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190화 (190/497)

190화 종단속도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무서워.”

조제성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사람은 죽는다. 틀리진 않지.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확실히 죽는다. 그건 꼭 맞는 말은 아니지.”

장수한은 그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의 눈에도 조제성은 경외롭게 보였다.

‘대체 저 사람이 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과연 나하고 같은 세상을 보고 있는게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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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빗방울에 맞아 죽지 않는다.

수백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약 높이에 비례해서 가속한다면 그 위력은 총알에 버금갈 것이다.

하지만 바람의 저항이 빗방울의 가속을 막는다.

그래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이나 수백미터 수천미터 위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결국 5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나, 10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나, 수천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나 그 최고 속도는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력 가속도에 의한 속도 증가와 공기의 저항에 의한 속도 감소가 완전 상쇄되는 속도를 종단속도라고 한다.

떨어지는 물체의 최고 속도이자, 제한 속도라고 할 수 있다.

부피가 크고 무게가 작으면 그만큼 종단속도는 느려진다.

간단히 눌러죽일 수 있는 개미는 부피에 비해 무게가 작아서, 절대 떨어져 죽을 수가 없다.

수백미터 위에서 떨어지건 1미터 위에서 떨어지건 개미는 죽지 않는다.

인간은 과연 어떨까.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종속’, 종단속도가 존재했다.

스카이 다이버가 떨어지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시속 약 190-200키로라고 알려져 있다. 최대한 공기의 저항을 적게 받고 머리, 혹은 다리부터 떨어져도 이 속도 이상은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약 30미터짜리 건물, 10층 건물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에 해당한다.

더불어 공기의 저항은 떨어지는 자세에 따라서 바뀐다.

그렇기에 최대한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으려고 들면, 약 11미터에서 떨어지는 속도가 한계 속도가 된다고 한다.

인간이 11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바로 최소 종단속도에 달하는 높이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비행기에서 떨어진 스카이 다이버가 낙하산이 안펴졌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살아남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무협 소설의 주인공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살아남는 기연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일 수도 있다. 절벽의 높이와 관계 없이 떨어지는 속도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추락 속도는 자세에 따라 약 시속 60키로에서 200키로 사이가 최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75킬로그램의 남성 기준)

무협 소설에서 등장하는 무공을 익혀 육체가 강화된 인간이라면,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충분히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엘프들은 나무를 잘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주 나무에서 떨어진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신발신고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엘프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떨어지는데 익숙했다.

약 4-5미터 높이에서 떨어질 경우, 제대로 낙법을 활용하면 그들은 부상 없이 착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특유의 호리호리하고 갸냘픈 체격 덕분에 그들은 제대로 낙법을 활용할 경우, 어떤 높이에서 떨어져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물며, 인간의 세배 가까운 능력을 가진 게임 캐릭터를 얻은 그들은, 추락해서 사망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머리를 일부러 밑으로 하고, 최대 속도를 얻어서 두개골 파열과 목뼈 골절을 유도해야 사망 판정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루시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사실 그녀가 죽을 생각이 있어도 바다에 떨어져서는 죽을 수도 없었다.

‘상어에 물리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아, 폭탄이 있었지.’

충격으로 폭발하는 타입의 폭탄은 아니었지만, 수면에 충돌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멀찌감치 폭탄 가방을 던졌다. 가방을 던지자, 낙하 속도가 추가로 감소했다.

도적계통 직업에는 고양이 낙법이라는 기술이 있어서 스킬을 사용하면 낙하 충격을 줄이는 재주도 있지만, 엘프들은 굳이 그런 기술이 없어도 게임 캐릭터를 사용할시 어떤 높이에서든 별 부상없이 착지가 가능했다.

종단속도 개념과 게임 캐릭터의 특성을 사용한 낙하산 없는 강하 부대의 조성이 가능했다.

물론, 이 종단속도는 부피와 무게의 비율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테러 나이트나 나이트 엔젤의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는 엘프들의 게임 캐릭터가 고양이 낙법을 쓴다고 해도 즉사를 면치 못했다.

100% 사망. 그것이 시뮬레이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따라서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의 경우, 엘프들이 탔을 경우 10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착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얻은 결론이었다.

(이미 그 사실을 확인한 조제성은 움직임에 지장이 없고 간소한 낙하용 특수 장비 개발을 의뢰한 상태였다.)

경무장 엘프들이 고공에서 낙하산 없이 낙하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사용할 일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물론 훈련은 철저히 받았다. 게임 캐릭터를 사용하는 모든 엘프들은 고공에서 경무장 한 상태로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훈련을 받았다.

평지나 빌딩 옥상 같은 경우에 100% 부상자 없이 완전한 착륙에 성공했다. 숲과 험악한 지형, 바위산의 경우에는 부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경우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김태훈이나 김민정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한국 여권을 사용하고 있지만, 엘프녀 군단들은 대부분 남미의 위조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네메시스의 작전에 참여할 때에는 별도의 신분증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후 추적을 한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녀는 수면 3미터 위에서 자연스럽게 다이빙 포즈를 취하고는 아주 매끈하게 바닷물 속으로 입수했다.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많은 엘프들에게 있어서, 정확한 착수 혹은 착지 타이밍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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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크긴 컸군.’

미수로 끝났다지만 하이재킹 사건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시체가 일곱구나 나왔으니 작은 일이 될 수가 없었다.

김태훈은 루시의 옆자리였다는 점과 의사를 사칭하고 환자를 치료한 사실 등 때문에 조금 오래 사정청취를 받았다.

그는 루시가 지시한데로, 루시와는 모르는 사이라고 잡아뗐다. 그녀가 한국말을 썼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어눌한 영어 실력은 훌륭한 방패가 될 수 있었다.

뒷 좌석에서 기절해 있던 범인과 인질을 잡혀서 납치범들에게 협조한 스튜어디스는 체포되었다.

정상 참작은 되겠지만, 인질을 잡혔다고 하이재킹같은 중범죄에 협조한 이상, 사법처리는 피할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이유를 알 수 있겠군.’

단순한 증인도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하이재킹을 한 납치범이라고 해도 사람들을 대량으로 살상한 이상은 오랜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물론 지금만으로도 꽤 골치가 아파지는 대소동이하겠지만, 실체가 없이 추측만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면 소문은 쉽게 잦아들 가능성이 컸다.

한참의 조사 후, 김태훈과 김민정은 입국 게이트를 통해서 공항 대합실로 나섰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쓰인 피켓을 발견한 순간, 깜짝 놀랐다. 피켓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바로 루시가 피켓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거지요?”

“넌 죽지 않아. 내가 지키니까. 난 아마 세번째라고 생각해.”

“에?”

“농담이야. 내 전 소속 사령관이 오타쿠라서 이정도 명대사는 기억하고 있지. 그건 그렇고 정말 오래 걸렸네. 기다리다가 진이 빠지는 줄 알았어.”

김태훈은 주위를 살펴 보았다. 비행기 승객들이 가족들과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들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모자를 쓰고 옷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녀처럼 아름다운 소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상했다.

‘아, 그녀는 남들에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능력을 지녔지.’

비슷한 이능, 남에게 혐오스럽게 보이는 능력을 가졌던 루시 못지않게 예쁜 소녀를 떠올리며 그는 납득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저희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었지요?”

“살짝 정정하자면 실제론 너희가 먼저 도착했어. 나오는게 늦었을 뿐이야. 바다에 멋지게 다이빙한 날 회사 헬기가 태우러 온 것 뿐이지. 캘리포니아 앞 바다도 나쁘진 않네.”

“비행기에서 떨어졌는데, 무사하셨던 겁니까?”

“부활할 수도 있지만, 악마 잡으러 가기 귀찮거든. 그래서 죽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지.”

그녀는 보스몹을 떠올리면서, 가볍게 말했지만 김태훈과 김민정은 달랐다.

‘악마? 정말 악마라는게 있는 걸까? 여신님이 계시니 악마가 있는게 당연한 거겠지?’

‘악마를 죽여야 부활할 수 있는 걸까? 그럼 여신님이 도와주셔도 악마를 잡지 못하면 무리인거 아닐까?’

그녀의 농담섞인 진담에 악마와 싸우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두 사람이었다.

“우선, 리무진 준비해 놨으니까, 호텔로 가자. 일단 호사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야. 시차적응 겸 유급 휴가라고 생각하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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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여기 경호료 청구서입니다.”

“웃기는 군. 자네들의 활동은 본 적이 없어.”

모 군수 기업 사장은 딸이 하이재킹을 만나 고생한 것도 불쾌한데, 뻔뻔스럽게 경호료 청구서를 들고 온 사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사내는 그의 날카로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설마...”

“저희는 악덕업자라서, 경호료는 일종의 보험료와 같은 개념입니다. 경호 대상자가 무사하면, 그걸 성공한 것으로 보지요. 사고가 안났다고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보험료? 악덕업자?”

“예. 악덕업자입니다. 지불하시든 거부하시든 받아들입니다만, 이후 저희 회사의 안전보장 서비스에는 가입하실 수 없습니다.”

“설마 죽은 소녀를 자네 컴퍼니에서 보낸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희 컴퍼니에서 그날 그시각에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 지불 의사가 없으시다면,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뵐 일이 없겠군요.”

사장은 상대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협박같은 것이 아니었다. 복잡하긴 하지만, 일종의 동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복을 걷어차는 바보에 대한 연민과도 같았다. 그것을 직감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딸이 무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게 경호료를 약속한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그들의 활약으로 사건이 해결된 거라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싼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좋아. 수고 많았네. 이번 조치에 감사하는 뜻으로 상여금을 넣어 두지.”

“하하, 말씀이 잘 통하시는 분이군요. 상여금에 대한 답례 차원으로 사장님 가족께 만나게 해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만, 어떠십니까? 스케쥴은 괜찮으십니까? 물론 바쁘시다면 강요는 않겠습니다.”

사장은 내심 당황했다.

가족과 만나게 해준다는 말이 왠지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얹어주는 돈에 대한 보답으로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면 이해가 가지만, 그 경우에도 가족은 필요치 않았다.

“아, 가족이라고 꼭 그러란 법은 없지요. 특별히 10명까지 허락하겠습니다. 사장님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이들이 있다면 함께 식사나 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식비와 식당 예약은 사장님께서 지불하시는 것으로 말이지요. 이거 힌트를 너무 많이 드린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뒤에 따르는 힌트라는 표현에 사장은 쓴 웃음을 지었다.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아는 놈이로군.’

사장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네메시스라는 회사가 자신이 생각하는 곳과는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구출 전문 전문가 집단과는 다를 가능성이 보였다.

“알겠네. 언제로 잡으면 되겠나?”

“식사 수준인데, 호화스러운 식사로 잡으시면 일주일 내에 잡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보통의 식사라면 사흘 내에 잡아주십시오. 일주일 후에는 시간 잡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특별’ 서비스니까요.”

“그렇게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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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잘해 주었네.”

사내의 보고를 들은 크리스 맥케이는 한숨을 쉬었다.

‘리디아 전하가 계시면 일이 쉬울텐데.’

미국과 연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위층과 친분을 만들어가면서도 정보기관에게 집중 감시 당하는 것을 피할 필요는 있었다. 그렇기에 정보를 조금씩 흘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상어들 틈에서 참치 낚시를 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미끼는 상어도 참치도 비슷하다. 미끼를 던지지 않으면 낚을 수 없다.

미끼를 너무 많이 풀면 상어가 낚일 수 있고, 참치에게 미끼를 먹이는데 성공하더라도, 참치가 지나치게 주목을 끌면 참치 채로 상어에게 물리는 수가 있었다.

여차하면 클레어와 함께 지상에서의 신분을 말소하고 미드가르드에서 살아갈 각오를 하고 뛰어든 상태였다. 조제성이나 장수한과의 외적인 연결도 모두 끊겨 있었다.

SAS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리기 위한 부득이한 조처였다.

그렇기에 그는 위험을 알면서도, 조금씩 친분을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했다.

‘애완동물 길들이기 서비스는 어떨까?’

이미우와 김민정을 이용하면, 개나 고양이가 대소변을 변기에 보게 만드는 정도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애완견 문화가 특히 상류층에서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만큼, 서비스로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고려해 볼 만한 가치는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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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와 희연의 스킨 쉽은, 사실 혼돈의 대륙에 들어서서 상당히 좋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일단 희연과 굴베이그에게 있어서, 원기는 커다란 인형과 애완동물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존재였다.

부드러운 모피도 좋아했고, 까끌까끌한 혓바닥의 감촉도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손바닥과 발바닥에 있는 살덩어리였다.

흔히 사람들이 육구라고 표현하는 분홍색의 살점이 그것이었다.

개과 동물의 경우, 집에서 기르는 소형견이 아니라면 육구의 감촉은 거칠고 딱딱하게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형 고양이과 동물, 특히 홀로 사냥하는게 주특기인 동물들은 그렇게까지 거칠어지지도 단단하게도 되지 않았다. 약간 질기고 두꺼운 피부층을 가질 뿐 감촉은 꽤 부들부들하고 좋았다.

흔히 그루밍이라고 하는 고양이과 짐승 특유의 털관리를 원기는 하지 않았다. 혓바닥으로 털을 골라서 털을 대량으로 삼키는 짓거리를 하는건 사실 무리에 가까웠다.

그래서 희연과 굴베이그가 원기의 모피를 세탁하는 일을 맡았다. 원기는 모피를 노숙할 때 편한 존재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에 걸레처럼 방치했고, 정성들여 모피를 씻고 빗어주는 것은 깨끗한 모피의 감촉을 즐기는 두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원기는 아무 땅바닥에서나 편하게 뒹굴 수 있는 모피의 장점을 만끽할 수 없게 되었다. 원기의 모피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두사람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둘만의 노숙이네요.”

희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큼직한 모포를 바닥에 깔았다. 그다지 부드럽지는 않지만, 원기의 고급스러운 모피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곡물을 뭉쳐 만든 건조식, 장수한이 벽곡단이라고 칭한 맛없는 식사를 한 후, 원기가 눕자 희연도 그의 품에 파묻히듯이 누웠다.

물론 그것은 건장한 남정네 품에 안기는 그런 자세보다는 큼직한 짐승을 베개삼아 눕는 소녀의 자세와 비슷했다.

스킨 쉽의 진보라면 진보지만, 애정도의 진보와는 크게 연결되지 않았다.

노숙을 한다고 해도, 가상 공간인 파티 스페이스를 구현하면 그다지 심심할 일은 없었다. 동영상을 보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언니, 오늘은 모피를 독점하는거야? 좋겠네.]

연하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꾹꾹이도 좀 해주면 좋은데, 부탁하기가 좀 그래.”

희연의 말에 원기는 어색하게 웃었다. 육구를 이용해서 고양이과들이 발로 사람의 이곳 저곳을 누르는 것을 꾹꾹이라고 고양이 애호가들이 불렀다.

“잠깐 엎드려 봐. 내가 꾹꾹이 해줄께.”

그 말에 희연은 모포 위에 엎드렸고, 원기는 육구를 이용해서 희연의 등과 팔 다리를 맛사지 해주었다. 그러자 희연은 가방에서 털을 다듬는 브러시를 꺼내서 원기의 털 이곳 저곳을 다듬어 주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이 있어서, 원기 역시 편히 즐길 수 있었다.

[부러워 죽겠네. 굴베이그도 그렇지?]

연하는 굴베이그를 여동생처럼 여기는 듯 했다. 스스럼없는 그녀의 사교성은 확실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예. 저도 그래요.]

원기는 임무를 받은 후에, 굴베이그를 두고 왔다. 놀들이 언제든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그녀들은 모두 야간에는 전력이 대폭으로 감소했다. 완전한 인간형이 된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들만큼 약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낮의 전투형태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굴베이그는 근처 평야에 여왕개미를 배치해 놓았다. 개미들은 땅굴을 파고 있었다. 출구를 진지에서 떨어진 곳에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일개미들이나 병정개미들과의 접촉은 줄일 수 있었다.

진지 가까운 쪽에도 구멍을 하나 파놓기는 했지만, 그 구멍은 여왕개미가 몸으로 막고 있어서, 일개미들이나 병정 개미들이 쳐들어 올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피신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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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대로로군. 개미집이 자리잡고 있어.”

디레가 보낸 용기사단의 단장은 개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좀 귀찮기는 하지만, 잘된 일이기도 하지. 저놈들이 없었다면 안심하고 이곳에 머물지 않았을테니.”

야간에 인간의 모습이 되는 놀들의 약점과 그들이 믿는 최후의 보루인 개미굴의 존재까지 디레를 통해서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여왕개미가 막고 있는 탈출구는 여차하면 여왕개미를 해치울 수 있는 절호의 공격 지점이기도 했다.

병정개미들과 일개미들이 미친 듯 날뛰겠지만, 굴베이그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마리 뿐이었다.

“확실히 섬멸하는 거다. 한마리도 놓쳐서는 안된다. 알고 있겠지?”

단장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개미는 강력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다. 딱딱한 껍질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렸다. 그리고 그들은 개미굴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개미굴과 진지 사이로 들어가서 진지를 몰아치고, 동시에 여왕개미를 제거해 버린다면 의도된 참살은 가능했다.

여왕개미를 죽이고, 수인족들을 개미굴 쪽으로 몰아간다면 더 쉽게 학살할 수 있겠지만, 놀 한마리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좋아. 해가 떨어졌군. 진격하라!”

그의 지시와 함께 용기사들은 말을 몰아 놀들이 있는 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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