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세이프 -2
놀들의 군사 훈련은 너무나도 쉽게 진행되었다. 워낙 전투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차량만 못하지만, 대형 몬스터들과 교전 경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대 차량 전투술의 경우는 쉽게 익혔다.
그리고 총이라는 무기에 대한 적응도 생각보다 쉬웠다. 액션 영화와 전쟁영화에 푹 빠져들어서, 훈련 외의 시간에는 미친듯이 영화를 보았고 그것만으로도 현대 병기에 대한 이해도가 꽤 상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한 언어 교육은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영어의 경우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고대 라틴어와 켈트어의 영향이 큰 미드가르드의 경우, 영어와도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영화에 몰입한 영향도 적지 않을 터였다.
문제는 일상생활에 대한 적응이었다.
문명인으로서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완전히 야만인에 가까웠다. 성격적으로 깔끔하고 조용한 엘프들과 다르다보니 그 관리가 쉽지 않았다.
왜 조용히 해야 하고, 왜 정리해야 하는지, 왜 사람(고기)들을 배려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도덕성과 윤리, 매너 등에서 빵점에 가까웠다.
혼돈의 대륙에서 드러나지 않던 문제점이었다. 혼돈의 대륙에서는 나름 상류층이다보니,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조금은 세련되게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희연 뿐이었다. 그들을 얼러가면서 좋아하는 일들을 시키는 것은 쉬웠지만, 그들이 싫어하는 여러가지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은 희연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원기의 경우엔 싫은 소리를 하려고 들어도, 기회라는 듯이 엉겨붙었다. 그리고 원기와 희연을 제외한 인간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그들은 잡아먹을 듯이 공격적으로 을러댔다.
놀들의 살기와 흉포함은 장난이 아니라서, 왠만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었다. 엘프들조차도 슬슬 피하게 만들었다. 놀들을 비롯한 혼돈의 대륙에서 잘나가는 야수들은 미드가르드에서도 꽤 강력한 몬스터급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눈빛만 마주쳐도 엘프들은 피하고 싶어지는게 당연했다.
야단칠 수 있는게 희연 뿐인데다가, 놀들은 꽤 능글맞기 까지 해서 결국, 그녀의 입이 꽤 험해지고 말았다.
화장실 사용부터, 정리정돈까지. 물론 성과는 있었다.
그 덕분에 이제는 희연의 고함이 터질 듯한 기미가 보이면, 놀 제로까지 눈을 쫙 깔고 어디로 숨을지 고민하는 판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원기는 신규 게임 캐릭터를 이용해서 몰래 미드가르드를 시찰하고 있었다. 오딘의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만큼, 프레이야가 나설 수는 없었다.
그리고 꽤 많은 변화를 이룬 프레이야 제국의 모습에 원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제성은 대량으로 현실 세계의 식량을 들여왔다. 그리고 농사를 짓던 인력을 모조리 건축으로 돌린 것이었다.
그리고 발생한 농업의 공백은 현대화된 대규모 농장 건설을 추진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현대의 풍족한 식량은 공기중의 풍부한 질소에서, 암모니아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화약의 대량 생산을 위해 만들어낸 이 기술은 비료의 대량 생산, 곧 식량의 대량 생산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고 인류가 식량 문제에서 해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었다.
비료가 없이 척박한 땅에서 작은 수확을 위해서 주린배를 움켜쥐고 뼈빠지게 일하던 농부들은 대량으로 지급되는 식량을 보고 기꺼이 건축업으로 직종을 변경했다.
이를 토대로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건물을 세운 것이었다.
식량이라는 아주 저렴한 인건비로 풍부한 인력을 사용하고, 대량의 시멘트를 들여다가 공사를 벌인 덕택에, 엄청난 규모의 토목 사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것이 프레이야 제국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리고 엘프들에게는 넓은 대지를 가진 주택들이 제공되었다. 고급스럽지만 작은 건물에, 아름답게 정원을 꾸밀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다.
마치 작은 공원과도 같은 녹지가 엘프들의 저택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한가지 오산이었다면, 엘프들이 그다지 정원 조성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엘프들은 생존을 위해서 숲에서 살았을 뿐, 숲에 대한 애착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들이 숲을 보호하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지켜주는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이었다.
안전하지 못할 때는 요새가 좋았지만, 안전한 상황에선 그들도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조제성의 무관심과 장수한의 환상이 원기의 신탁으로 오인되어서 엘프들은 정원 관리에 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엘프들은 숲에서 살아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프레이야의 신탁으로 믿고 열심히 정원을 꾸미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엘프들은 모두 귀족인 동시에 군인이었고, 작위가 곧 계급이었다. 그 외에도 토목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변변한 훈련도 받지 않았고, 하는 일 자체도 군대와 큰 관계가 없지만 신분 상 모두 군인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는 유사시에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어서, 지구에서라면 분란이 일어날 만 했지만, 미드가르드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제성이 특히 힘을 기울인 것은 철도였다.
자동차의 보급은 그리 간단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국민 전체의 지식수준, 생활수준이 향상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철도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철도는 민간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군사력 증강의 목적도 강했다. 유사시에는 디젤 열차들과 열차 포대가 쏟아져 나와서 필요로 하는 지점에 화력과 군사력을 집중시키게 될 수 있을 터였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사실 많은 이들의 반감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음악만 해도 미드가르드의 음악과 지구의 음악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현대의 음악들은 미드가르드에서 통용될 음악이 아니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그런 모든 문화적 거부감을 신앙심으로 극복했다. 프레이야가 좋아하는 것은 마땅히 엘프들도 좋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장수한이 가진 이종족에 대한 영향력도 있었다.
급격한 변화에 대한 인간들의 반감은 컸지만, 그것을 어찌 표출해야 할지 모르는데다가, 식량 사정이 좋아졌다던가, 사회가 번영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에 발출구를 못찾고 와해되고 있었다.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활기차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넘친다는 사실또한 느낄 수 있었다.
원기는 그런 프레이야 제국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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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신족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어리석은 놈들이야. 대체 왜 헛된 곳에 힘을 쓰는지 모르겠군.”
프레이야 제국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오딘은 혀를 찼다. 자신이라면, 현대 문물과 식량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문화라든가, 인권이라든가, 교육에 돈을 쓰는 것이 지나친 낭비라고 여겨졌다.
학교를 통해서, 아이들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전쟁과 관계없는 것이라는 것이 한심하게 보였던 것이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견식을 넘어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어리석다고 여긴다.
큰 지혜는 어리석게 보인다라는 대지약우라는 말은 그런 면에서 오딘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딘은 인간들이 모두 똑똑해질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똑똑한 인간은 소수면 충분했다. 소수의 똑똑한 자들이 다수의 어리석은 자들을 통제할 때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프레이야 제국에서 벌어지는 이 변화들을, 인간의 행복에 집착하는 반신들의 바보짓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배가 완성되었습니다.”
오딘의 명령에 드워프들이 공을 들여 만든 하늘을 나는 배, 비행함은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되었다.
천공성과 같은 하늘을 나는 재료인 부양목을 사용해서 함선을 만들고, 대포를 이용해서 무게추로 삼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대에서도 최첨단으로 여겨지는 오스프리와 같은 틸트 로터를 배의 좌우에 장착했다.
날개의 방향과 로터의 방향을 바꿔서 상승, 하강, 전진, 회전이 가능하도록 만든 예술품과도 같은 기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돛이 달려서 함선을 제어하는데 도움이 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 예술품과도 같은 함선이, 바람을 가르고 나를 만큼 빠르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흠, 그렇군. 그럼, 이제 온전히 기계의..”
“저, 이런 기획이 있습니다. 다리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포대입니다. 부양목을 이용해서 몸체를 만들고, 증기기관의 힘으로 다리를 움직여서 거미와 같이 움직이는 겁니다. 왠만한 지형을 가볍게 넘나들면서 안정적으로 포를 쓸 수 있습니다.”
비행함을 만들면서 확인한 것이지만, 증기기관의 출력만으로는 도저히 하늘을 나는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게 드워프들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오딘의 독촉에 맞춰서 비행함을 만들긴 했지만, 어떻게든 헬기 개발만큼은 피해야 한다는게 그들이 짜낸 마지막 ‘생존 수단’이었다.
“흠, 그거 괜찮군. 그럼 둘 다 진행하도록 하지. 기계의 힘만으로 하늘을 나는 그런 기체를 만들게. 최대한 빨리.”
오딘의 말에 드워프 족장은 침통한 표정이 되어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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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들은 천재들입니다. 이들의 포효에는 혼이 담겨 있어요.”
미국에서 초빙되어 놀들의 음악을 준비하던 음악 프로듀서가 전율하면서 외쳤다.
“그래? 내가 보기엔 개짖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조제성은 물론이고 메탈 아이돌 계획을 추진해온 장수한도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훌륭한 겁니다. 이런 혼이 담긴 외침이 가능한 아티스트는 없어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놀들에게 사랑 이야기를 부르라고 하면, 그게 통용될 리는 없었다. 그들은 주로 사냥감을 몰면서 겁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불안감에 빠뜨리고, 공포에 몰아넣기 위해서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위협해 왔다.
“이 아가씨들은 정말 놀라워요! 이들은 정말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말로 사람을 가볍게 죽일 듯한 눈빛이에요!”
음악 프로듀서의 말에 장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도 죽이고, 많이도 잡아먹었지.’
메탈이라는 장르도 다양한 세부 장르가 있지만 강함을 숭상하는 부류가 꽤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살기어린 놀들의 눈빛과 무심한 학살자다운 태도는 보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왔다.
“누구야! 여기 구석에다 오줌 싸 놓은 거! 당장 안나와! 니들이 개냐? 고양이냐? 개나 고양이도 니들보다는 낫다!”
놀들의 관리에 성질버리고 있는 희연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음악프로듀서를 전율과 공포에 빠뜨린 놀들은 순식간에 쪼그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음악프로듀서는 왠지 모를 배신감에 빠져들었다.
혼돈의 대륙은 야성이 넘치는 전장이었고, 포효가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아군에게 힘을 주고, 사기를 불러일으키며, 적에게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는 중요한 도구였다.
야성 넘치는 그리고 살기가 넘치는 혼돈의 대륙의 음악은 메탈과도 상성이 좋았다. 놀들은 제대로 된 음악을 배우지 못했다. 질서있게 딱딱 화음을 맞추지도 박자를 맞추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음악속엔 뭔가 일관성이 있었다.
듣는 이에게 두려움과 동시에 야성, 파괴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노래가, 자연스럽게 완성되었다.
“괜찮군.”
음악에 소양이 적은 조제성이나 장수한이 듣기에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노래였다. 듣는 사람을 영혼 밑바닥부터 불안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정교한 아이돌들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들리는 듯한 무질서하지만 광기 넘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듣기에도 미성이지만, 결코 아름답지 못한 음악이었다. 아니 아름답지 않기에 아름답게 들리는 모순적인 면을 가진 음악이었다.
파멸의 미학, 죽음의 미학, 야만의 미학이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돈은 크게 안되겠지만, 화제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수한의 예측은 타당한 것으로 보였다.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할 곡으로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화제가 되도록, 연출을 해보지.”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놀들은 남미로 옮겨졌다.
조제성은 놀들의 가짜 신분을 장만했다. 일제점령기에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재일교포이면서, 전후에 일본인들과 함께 남미로 이주했다는 설정으로 신분을 세탁시켜서 준비했다.
그것으로 독특한 억양이 있는 영어와, 미숙한 한국어를 커버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미국에서 어느정도 성공하면, 언론에서 알아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대서 특필해줄 것이라는 것은 굳이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기는 희연, 연하와 함께 미국에서 벌어질 패션 브랜드 ‘브리싱가멘’의 신상품 공개쇼의 초대객 겸 모델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며칠 사이에 버릇 나빠지면 안되는데.”
희연은 놀들을 걱정하면서 말했다. 원기는 희연의 집중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있는 놀들이 살짝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금들 꽤 좋아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런 원기의 생각과 달리, 놀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무리를 짓는 동물들은 엄한 보스가 쥐잡듯이 잡을 때, 도리어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야단쳐줄 희연이 없으니, 되려 사고도 치지 않고 얌전히 있었지만 꽤 신경질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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