙인 만큼 한손으로 인간을 들거나 목을 꺾어 버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시간이 없어.’

그녀는 거침없이 기장실로 달려갔다. 기장실로 향하는 문은 납치범들이 장악한 탓에 열려 있었다.

“뭐냐? 너는?”

납치범들의 리더는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미소녀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미소녀는 그에게 부딛쳐서 넘어졌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소녀스럽게 넘어진 탓에 리더는 소녀가 누군지, 공격해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리고 일어난 소녀의 손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리모컨이 들려있었다. 폭파용 리모컨이었다.

“어? 그게 어떻게 네 손에? 이리 내놔.”

그는 총을 겨눌 생각을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함부로 잘못 건드리면 폭파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아저씨 거예요?”

세상 물정 모를 정도의 나이로 보이진 않았지만, 워낙 귀엽고 예쁘게 생겨서 상대의 방심을 불러왔다. 그는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그래. 그러니 이리 주렴.”

소녀의 손이 리모컨을 그에게 넘겨줄 듯 내밀어 진 순간, 그녀의 빈 손이 그의 목을 붙잡고 툭 꺾자, 그의 몸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 총들 당신들이 보관해 주세요.”

소녀는 기장에게 권총 4정과 서브머신건까지 넘겼다.

“그 리모컨은?”

“폭탄의 기폭 스위치에요. 미안하지만, 제가 보관하는게 제일 안전할 거에요.”

그녀는 총 한자루와 단검을 들고는 빠르게 움직여서 2층을 향했다. 그리고 곧, 비명소리와 환호성 소리가 객실에서 울려 퍼졌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런데 어디서 일하는 분이세요?”

스튜어디스 한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와 음료수를 넘기며 물었다. 그러자, 루시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 부모님은 구출되었다는군요. 그리고 혹시 폭탄이 있는 곳 아세요?”

“폭탄? 폭탄이라고요?”

그녀는 자신이 넘긴 것이 오직 가방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루시는 그녀에게서 폭약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후각을 발휘해 볼까.’

그녀는 냄새를 맡으며 승무원 전용 통로와 화물칸을 뒤져가며 폭탄을 찾았다. 폭탄은 수화물들 가운데 들어 있었다. 공항 직원 가운데에도 매수된 이들이 있는 듯 했다.

“폭탄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랜딩 기어를 열어주세요.”

그녀의 요구에 기장은 고도를 낮추고 랜딩 기어를 열었다. 그녀는 정비용 통로로 랜딩 기어가 있는 곳으로 간 다음, 스튜어드가 보는 앞에서 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폭탄과 함께 뛰어 내렸다.

“소, 소녀가 뛰어 내렸습니다. 폭탄과 함께요!”

“자살?”

“낙하산은 없었습니다! 분명히요!”

여객기는 비행중에는 문이 안열리게 되어 있어서, 낙하산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비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대체...”

김태훈과 김민정은 사람들의 동요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루시 2호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 둘은 옆자리에 앉았던 소녀가 자신들과 모르는 사이라고 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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