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199화 (199/497)

199화 교토삼굴

놀들로 만들어진 그룹 세비지 빗치즈의 경우,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제법 인지도가 효율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중학생 남짓의 소년소녀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디 원(The One)’이라고 불리우는 소녀, 놀 원의 존재가 컸다.

그녀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적게는 십대 후반에서 많게는 20대 초반에 이르는 언니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폭군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눈빛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다른 놀들은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작은 체격에 귀여운 외모지만, 그녀는 약육강식이라고 말하면서 언니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명확히 했다. 같은 어머니를 가진 혈육이면서, 확실하게 크고 성격도 만만치 않은 언니들을 발깔개 취급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린 소년소녀들의 우상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들의 데뷔곡, ‘이팅 미트(Eating meats)’역시 야한 내용은 없이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가치관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에게 동경이 되어 버렸다.

짐승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소년 소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기를 보였다. 미국 부모들은 섹시 코드가 들어있지 않은 그녀들의 노래가 가진 위험성을 간과했다.

마돈나나 레이디 가가 같은 뮤지션보다는 노출도 없고, 성적 내용이 결여된 놀들의 노래가 낫다고 여긴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듣는 노래의 그룹명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독특한 서브컬쳐 뮤지션, 그것이 놀들이 성취한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성인들은 그다지 알지 못하고, 빌보드 챠트 등에서는 그리 높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외국에서 잘나가는 한국계라고 하면 눈이 돌아가는 특유의 국민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한국계 남미 출신 소녀 그룹이, 한류와 관계없이 미국에서 메탈 아이돌이라는 특이한 쟝르로 성공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온갖 방송매체에서 대서 특필된 것이었다.

미국에서 물어보면 열명 중 한명이 알까말까한 그룹이, 한국에서는 모르면 간첩소리가 나올만큼 유명해져 버렸다.

“아, 역시 미국 데뷔의 힘이 크긴 크군요. 왠지 짜증나지만.”

장수한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고, 한국말 실력은 어떻게 되지?”

“그게 놀 제로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꽝입니다. 특히 놀원이 심하군요. 그녀는 아예 문장을 만들어내질 못합니다.”

한글을 가르치는데는 성공했다.

영어를 가르치는데도 성공했다. 놀원은 인터뷰에서 영어로 주절주절 잘도 떠들어댔다. 언니들을 무시하고 묵살하면서, 잘난 척 떠드는 그녀의 모습이 소년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실제로 놀 원의 경우 놀 제로에게도 기어오르며 힘겨루기를 하는 판이었다. 이능 각성 덕분에, 놀 제로와도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다만, 희연과 원기에게까지 기어오를 생각은 없었다.

희연의 경우엔 검만 들면, 맨몸으로도 에인페리아의 육체를 지닌 놀 원과 대등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원기는 육체에 의지한 강함이라는 측면이 커서, 제법 검술을 쓴다고 하지만 놀들에게 있어서 원기를 이기기란 어린애 팔목비틀기나 큰 차이는 없었다.

물론 그것이 원기에 대한 환멸이나 실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강하게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수컷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하이에나적 습성이 정신적으로 남아있는 만큼, 기회를 봐서 ‘해치울까’라는 유혹이었다.

희연이 곁에 없을 틈에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제압하는게 어떨까라는 이야기까지 놀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적극 찬동하던 자들 가운데서 배신자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놀 원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린 소녀와 관계를 갖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 결혼가능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절대 엄금이라는 희연의 명이 떨어진 탓이었다.

희연의 말에서, 결혼 가능한 나이가 되면 허락해 줄 수 있다는 뉘앙스를 느낀데다가 내가 못먹는 떡, 남이 먹는 건 용서 못한다는 놀 원의 횡포 덕택에 원기는 친위대로 예정된 놀들에게 보쌈당하는 위기는 회피할 수 있었다.

미국 방송들에선 놀원의 거침없는 언행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놀의 유래에 대해서 들어도 될까요?”

“아, 모 게임에서나온 놀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인간이면서 하이에나 멋지지 않아?”

“하이에나가요? 썩은 고기를 먹는 비겁한 짐승 아닌가요?”

“썩은 고기를 먹는게 이상한가? 약하면 그거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 강자가 먹다 남긴걸 약자가 먹는다. 그게 섭리지. 그게 싫으면 강해지면 되는거고. 힘이 부족하면 무리를 짓거나 꾀를 내는거야. 그게 비겁한거라고 생각해? 하이에나도 여유가 있으면 사냥을 해서 먹이를 먹고, 힘이 있으면 사자를 쫓아내고 먹이를 빼앗아 먹지.”

놀 원의 당당한 태도는 제법 큰 반향을 불러왔다. 약자는 강자가 먹다 남긴걸 먹는다.

강함을 추구하는 가치관이지만, 폼이나 멋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의외로 멋지다는 반응을 끌어냈다.

“추하지 않나요?”

“약하면 추해지는게 당연하지. 약하면서 폼잡는건 병신이고. 약한 놈은 추하게 사는게 당연한거야. 그게 싫으면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거고. 강함도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그녀는 확실한 야생의 논리에 입각해서 세상을 받아들였다. 야만을 넘어선 야생의 논리, 그것은 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연하였다.

희연과 연하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에인페리아가 되었지만, 실제 내용엔 큰 차이가 있었다. 희연의 문제는 아버지의 문제, 가정의 문제였다. 반면 연하는 자신의 문제였다.

양궁 유망주로 한 몸에 기대를 받았던 그녀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엘리트 양성 과정을 밟아 나갔다. 그리고 그러던 중, 부상을 입어 선수로서의 길이 끊겨 버렸다.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잉여’가 되어 버렸다.

고등학생인데, 초등생 수준의 산수 문제도 제대로 풀 수 없었다. 오직 양궁만을 위해 살아와서 제대로 수업에 들어간 적도 없었다. 공부를 할 필요성도 없었고,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

가업겸 취미삼아 검을 휘두르던 우등생 소녀 희연과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골격이나 이목구비는 미형이었지만, 꾸밀 줄도 모르고 그저 운동만 해와서 피부는 그을렸고 거칠었다. 그녀를 예쁘게 봐주는 이들은 없었다. 그녀는 양궁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가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 길이 끊겨 버렸다. 그녀가 재기불능이 되어버린 순간,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있으나 마나한 잉여로운 존재, 공부도 못하고 힘도 못쓰는 그런 열등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여신의 구원의 손길이 와 닿았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의 삶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필요로 해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더 기뻤다. 모두가 자신을 저버렸을 때, 그녀 역시 세상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녀의 팔이 나아서 양궁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은 것은, 그 시절이 너무나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선택한 것이 박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 든 감정을 하나하나 깨닫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희연의 모습을 보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완벽한 초인, 그게 그녀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흔들림이 없는 강인한 정신, 완벽한 외모, 뛰어난 두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검 실력까지.

연하는 그녀를 보며 내심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기가 그녀에게 강한 호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며, 주변에서 겉돌 수 밖에 없었다.

“못난 놈은 강한 놈이 먹다 남긴 거라도 먹어야지!”

연하는 놀원이 귀엽게 느껴졌다. 희연에 대한 열등감에 짓눌리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을 필요로 해준 원기의 기대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두려워서 전전긍긍하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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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 혹시 세비지 빗치즈 아닌가요? 걔다가 연하양까지.”

김민정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기와는 동물들을 조련하는데 협조하는 관계로 자주 만났지만, 다른 이들과는 거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희연이 한번 들렸을 뿐이었다.

“희연씨와 친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연하양과도 저렇게 친한 줄은 몰랐어요.”

원기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고작 한 살 차이인데, 희연은 ‘씨’고 연하는 ‘양’이었다. 김민정이 희연보다 3살 연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색한 일이었지만, 희연이 풍기는 분위기엔 확실히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반면 연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놀 원은 연하를 라이벌로 여기고 서열 싸움에 이기려고 필사적이었지만, 연하는 그런 놀원을 그저 귀엽게 여기고 놀리고 있었다.

‘이미 싸움이 안되고 있는걸.’

놀원이 야생에서 죽고 죽이는데 단련되어 왔다면, 연하는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서, 스포츠 선수가 되기 위해 단계를 밟아왔다. 야성의 감은 키울 수 없다고 해도, 몸을 쓰는 요령을 비롯해서 몸을 만드는 요령도 잘 배운 상태였다.

그리고 희연과 함께 전투를 벌이며 성장해왔다. 그녀의 전투 경험과 기술, 능력 모든 면에서 놀 원을 상회한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연하의 비교대상은 희연을 제외하면 엘프들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잃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희연이라고 해도 숲속에서 엘프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빌딩 복도의 천정이나 벽을 차고 기동하는 것이라면 희연도 대응 가능했지만, 나무의 탄성을 이용한 복잡하고 입체적인 기동은 숲에서 살아온 엘프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공격 중심의 다크엘프들은 회피 중심인 엘프들보다 상대하기는 좀 쉽다는 점이었다.

“슬슬 여러분들도 계획의 다음 단계에 돌입하게 될 테니, 미리 인사 정도는 해두는게 좋겠지요. 저 하이에나 군단과 연하를 비롯해 몇 사람들이 다음 단계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적어도 몇 달은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 할 테니, 인사나 해두세요.”

이미우와 김민정, 김태훈, 서유리 등은 게임 캐릭터를 이용하지 않기로 되었다. 게임 캐릭터의 부활 능력 말고는 그렇게 살리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은 안전과 파티 채팅을 위해 게임 캐릭터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투적인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체조선수들 저리가라 할만한 신체 능력과 운동 감각을 가진 엘프들이 너무나 강력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지구의 전투 전문가들을 모집하는 것도 때려 치운 상태였다.

물론 실전 경험이 많은 노병들은 훈련 교관으로 모아들이고 있었다.

호전적이고, 야생적인 놀들 조차도 엘프들에 비하면 전력으로선 좀 부족함이 있었다.

그들을 능가하는 전력이 있다면, 수인족들 가운데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수인들을 위한 전투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문파들, 그들 속에서 강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희연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 제로의 말로는 이능을 제외한 순수 전투력만이라면 약 백여명 정도는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무협의 고수들처럼 백명 고수 내에서도 서열차에 따라서 실력이 나뉘는 것은 아니었다. 백대 고수가 되면 모두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이었다. 동급 고수들이라 일대 일이면 실력에 의한 승부가 나지만, 이대 일이라든가 그 밖의 변수가 있으면 실력차 따윈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놀 제로는 희연을 만나기까지는 어떤 적을 만나도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희연과 붙게 된다면, 희연은 놀 제로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틈틈이 쪼렙학살을 이용해 놀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놀 원이 진수에 멈춰서 이능을 사용할 수 없었던 시기엔 손쉽게 전멸당할 수 밖에 없었다.

희연은 동급의 고수가 적어도 세 명 이상 붙어주지 않으면 발을 묶을 수 없다는 점에서 프레이야 진영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저거 보스 같네요.”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놀들도 사극류나 전쟁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휴게실에서 곧잘 보는 프로중 하나가 다양한 삼국지 관련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이었다. 그리고 놀 제로가 삼국지 드라마를 보던 중에 여포를 보고 던진 말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여포라고 소개했다가, 여보라고 불리우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엘프들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난 어때요? 관운장하고 비슷한가요?”

원기가 묻자, 놀 제로는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다면, 저기 연인이라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네요.”

놀 제로의 말에 원기는 충격을 받았다. 놀들은 관우처럼 꼬장꼬장해보이는 사람보다 호탕해보이고 자유로워보이는 ‘산적 같은’ 이미지의 장비를 더 마음에 들어했지만, 그렇다고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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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몬스터 트레이닝입니다. 혼돈의 대륙 제압은 서브 미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조제성은 원기 일행에게 그렇게 당부했다.

“뭔가 걱정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원기 역시 조제성과 어울린지 오래된 터라, 말투만 들어도 어느정도 눈치는 챌 수 있었다.

“혼돈의 대륙에 명백한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그게 뭔지 아직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움직임이요?”

“예. 큰 규모의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전조가 있는 법이지요.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천재지변이든 전쟁 같은 인재든 말입니다. 문제는 그 움직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혼돈의 대륙은 명백히 신성력에 적대적인 기운으로 차있었다. 그렇기에 발키리를 사용하기도, 차원은 물론이고 공간 이동용 게이트를 사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신 캐릭터의 굴베이그를 지하 던젼에 배치한 덕분에 공간 이동용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굴베이그를 두고도 차원 게이트가 아닌, 근거리 공간이동 게이트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게 혼돈의 대륙이 가진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조제성에게 있어서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제성을 보면서 원기는 내심 감탄할 수 있었다.

‘인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뒤통수를 맞아도 크게 맞지는 않을 사람이야.’

“일단 저는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할 듯 하니, 원기님께 현장 지휘는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최대한 안전 위주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뭐, 그 부분은 굳이 말씀드릴 필요도 없겠습니다만.”

원기의 경우, 모험을 하지 않고 희생을 내지 않는 수비적인 지휘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 성향을 염두에 둔다면 꽤 우수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현장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희생을 감수하고 전과를 올리는 타입의 지휘관도 가끔 필요하지만, 모험하지 않는 수비적인 지휘관은 언제나 소중한 법이었다.

“우주개발이요?”

원기는 조제성에게서 튀어나온 의외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우주 개발 같은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옙. 미드가르드의 공간이동 기술은 우주 개발에 엄청난 득이 됩니다.”

조제성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분야에 이쪽 저쪽 돈을 투자해 둔 상태였다. 그가 노린 것은 통신용 정지 위성이었다.

특수 반사 안테나라는 이름으로 공간 이동 게이트를 정지 위성에 장착하는 것이 제 1 단계였다. 그리고 제 2 단계는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서 관측이 어려운 운석형태를 지닌 캡슐을 우주에 보내는 것이었다.

캡슐의 내용물은 역시 공간 이동 게이트였다.

이 공간 이동 게이트를 캡슐을 이용해서 달에 떨어뜨리고, 달의 땅 속에 피난용 기지를 만드는게 목표였다.

지혜로운 토끼는 굴을 하나만 파지 않는다. 적어도 세 개는 준비한다는 교토삼굴이라는 표현이 지극히 어울리는 인물이기도 했다.

“일단, 통신 위성의 확보는 했지만, 공간이동 게이트에 안테나 기능을 집어 넣는게 쉽지 않군요. 그리고 각국의 천체 관측 레이더의 사각을 찾는 작업은 꽤 오래 걸릴 듯 합니다.”

운석이라지만, 위성궤도에 갑자기 등장해서 달에 추락한다면 강대국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 의심받지 않도록 해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달에 공간이동 게이트를 설치할 수 있다면, 공기의 저항도 없이 저중력인 상태에서 우주로 발사체를 쏘아올리는게 가능했다.

달기지 건설에 최소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리겠지만, 수십년에서 수백년 사이에 우주 진출도 가능해 질 수 있을터였다.

‘은퇴하고 시간 죽이기엔 나쁘지 않겠지.’

조제성은 최대한 빨리 은퇴하고 혜서와 조용히 살 생각이었지만, 너무 혜서에게 달라붙어 있으면, 혜서가 싫어할 수도 있었다.

적당한 수준의 취미생활은 은퇴 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었다. 최소 수백 년의 은퇴 생활을 사랑하는 님과 함께 알콩달콩 살아갈 의욕으로 가득찬 조제성에겐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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