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02화 (202/497)

202화 지옥의 열쇠

“이건?”

바토리의 욕조에 피를 닦아내던 현자회의 추종자 가운데 한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핏자국이 묘하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고대에 사용되었던 언어임이 틀림없었다.

“빨리 간부 분들을 보셔와라.”

그는 재빨리 욕조에 새겨진 핏자국을 디지털 카메라로 면밀하게 촬영했다. 같은 사진을 몇 번 아니 몇십번씩 다시 촬영했다.

“잘해 주었네. 역시 바토리의 욕조를 맡길만 하군.”

욕조의 피를 닦고 관리하는 일은 현자회에서도 상당한 신뢰를 받는 자가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광입니다. 포세이돈님.”

포세이돈이라는 코드명을 쓰는 이는 가면을 고쳐쓰면서 욕조를 면밀히 살폈다.

“신들의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 열리리라…인가. 마지막에 있는 것은 분명 헬 여신님의 문장이로군.”

포세이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북구 신화의 신들은 잔인하고 야만적이지만, 추종자들에게한 약속은 지키는 존재였다.

신들의 계약자는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불로불사의 삶을 약속 받았다.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악마의 계약과는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신들의 계약자들 역시 비참한 말로가 기다린다고 했다.

그 비참한 말로라는 것은, 사는게 너무 지겨워져서 신들에게 허락받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겨울만큼 살 수 있는 불로불사.

그 말로를 원하는 이들이 현자회라고 할 수 있었다. 바토리의 욕조와 같은 신물을 사용해서 수명을 연장해 온 이들이기는 하지만, 불로불사와는 거리가 멀었고 부작용도 있었다.

늙지않는 젊고 아름다운 에인페리아의 육체를 얻어서 지겨울만큼 사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세상을 멸망으로 밀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얻고 싶은 것이었다.

“여신님의 지시를 받았다면, 피를 채우고 혈정을 발동시키라고 쓰여 있군.”

포세이돈은 제우스를 비롯한 현자회 간부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미 하데스의 자리에는 또 다른 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이 혈정을 발동시키자 피가 끓어오르면서 혈정이 붉은 빛을 발했다. 그리고 잠시 후 피가 증발하면서 새로운 지시 사항이 쓰여졌다.

그곳에는 혈정을 이용해서 마법 아티팩트를 만드는 방법이 쓰여져 있었다.

“이건?”

“차원의 문을 유도하는 표식이라고 해야 하나? 지옥문의 열쇠라고 해도 될 듯 싶군.”

“누군가에겐 지옥이겠고, 우리에겐 낙원이겠지. 그 어느 종교의 낙원처럼 처녀 수십명의 시중을 받는 것은 일도 아닐 테니 말일세.”

“하하, 처녀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우린 약속된 아름다운 육체를 갖게 될 테니 말일세.”

현자회는 그들의 오랜 기다림이 결실을 맺을 거라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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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육체는 정말 맘에 드는군.”

펜릴은 로키가 준 육체를 받고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늑대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덩치는 3미터에 가까웠다. 에인페리아와 비교도 안되는 압도적인 강함이 온 몸에서 느껴졌다.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 그리고 야성이 온 몸에서 느껴졌다.

과거에 사용하던 거대한 신체는 신들의 전투에서 유효하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거대하고 느린데다가 신성력의 소모가 컸다.

반면 이번 육체는 적절한 크기에 엄청나게 강력했다. 육체를 유지하는데 신성력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매력적이었다.

혼돈의 힘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신성력을 방어용으로 사용 가능했다. 물론 혼돈의 대륙에서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요르문간드 놈, 제법 재미를 보고 있겠지.”

요르문간드의 육체 역시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펜릴과 비슷한 강인한 육체에, 목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긴 목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두꺼운 비늘이 있었다.

용신을 자처하면서, 용족들을 숙청하고 혼돈의 힘이 실린 내단들을 모으고 있었다.

이미 디레의 일족은 모두 청소된 상태였다. 디레가 내단을 최대한 많이 챙겨준 것이 되려 독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로키의 계획은 간단하다면 간단했다.

미드가르드에서 균형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신성력을 소모시키고, 적대 신의 백성들을 죽이다보면, 결국 공멸을 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혼돈의 대륙을 이용한 것이었다.

오딘도 처음에는 꽤 끈질기게 의심하고 감시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나고 이백년이 지나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혼돈의 대륙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로키는 지구 재침공을 획책했다. 그리고 그 때 반신족과 아스신족, 거인족들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혼돈의 대륙을 꾸민 것이었다.

강력한 몬스터들은 혼돈의 힘이 공급되지 않으면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혼돈의 힘이 농축된 내단을 이용하면 혼돈의 힘이 없는 곳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달랑 한알만 가지고도 약 일주일을 날뛰게 만들 수 있었다.

대륙 내부의 강력한 몬스터들을 내단을 먹인 뒤 지구에 던져두고, 혼돈의 힘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육체와 군대를 이끌고 지구를 점령한 뒤, 미드가르드에서 판을 벌릴 예정이었다.

혼돈의 대륙에서는 신성력을 쓸 수 없는 만큼, 게이트를 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혼돈의 힘을 이용해서 게이트를 여는 방법이 어느정도 완성된 상태였다.

헬은 추종자들이 여전히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차원의 문이 올바로 지구로 이어지도록 열어줄 터였다.

로키를 비롯한 거인족의 신들은 인간들이 고작 이천년도 못되는 시간동안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발전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딘 정도만이 현대 문명의 기적을 살짝 엿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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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다행이야.”

1만척의 비행정 건조 계획이 내려오자 오딘 휘하의 드워프 일족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오딘이 요구한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는 비행 물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1만척의 비행정 건조 계획은 그들에게 있어선 정말 기쁘기 짝이 없는 소식이었다.

어차피 혹사당하는 것은 변함없는 만큼, 불가능한 일에 쥐어짜이는 것보다는 결과가 약속된 일에 혹사당하는게 나았다.

“폭격이라는 거, 참 대단한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입니다. 화약 생산량을 무시한 개념입니다.”

“역시 그런가요?”

“화약을 그렇게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화약이 그리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지요. 탁상공론입니다.”

“선체 아래쪽으로 노려서 쏠 수 있는 대포를 만드는게 더 효과적일 겁니다.”

“제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만도 대단히 어려운 개념이로군요.”

“탄피를 이용한 후장식으로 만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겁니다.”

아래쪽으로 쏘는 대포라는 것은 만들어 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한 드워프들이었지만, 이미 오딘이 내려준 정보를 이용해서 AK-47과 유사한 돌격 소총을 제조해 본 바 있는 드워프들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대포의 개량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들이 만드는 무기의 질이 뛰어나지만, 생산성이 빈약하다는 점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과 드워프들이 일일이 깎아서 만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일만척에 그런 대포를 일일이 장착하는건 무리입니다. 대포 하나 만드는데 열흘은 걸릴 겁니다.”

“차라리 폭탄창을 다는게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폭탄창이 있다 해도 폭탄이 문제입니다.”

“끓는 물이라도 부으면 되지 않겠소?”

결국 드워프들은 지상을 노려 쏘는 라이플포를 포기하고, 폭탄창을 만드는 오답을 선택했다. 고공에서 끓는 물을 부어봐야, 아래에서는 미지근한 샤워밖에는 안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아니 설령 알고있다고 하더라도, 오딘의 지시대로 만드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다만 비행정 중 십여척을 대형으로 만들면서 그 하부에 드워프제 라이플포를 다수 장착하는 형태로 그들의 지혜가 결실을 맺기는 했다.

대규모의 비행정 조선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제성이 의도한대로 오딘이 비축한 신성력을 소모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부양목 역시 세계수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아티팩트였고 생산하는데 신성력을 소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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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야. 일단은.”

프레이는 블러드 라인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외부 세계의 존재가 블러드 라인 내에 들어오게 되면, 오랜 시간 버틸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시험결과 외부 세계의 존재 가운데, 장시간 존속 가능한 것은 발키리와 유사 정신체 뿐이었다.

잠시 경유하는 것은 괜찮지만, 오래있으면 물질계의 존재들은 존재 자체가 미약해져서 사라졌다.

하지만 프레이는 발키리가 이 세계에서 존속 가능하며, 존재에 필요한 에너지를 세계에서 받아들이는 점에 착안했다.

블러디 라인 그 자체가 프레이야에 속해있던가 적어도 일부는 섞여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프레이야의 일부인 세계수 조각이 이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세계수 조각을 나무 봉의 형태로 깎은 다음 도끼날과 결합시켰다.

분명 제작 과정 자체는 극히 평범하게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온 아이템도 꽤 평범한 스펙의 물건이었다. 초보용의 도끼였다. 하지만 그 아이템에선 신성력이 감지 되었다.

그리고 호철에게 넘겨서 시험해본 결과, 현실 세계에서 완벽한 아이템으로 구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벤토리에 넣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과, 죽는다고 드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가치가 있었다.

“드랍템이 좋은 건데 말이지. 제작템 말고는 방법이 없나.”

나름 성공을 하고도 프레이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애써 끌어모은 전설 셋들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은 실패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에이, 골치 아플 때는 닥치고 사냥이나 하는게 최고지.”

프레이는 현실도피라는 폐인 스킬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조만간 제조 전문용 대장장이 캐릭터를 하나 키우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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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와 희연은 연하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연하는 하늘을 날아서 도주했지만, 그녀를 쫓는 것은 평범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하반신은 거미에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인 헬과 뱀의 머리를 한 용족인 요르문간드가 따르고 있었다.

헬은 단신이 아니라 부하 거미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깡총거미처럼 폴짝폴짝 하늘을 날듯이 뛰면서 쫓아왔다. 연하가 바람을 교묘하게 타면서 날아오지 않았다면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잡혔을 것이었다.

요르문간드와 용기사들 다수를 태운 헬과 거미들이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상황은 어때?]

[굉장히 안좋아요. 디레와 리디아 언니를 포함한 친위대가 달아난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이거 꼼짝없이 죽게 생겼는데요. 그냥 물러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연하의 말에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연하만 죽음을 겪게 한다는 것이 미안해서 자신만이라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희연도 같이 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원기님은 살아야 합니다. 살기 싫어도 모두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며칠 전 조제성이 했던 말이, 원기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첩보 행위를 위해 스파이로 파견되는 사람들이 일년에 수백명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말리려고 했다가 조제성에게 한소리 들었다.

조제성은 원기에게 단언했다.

“그들은 원기님을 위해 죽은게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죽은 겁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을 지키고 싶어하는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있습니까?”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할 말을 잃었다. 죽고 싶어도,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왠지 무겁게 다가왔다.

분명 현실 세계에서도 세상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싸우고 죽어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삶이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을 터였다.

희연은 원기의 표정을 살피고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일단 한바탕 싸워 보지요. 우리쪽은 경험치랑 무기 정도만 손해 보지만, 상대는 꽤 많은 신성력을 낭비하게 될거에요. 정보 수집은 꼭 필요한 것이니.”

원기는 희연의 격려에 미소를 지었다.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상황은 아니었다. 한번 싸워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였다. 용신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페인 마스터리의 맛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좋아. 닥치고 한번 붙어 보자.”

원기는 망설임을 끊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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